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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싸움은 우리에게 터널 너머의 빛과 같습니다”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한 청년 노동자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연대를 호소해 뜨거운 반응을 얻은 경험을 적어 보내 왔다. 이 청년은 친구들에게 후원을 호소해 단 이틀 만에 23만 원을 모았고, 10월 26일 열린 '현대차 울산공장 2차 포위의 날' 집회장에서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박현제 지회장에게 이 돈을 직접 전달했다. 이 글은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에게 희망과 기대감을 주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10월 26일 현대차 울산공장 포위의 날 집회가 있기 이틀 전, 박현제 지회장이 연행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더운 여름 내내 공장에서 싸우고 있었을 조합원들이 떠올랐고, 미조직 청년들인 주변 친구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체 채팅방에 후원을 제안하는 문자를 띄워 놓고 혹시 부담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하던 중, 친구들의 반응에 나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공 농성을 이전부터 알던 이도 있었지만 잘 모르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들은 즉각 대답했다. “콜”, “나도 콜”, “나도!” 흔쾌한 동의들이 쏟아졌다. 시원스럽게 “계좌” 단 두 글자를 답장으로 보낸 친구도 있었다.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이라면,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지지하고 보자는 마음들이었으리라.

우리의 이야기

우리 중엔 비정규직 노동자도 있었지만 학교 다니는 내내 알바를 안 한 적이 없는 대학생도 있었고, 한치 앞의 미래도 보이지 않는 취업준비생도 있었고, 학자금 빚을 짊어지고선 일터의 노동조건이 좋지 않아도 꾸역꾸역 참고 견뎌야만 하는 정규직 노동자도 있었다. 그러나 각기 다른 상황에도 모두가 매일같이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비정규직 문제가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모금에 흔쾌히 응한 취업준비생 친구들을 비롯해, 정규직 친구들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더 많은 후원금을 보탰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 준비를 하는 한 친구는 자기 하루 일당을 훌쩍 뛰어넘는 후원금을 내면서 ‘이번 달 여윳돈이 남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우리 중 가장 어린 대학생 친구는 ‘그동안 언니오빠들이 밥 사 주신 것 여기에 갚을게요’ 하며 약간의 무리(?)를 했고, 후원 제안을 받자마자 냉큼 입금부터 한 친구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해 줘야겠다며 남자친구 몫까지 후원금을 전해 왔다. 어떤 친구는 이 기회에 정기적인 후원을 하고 싶다며 장기투쟁사업장들을 좀 알려 달라고 했다.

각각 연대 메시지를 써줄 것을 제안했을 때 준비했다는 듯 유머와 패기 넘치는 응원 한마디를 날려 준 친구들도 있었지만, 연대 메시지를 처음 써 보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어색함에 머뭇거렸다. 빨리 수합해 정리하고 싶었는데, 이틀 후 울산에서 현대차 조합원들에게 후원금과 편지를 전달하기 직전까지 친구들의 메시지를 기다렸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대충 써서 줘 버리거나 그것도 쑥스러우면 거절할 법도 한데, 친구들은 첫 번째 밤에도 두 번째 밤에도 내일까지 좀 기다려 달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 말이나 쓰고 싶지 않다면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을 보고, 울컥한 가슴에 전하고 싶은 얘기가 아주 많았던 것이다.

집회에 참여하러 울산공장에 내려간다고 하자 전날 밤부터 먼 길 잘 다녀오라고 격려를 해 주더니, 그들 중 몇몇은 당일 저녁 기차를 타고 울산으로 내려가던 중에도 내내 ‘지금 얼마나 갔냐’, ‘날씨가 추운데 모인 사람들 걱정이다’ 하며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울산역에 도착했을 무렵, 한 친구가 느닷없이 생뚱맞고도 마음 아린 문자를 한 통 전송해 왔다. ‘같이 못 가서’도 아니고, “같이 못 해서 미안.” 졸업하고 계속해서 비정규직을 전전하던 친구였다. 금요일 저녁, 퇴근하고 돌아와 서울의 방 안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다가, 울산 철탑과 거기 모였을 사람들이 얼마나 눈에 아른거리고 얼마나 마음이 복받쳤으면 싶어 나도 가슴이 먹먹해져 버렸다.

오아시스

후원을 제안한 수요일 오후부터 금요일 밤 울산 집회에 모금과 편지를 전달하기까지 이틀의 시간 동안, 우리는 띄엄띄엄 많은 얘기들을 했다. 이 풍요로운 세상에 그 비싼 등록금 내가며 번듯한 대학 졸업하고 토익도 따고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세상 얘기를 했는데, 우리는 성인이 다 되어서까지 부모님을 부양하기는커녕 창피하게도 어떻게 하면 부모님께 덜 얻어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그런 세대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나 역시 6개월 단위로 계약을 해야 하는 비정규직이며, 계약직 두 번을 돌고 나니 이제 졸업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내년이면 서류 심사에서부터 잘리는 그런 나이가 되어 버렸다.

한 후배는 며칠 전 나에게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니, 긴 터널 지나고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비유 많이 쓰잖아요. 근데 난 터널이 아니라 그냥 무덤 파고 땅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 고되다.”

이렇게 지긋지긋한 절망감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누군가 땅 파기를 멈추고 화를 내며 마침내 역류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터널 너머의 빛이자 오아시스 같은 것들이었다. 울분에 몸에 불을 붙인 조합원이 전신 3도 화상을 이겨내고 살아 현장으로 돌아와 해고 노동자에게 편지를 읽었을 때, 나는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단 나뿐이었으랴. 어디선가 누군가들이 이미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야말로 지금껏 수많은 청년들을 ‘오늘 하루도 일단 살고 보자’며 아침마다 자리에서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어 왔으며, ‘엄마 친구 아들’이라는 환상이 아니라 ‘싸우는 노동자들’이라는 현실이 수많은 최진영들을 희망으로 하루하루 살려 왔고, 앞으로 또한 그러하리라. 많은 이들이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편이니, 지지하는 청년들 빽 믿고 현대차 노동자들도 마음껏 싸워 이겨내기를. 나도 빨리 그 싸움 함께하고 싶다.

다음은 친구들이 보내 준 연대메시지다.

- 상식이 통하는 그날까지 화이팅!

- 헤헤.. 다들 어렵겠지만 힘내요. 저도 학교 다닐 때 알바 두개 하면서 힘들다고.. 취업하고 돈 벌면 꼭 물질적으로도 함께해야지 했는데.. 이제 정말 돈 버니까 참여해야 할 것 같아요. 긴 시간 훌훌 터는 날이 빨리 오길 정말로 기도할게요. 아자아자!

- 혼자가 아닙니다! 작지만, 우리들 모두가 뒤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깊은 협곡을 만날 때가 있다. 하지만 협곡은 당신의 생각만큼 깊지 않다.”(미국 인디언 속담) 비정규직 타파를 위해 힘쓰는 모든 사람들 행쇼~♥

- 더 관심 있게 지켜보고 더 잊지 않고 있겠다구.. 전해주세요. 덕분에 힘 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 메마른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그 밭이 숲으로 여겨지는 승리 얻어내시길 :)

- 매력적인 현대 여성 ‘긴다이치와 최달’이 약소한 금액이나마 보내니 찬 겨울날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셨으면 합니다. 시발 사람을 존나 굴려먹으니 휴먼굴림체로 매일매일 사직서를 쓸까말까 고민하는 입장이나 이렇게 후원하기 위해서라도 휴먼굴림체 글씨크기 18포인트는 잠시 접어둘게요_☆ 서로 얼굴 한 번 못 봤지만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 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함께하지 못하지만 조그마한 성의를 보냅니다. 조금만 여유가 더 생긴다면 이런 제 부채 의식이 행동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좀처럼 그 여유는 찾아오질 않네요. 자괴감만 커져 갑니다. 더 이상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들의 죽음이나 희생이 없기를 바랍니다. 멀리서라도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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