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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대학 구조조정의 이유를 제대로 짚어내려면

이명박 정부는 2010년에 대학 30곳을 부실 대학으로 지정해 학자금 대출 한도를 제한했고, 지난해부터 대학구조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몇몇 대학을 퇴출시키며 본격적으로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다.

이 구조조정의 핵심적인 원인이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몇 가지 이견이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소수 대학에 돈을 몰아 주고 하위 대학으로 가는 재정 지원을 절약하려고 구조조정을 벌인다고 주장한다.

또 사회 전반적인 교육비 지출을 줄이려는 것이 핵심이라는 주장도 있다. 높은 교육비가 가계에 큰 부담을 주고 출산율까지 저하시키기에 지배자들이 대학 진학률을 낮추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은 분명 진실의 일면을 담고 있다.

그러나 대학 구조조정의 원인을 더 균형 있게 보려면 대학을 기업들의 축적 논리에 더욱 부합하게끔 재편하려는 것이라는 점을 핵심에 두어야 한다.

대학은 기업과 국가를 위해 양질의 노동력을 공급하고, 과학 기술과 학술 연구,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구실을 해 왔다.

“대학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말처럼 대학이 더 경쟁력 있는 양질의 노동력을 공급하는 것은 자본가들에게도 중요하다.

한국의 대학도 이런 필요에 따라 변화를 겪어 왔다.

한국은 1970년대 정부가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면서 숙련 노동이 많이 필요해짐에 따라 대학과 대학생 수가 급격하게 늘었다. 1980년대 이후 첨단 기술을 발전시켜 산업을 고도화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대학은 더욱 확대됐다.

1990년대는 격화하는 세계시장의 경쟁 압력 속에 대학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압력이 더욱 거세진다.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 논리가 교육에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1995년에 발표한 5.31 교육개혁정책이 이런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결정판이었다. BK21 사업, 법인화 등 시장주의적인 경쟁강화 조처들이 우후죽순 추진되고, 대학 설립 자율화 조처가 취해지면서 사립대학들이 경쟁적으로 대학을 확대하며 돈벌이에 나섰다.

경쟁력

지금까지도 시장주의적으로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방향은 계속되고 있다.

서울대를 법인화하고, 교직원에게 성과 연봉제를 도입하고, 대학의 수익사업을 더욱 자유롭게 하는 방향이 그것이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정부들은 대학 정원을 줄이는 “양”적 구조조정도 추진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도 2003년에 2009년까지 대학 통폐합과 퇴출 등을 추진해 대입 정원을 7만 명 정도 줄였다. 그리고 최근 이명박 정부가 재학생 충원률과 취업률을 핵심 기준으로 대학을 구조조정하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무분별한 대학의 확대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생보다 대학 정원이 많아지는 현실에서 대학 정원을 줄이는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은 꽤 광범하다. 그러나 정부의 구조조정은 단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자연스러운 조처가 아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초대 교과부 장관을 지낸 김도연은 고등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일 큰 문제는 85퍼센트 가까운 학생이 대학에 간다는 것이다. 대개 선진국들은 47퍼센트 수준이다. 대학은 그 정도만 가는 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7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있고 그런데 우리는 대학 졸업하고 직장 못 찾는 젊은이들이 많다. 이런 미스매치는 너무 많은 학생이 대학에 가기 때문이다.”

2010년에 삼성경제연구소가 낸 “청년고용 확대를 위한 대학교육 혁신방안”에서도 심각한 청년 실업과 중소기업 인력난을 언급하며 “현 일자리 미스매치의 핵심 원인은 노동시장 상황과 괴리된 채 고학력자를 양산하는 왜곡된 교육시스템”에 있다며 고졸 취업을 확대하고 대학을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시대에 기업들은 경쟁력을 위해 고등교육을 받은 핵심적인 인력을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유연하게 수급·배치를 조절할 수 있는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력도 필요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가 대학에 가는 현실을 비효율적이라고 여긴다.

자본가들의 입장에 봤을 때 불필요하게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진학해 임금 인상 요인이 커지고, 대졸 실업률이 높아 사회 불안정 요인이 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정부는 구조조정되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학과 학과에까지 정부의 재정이 투여되고, 가계의 교육비가 지출되는 것이 낭비라고 여긴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 위기 시기에 정부재정을 가능한 아껴야 하고, 1천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가 시한폭탄처럼 째각거리는 상황에서 생활고를 가중시키는 교육비 지출을 줄일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정부는 반값 등록금 요구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곳에까지 돈을 지원할 수는 없다며 대학구조조정을 들고 나왔다.

노동력 공급

대학 구조조정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하면 몇 가지 반론이 제시되곤 한다. 먼저 대학구조조정의 원인을 기업들의 노동력 수급 문제와 직결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 정책에서는 정부와 기업, 대학 당국의 이해관계와 알력 다툼이 복잡하게 얽혀 진행되고 그런 관계를 면밀히 분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학구조개혁위원회에 삼성, 현대 자동차, CJ 등 재벌 계열 인사들이 직접 들어와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대학 정책은 산업계의 필요(특히 노동력 공급)와 매우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몇 년 전 교육과학기술부의 명칭이 교육인적자원부였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 자본주의에서 교육은 노동력 수급 문제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또 지배자들이 대입 정원을 줄이는 이유를 청년들에게 저임금 저질 일자리를 강요하려는 맥락에서 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반론이 있다. 고학력 노동이 더 많이 만들어지는 것은 지배계급에게 좋은 일이라 일부러 대입 정원을 줄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 재정이나 평범한 사람들의 교육비 지출 압력 때문에 대학을 구조조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많은 기업과 국가 관료 들이 청년들의 “눈높이”가 문제고 “학력 인플레”를 해결해야 한다며 대학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다. 대학 교육까지 받는 노동력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양성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 고용정보원은 ‘중장기인력수급 전망’에서 대졸자가 “10퍼센트 이상 초과 공급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에 비해 중소기업은 인력난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지배계급은 청년들이 모두 대학 진학을 추구할 게 아니라 일부는 눈높이를 낮추도록 해서 저임금 저질 일자리를 순순히 받아들이게 하는 것을 실질적인 문제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공기관 고졸채용 비중을 40퍼센트로 늘리겠다고 말하는 등 (실질적이지는 않겠지만) 고졸 취업을 유도하는 말들도 하고 있다.

물론 이미 대졸자들까지 편의점 알바 등 저임금 단순 노동을 강요받는 현실이지만 여전히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대졸자 10명 중 4명은 실업을 전전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배자들은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는 메시지를 계속 던지고 있다.

경쟁과 이윤의 논리로 대학 교육을 황폐화 시키고, 이제는 교육받을 권리까지 공격하는 지배자들에 맞서 양질의 교육과 일자리를 늘리라고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

개혁주의자들 중에는 취업률이 낮은 상황에서 대학 진학률을 줄이는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부의 구조조정 자체보다는 구조조정의 기준을 문제삼는 선에서 머무르곤 하고 이런 태도는 운동의 성장을 가로막는 약점으로 존재한다.

대학구조조정이 경제 위기에 기업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 노동자들에게 더 큰 고통을 강요하려는 정책과 맞물려서 진행된다는 것을 분명히 할 때 이런 약점을 피하며 대안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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