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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유럽의회 선거:
경제 위기 속에 양극화하는 정치 지형

5월 22~25일에 유럽의회 선거가 치러진다. 유럽의회는 신자유주의 기구인 유럽연합의 ‘민주적’ 외피로 그 영향력은 각국 의회가 국내 정치에서 갖는 영향력과 비교해도 훨씬 작다. 그럼에도 유럽연합 소속 28개국에서 일제히 실시되는 만큼 유럽 각국의 정치 지형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번 선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단연 경제 위기다. 유럽은 2008년 세계경제 위기로 주요 자본주의 경제 가운데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2009년에 치러진 지난 유럽의회 선거는 경제 위기에 직면한 각국 개혁주의 정당들이 노동자들의 개혁 열망을 배신한 대가로 대거 몰락했고, 그 결과 사상 최저 투표율(43퍼센트)을 기록했다.

지난 5년을 거치면서 노동자들의 삶은 갈수록 더 어려워졌다. 각국에서 사민당과 보수당이 서로 정권을 놓고 엎치락뒤치락 하든(프랑스, 영국, 스페인) 아니면 연립정부를 꾸리든(그리스) 마찬가지였다. 각국 정부는 은행 구제에는 막대한 돈을 퍼부으면서도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복지를 삭감했다.

그 결과 실업률과 자살률이 치솟았다. 경제 위기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그리스는 전체 가구의 절반 가량이 은퇴한 이의 연금에 의존해서 살고 있고 다섯 가구 중 무려 네 가구는 세금도 온전히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럽 경제가 위기를 벗어날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유럽 정치를 주름잡은 사민당-보수당 양당 체제가 약화했고, 환멸은 5년 전보다 더 커졌다. 지난 3월 프랑스 지방선거가 사상 최저 투표율을 보인 까닭이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각국 사민당과 보수당은 전체 7백51석 가운데 과반을 유지하겠지만, 그 비중이 줄고, 그 대신 파시스트·극우 정당들과 급진좌파 정당들의 의석이 늘 듯하다.

성장하는 파시즘

이번 선거에서 가장 주목하고 또 경계해야 할 것은 각국의 파시즘 정당과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다.

이들은 여러 쟁점에서 잡탕이지만(프랑스 국민전선은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주장을 누그러뜨린 정도지만 네덜란드 자유당은 시온주의를 적극 지지하고, 그리스 황금새벽당은 긴축에 반대하지만 영국독립당은 신자유주의를 따른다), 그럼에도 한 가지 강력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무슬림, 로마인 같은 이주민이나 소수인종을 속죄양 삼으면서 경제 위기로 말미암은 평범한 대중의 분노와 절망을 먹고 자란다는 것이다.

유러파시즘 정당인 프랑스 국민전선(FN)은 3월 지방선거에서 사상 최대 성과를 올렸고, 전통적이고 노골적인 파시즘 정당인 헝가리의 요빅 역시 4월 총선에서 2010년보다 12만 표를 더 받아 20.5퍼센트를 득표했다. 그리스 황금새벽당은 지난해 반파시스트 가수와 이주민 살해로 지탄을 받지만, 꽤나 득표할 듯하다. 영국에서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영국독립당(UKIP)이 집권 보수당의 표를 대거 잠식할 듯하다.

프랑스 국민전선의 대표 르펜은 이런 흐름의 구심점이 되려고 각국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과 함께 유럽의회 내 정치그룹을 형성하려 한다. 파시즘과 극우 정당들은 각국에서 인종차별적 의제를 던지고 주류 정당을 압박하며 의석 수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런 일을 유럽연합 차원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유럽의회에서 정치그룹을 형성하려면 7개국에서 25석 의석을 확보해야 하는데 지난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이를 이루지 못했다.

이를 위해 프랑스 국민전선은 그동안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언사나 노골적인 나치식 경례를 삼가는 대신 무슬림혐오처럼, 극우 포퓰리즘의 의제이지만 파시스트가 아닌 정당들도 공유하는 의제를 내세우며 그들과 거리감을 좁혔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네덜란드 자유당을 유럽의회 선거 동맹으로 새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동맹을 맺어온 유러파시즘 정당인 영국국민당과는 거리를 두고 그 대신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영국독립당에게 구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르펜은 또한 그리스 황금새벽당, 헝가리 요빅 같은 더 노골적인 파시즘 정당과는 함께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어야 했다. 한편, 르펜의 끈질긴 구애에도 영국독립당은 최근 프랑스 국민전선이 인종차별적이라며 유럽의회에서 함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의 기세가 커진 것은 맞지만 아직 노골적으로 색깔을 드러낼 만큼 자신감이 확고하지는 않은 것이다.

특히, 영국독립당 자신도 지독하게 인종차별적이면서 국민전선을 그렇게 비난한 것은 영국에서 반파시즘 운동이 강력하기 때문에 국민전선과 손잡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독립당은 파시즘-극우 정당들 중에서는 프랑스 국민전선과 함께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르펜으로서는 한방 먹은 것이다.

파시즘과 극우 정당들이 이렇게 눈치를 살피는 것은 영국 반파시즘연합(UAF), 그리스 인종차별·파시즘반대운동(KEERFA)처럼 인종차별과 무슬림혐오에 반대하는 운동이 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이 운동들은 거리에서 파시스트의 행진에 맞서고, 정부가 펼치는 인종차별적 정책에 반대해 왔으며, 긴축에 반대하는 노동자 투쟁에도 긴밀히 연대해 왔다. 각국의 혁명적 좌파가 이 운동들에서 가장 원칙 있고 일관된 지도력을 제공했다.

좌파 개혁주의의 약진

5년 전 유럽의회 선거에서 급진좌파는 독일, 포르투갈 등 일부 나라를 제외하면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5년이 지난 지금 이런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다. 주류 사민주의 세력에 대한 환멸은 더 커졌고 일부 나라에서는 좌파 개혁주의가 그 공백을 성공적으로 메우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12년 그리스 총선에서 시리자가 집권 직전까지 가며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프랑스 역시 2012년 대선에서 좌파전선의 멜랑숑이 선전한 바 있다.

그리스 시리자, 프랑스 좌파전선, 독일 디링케, 포르투갈 좌파블록, 스페인 좌파연합 등이 포함된 유럽의회 선거 연대체인 유럽 좌파(EL)는 시리자의 지도자 치프라스(하단 사진)를 내세워 주류 사민주의 세력 왼쪽의 구심을 제공하려 한다. 시리자가 상징하는 반긴축 투쟁과 시리자의 정치적 성공을 내세워 각국 선거에서 좌파의 공동 대응을 이끌어 내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주류 사민주의에 환멸을 느끼지만 아직 혁명적 대안으로까지는 나아가지 않은 노동계급 선진 대중의 좌경화를 반영한 것으로 이해할 만한 일이다. 유럽 각국의 지배자들은 2012년 그리스 총선을 앞두고 ‘시리자를 뽑으면 그리스 경제가 더 어려워질 줄 알라’고 그리스 국민들을 협박할 만큼 시리자가 대표하는 반긴축 정서를 두려워한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이런 좌파 개혁주의 정당들의 표가 늘면 유럽 노동자들에게 긴축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줄 것이다. 따라서 혁명적 좌파는 주류 사민주의 바깥의 좌파 개혁주의 후보들이 많은 득표를 하기를 바라야 한다.

그럼에도 혁명적 좌파는 좌파 개혁주의자들이 말하지 않는 진실도 말해야 한다. 바로 치프라스와 시리자가 제시하는 대안이 경제 위기와 그 고통을 끝낼 수 없다는 것 말이다. 치프라스는 유럽연합의 가장 가혹한 조처들은 일부 중단시키되 부채 자체는 인정하고, 유럽연합을 이탈하지 않는 대신에 부채 총량과 상환 방법을 재협상하겠다고 제안한다. 이것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기구로 출범했고 오늘날 유럽 각국에 긴축을 강요하는 핵심 주체인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이 둘은 IMF와 함께 긴축의 트로이카로 불린다)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그들을 설득하겠다는 구상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치프라스의 이런 타협적 행보는 시리자의 집권 가능성이 커질수록 더 노골화되고 있다. 시리자는 황금새벽당에 맞서는 투쟁에서도 대규모 맞불 거리 시위를 통한 반파시즘 운동 건설에는 미온적이다.

지금 그리스 정부는 긴축에 대한 반감 때문에 여당 소속 의원들이 꾸준히 이탈해 총 3백 석 중 1백52석으로 겨우 과반을 유지하고 있고, 이미 시리자는 여론조사에서 여당을 앞지르고 있다. 만약 현 정부가 무너지고 시리자가 집권하면 앞서 말한 시리자의 한계는 금세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그래서 그리스의 사회주의노동자당(SEK)을 비롯한 혁명적 좌파는 안타르시아(혁명적 반자본주의 연합)를 구축해서 시리자와 함께 투쟁하면서도 독자적인 정치 대안을 제시해 왔다.

이것이 언제나 혁명가들은 선거에서 좌파 개혁주의자들과 따로 출마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혁명적 좌파 ‘마르크스21’은 좌파 개혁주의 정당 디링케 후보들을 지지한다. 선거는 전술이고 구체적 조건에 따라서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원칙은 혁명적 좌파가 언제나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선거는 계급 세력관계를 반영하지만 제한적으로만 그럴 뿐이다.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의 파노스 가르가나스는 “황금새벽당의 지지율은 올랐지만 그 핵심 활동가들은 극소수다” 하고 강조한다. 더 강력한 반파시즘 운동이 전개된다면 그 극소수의 파시스트들을 더 고립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선거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영향을 끼치지만 역시 제한적으로만 그런다. 좌파의 선거 연합 논의가 지지부진한 스페인에서 지난 3월 22일 2백만 명이 긴축 반대 시위를 벌인 점은 선거와 독립적으로 투쟁을 건설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따라서 혁명적 좌파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오늘날 유럽에서는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투쟁과 긴축 반대 투쟁을 건설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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