‘민주당의 왼쪽 날개’가 대안이라는 허튼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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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의 분열 속에서 진보진영 일각에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 아니라 민주당과 전략적 제휴를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특히, 통합진보당 유시민 전 대표는 “민주당의 왼쪽 날개가 된다는 것도 의미 있는 시도”라고 했다.
유 전 대표는 “욕하고 비판하고 소리 지른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며 기층 투쟁의 의의를 폄하하면서 이런 주장을 폈다.
김기원 교수(이하 경어 생략)가 최근에 출판한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는 이런 ‘민주당 왼쪽 날개’론의 문제의식을 아주 잘 보여 준다.
김기원은 “재벌, 보수·수구언론, 검찰, 관료의 과두체제를 바로잡”기 위해 “진보·개혁·평화를 지향하는 세력”이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유시민과 비슷한 주장을 한다. 특히 김기원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서 엉뚱한 교훈을 끌어낸다.
김기원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수구적 보수세력과 노정권이 격돌할 때에는 노정권 쪽에 힘을 보탰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 진보진영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김기원은 노무현 정부가 “자기편을 축소·약화시키고 반대편을 확대·강화”시키는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한다.
노무현 정부가 개혁과 진보의 약속을 어기고 기득권 세력에 굴복한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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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은 노무현 정부의 이런 오류가 “적과의 심각한 권력투쟁에 직면해 있다는 의식이 부족해 싸움의 전략과 전술을 제대로 수립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거나 “행정관료 또는 관료화된 참모들에 의해 맥을 못 추게 된 것” 때문이라고 변명해 준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진보적 대중과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며 그 운동에 힘을 실어 보수적 관료층에 대항하려 하기보다 보수적 관료들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가며 진보·노동운동을 공격했다.
이 때문에 이정우·정태인 같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견디지 못하고 노무현 정부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김현종 같은 보수적 관료에 의지해 한미FTA를 밀어붙이기까지 했다.
노무현 정부가 이처럼 의식적으로 보수세력과 똑같은 정책을 채택한 것은 전략·전술을 제대로 수립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1퍼센트 세력에 기반해서 한국 자본주의의 성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한나라당 같은 보수세력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기원도 지적하듯이 노무현의 왼팔이라는 “이광재는 삼성과의 유착 문제로 논란을 빚은 바 있었”고, 이를 입증하듯이 노무현 정부 시절은 “삼성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국정이 굴러간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런 기반 때문에 정책의 연속성도 계속되고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은 한미FTA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 논리가 과장돼 있다”며 한미FTA 반대 운동을 평가절하 했고, 유시민의 참여당은 “한미FTA 원안 찬성”이라는 입장을 번복한 적이 없다.
시장의 효율성?
김기원이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이런 차이를 애써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은 그가 이윤 논리를 추수하고 있는 것과 관련 있다.
김기원은 ‘희망버스’ 운동을 비난한 바 있다.
“정리해고는 창조적 파괴라는 성격을 갖고 있”어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정리해고가 없을 수 없”는데, 희망버스 운동은 바로 정리해고 철폐라는 잘못된 목표를 지향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김기원은 “정규직의 경직성과 무분별한 비정규직 확대가 상호작용”하고 있다며, 정규직의 고용안정성도 공격하고 있다.
그러면서 김기원은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포기하라며 복지 강화가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기원이 맹신하는 ‘시장의 효율성’이 바로 복지 확대에 반대하는 근거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보수세력뿐 아니라 “시장으로 권력이 넘어갔다”고 말한 노무현도 “정부가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빼앗아 나눠 준다고 하면 큰 코 다친다”며 복지 확대를 통한 부의 재분배를 반대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유시민의 참여당도 진보진영이 추진해 온 무상의료, 무상교육,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운동 등에 대해 “엄청난 재정적자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부정적이었다.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기업주들은 자신의 사업장에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확대를 강행할 뿐 아니라 복지 확대에도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노동계급을 공격할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두 차례 집권하면서 이 같은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온갖 신자유주의·친제국주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자신의 지지자들과 노동계급을 공격한 바 있다. 바로 이 점이 10년 만에 우파 정부가 반사이익을 통해 재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따라서 진보세력이 민주당과 전략적 제휴를 해 그 왼쪽 날개로 들어가거나 그들과 연립정부를 추진한다면 거기에 발목이 잡혀 자기 지지 기반을 공격하는 것에 동참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고 진보적 대중의 개혁 염원을 달성하려면 민주당의 왼쪽 날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과 독립된 진보진영의 세력을 결집시켜 그 목소리를 높이고 진보적 노동자 운동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결집한 진보진영은 반자본주의적 지향을 분명히 해야만 경제 위기 시기에 대중의 삶을 개선하는 개혁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