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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흥미진진했던 세계사회포럼 워크숍:
자본주의 이후의 삶은 어떨까?

나는 현재 우리 운동 전반에서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는 논쟁을 화두로 발제를 시작하려 합니다.

작년 영국의 반자본주의 시위대 중에는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좀더 근사한 것으로 대체하자’고 쓴 큰 배너를 들고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전 세계 많은 사람의 운동이 처한 상황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무엇에 반대하는지 잘 압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쟁과 탐구가 진행중입니다.

이곳 세계사회포럼에서 다양한 논쟁들이 벌어졌습니다. 많은 인도 좌파들은 러시아와 중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우리가 아직까지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나라들이 경험했던 것 중 일부를 도입하면 어떨까 하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혼란돼있고 확신이 없습니다. 그들은 확실한 미래상이 무엇인지 또는 자본주의 이후의 삶은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우리 운동이 부상할 때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궁금해합니다.

나는 우리의 대안은 옛 소련 공산당 하에 존재했던 체제나 마오주의의 기치 아래 세워졌던 중국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지난 70년 동안 러시아나 중국을 대안으로 우러러봤던 사람들이 전 세계의 진보 운동을 건설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 바로 이곳 세계사회포럼에 참여한 젊은이들과 같은 사람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소련과 중국을 자신의 이상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 국가들은 우리가 원하는 대안이 전혀 아닙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반자본주의 운동이 진행되면서 우리 모두 민주적인 세상을 원한다는 원칙에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 같은 사회에서는 노동조합과 파업이 불법이었고, 고위직의 임금이 평범한 노동자 임금의 10∼20배였습니다. 그 곳은 불평등과 억압의 사회였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회를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이야기할 때 어떤 사람들은 옳게도 인도나 미국, 또는 인도네시아와 영국의 민주주의를 보라고 말합니다.

이들 국가의 민주주의를 보면 민주주의를 떠드는 자들이 실제로는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배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곳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직접 두 손에 권력을 쥐고 그것을 행사한 적이 없습니다.

독재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3∼4년, 또는 5년마다 한 번씩 하는 투표를 제외하면 우리는 매일 매일 독재 아래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노동’이라고 부르는 독재입니다. 일을 시작하는 아침 7∼8시, 또는 9시부터 일을 마치는 저녁 7∼8시, 또는 9시까지 우리는 독재 아래 살아갑니다.

당신이 아침에 행여나 늦게 출근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늦지 않겠습니다.” 하고 사과하면 저들이 오만하게 “알았어, 조너선. 하지만 다신 그러지 마” 하고 대답할 때, 당신이 자기 차에 주먹질을 하며 화풀이를 할 수밖에 없을 때, 당신이 하루 종일 시계만 쳐다보며 언제쯤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때, 당신의 삶이 과연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직장 상사와의 관계, 그 독재가 바로 모든 사람들의 삶에서 중심적인 관계입니다. 그것은 단지 일하는 동안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급하게 아침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직장에 가고, 직장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에까지 일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그러면 일 때문에 가족과 싸우기도 합니다. 그리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맥주 두 잔을 마시며 직장에서 쌓인 피로를 잊으려 하겠죠.

노동의 독재는 우리 삶의 모든 관계를 결정합니다. 우리가 5살쯤이었을 때를 회상해 봅시다. 지배자들이 우리를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질리도록 일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를 길들이는 공간인 학교,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는 그 학교의 운동장 한 구석에서 큰 아이들이 조그마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직장에서 똑같은 일을 겪고 있습니다.

이 사회에서 모든 이들의 삶은 그러한 독재에 의해 형성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하는 곳에서 독재를 행하는 자들은 또한 정치판에서도 독재를 행합니다. 이것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묶어 놓은 쇠사슬을 끊어야 합니다. 우리는 작업장에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독재를 끝장내야 합니다.

이것은 먼저 강력한 세계적 운동을 건설해서 모든 곳에서 우리가 자신의 상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선출하고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그들이 실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직장에서 상사를 선출하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작업장에서 대표를 뽑아 각 도시마다 대표자들이 회의를 갖도록 해야 합니다.

아마도 영국에서 이런 대표들이 다 모이려면 축구경기장처럼 넓은 장소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뽑은 국가 전체 대표자들은 또한 세계를 운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 경제를 바꾸려는 운동은 한 국가에서만 존재한다면 패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국제적인 운동이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세계 시장의 통제를 분쇄해야 합니다. 세계 시장의 중심에는 기업들간의 경쟁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적이 없는 경쟁입니다.

우리가 자신이 일하는 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다 해도, 우리가 일하는 병원이나, 혹은 우리가 사는 국가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합니다.

나는 9년 동안 한 페미니스트 낙태 병원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협동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임금을 동등하게 나누곤 했습니다. 그러나 나와 동료들의 삶은 모두 세계 시장에 의해 파괴당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낙태 병원과 경쟁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 경영자는 모든 노동조합원들을 해고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대표자들을 뽑아야 하는 동시에 세계 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접수해야 합니다.

우리가 직접 뽑은 대표자들은 인류의 노동력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표자들은 우리와 같은 종류의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정치인이나 변호사, 언론인이 아닐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우리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 중 선출된 이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청소부, 공장 노동자, 교사 중 우리를 대표하기 위해 선출된 사람들일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그들을 소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조건에서야 우리는 인류의 노동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셀 수 없이 많은 논쟁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더 이상 목적 없는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면, 이 체제가 끝없이 팽창할 필요가 없다면,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월요일을 없애는 일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웃음]

한편에는 우리의 급선무는 환경을 지키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아니야,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가난한 나라들을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야.” 하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부는 환경을 돌보는 것은 일단 나중으로 돌리고 뭄바이의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이 더욱 풍요롭게 살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의 노동력 중 많은 부분을 노인과 장애인을 위해 써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이들은 우리에게 더 많은 예술과 음악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 많은 예술가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이런 식의 논쟁이 끊임없이 오고갈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누군가가 우리 대신 어떠한 사회가 가장 최선인지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그러한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우리, 노동계급이 그러한 결정을 내릴 것입니다. 그들이 정확히 어떤 결정을 내릴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계급이고 나는 그들을 믿습니다.

나는 네팔, 아프가니스탄, 영국, 베네수엘라, 미국 등지에서 거주하면서 그곳의 노동계급과 함께 일했습니다. 노동계급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이자,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아픈 아이의 기침 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새면서도 약을 살 돈이 없을 때 느끼는 두려움, 늙은 아버지가 노환으로 병원에 가야 하는 데도 병원으로 모실 수 없을 때 느끼는 두려움, 직장을 잃고 집에 가서 아내나 남편과 아이들에게 “이제 나 실직했어. 그래서 우리는 돈이 없어”라고 말해야 하는 두려움, 잘못 때문에 해고된 것이 아님에도 가슴 깊이 느껴지는 수치심과 두려움, 사람들은 일생을 살면서 이런 일들을 겪기 마련입니다. 산재를 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늙고 병들었을 때 연금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살 곳이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등등.

다른 세계

전 세계의 노동계급이 첫번째로 하게 될 일은 바로 이러한 두려움들을 없애는 일입니다. 모든 이들이 물을 마실 수 있고, 집과 직장이 있고, 모든 아이들이 굶주리지 않고 누구든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세상 … 그러한 세상, 그러한 두려움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인간을 창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일생 동안, 그리고 내가 살아온 50년의 생애 동안,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우리 머리 속에 두려움을 각인시킵니다. 그것은 우리가 반응하는 모든 행동 양식을 운명짓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은밀한 순간에도 자본주의는 사랑을 나누는 방식을 결정짓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방식조차 규정합니다. 자본주의 체제가 개개인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가한 영향이 우리 내부에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세계를 이루어 낸다면, 우리가 사회주의를 성취한다면 저도 엄청 기쁠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제가 자라 온 낡은 사회의 기억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는 세상, 그러한 세상은 평등한 곳이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이 같은 양의 돈을 벌고 같은 양의 물질을 소유할 수 있는 곳이기를 희망합니다. 그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전혀 다른 종류의 아이들을 기를 수 있습니다.

태어난 지 여섯 달 된 아기를 보십시오. 굶주리거나 길거리에서 자는 아이들이 아니라, 집이 있고, 먹을 음식이 있으며, 마음에 평화가 있는 그런 여섯 달 된 아기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의 눈동자를 보고, 그들의 개방성을 보십시오. 그들의 얼굴에서 흐르는 기쁨을 보십시오.

그리고 오늘밤 기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기차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살펴보십시오. 그들도 한때는 그런 표정을 가진 아이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도대체 그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지 상상해 봅시다.

우리가 만약 민주적인 세상,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 세상을 쟁취한다면, 우리는 세상을 바꾼 우리 자신조차 상상하지 못한 세상을 건설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아이들을 기를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들, 즉 불행을 겪지 않은 인류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것을 성취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계사회포럼에서 다양한 언어로 외쳐진 구호인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가 가능함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다른 세계는 가능합니다.

나는 성인이 된 이후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았습니다. 나는 쉰 살이 될 때까지 ‘역사에 대한 나의 신념을 고수할 것이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다른 세상이 가능하지 않다면 최소한 다음 세대에게 무언가를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 모든 열강에 대항했던 제노바 거리 시위 이후, 나는 내가 사는 동안 다른 세계를 만들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인도에서 3년을 살았습니다. 나는 뭄바이에서 이렇게 거대하고 다양한 운동이 함께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인도를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서 있었던 지난 25년 간의 노동자 운동과 진보 운동의 패배 후에 나타난 새로운 희망입니다.

그리고 거대한 운동과 희망은 우리 앞에 길고 험난한 길이 놓여 있다고 나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세상을 쟁취할 때까지 우리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승리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할 패배를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다른 세계는 가능합니다. 나는 남아 있는 내 생애 동안 그 세상을 위해 싸울 것이고 여러분들도 그렇기를 바랍니다.

정리

얘기할 것이 너무 많아서 몇 가지는 빠뜨릴 것 같습니다. 토론 끝나고 저를 찾아오십시오. 우선 핵심적인 쟁점들을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가겠습니다.

화폐와 상품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제 생각에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는 점점 더 많은 것들이 무료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무상 초등교육을 쟁취했듯이, 일부 나라에서는 의료 서비스가 무료이듯이 말입니다.

아마도 그것이 더 확대돼서 모든 종류의 교통 수단과 기본적인 의류, 생활필수품들이 무상으로 제공될 것입니다. 그에 따라 화폐와 유료 상품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작아질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으로, 우리는 더는 필요없는 일자리들을 없애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창조적인 재능을 끔찍하게 낭비하는 광고 산업이 있습니다. 저는 광고 산업을 해체하고 그 사람들이 예술에 종사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인도에 치오카시라는 직업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곁에 대기하고 있다가 그 사람의 심부름을 해주는 직업인데, 이것 역시 없애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엄청난 양의 노동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여가를 누리면서도 더 많이 생산하고 세상을 더 부유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쟁점입니다. 한 동지가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소련과 중국을 이해하는 데서 더 진지하고 이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저는 지난 30년 동안 소련과 중국이 국가자본주의 체제라고 치밀하게 주장하는 조직에 몸담아 왔습니다. 제가 말하는 국가자본주의란 마이클 앨버트 동지가 설명한 것과 매우 비슷한 체제로서, 그 나라의 지배계급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자국의 인민을 착취하는 체제입니다.

소련과 중국의 지배자들은 본성이 사악해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경쟁적인 세계 체제에서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미국에게 침략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시장에서 고립된 빈국의 지배자들로서는 노동계급을 쥐어짜고 쥐어짜고 또 쥐어짜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서방 자본주의와 나머지 세계의 지배자들도 본성이 사악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는 정말 사악한 자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지만, 어쨌든 경쟁의 압력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전통이기도 한 사회주의 전통의 중요한 부분인 노동자 평의회라는 개념입니다. 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하는 공장, 병원, 사무실 등에서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뜻하는 이 사상은 우리 운동의 절정기였던 러시아 혁명의 경험에서 유래합니다.

그 혁명은 결국 패배했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은 고립과 내전, 기아에 있었습니다. 고립과 쇠퇴를 겪고 있는 경제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일종의 경찰 노릇을 하게 된 상황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새로운 국가는 혁명을 일으켰던 볼셰비키들의 압도 다수를 처형한 뒤에야 무슨 일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저 역시 사회주의 전통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있고 그에 관한 매우 정교한 이론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새로운 운동이 부상하고 있는 시기에 저나 인도 공산당 동지들 같은 사람들이 잠결에도 술술 나올 법한 기나긴 설명으로 말문을 열었다간 운동에 새롭게 입문하는 사람들을 잃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1918년과 1919년에 일이 어떻게 잘못됐는지에 관한 것보다는 우리의 대안이 무엇이며 다른 세계는 어떤 모습일지를 더 궁금해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부분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인도공산당(CPI), 인도공산당 마르크스주의파(CPI­M), 인도공산당 마르크스­레닌주의파(CPI­ML) 그룹 동지들에게서 제가 느끼는 것은, 적과의 싸움에 평생을 헌신한 사람들의 한 가지 실수가 부른 끔찍한 비극입니다. 그것은 흔한 실수였습니다. 즉,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동유럽 사람들이 바로 그런 실수를 범했습니다. 폴란드의 연대노조 사람들은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며 서방 세계가 더 낫다고 믿었습니다. 중국의 천안문 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서방의 공산당에서 싸웠던 사람들도 똑같은 함정에 빠졌습니다. 그들 또한 우리 모두의 적인 체제를 상대로 싸우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저는 부르주아식 민주주의를 불신합니다. 노동계급 운동과 노동조합에서는 보통 선거권이 어느 한 나라에 도입되기 150년 전부터 이미 투표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사상의 뿌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한편에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존재하고, 따라서 러시아나 중국 아니면 인도식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라는 식의 선택을 거부합니다.

병사

또 하나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자본주의 이후의 삶에] 어떻게 도달하느냐는 것입니다. 마이클 동지의 말대로 그것은 혁명입니다. 저는 마이클 동지가 말한 것에 몇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첫째, 그것은 평탄한 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운동은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그저 확산되고, 자신감을 얻고, 더 많은 승리를 거두기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모든 혁명은 중도에 몇 차례 패배를 겪고, 분쇄당하고, 끔찍한 학살을 경험했습니다.

혁명으로 가는 과정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희망을 잃는 듯한 순간들이 오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지금의 투쟁에서도 그것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 많은 투쟁 가운데 어떤 것은 승리하고 어떤 것은 패배하며 전진과 후퇴를 거듭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언젠가는 결정적 순간이 오기 마련입니다. 그런 기회는 그리 흔히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왔을 때, 우리 위에 있는 거대한 권력 기구를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병사들을 우리 편으로 획득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유한 힘과 무장력은 너무도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병사들을 우리 편으로 획득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들을 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병사들을 넘어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파업과 시위를 어마어마한 규모로 조직해서 병사들의 어머니들과 아이들이 시위 대열 어딘가에 함께있다는 것을 병사들이 느끼게 만드는 것입니다. 병사들이 그것을 느꼈을 때 군대는 무너지고 우리 쪽으로 넘어옵니다. 권력 이동의 순간입니다.

필리핀에서 오신 분들은 1986년에 마닐라 사람들이 맨손으로 탱크를 밀어냈던 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때도 병사들은 감히 탱크로 시위대를 짓밟지 못했습니다.

1980년에 이란에서 있었던 일을 친구한테 들은 기억이 납니다. 당시 테헤란 남부의 큰 길에서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었고 이란 정권은 시위대에 폭탄을 투하하기 위해 공군을 투입했습니다. 전투기가 저공 비행을 하며 다가오자 모두들 공포에 질린 눈으로 하늘을 응시하면서 계속 행진했습니다.

첫번째 비행기가 바로 코앞까지 하강했습니다. 그러나 그 비행기는 발포하지 않은 채 그대로 기수를 올렸습니다. 두번째 비행기가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비행기는 발포하지 않고 다시 솟구쳐 올라갔습니다. 그 다음 비행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3천 명은 하나같이 그 순간에 샤 왕조가 끝장났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비극은 지난 20년 동안 마닐라든, 테헤란이든, 네팔이든, 태국이든, 소말리아든, 동독이든, 폴란드든, 러시아든, 어느 곳에서나 민중의 힘이 적들을 굴복시키고 군대를 우리 편으로 획득했을 때조차 대안 세계에 관한 비전이 없었던 탓에 우리의 권력을 한 무리의 변호사들, 사기꾼들, NGO들, 혹은 제3자에게 넘겨주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혁명적 운동의 초반에 노동계급이 종종 그렇게 하듯, 난생 처음으로 권력을 잡은 것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가장 먼저 ‘내가 적임자’라며 나서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넘겨준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1백 년 전에 마르크스와 레닌뿐 아니라 수천만 민중이 함께 꿨던 오래된 꿈을 우리가 더 가꾸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지금과는 다른 세상, 평등한 세상을 위한 꿈 말입니다. 또한 더 광범하고, 더 크고, 사람을 더 존중하는 운동(미국의 좌파들이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을 고압적으로 대했다는 앨버트 동지의 지적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에 뿌리내린 평범한 사람들의 대중 운동을 건설해서 다른 세계를 향한 꿈과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음 번에 테헤란에서 시위가 열린다면, 다음 번에 마닐라의 거리에서 탱크를 몰아낸다면, 그때 우리는 단지 소수의 혁명가들이 아닌 우리 모두가 진정한 대중 운동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며, 세계가 우리 것이 되는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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