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건설 노동자의 죽음:
세월호의 표본 건설현장! 그러나 체제 자체가 난파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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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4일 11시가 되기 직전, 수원광교 중소기업지원센터 맞은편에 있는 대우푸르지오 주상복합건설 공사현장에서 러핑타워크레인 한 대가 매스트(수직기둥) 인상 설치 중 부러져버렸다.
이 사고로 전국건설노동조합 경기남부타워크레인지부 법규부장 고 김성기 동지가 목숨을 빼앗겼다.
올해 43세인 김성기 동지는 노동조합원이 된 후 수차례 간부를 하며 맡은 활동에 능동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왔다. 김성기 동지의 활동을 보며 그와 가까웠던 동지들은 그를 ‘크레모어’라 부르기도 했다.
이번 사고는 세월호 사고와 너무나도 닮았다. 사고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조대는 33층의 공사 중인 철근들이 (호랑이가 떨어졌다는 옛날 얘기의 수수밭처럼) 뾰족뾰족 솟아있는 구역을 대충 훑어보고 김성기 동지를 못 찾았다며 철수했다.
구조대가 돌아간 후 인근에서 작업을 중단하고 부랴부랴 사고 현장에 도착한 조합원들이 33층에 도착해서 타워크레인 턴테이블사이에 끼어있는, 그러나 생사를 알 수 없는 김성기 동지를 찾았다. 119에 다시 구조요청을 했다.
119구조대가 다시 현장에 오기까지 흘러간 시간은 한 시간. 구조대가 와서 김성기 동지의 맥박이 없다며 부른 구조 헬기가 도착하기까지 총 한 시간 반을 허비했다.
김성기 동지는 아파트 건물 33층에서 불과 10미터 이내의 높이에서 장비의 한 부분을 붙들거나 기댄 채 극도의 긴장을 하고 떨어졌기 때문에 초기에 발견해서 구조를 했더라면 생명은 살릴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 대다수 조합원들의 얘기였다.
노후한 장비
김성기 동지가 근무하던 타워크레인은 생산년도조차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노후된 것이었고 이곳저곳에서 서로 맞지도 않는 매스트를 하나 둘 가져다가 짜깁기한 장비였다.
사고 직후 설·해체팀은 도주했다가 진술방향을 짜고선 오후에 현장이 아닌 경찰로 자진 출두했다.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설·해체팀의 진술은 조합원들이 예상한 그대로였다.“우리는 아무 신호를 하지 않았는데 타워크레인기사가 상부를 움직여서 사고가 난것이다.”
그러나 타워크레인이 아니라도 기계에 붙어서 먹고 사는 노동자들은 그것이 백 번 천 번 거짓말이라는 것을 안다. 더구나 김성기동지가 발견된 곳은 휴지조각처럼 구겨져버린 조종석이 아니고 상부가 허공에 뜨는 동안 최소안전조치를 확인하기 위해 조종석을 빠져나와 2미터 정도 내려와 있는 턴테이블이었기에 조종간을 잡을 위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분노와 한스러운 슬픔을 내려앉히던 조합원들은 지도부의 결정, 지도부의 행동지침만을 간곡히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냈다.저녁에 하루일과를 마치고 3백여명의 조합원이 모여든 현장은 동료가 기업의 이윤에 의해 살해당한 현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나는 교섭 결과를 기다리다가 산 놈은 살아야 하기에 곁의 한 동지와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조합원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함께 남은 동지와 둘이서 넘어가는 해그림자에 길게 드러눕는 매스트를 붙들고 쏟아지는 슬픔을 뱉어 물고 있었다. 그때 현장이 시끄러워지기에 무슨 일인가 확인해보고 또다시 치를 떨었다.
사고조사는 이제 초기이고 유가족에 대한 대책도 서지 않았고 지부지도부조차 사고에 대한 가닥을 겨우 잡아가고 있는데,사고 타워크레인을 해체하려고 하이드로릭크레인 550톤, 200톤, 50톤, 세대가 잠시 후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문자를 수차례를 보냈지만 병원으로 간 지도부는 빠른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혼자 현장을 사수하기로 하고 함께있던 동지를 통신 비둘기 띄우듯 병원으로 급히 보냈다.
사수대는 22시 30분에야 도착했다. 우리는 산업안전근로감독관에게 강하게 항의했고 적은 수이지만 조직의 힘으로 하이드로릭크레인을모두 현장에서 철수시켰다.
저들은 어찌 저리도 급하게 타워크레인을 해체하려 했을까?
타워크레인이 부러진 형태를 보면 자전거의 구조만 아는 초등학교 6학년생도 기계의 결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부러진 타워크레인 상부의 잔재 16톤이 얹어져 누르고 있는 33층 슬래브부터 30층까지는 서서히 중력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 이것은 건물의 일부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고 향후 타워크레인 임대사가 대우건설에 수십억 원의 손실비용을 청구당할 것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김성기동지의 유가족에 대한 책임 비용은 당연히 타워크레인 임대사에게 구상청구될 것이다.
그러나 밤새 증거를 감쪽같이 없애버리고 김성기 동지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며 증거인멸을 하면, 수백만 원의 벌금과 기천만 원 정도의 과태료로 모든 것을 마무리 할 수 있고 구상청구액은 대폭 줄어들 것이다.
구멍 난 안전감독
건설현장의 모든 타워크레인은 건물의 골조(뼈대)가 7층 이상이 될 때부터 3~4개층이 올라 갈 때마다 한 번 정도씩 매스트(수직기둥) 인상 과정을 거친다.사고가 난 타워크레인은 33층높이의 공사를 하고 있었고, 따라서 김성기 동지가 사고 날 당시 타워크레인의 높이는 약 105미터였다.
사고가 있기 전 수차례 매스트 인상 작업을 거치는 동안 사고장비의 2차 매스트 인상 작업을 담당했던 설·해체팀은 대우건설 현장관리팀에게“이 타워크레인의 텔레스코핑 장치의 롤러간극이 1미리미터 이내여야 하는데 거의 3미리미터에 이르러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안전보강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하지만 대우건설 현장관리팀은“우리는 모른다. 타워크레인관리는 타워크레인 임대사가 알아서 할 일이다”며 떠넘겼다.
하여 한국노총 소속인 설·해체팀은 임대사에 항의연락을 했으나 타워크레인임대사인 남산공영 측은 ‘설·해체 한두 번 해보냐, 뭘 그런 걸 가지고 피곤하게 하냐’며 정당한 문제를 제기한 설·해체팀을핀잔 주었다는 것이다. 이후 설·해체팀들 사이에서는 이 타워크레인이 위험하다는 소문이 자자하여 서로 매스트 인상작업을 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건설기계인 타워크레인의 안전감독은 누가 하는가?
타워크레인을 건설기계로 등록할 때 국가의 관리감독 주체문제에 대해 2년을 논의하는 동안 건설노동조합 노동안전파트는 이것이 ‘건설교통부소관이 되어야 함’을 계속 주장했다.
그러나 건설교통부와 노동부는 진흙탕 개싸움을 하다가 결국 공업관료는 고사하고 건설기계에 대한 전문능력이 전혀 없는 노동부의 또 하나의 ‘경로부서’가 됐다. 노동부는 타워크레인의 검사권을 도적질해와 민간 안전 협회들에게 검사권을 선심 쓰듯 나눠주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민간 안전 관리 협회들이 타워크레인 설치에 대한 완성 검사와 안전 검사를 독차지하게 된 것이다.
ㅂ동지에게 왔던 검사원은 타워크레인에 올라오지도 않고 전화로 ‘기사님, 타워 매스트 밑에 검사증 놓고 갑니다’라고 했다. ㄴ동지에게 왔던 검사원은 현장에 들어오지도 않은 채 전화로 ‘기사님, 경비실에 검사증 맡겨 놨습니다’라고 했다.
ㅎ동지에게 왔던 검사원은 매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보강철 용접부위에 균열이 생긴 것을 타워크레인기사가 지적했는데도 보강 요청서만 쓰고(검사증은 서비스로 두고) 갔다. 이에 분노한 ㅎ동지는 지역 노동지청에 위험상황발생신고를 해서 산업안전근로감독관과 산업안전공단 지역지도원을 동시에 불러내서 해당 타워크레인에 대한 가동 중지 명령을 받아내고, 현장에서 건설사 관리자들과 원수처럼 지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겪었다.
ㅁ동지에게 왔던 검사원은 본래 ‘전담영역이 화성공단의 선반기계와 밀링 검사인데 다른 검사원들이 바쁘다고 협회에서 타워크레인검사로 임시 배치했다’면서 어떤 점을 체크해줘야 하는지를 거꾸로 ㅁ동지에게 묻는 웃지 못할 촌극도 있었다.
미쳐 날뛰는 이윤 체제
걸핏하면 자빠져 사고가 나는 타워크레인에서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일하던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은 15년 전 전국타워크레인기사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안전의 불모지였던 건설현장에 안전모를 씌웠고 일요휴무를 일궈냈으며 여덟시간노동제와 곧이어 주5일노동제를 쟁취했다. 또, 건설기계관리법 개정행동을 통해 일반건조물에 불과하던 타워크레인을 27번째 건설기계로 등록하게 했다.
이것은 흩어져서 막걸리로만 나날의 분을 삭이던 노동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모여서 ‘파업가’로 분노를 모아내며 ‘하늘로 출근하는 사람들’로 분노를 표출시켰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들은 무더기로 쌓여있다. 갈수록 줄어드는 일터, 무인타워크레인의 건설기계등록과 유자격자가 조종할 권리 확보, 타워크레인 유경험자의 신호수 진입, 그리고 관행으로 이어져 오는 부끄러운 ‘촌지’의 폐지, 동료의 문제를 아직도 남의 일로 외면하는 행태 등등.
우리는 자신만의 벽을 허물고 지역의 강을 건너 산업의 산을 넘어서 ‘세계는 일하는 자와 착취하는 자로 나뉘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윤체제는 돈 몇 푼 때문에 노동자와 민중을 질식시키고 있고 노동자끼리 서로 삿대질 할 것을 강요하며 이간질시키고 있다.
세월호가 가라앉을 때 ‘그래도 사람들은 살리겠지’ 했던 기대는 구조대가 밖에서 맴만 돌던 한 시간 뒤 즈음에 이미 날아갔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이러저런 사고는 날 수 있다. 하지만 안나도 될 사고가 나는 것은 이윤 때문이다.
아산에서 오피스텔이 국산 피사의 사탑으로 돌변한 것은 세기의 수수께끼가 아니라 이윤을 챙기려고 기초를 다지지 않은 덕이다.어떤 다리가 제2의 성수대교가 될지 모르지만 4대강 바닥을 긁어낸 덕에 이런 비극은 조금 앞당겨질 것이다.
낮아진 강 수위는 개천을 말렸고 거북등처럼 갈라지는 농지를 살리려 농용수를 해마다 더 깊은 곳으로부터 뽑아낸 덕분에 지하의 공동화가 생겨 이천, 상주, 구례 어느 곳이 갑자기 땅속으로 사라질지 알 수 없다.
또 어느 곳에서 어떤 화학물질이 내뿜어질지 안심할 수 없는 두려움에 오히려 둔감해져야 하는 이 불안감!
돈이면 영혼까지 팔아먹는 이윤체제, 사람의 목숨을 고철덩어리 다루듯 하며 미쳐 날뛰는 이 체제를 유물조차 남기지 말고 날려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