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쌍용차, 민주노총 집회’ 참가 벌금 재판:
"노동자 투쟁에 연대한 나는 무죄다"
〈노동자 연대〉 구독
노동자연대다함께 활동가 조익진 씨는 지난해 쌍용차 연대 집회와 ‘민주노총 (하루) 총파업 결의대회’ 등 노동운동 집회에 참가한 뒤 일반교통방해죄로 2백만 원 벌금 약식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조익진 씨는 약식명령에 불복하고 정식 재판을 청구했고 12월 20일에 1심 최종 변론을 했다. 이 자리에서 조익진 씨는 판사가 “정치적 발언은 하지 말라”고 제지했음에도 굽히지 않고 최후 진술을 했다고 한다. 선고는 1월 17일에 나올 예정이다. 조익진 씨가 최후진술을 본지에 보내 와 전문을 싣는다.
재판장님, 그리고 여러 방청인과 이 재판을 지켜보고 있는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저는 안녕치 못합니다.
노동조합이 민영화를 걱정하는 국민들의 우려를 대변해 파업에 돌입했다는 이유로 지도부가 수배되고 파업 참가자 전원이 직위해제 되었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의 규약이 정부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법으로 규정되고 위협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 자리에 피의자의 자격으로 선 저 자신 역시 노동자 연대 집회에 참가했다가, 교통을 방해한 범죄자로 취급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제가 교통을 방해했기 때문에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잘못을 저지른 것은 오히려 검찰입니다. 검찰의 기소는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치적 탄압으로, 완전히 부당합니다.
교통 방해
형법 185조의 일반교통방해죄로 도로 행진을 처벌하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해당 조항은 "기타 방법"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자의적 적용의 위험성을 열어 놓았습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신고된 도로 행진은 물론, 마라톤 대회나 거리 응원도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로 환희에 차 거리에 나왔던 시민들도 검찰이 마음먹기에 따라 형사범죄 혐의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1989년 법무부 형법개정요강소위원회는 해당 조항의 개정 의견을 밝혔고, 2009년 형법개정연구회도 이를 매우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심지어 2010년, 2013년 두 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조차 결정문에서 "집회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은 아닌지에 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구체적 사안을 전제로 …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1991년 광주지방법원에서는 시위 자체가 다수인의 도로 통행의 한 형태이므로 미신고 행진을 했다고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결한 사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검찰과 경찰은 촛불 시위, 희망버스, 쌍용차 연대 집회 등 시위 참가자들을 계속해서 교통 방해죄로 처벌해 왔습니다. 우파 정권에 협력하여 입맛에 맞지 않는 진보적 시위를 탄압하고 경제 위기의 고통을 전가하는 데 이 법을 이용해 온 것입니다.
노동자 투쟁 연대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찰은 1년도 넘게 지난 민주노총 집회와 쌍용차 노동자 집회 참가를 이제와서 문제 삼고 있습니다. 그 진정한 이유는 교통 질서를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탄압으로 노동자 투쟁에 대한 연대를 위축시키기 위함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에서 약속한 비정규직 문제 해결, 민영화 중단, 쌍용차 국정조사, 복지 약속 등을 저버리고 노동자와 서민들의 삶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저질 비정규직 일자리인 시간제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철도, 가스, 의료 민영화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억누르기 위해 대한문 분향소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화단을 설치했습니다.
친재벌 정책을 밀어붙이고 이를 위해 민주주의까지 후퇴시키려는 박근혜 정부에게, 사사건건 딴지를 거는 조직노동운동은 눈엣가시일 것입니다.
전교조는 법외노조화 협박에도 해고자 배제 명령을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뒤이은 법외노조화 효력 정지 가처분 결정으로 정부의 탄압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철도노조는 전 방위적 강경 탄압에도 역사상 최장기 파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재벌과 소수의 이익을 위해 철도를 팔아먹으려는 민영화 계획에 맞서 생계까지 걸고 용기 있게 싸우고 있는 철도노동자들에게 전 국민적 응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가스 노동자들은 국회에서 통과 예정이던 가스 민영화 관련 법안의 내용을 축소시켰고, 화물연대는 철도노조와 연대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체 운송 · 수송 거부를 조직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 모두의 이익을 대변한 이런 노동자 투쟁 분위기 속에서 국민들은 서로의 ‘안녕’을 묻고, ‘불편해도 괜찮다!’며 희망을 찾고 있습니다.
사회 정의의 실현을 위해 이런 투쟁과 연대는 오히려 더 확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검찰은 권력의 편에서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매우 정치적인 법리 적용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 정의
지난해 제가 참가했던 쌍용차 4차 범국민대회도 사회적으로 매우 정당한 요구를 내건 집회였습니다.
먹튀 자본 상하이차는 회계 조작을 통해 쌍용차의 경영 위기를 과장하여 2천6백여 명의 노동자를 해고했습니다. 쌍용차는 현재 부도 전인 2008년보다 자산이 1천5백억 원이나 증가했으나 아직 해고 노동자들을 복직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24명이나 되는 노동자와 가족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먹튀를 방조한 정부도 이 문제에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이들의 목소리를 탄압하고 억누르는 데 혈안이었습니다.
안타까운 죽음의 행렬을 멈추려면 당장 해고가 철회되어야 합니다. 이는 매우 당연한 요구입니다.
한편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는 노동운동의 여러 요구를 함께 내건 집회였습니다.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철폐, 노동악법재개정, 장시간노동단축, 민영화 저지” 등입니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습니다.
비정규직이 9백만 명에 이르고 언제든 해고될 위협에 직면할 수 있는 불안정한 노동조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철도 민영화는 요금 인상과 안전 사고, 서비스의 질 저하를 낳고, 기업들의 배를 불릴 뿐 결코 국민 전체를 위한 정책이 아닙니다.
정부는 수서발 KTX 회사 설립이 민영화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이미 적자노선 매각 계획이 폭로된 바 있습니다. 국토부 장관과 여당은 ‘철도 민영화 금지’ 법안조차 반대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고통과 정부의 거짓말에 맞서 사람들의 염원을 대변한 민주노총의 요구와, 이에 기초한 행동은 더없이 정당합니다.
교통 방해를 핑계로 사회 정의를 위한 요구와 행동을 억누르려는 검찰은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집회의 자유
집회 시위의 자유는 국가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집단도 자신의 이해관계와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투쟁할 자유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 이 나라의 불완전한 자유민주주의와 분배 제도조차 4.19 혁명, 5.18 광주 항쟁, 87년 6월 항쟁, 7,8,9 대투쟁, 96-97년 민주노총 총파업 등 권력을 쥐지 못한 노동 대중의 투쟁의 역사를 통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노동자 연대 활동에 참가한 저를 탄압하고,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민주적 권리에 대한 억압이자, 민주주의 발전과 사회 정의 실현의 동력을 억압하는 일입니다.
얼마 전 국정원 여론 조작에 대한 혐의를 조사하던 서울지검 특별수사팀장이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수사를 했다는 이유로 경질됐습니다. 이렇듯 정권의 꼭두각시나 다를 바 없는 정치 검찰에게는 저를 처벌할 자격이 없습니다.
재판장님께서는 저의 최후 진술이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중간에 제지하셨는데, 노동자 연대를 탄압하는 검찰이 정치적이므로 저 역시 정치적 변론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재판부가 검찰의 정치적 법 적용에 맞서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를 옹호하는 판결을 내리기를 바랍니다. 저는 무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