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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 캄페시나 총회에 다녀와서

[편집자] ‘다함께’ 회원 박준규는 지난 6월 14일부터 19일까지 브라질 상파울루 주 이타이치 시에서 열린 제4차 비아 캄페시나 총회에 동시통역 자원활동가로 참가했다.

1993년 창립한 비아 캄페시나[농민의 길]는 국제 농민운동과 반자본주의 운동의 핵심 조직이다.

이번 총회에는 76개국에서 온 210명의 대의원들이 참석했는데, 한국에서는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 대표단 5명이 참석했다.

대의원들은 북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유럽, 남아시아, 동남아시아·동아시아, 아프리카, 카리브해 등 8개 지역 회원단체들을 대표한다.

4년마다 열리는 총회는 비아 캄페시나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이다.

지역별 대의원들이 참가한 총회에서는 날마다 비아 캄페시나가 다음 4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여러 조직적 사항들을 결정한다.

가장 중요한 일정은 ‘식량주권과 무역’, ‘농업(토지) 개혁’, ‘인(농민)권’, ‘생물의 다양성과 유전자원’, ‘지속가능한 농민중심 농업’, ‘이주와 농업노동자’, ‘젠더’ 등 7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국제위원회 회의들이다.

각 국제위원회에서는 지난 4년 동안 각 지역별로 논의된 것을 종합해 하나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 보고서들은 총회에서 채택된다. 이 보고서들이 총회 선언문 작성에 필요한 기본적인 틀이 된다.

이번 총회에서만 수십 개 단체들이 회원단체로 가입했다. 한국의 전국농민회와 전국여성농민회도 이번 총회에서 가입이 정식으로 인준됐다.

나에게 무엇보다도 인상깊었던 것은 비아 캄페시나가 반자본주의 운동의 일부임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비아 캄페시나의 내부규칙 수정안에 의하면, 비아 캄페시나는 “산업화된 농업의 신자유주의 모델과 싸우고 수출 중심의 기업농업 모델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 그리고 평등하고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경제관계, 토지접근권과 방어권, 식량주권을 지향하고 생물의 다양성과 환경을 보호하고 중소규모 생산자들을 기반으로 한 지속가능하고 평등한 농업 생산을 지향해 다양한 농민 단체들 속에서 연대와 단결을 건설하고자 한다.”

반자본주의

또, 이번 총회 선언문은 이렇게 선언한다.

“자본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는 확신에 우리는 오직 대중동원과 우리 세력의 투쟁과 연대의 결합만이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할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모델과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의 지도 하에 이 모델을 지탱하는 제도들을 근본적인 방법으로 거부한다.

우리는 이들의 가장 역겨운 표현들이라 할 수 있는 자유무역협정, 전쟁, 식물, 삶, 종자, 물, 대기, 생물의 다양성, 그리고 지식의 사유화를 거부하고 이에 맞서 싸우기 위해 특별히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유전자조작 식물이나 식품과 날조된 관련 기술적 주장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나 사용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처럼 비아 캄페시나는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말처럼 “단순히 기존 체제의 특정 측면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논리 자체에 도전하는” 반자본주의 운동의 일부다.

흥미롭게도, 나는 반자본주의 운동이 매우 중요한 국면에 이르렀다는 캘리니코스의 평가를 이번 총회에서 부분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나는 반자본주의 운동이 세계적으로 성장했으며 일부 전술적 성공들도 거뒀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총회는 자신감으로 꽉 차 있었다.

프랑스 농민운동의 지도자 조제 보베는 한 회의에서 7월에 있을 WTO의 협상회의를 결렬시키는 것이 왜 중요한지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연합의 뜻대로 협상이 마무리된다 해도 우리는 비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내년 홍콩에서 열릴 WTO 각료회의를 무산시키면 된다고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이번 총회의 폐막과 동시에 새로운 국제사무국이 중앙아메리카 온두라스에서 동남아시아 인도네시아로 이전했다.

농민 인구가 가장 많은 아시아로 국제사무국을 이전하는 것은 비아 캄페시나의 다양성을 더 강화하고, 농민 및 반자본주의 운동과 투쟁에 더 신속하고 밀접하게 결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자신감과 성장은 운동의 전략적 선택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식량주권 문제는 국제위원회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논의가 됐지만 유럽과 아시아의 견해 차이가 너무 컸고 이에 대한 전략적 선택도 모순되고 불투명했다.

식량주권에 관한 국제위원회 회의 결과보고서는 WTO 자체를 거부하면서도 WTO의 협상 방식 중 하나인 박스 방식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더 나아가, UN의 틀 안에서 식량주권에 대한 국제협정을 제정하는 전략을 제안했다.

이것은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의 최근 보고서 ― 유전자조작 기술이 빈곤을 퇴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 를 규탄하는 입장이나 국제연합무역개발위원회(UNCTAD) 같은 UN 기구들도 WTO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비판적 인식과도 모순된다.

한편, 세계사회포럼에서처럼 이번 총회에서도 정당에 대한 입장을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다.

이것은 비아 캄페시나의 내부규칙 수정과 관련해 이뤄졌다. 기존의 내부규칙은 비아 캄페시나가 어떤 정치적·경제적 또는 다른 형태의 교호 관계로부터 독립적이라고 규정했다.

수정안은 더 구체적으로 회원자격 조항에서 회원조직은 어느 정당과도 당파 관계를 가질 수 없다고 명시했다.

수정안은 이번에 채택되지 않고 연기됐다. 비아 캄페시나의 주요 활동 무대가 정당과 농민운동 단체들 간의 관계가 더 가까운 아시아로 이전되면 이 논쟁은 더 심해질 것이다.

아쉬운 점은 이번 총회에서 이라크 전쟁이 중요한 쟁점으로 논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많은 대의원들이 전쟁에 분명히 반대했는데도 더 논의는 없었다.

이라크 전쟁은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정치적으로 패배시킬 수 있으므로 국제 반전·반자본주의 운동이 모두 집중해야 하는 최우선 과제인데도 말이다.

조제 보베와 비아 캄페시나 대표단이 9월 10일 이경해 열사 1주년 추모식과 WTO 반대 국제 농민 행동의 날을 위해 한국에 온다.

한국 농민운동은 이날 전국 동시다발 집회를 열어 쌀개방·WTO 반대와 식량주권 실현을 위해 투쟁할 계획이다.

우리도 이 집회에 적극 참가해 이날을 내년 홍콩에서 개최될 WTO 각료회의를 무산시키기 위한 국제적 투쟁의 예행연습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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