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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민중의 호민관’들은 이석기 마녀사냥에 반대해야 한다

국정원의 ‘종북’ 마녀사냥에 발맞춰 주류언론들이 연일 이석기 의원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심지어 〈한겨레〉나 〈경향신문〉 같은 자유주의 언론들마저도 국정원의 마녀사냥에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취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부 진보진영 역시 질 떨어지는 양비론으로 후퇴하고 있다. 정의당이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찬성으로 당론을 정한 것은 이러한 저질 양비론의 퇴행적 귀결이다.

이들은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에 찬성해, 스스로를 “시대착오적이고 낡은 생각이나, 색깔론을 동원한 냉전수구적 사고와 모두 거리를” 두는 건설적인 진보로 포장하고 싶겠지만, 실제로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단지 “나는 이석기가 아니니 건드리지 말라”는 ‘찌질한’ 목숨 구걸에 불과할 뿐이다.

스스로 변혁 활동가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런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레닌은 사회주의자들이 ‘민중의 호민관’이 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 말은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변혁 활동가들에게도 유효한 말이다. 성적 소수자, 무슬림 이주민, 탈북민 등 모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공격은 그 자체로 우리 변혁 활동가 자신들에 대한 중차대한 도전이다.

이석기 의원에 대한 마녀사냥에 맞서는 우리의 태도 역시 이래야 한다.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모두 그들의 신념과 정체성 때문에, 즉 존재 자체 때문에 공격받는 사람들이다. 보수언론과 우익들은 그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라 요구한다. “김정일 개새끼 못 하면 다 종북”이라는 우익 변호사 전원책의 망발은 국민과 비국민을 가르는 선이 돼 우리의 정치적 자유 자체를 위협한다.

성적 소수자나 무슬림 이주민, 탈북민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처지가 이석기 의원이 놓인 처지와 얼마나 다른가? 그들은 하루하루의 삶 자체를 부정당한다. 이들은 공적인 영역에서는 물론이고 침실, 화장실, 사무실, 음식점, 미용실 등 일상의 모든 곳에서 스스로를 부인해야 한다.

성적 소수자들은 스스로의 성정체성을 숨겨야 하고, 무슬림 이주민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히잡을 벗고 다녀야 하며, 탈북민들은 고향을 묻는 질문에 “강원도 출신”이라고 대답해야 한다. 그들은 하루하루를 ‘이석기’로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미심쩍음

만약 이석기 의원에 대한 마녀사냥에도 제대로 맞서지 못한다면 이들에 대한 공격에도 일관되게 맞서 싸울 수 없을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종북 게이”라는 망발이 쏟아질 때 변혁 활동가들이 “나는 종북도, 게이도 아니다”라는 말을 먼저 한다고 생각해 보자. 정의당을 포함한 일부 진보진영이 이번 사태를 두고 취하는 입장은 이와 전혀 다르지 않다.

몇몇 사람들은 우리가 고립을 자처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석기 마녀사냥에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조차도 국정원이 이 카드를 들고 나오는 시기가 상당히 미심쩍다는 데서는 아무 이견이 없다.

그러나 설령 이 길이 고립의 길이라고 할지라도 선택지는 하나다.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이란, 나이지리아 같은 곳에서 동성애자 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사회적 고립을 자처하는 일이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 터졌을 때 그를 방어하는 일 역시 고립을 택하는 길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때 독일에서 유대인 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전 사회적인 왕따의 길을 걷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사회 진보를 바라는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이 ‘고립의 길’을 걸을 때 그 길은 더는 고립의 길이 아니게 됐다.

이 말도 안 되는 매카시즘에 단호히 맞서 싸우면, 모두가 ‘고립의 길’을 걷는다면, 우리는 분명 이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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