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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민영화에서 ‘제2공사화’로?:
공공성보다 수익을 앞세우는 독버섯은 그대로다

박근혜 정부의 ‘수서발 KTX 민영화’ 문제 처리에 이목이 끌리고 있다.

신임 국토부 장관 서승환은 6일 인사청문회에서 “코레일이 독점 운영하는 현 체제도 문제고 민간에 맡기는 것도 문제”라며 “제3의 대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새누리당 의원 조현룡이 “올 상반기 중에 ‘제2공사법’을 발의할 것”이라고 나서면서, ‘제2공사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는 KTX 민영화가 만만치 않은 반발에 부딪혀 이른바 “국민적 합의”가 쉽지 않은 상황을 반영한 듯하다. 새누리당 조현룡도 ‘제2공사화’를 제안하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발언은 아마도 민주통합당 등을 염두에 둔 말인 듯하다. 민주당인 국토해양위 위원장 주승용도 “제2 철도공사 설립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2공사화’는 그것이 가져올 효과에서 민영화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철도 사업에 ‘경쟁 체제’를 도입해 시장화를 가속하는 조처기 때문이다. 즉,‘경쟁’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노동조건을 하향평준화하고, 요금 인상이나 벽지노선 폐지를 꾀하는 등 수익성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의 경험은 이런 폐해를 잘 보여 주는 사례다.

서울시와 김영삼 정부는 서울지하철공사(현 서울메트로)의 “만성 부채” 등을 내세워 1994년에 서울도시철도공사를 설립했다. 이로써 지하철 1~4호선과 5~8호선을 각각 운영하게 된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는 바닥을 향한 ‘경쟁’을 시작했다.

우선 새로 설립한 도시철도공사에서부터 1인 승무제가 도입됐다.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2인 승무제는 ‘효율성’ 논리에 밀렸다. 2002년 사상자 3백50여 명을 낸 대구지하철 참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 1인 승무제였다는 점을 보면, 매우 위험한 도박이었다.

장시간 지하터널을 혼자 운전하는 도시철도 기관사들은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에 시달렸다. 공황장애 증상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줄을 이었고, 급기야 노동자 여섯 명이 극심한 공황장애를 견디다 못해 투신 자살하기까지 했다.

공사 설립 이후 인력 충원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노선은 서울메트로보다 길지만, 인력 규모는 3분의 2 수준이다. 부족한 인력은 비정규직이 메우고 있다.

그리고 이런 도시철도공사의 시장화 조처는 다시 서울메트로에 압력을 가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공황장애

철도에서 추진된 공사화도 이런 시장화의 폐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2002년 공공3사 파업에 부딪혀 민영화가 중단되자, 이후 노무현 정부는 2005년 철도청을 없애고 철도공사를 설립했다.

일단, 정부는 신속히 법을 제정해 “경쟁 여건 조성”과 “시장 경제원리에 따른” 운영을 명시했다.

이에 따라 철도 운영은 수익성 논리, 경영 실적에 좌우됐다. 요금 인상과 장애인·노인·학생·유아 등의 할인혜택 축소가 뒤따랐다. KTX가 개통되자, 정부는 슬그머니 일반열차의 요금까지 인상하고 평일 열차 요금 할인제도도 없애 버렸다.

KTX는 개통되자마자 하루 2건 꼴로 고장 나 ‘고장철’로 불렸고, 시설 유지·보수 업무의 외주화 속에서 하청 노동자들이 열차에 치어 사망하는 비극이 잇따랐다. 정규직 노동자들도 인력 감축과 노동조건 후퇴에 시달렸다.

철도 ‘제2공사’ 설립을 통한 경쟁 체제 도입은 노동조건 악화, 요금 인상, 벽지노선 폐지 등을 낳을 것이라는 점에서 민영화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이미진

이처럼 당장 민영화가 아니더라도 시장화 조처는 안전과 공공성과 일자리 모두를 공격하는 구실을 했다. 게다가 이는 민영화로 이어질 수 있는 통로 구실도 할 수 있다.

만약 서울메트로에서 도시철도공사가 분리되지 않았다면, 9호선을 사기업에 넘기는 것도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철도의 ‘제2공사화’도 철도를 잘게 쪼개 팔겠다는 국토부의 분리 매각 방침에 이용될 수 있다.

철도노조 박흥수 정책팀장은 이렇게 지적했다.

“‘제2공사’는 신설 노선들에서 민영화를 도입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앞으로 5년간 신설될 노선들에 대한 민영화도 진작부터 고려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 시절 무리하게 추진하다 제동이 걸린 관제권 회수도 ‘공정 경쟁’을 이유로 손쉽게 성사할 수 있다.”

게다가 ‘제2공사’ 설립은 수서발 KTX매각의 전(前) 단계일 수도 있다. 인천공항이 건설될 때, 인천공항공사가 한국공항공사에서 분리돼 설립됐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임기 말까지 인천공항공사를 민영화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

박근혜는 첫 국무회의에서 국토부의 시급한 현안으로 “주택시장, 택시지원법, KTX 경쟁 도입”을 꼽으며, 이를 “당장 챙겨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것이 KTX의 즉각 민영화가 될지, ‘제2공사화’가 될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박근혜 정부는 철도 민영화 정책을 공식 폐기한 적이 없고, ‘제2공사화’는 아직 일부에서 거론되는 수준일 뿐이다. 박근혜가 예고한 단체장 ‘코드 인사’도 남아 있다. 민영화가 물 건너갔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무엇보다 민영화나 ‘제2공사화’ 중 어느 것이든, 시장 경쟁의 원리를 강화해 공공성을 훼손하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민영화 반대 운동의 진지를 구축해 나가며, ‘제2공사화’ 등 시장화가 미칠 폐해에 대해서도 비판을 강화하며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