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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 상임활동가 이종란 인터뷰 ②:
“사람의 생명보다 이윤 먼저 추구하는 체제가 진정한 문제입니다”

반올림 상임활동가 이종란 인터뷰 ① “벌써 58명이 죽은 지금, 이제는 정말 응답할 때”에 이어서 구미 불산 사고와 산업 재해 그리고 진보진영의 대안에 대한 인터뷰를 추가로 싣는다.

1. 얼마 전 구미에서 일어난 불산 유출 같은 사고가 왜 일어나는 걸까요?

공개된 cctv 영상에서도 봤듯이 안전 장치를 다 열어 놓고 작업을 하다가 유출이 됐는데, 왜 안전 장치를 열어 놓고 작업하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필요 인원에 비해 근무하는 노동자가 적다 보니 업무 과부하가 걸리고, 일은 많고 빨리 해야 하니 안전 장치를 풀어놓고 일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럴수록 이윤이 더 늘어나니 기업주들은 묵인하거나 오히려 조장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런 사고가 노동자들의 안전 불감증 때문이라는 식으로 호도하는 것은 큰 문제가 있습니다. 적은 일손으로 그 많은 일을 다 해야 하는 조건을 만든 것은 회사의 책임이고, 안전이고 뭐고 이윤만 추구하면 그만이라는 야만적 체제에서 만연하는 문제인데, 개별 노동자의 안전 불감증으로 책임을 떠넘긴다는 건 말이 안 되죠.

반도체 공정에도 불산이 많이 쓰이는데 그 과정 중에도 안전이나 이런 것들은 그다지 고려 대상이 아니에요. 삼성반도체에서 15년간 일하다 루게릭병에 걸린 이윤성 님은 반도체 증착설비 안에 낀 공정 부산물을 제거하기 위해 고무장갑 외에 별다른 보호장구도 없이 불산을 들이붓고 솔로 세척하는 작업을 했어요.

또, 근무 중 수없이 많이 가스나 화학물질 누출이 발생하는데 감지기를 형식적으로만 설치하는 경우도 많아서 작업자나 엔지니어는 그런 환경에 노출되어 호흡기로 흡입하기도 한다는 거죠. 하지만 담당자들은 상황을 알면서도 생산물량 때문에 묵인하는 거죠. 그리고 최근 불산 누출 사건처럼 위험한 가스나 화학 물질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해서 작업자가 다치는 경우도 산재보험 처리하지 않고 쉬쉬하면서 회사에서 돈 주면서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거예요.

삼성백혈병 사망노동자 고 황유미 님과 함께 삼성반도체 3라인에서 근무한 노동자 증언에 따르면, 노후화된 라인은 한 달 내지 두 달에 한 번, 1년에 적어도 8~10번은 낡은 배관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이때 라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그냥 터져 나온 화학물질을 고무장갑만 끼고 손걸레질로 치우곤 했다고 해요. 게다가 작업 중 끼고 있는 장갑이 비닐 장갑인데 불산이나 황산 같은 산이 조금만 튀어도 구멍이 나고, 일하다 보면 쉽게 찢어지기도 한대요. 그러니 이런 걸 많이 취급하는 사람들은 위험에 노출된 거죠.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합니다.

한 설비 엔지니어의 제보에 따르면 자신이 모시던 상사 세 명이 모두 암에 걸리기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일반적으로 백혈병은 인구 10만 명당 약 3~4명 정도가 걸리고 젊은 사람들은 발병률이 더 낮은데 삼성반도체의 백혈병 등 혈액암 피해자가 드러난 최소치만 30~40명 가량 돼요. 정부 조사에서도 ‘악성림프종의 경우 통계적으로도 유의하게 높다’는 역학조사도 있었고요.

그래서 그 원인을 밝히는 후속조사가 계속됐는데, 올해서야 비로소 그 연구결과가 조용히 발표됐습니다. 연구결과는 충격적이었어요. 반도체 가공과 조립 공정 과정에서 열분해산물, 즉 제2의 부산물로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 발암물질들이 나온다는 것이 밝혀졌죠. 방사선 노출위험도 언급됐고, 폐암을 일으키는 비소는 노출허용기준을 4배 이상 초과한다고 연구결과는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구결과의 후속대처로 안전예방조치가 실시되고 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삼성은 여전히 위험하지 않다는 입장이고, 수많은 직업병 피해 호소에 대해서도 모두 개인질병이라고 일축하고 있고요.

2. 작업장에서의 노동자들의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런 상황들이 지속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노동자들이 왜 안전장치를 풀고 일하는지 이유를 살펴봐야 합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한 노동자가 얘기했는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 누가 더 많이 물량을 올리는가 하는 이런 경쟁이 굉장히 치열하대요. 개인 간의 그리고, 조별 간의 경쟁. 그러다 보니까 계속 더 많이, 더 빨리 일을 해야 하고 물량 달성을 많이 해야 하는데 안전장치를 걸어 놓으면 느리게 작동하거든요. 그러니까 수동으로 사람이 하는 게 더 빨리 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 장치를 풀고 작업하는 거죠. 풀고 작업하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러면 안 된다고 규제를 해야 하지만 실제로 기업주는 규제하지 않아요. 오히려 방조하죠. 생명, 건강, 인권, 사람 이런 것보다는 이윤이 우선시 되기 때문이죠.

3.어떻게 이런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한 개인이, 한 기업이 해결할 수 없고, 한 나라 안에서만 해결할 수도 없어요. 사회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요. 반도체 산업만 살펴봐도 알 수 있어요. 1970~1980년대 미국의 실리콘 밸리 지역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전자 산업, 반도체 산업의 기계들이 고스란히 삼성이나 하이닉스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이 기계들이 지금은 중국이나 아시아 제3세계로 이전되고 있어요.

원진 레이온에서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고통스럽게 만든 레이온 기계가 1920년도에 미국에서 일본으로, 1970년대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그 기계가 고사되지 않고 중국으로 이전되던 모습과 마찬가지인 것이죠. 자본주의에서 위험이 없어지지 않고 어떻게 전가되는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건 더 많은 이윤 추구를 위해서 규제가 없는 곳으로 이동하는 자본의 속성인 것이고, 그 문제에 근본적인 제동을 걸지 않는 이상 산업 재해를 없애거나 최소화 하는 것은 힘든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장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지금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주장하는 ‘기업 살인법’ 등의 제정을 들 수 있습니다. 영국은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기업주를 강하게 처벌한다고 해요. 그것을 통해서 산재 사고를 미리 예방할 수 있도록 하고 실제로 산재 사망사고가 대폭 줄어들었다고 해요.

반면 우리 나라 같은 경우에는 이천 냉동 창고 참사에서 수십 명이 죽고 이마트에서 일한 아르바이트생 노동자들이 질식사로 죽고 해도 고작 벌금 2천만 원, 벌금 1백만 원 내면 끝이었죠. 기업주에게는 껌 값 같은 그 정도의 돈만 지불하면 그만이죠. 그래서 산재 사고를 미리 예방할 수 있도록 기업주를 강하게 처벌할 수 있는 그런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법 제정도 그냥 되는 게 아니고, 노동자들의 압력, 사회적인 압력이 있어야 국회에서 통과되겠죠.

그리고 사업장에서 노출되는 발암물질을 규제해야 합니다. 규제만 제대로 해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노동자의 목숨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규제를 위해서 지금처럼 사업장 자율 관리가 아니라 정부에서 사업주를 규제하는 쪽으로 정책이 바뀌어야 합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노동3권의 확보입니다. 그나마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해고 위협 등 없이 안전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없애려면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맞서 싸우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노동 3권 없이는 건강권 실현은 불가능합니다.

금호 타이어와 한국 타이어의 차이를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죠. 민주노조가 있는 금호 타이어는 산재율이 높지만 사망 사고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용 노조가 있는 한국 타이어는 사망 사고가 많아요. 이게 보여 주는 바는 노동조합이 있냐 없느냐가 노동자들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라는 것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작업 중지권이라는 것이 있지만 실제로 힘있는 노조가 없다면 작업 중지권은 구현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위험을 인지하고 노동 환경을 바꾸는 일은 노동자들의 현장 통제력과 그것을 갖춘 노조가 있어야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