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언론 ─ 박근혜가 손에 쥔 ‘사회적 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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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정원 사태와 관련해 차라리 외신 보도를 보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주류 언론들은 진실을 파헤치기는커녕 이미 드러난 사실조차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 정권의 입맛에 맞춰 악의적으로 축소, 은폐, 물타기를 하고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 국정원 직원이 ‘셀프 감금’ 상태로 불법 증거를 지우고 있을 때, 조중동은 나서서 “여직원 감금”, “인권 침해”, “성폭행범 수법”이라며 난리를 쳤다. 그리고 국정원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자마자 NLL에 대한 우파적 악선동에 나섰다.
‘공영’방송이라는 KBS와 MBC도 다르지 않다. 국정원 사태 관련 보도 자체가 거의 없고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이 폭로한 영상 자료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MBC는 광고까지 나간 〈시사매거진 2580〉의 ‘국정원에서 무슨 일이?’를 불방시켰고, KBS는 〈TV비평 시청자데스크〉가 쓴소리를 하자 담당 간부를 보직 해임했다. 휴가를 반납하고 수만 명이 촛불을 든 8월 3일에도 메인 뉴스는 “전국은 피서 중”이었다.
이쯤 되면 언론이 “국정원 사태의 공범”이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흉기”라 할 만하다.
박근혜는 이명박의 언론 장악 과즙을 달게 마시면서, 그 뒤를 잇고 있다.
저들은 경제 위기 속에서 진실 보도가 대중의 분노와 행동을 촉발할까 봐 두려워한다. 2008년 〈PD수첩〉의 광우병 보도가 촛불 운동에 한층 자신감을 줬던 것처럼 말이다. 또, 경제 위기 고통을 더 쉽게 전가하려고 노동자들의 자신감과 단결력을 해치는 논리를 퍼트린다. 이를 위해 ‘이명박근혜’는 집요하게 언론을 장악하려 한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주류 언론은 계급지배의 주요 도구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려면 총과 칼만으로는 부족하다. 대중을 체념하게 만들고, 이간질해 단결을 가로막고, 관심사를 연예인 신변잡기 따위로 돌릴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언론을 활용한다.
신변잡기
사실 대중매체를 운영하려면 자본이 상당히 필요하다. 그래서 상당 수준의 영향력이 있는 언론이라면, 막대한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나 국가가 소유할 수밖에 없다.
조중동의 창업자인 방응모, 홍진기, 김성수 가문은 한국의 전통적 지배계급이 그랬던 것처럼 친일·친미로 일관하며 군사독재 속에서 배를 불려 왔다. 이들은 언론 계열사뿐 아니라 훼미리마트(현 CU), 코리아나 호텔, 하나로통신 등 다른 수많은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
또한 대기업과 정부는 언론을 직접 소유하지 않더라도 광고비, 협찬금, 국고보조금으로 언론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박정희 정권 때 〈동아일보〉 기자들이 언론 통제에 항의하자, 대대적 ‘광고 탄압’이 있었다. 2008년 촛불 집회 때 보건복지부는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광고를 〈한겨레〉 1면에 싣도록 만들었다. 2009년 정부 광고 예산의 절반 가량이 이명박 말을 잘 듣는 조중동에게 집중됐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어떤 시대나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다. … 물질적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계급이 정신적 생산수단도 통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론의 영향력이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다. 대중의 경험이 언론들의 주장과 어긋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 등 지배자들도 혼란에 빠지는 위기 상황에서 지배 이데올로기 영향력은 더욱 흔들린다.
무엇보다 대중이 집단으로 투쟁에 나설 때, 지배 이데올로기는 한순간에 쓰레기가 된다. 1980년 광주 항쟁, 1987년 6월 항쟁, 2008년 촛불 항쟁 등 거대한 저항이 터져나올 때마다 주류 언론은 언제나 불신과 개혁의 대상이 됐다.
언론 노동자들의 투쟁도 중요하다. 언론 노동자들의 투쟁 덕분에 언론사에서 아래로부터 통제를 강화하는 조처들이 조금씩 도입됐다. 이명박 정부 때도 낙하산 사장과 언론 악법에 맞서 파업한 노동자들은 주류 언론이 외면하는 진실을 들춰내며 수많은 사람들을 각성시켰다.
최근에도 언론 노동자들이 주류 언론의 은폐·왜곡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지배계급의 언론 장악과 지배 이데올로기의 토대인 ‘계급 지배’ 자체에 도전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려면 대안적 세계관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그것을 실현할 투쟁을 선동하고, 노동자 단결의 가교를 놓아 줄 혁명적 언론과 조직이 필요하다. 〈레프트21〉은 바로 그런 언론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