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정상회담, 북일 대화, 일본 집단적 자위권:
동아시아 강대국들의 치열한 경쟁을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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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 동아시아의 외교 관계에서 보기 드문 일이 일어났다. 7월 3일 한국과 중국이 한중 정상회담을 열고 공동성명을 낸 날, 일본이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일부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가 이날 대북 제재 해제를 발표한 것은 다분히 한중 정상회담을 의식한 것이었다.
동아시아의 전통적 동맹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언뜻 보기에 이런 모습은 “비정상적 구도”로 보일 법하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제국주의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동아시아의 기존 질서가 더 유동적인 상태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최근 미국 제국주의는 약화하고 있음이 뚜렷해지고 있다. 지금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이라크 등지에서 곤혹스런 상황에 처해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을 견제하려고 아시아로 대외 전략의 중심축을 옮기려던 오바마의 계획이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즉, 세계 패권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역들(유럽, 중동,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한 것이다.
미국의 상대적 약화
세계 패권을 유지하려고 미국이 안간힘을 쓰는 한편으로, 중국 제국주의는 자신의 기반을 넓히려 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 5월 중국은 중러 정상회담을 통해 10년 만에 러시아와 천연가스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중국은 미국이 통제하는 에너지 수입선을 우회해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받을 길을 하나 확보했다.
그리고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맞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과 갈등 중인 러시아와 외교 관계를 강화한 것이기도 하다.
5월 21일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아시아 지역 내 안보협력기구를 만들자고 공식 제안했다.
또한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을 겨냥해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미국이 주도해 온 아시아 안보·금융 질서에 견제구를 날리려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최근 미국 패권의 약화를 매우 우려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 패권에 기대어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의 부상은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누려 온 지위를 흔들고 있다.
그래서 아베는 동아시아에서 미국 제국주의를 지원하는 동시에, 자국의 위상을 강화하려고 공세적인 정책을 펼쳐 왔다. 일본 내 다수 여론이 반대하는데도 7월 1일 아베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해석 개헌”을 강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미국이 바라는 바이다. 대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은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한국·호주 등 동맹국들이 군사동맹에 더 많이 기여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미국 국방장관 척 헤이글은 별도 성명에서 “[집단적 자위권이] 일본 자위대의 더 광범한 작전 참가를 가능하게 하고 미일 동맹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군사대국화를 향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앞으로 일본은 더 공세적으로 중국의 부상에 대응할 것이다. 예컨대 아베는 호주를 방문해 ‘군사장비 및 기술 교환 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호주에 잠수함 제조 기술 등을 제공하며,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유동적인 질서
일본은 또한 올해 안에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재개정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에 맞춰 한반도 유사시 등을 대비한 “주변사태법”을 대체할 “미일협력법”을 마련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따라 주변 사태에 더 능동적으로 대응할 길을 열려 한다.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미국)이 경쟁하는 데서 한가운데 놓여 있다. 예컨대 중국은 경제와 과거사 문제를 중심으로 한국에 접근하고 있었는데 반해, 일본은 북일 대화 카드를 내세워 중국을 견제하려 했던 것이다.(물론 미국은 북일 대화가 내심 못마땅하겠지만 말이다.)
제국주의 열강은 한반도 주변에서 잇따른 군사훈련으로 군사력을 과시하며 상대를 견제하고 있기도 하다. 이 상황에서 미국은 자신의 상대적 지위 하락을 그냥 두고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동맹국들을 결집하는 능력과 군사력 등에서 미국은 여전히 경쟁 강대국들에 견줘 압도적으로 우세하며, 앞으로 상당 기간 그럴 것이다. 미국은 이를 이용해 자신의 패권을 지키려 해 왔다.
따라서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려는 노력과 미국의 상대적 약화를 틈타 자국의 지위를 강화하려는 경쟁자들의 시도가 교차하면서, 동아시아 국가 간의 관계는 더 유동적이고 불안정해질 것이다.
동아시아 불안정, 박근혜의 또 다른 아킬레스건
7월 4일 한국을 방문한 시진핑은 ‘한·중 경제통상협력 포럼’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 이재용, 정몽구, 구본무 등 국내 주요 재벌 총수들이 총출동했다. 그만큼 한국의 대기업들에게 중국 경제가 매우 중요해진 것이다.
그동안 한국이 중국 경제에 의존하는 정도는 비교적 빠르게 커져 왔다. 이제 한국의 대중국 수출총액은 대미·대일 수출총액을 합친 것보다 더 크다(위 그래프 참조).
다른 한편으로, 한국 지배자들은 여전히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중시해야 하는 처지이다.
이런 상황은 한국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주고 있다. 외교부 장관 윤병세는 〈매일경제〉 기고문에서 “한·중 동반자 관계와 한·미 동맹 관계를 상호 충돌하는 냉전적 제로섬 관계로 볼 필요가 없다”고 변명했다.
그리고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근혜는 “원·위안화 직거래 시장 개설” 등을 합의해 중국과의 관계에서 경제적 실익을 얻으려 한다.
그러나 ‘경제적 이익은 중국한테, 안보적 이익은 미국한테 얻는다’는 발상은 곳곳에서 한국 지배자들을 딜레마에 빠뜨리고 있다. 예컨대 미국은 한국에게 대중국 견제를 위해 더 많은 부담을 지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미사일방어체제(MD) 편입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중국을 겨냥한 THAAD(사드, 고고도미사일 방어체제)를 한국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최근 미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하지 말라고 한국에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박근혜는 한중 정상회담에서 민감한 문제들은 모두 회피해야 했다. 예컨대 중국 측이 요구한 일본 과거사 공동대응도 슬쩍 피해 버렸고, 일본 집단적 자위권 문제도 공동성명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한미 동맹
박근혜는 AIIB 가입 문제도 답변을 미뤄야 했다. 경제적 이익 때문에 관심은 있지만, 미국의 압력 때문에 주저하는 듯하다.
그래서 〈뉴욕타임스〉는 “한국과 중국이 거창하게 합의한 듯하지만, 북핵이나 여러 이슈를 다루는 데서 쓰는 용어가 서로 다르고, 기존 입장에서 크게 진전된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박근혜가 이런 태도를 취한 것은 한국 지배자들한테 한미 동맹 강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록 최근 많이 약해졌다지만, 여전히 미국은 세계 최강이다. 미국과의 동맹 없이는, 한국은 자국 기업의 무역·해외투자·자원 수급 등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단이 없다.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조심스럽게 처신하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의 대외정책은 분명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해 해석 개헌을 단행한 날, 하와이에서 한미일 3국의 합참의장 회의가 열린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러나 이럴수록 박근혜 정부의 딜레마는 더욱 커질 것이다. 한일 군사 협력, MD 편입, 중국과의 경제 협력 문제, 대북 정책 등을 놓고 한국 지배계급 내에서 언제든 격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박근혜한테 대외 정책은 또 다른 아킬레스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