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반올림 활동가 이종란:
삼성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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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8월 8일 맑시즘2014에서 삼성 반도체 산재 피해자 고(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님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 활동가인 이종란 노무사가 한 연설을 녹취·축약한 것이다.
황상기 “삼성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이렇게 위험한 작업장을 가만 뒀을까?”
2007년 3월 6일은 우리 유미가 죽은 날입니다. 그날도 속초에서 새벽 한 4시 30분쯤 유미를 치료하기 위해서 수원 아주대 병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아침 7시 반 전후해서 피검사를 해야지만 피검사 정확도가 맞는다고 해서 꼭 그 시간에 출발을 합니다. 아주대 병원에 가서 치료 좀 하고 피검사도 하고 이러다 1시가 조금 넘은 경에 속초로 출발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영동고속도로로 해서 오게 되는데 유미를 택시 뒷좌석에다가 침대처럼 만들어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날도 수원 아주대 병원에서 출발을 해서 속초로 가는 길이었는데 원주를 조금 못 갔을 무렵인데 유미가 뒤에 드러누워 있다가는 “아이, 더워”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앞의 창문을 양쪽을 열어놓고서 “됐어?” 하고 물어보니까 유미가 “응”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또 금방 “아, 추워” 그러는 거예요. 그래 갖고 다시 창문을 올렸어요. 올리고 “됐어?” 하고 물어보니까는 됐다고 대답하더라고요.
됐다고 해서 이렇게 가는데 횡성 휴게소 가기 전에 높은 싸리재 고개를 올라가는 중이었었는데요. 유미 엄마가 옆에 앉아 있다가 뒤를 쓱 돌아보더니만 “아, 얘가 왜 이래!” 이러는 거예요. 뒤를 얼른 돌아다봤어요. 돌아다보니까 벌써 눈을 하얗게 뒤집어쓰고선 얘가 벌써 숨이 막 넘어가는 거예요. 고속도로 옆에다 차를 세워놓고는 뒷문을 열어 보니까 벌써 유미가 다 죽었더라고요. 숨이 다 넘어갔고 눈만 허옇게 치뜨고 있더라고요. 유미 엄마는 막 울고 있고. 나도 내 정신이 완전히 아니었었죠. 그렇게 있다가 속초까지 왔는데, 속초까지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때 정신이 완전히 내 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안 나요.
발뺌
그렇게 속초에 와서 장례식장에 유미를 안치해 놓고 조금 있는데 우리 집에 노상 와서 말썽부리던 삼성 사람이 전화가 온 거예요. 자기네 오겠다고. 난 연락도 안 했는데 그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왔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래 그날 저녁에 장례식장에 삼성 사람들이 몇 사람 왔어요.
제가 장례식장에 앉아 있다가 너무 답답해 가지고 바깥으로 쓱 나오니까 기흥공장 인사과에 있는 김 뭐라는 사람이 나를 따라 나오는 거예요. 그러더니 “아버님, 내가 유미 문제는 유미 장례식을 치르고 나면은 깔끔하게 보상 문제를, 치료비 문제, 이런 건 다 매듭을 깨끗하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장례식 잘 치르세요.”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그 말에 어떤 대답도 안 했었어요. 왜 대답을 안 했냐면, 유미가 죽기 전에 삼성 사람들이랑 계속 싸웠었거든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나한테 벌써 계속해서 거짓말만 해갖고 그 순간만 모면하려고 이 사람들이 또 나를 속이는구나 이런 느낌만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 유미를 장례식 화장터에서 화장을 해갖고 산에 가서 뿌렸어요. 뿌리는 데에 삼성 사람들이 상당히 여럿이 왔었어요. 유골을 뿌릴 때 삼성 사람들이 내 뒤에 서 있었는데 화가 얼마나 나는지, 아주 유골을 그 사람들 면상에 확 뿌리고 싶더라고요. 근데 그때 용기가 없어 갖고 그렇게 못했어요.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 하지 못한 게 상당히 후회스러워요.
며칠 후에, 그 삼성 사람이 나한테 전화가 왔어요. “아버님 오늘 바닷가에 가서 소주나 한 잔 하면서 얘기 좀 하시죠?” 그러더라고요. 가니까 그 사람들이 회도 시키고, 술도 시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술이랑 회가 들어오니까 날씨 얘기 몇 마디 하더니 그 다음에 얘기를 하는 거예요. 유미 병은 자기네들이랑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개인적인 질병이라고요. 삼성에서는 화학물질 이런 거는 쓰지도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 얘길 꺼내는데 아주 화가 있는 대로 확 나는 거예요. 눈이 막 빙빙 돌아가는 게 열이 나가지고. 내 앞에 술병이 있었는데 진짜 용기가 없어서 그 술병으로 머리를 못 내리친 거야. 후려치고 싶었는데.
유미한테 살았을 때 물어봤거든요. 거기서 무슨 일 했냐고. 그랬더니 화약약품에다 반도체를 웨이퍼에 담갔다 뺐다 하는 일을 했다고 했고, 같이 일했던 이숙영 씨랑 똑같이 같은 백혈병에 걸려서 같이 죽었는데, 유미가 죽고 없다고 발뺌을 딱 하는 거예요.
그러고서는 며칠 있다가 우리 집에 〈말〉지 기자가 와서 취재를 하고 사진도 찍어 갔었는데요. 그 기사가 나오고 며칠 있으니까 다른 언론사에서 자기네도 기사를 내고 싶다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다음에 그때 막 창간한 〈수원신문〉에서 기자님이 나를 수원으로 오라 그래 가지고 가서 사진도 찍고 기사를 만들었어요. 그다음에 이걸 배포를 하려고 했어요. 기흥공장 앞에서 사람들이 보게끔 하려고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경비들이 쫓아 와서 다 뺏는 거예요. 사람들이 못 보게. 그리고 이 사람이 신문을 만들어 갖고 수원역, 터미널 이런 좌판대에 꽂아 놓으면 그 경비들이 쫓아다니면서 그걸 전부 다 뺏어가는 거예요.
그때 제가 한계를 느꼈어요. 문제를 더 활성화를 시켜야겠는데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수원신문〉 김삼석 기자님한테 ‘이런 문제를 활성화를 시켜줄 수 있고 저랑 같이 하실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 분이 수원 다산인권센터의 김성호라는 분을 나한테 소개해 줬고, 그다음에 다산인권센터의 박진이라는 분하고 이종란 노무사님하고 2007년에 나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만나자고.
2007년 8월 달에 만나가지고 내가 있었던 얘기를 그대로 다 털어놨더니 우리 노무사님하고 박진이란 분이 가셔가지고 대책위원회를 만들어갖고 2007년 11월에 기흥공장 앞에서 처음 기자회견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말〉지 기자분이 소개해 준 ‘건강한노동세상’의 장안석이라는 분의 도움을 받아서 2007년 6월 1일에 평택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 서류를 냈어요.
산재 신청서를 내니까 2007년 6월 말일에 근로복지공단에서 나보고 진술서를 받으러 오라고 했어요. 가서 허영근이라는 근로복지공단 차장 앞에서 내가 진술을 하게 됐어요. 나는 강원도 속초에 사는 황상기이고 내 딸 유미가 거기서 다니다가 병에 걸렸다, 둘이서 일하다 둘이 똑같이 죽었다, 사실 그대로 얘길 했어요. 그랬더니 삼성에서 올라온 두꺼운 서류를 맨 위에 있는 걸 들춰보더니 그 사람이 하는 얘기가, 이게 삼성에서 올라온 서륜데 삼성에서 유미가 스티커 붙이는 작업하다가 3라인에서는 석 달만 일을 했다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삼성에서 서류 올린 거는 거짓이라고, 유미는 3라인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약 스물한 달쯤 일을 했다고 하니까 그 허영근 차장이 그걸 쥐고 있다가 둘러메치는 거예요. 나를 겁주느라고요. 아니 삼성에서 사람 이까짓 몇 죽었다고 서류를 거짓말해서 올릴 것 같느냐고. 이렇게 겁을 주는 거예요. 내가 그렇지 않다고 설명을 하는데도 말이 안 먹히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할 얘기만 하고 그냥 나왔어요.
10억 원
그러고는 9월 1일에 산안공단[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역학조사를 하는데 나보고 참관을 하러 오라고 해서 갔어요. 들어가서 보니까 유미가 얘기할 적에, 그 안에 칸막이 시설이랑 환기 시설이 잘 안 돼 있어 갖고 일하면서 상당히 더워서 땀이 이마에서 쭐쭐 흐르고 젖가슴에도 쭐쭐 내려 흐르고 너무 더워갖고 마스크를 벗어 놓고 일하다가 감독하는 사람들한테 혼이 난 적도 몇 번 있다고 얘기를 했었거든요. 근데 내가 가서 보니까 칸막이도 전부 다 해놨고 환기도 잘 해 놔서 아주 서늘하게 춥다는 느낌이 들게끔 시설을 잘 해놓고 역학조사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안에 들어가서 막 따졌어요. 어떻게 이렇게 다 고쳐놨냐? 이렇게 역학조사 하는 게 맞느냐고 막 따졌어요. 그랬더니 역학조사 팀장이라는 분이 나를 말리는 거예요. 자기가 삼성에 공문을 보내서 다 확인할 테니까 여기서 싸우지 말고 가만히 계시라고.
그러고 바깥으로 나오니까 정문 있는 데서 삼성 안전그룹장하고 다른 과장하고 둘이서 나를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회의실로 갔더니 그 사람들이 나보고선 ‘아버님 제가 10억을 해드릴 테니까 아무 소리 하지 마시고 그대로 계세요.’ 그렇게 얘길 하더라고요. 그래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니까 그 사람들이 이런 저런 얘길 조금 하다가 ‘가셔야지요’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바깥으로 나오니까 거기서는 ‘제가 10억을 해드릴 텐데 그 대신 사회단체 사람들은 절대 만나지 마시고 누구한테도 얘기하지 마세요.’ 그러더라고요. 그 말에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러고는 바로 나와 가지고 차를 끌고 민주노총 경기본부 가서 이종란 노무사님 만나갖고 그 얘길 그대로 전했던 거예요. [청중 웃음]
역학조사를 그렇게 했어요. 근데 다른 무슨 다치거나 상해를 입었을 때는 눈에 보이는 거기 때문에 이런 거는 역학조사 하기 상당히 쉬워요. 근데 화학약품, 전리방사선 이런 거는 눈에 보이지 않고 공기를 타고 다니는 거여서 하루 이틀, 한두 달, 일이 년 안에 역학조사를 할 수 없는 거거든요. 근데 이 역학조사를 두 달 만에 끝냈어요. 너무 엉터리였어요. 왜 엉터리인가 하면 역학조사를 자기네들끼리만 했거든요. 우리 유미가 병에 걸린 건 2005년 6월이거든요. 근데 2007년 9월 1일에 역학조사를 했으니까 2년이 훨씬 지난 시점에서 한 거예요. 그 안에 시간을 충분히 준 거예요. 환기 시설, 칸막이 시설 다 만들어놓고 삼성이 들어오라는 날짜에 가서 역학조사를 했거든요.
그리고 역학조사도 어떻게 하느냐가 상당히 중요한 거거든요. 근데 삼성 사람들하고 산안공단 사람들하고만 역학조사를 했어요. 우리는 역학조사를 어떻게 했는지 몰라요. 그 사람들이 역학조사를 했다고 하지만, 예를 들어서 이 안에서 바닥에 있는 공기를 쟀는지 저 천장에 있는 공기를 쟀는지 내 코 앞에서 공기를 측정했는지 저 들어오는 입구에서 공기 측정을 했는지 공기가 나가는 부분에서 측정을 했는지 화학약품 바로 앞에서 측정했는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 역학조사를 믿을 수 없다고 공언했어요. 무효라고. 그랬더니 역학조사 다시 한대요. 그래서 또다시 했어요. 2008년 1월 달부터 또 했어요. 근데 또 1년 만에 끝냈어요. 또 그 전에 두 달 만에 끝낸 거랑 똑같이 역학조사를 한 거예요. 역학조사를 하고서 그 물질 공개도 안 했어요. 역학조사를 했으면 무엇을 조사했다고 공개를 해야 할 것 아니에요. 그리고 그 성분이 사람 몸에 어떤 인과 관계가 있는지 규명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런 규명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대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요.
산안공단이 역학조사를 한다는 셈치고 피해 노동자들을 속인 거든요. 이 역학조사는 밝혀내기 위한 것이 아니고 감추기 위해 한 거예요. 회사 편에서 역학조사를 한 거거든요. 이런 산안공단이 왜 필요한 겁니까. 국민들 세금 낸 거 가지고 이 사람들 왜 월급 줘야 하는 거냐고요.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이건 아예 없는 것만도 못하잖아요.
노동조합
정부와 회사는 노동자에 유리한 법은 절대로 노동자들한테 안 쓰려고 전부 다 감추고 있어요. 헌법에 노동조합을 만들라고 돼 있고, 헌법에 노동3권이 보장돼 있으면 뭐하냐고요. 정부에서 그 법을 못 쓰게 하는데. 그렇다면 정부하고 회사는 한 편이잖아요. 노동자 편 절대 아니잖아요.
정부와 회사는 노동3권 이런 걸 가르쳐주지 않아요. 노동자는 노동자의 권리를 스스로 찾아야 돼요. 스스로 노동조합 만들어서 노동3권 지키라고 더 목소리 높여야 돼요. 혼자 힘이 모자라면 둘이 해야 되고요. 둘이서 모자라면 셋이 해야 되고, 우리 단체끼리 힘이 모자라면 저쪽 단체하고 힘을 합쳐야 되고요.
삼성에 만약에 노동조합이 있었다고 하면, (저는 이 얘기를 수도 없이 했는데요) 노동조합이 가만히 있었겠어요? 자기네 조합원들이 병에 걸리고 죽어가는데. 삼성하고 대화하고 협상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작업장을 안전하게 만들었을 것이고, 대화가 안 되면 투쟁이라도 해가지고 작업장 안전하게 지켰을 거고요. 노동조합이 없으니까 환자 나오면 전부 다 내쫓고 자기네하고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노동자가 스스로 자기 권리를 방어하고 사회안전망 이런 걸 마련하려면 노동조합이 반드시 생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종란 “가장 위험한 기업(삼성)이 가장 위험한 산업(반도체)을 주도하고 있다”
처음에 아버님 만났을 때 제일 막막했었던 것은 사실 삼성이라고 하는 상대에 맞서 싸워야 하는 이런 문제가 아니라 도대체 이 반도체라고 하는 게 뭔지를 전혀 알지를 못한다는 문제였어요. 그래서 처음에 이 싸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했어요. 그러나 단 한 가지 이상하다. 아버님이 얘기했듯이 어떻게 2인 1조 작업자 둘 다 이렇게 희귀질환인 백혈병에 걸려서 사망할 수가 있냐. 이거는 그냥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게 설령 직업병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진상규명을 위한 싸움은 노동자들한테 이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이런 얘기를 누가 [시작]했냐? 진상을 규명해 달라고 했던 아버님이 없었으면 사실 불가능한 얘기였습니다. 지금까지 저희한테 2백80~90명 정도 제보가 들어왔어요(사망자 118명). 이 중 거의 2백 명 넘는 숫자가 삼성전자 계열사에서 들어온 제보예요(사망자 98명). 백혈병, 뇌종양, 피부암, 폐암, 그리고 다발성경화증 같은 희귀 난치성 질환들 같은 중증 질환자들만 포함한 숫자인데, 이렇게 많아요. 최근에 하이닉스 쪽에서도 꽤 제보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하여튼 우리가 처음에 황유미라는 어린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서 고민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제가 해를 거듭할수록 많이 느껴요. 이 때문에 첨단 전자 산업이 무엇인지 하는 문제는 심각하게 고민해 볼 문제입니다.
반올림에 들어오는 제보 내용들은 아주 다양합니다. 암과 희귀 난치성 질환들 말고도 탈모, 피부병, 유산, 불임 같은 생식 독성 피해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4명이 한 팀을 이루어서 일을 하는데 나 빼놓고 세 명이 다 암에 걸렸다, 그래서 두렵다’고 제보를 주신 분도 계셨어요. 그리고 반도체 직업병이 백혈병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반도체 산업의 직업병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많이 알렸던 병은 뇌종양이었습니다. 미국 IBM이나 인텔이나 페어차일드 같은 반도체 회사에서 직업병 문제가 의심이 된다고 보고됐던 최초의 질병은 사실 뇌종양입니다. 저희한테도 백혈병 다음으로 뇌종양 피해 제보가 많이 들어와요. 저희가 뇌종양에 대해서 산재 신청을 하면 지금 한국의 현실은 뇌종양이 의학적으로 어떻게 발생하는지 규명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불승인 으로 귀결이 됩니다.
반도체: 가장 위험한 산업
미국 노동부가 낸 통계를 보면, 우리가 흔히 화학산업이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하니까 직업병이 훨씬 더 많겠거니, 혹은 조선소나 중공업 이런 데들이 더 위험하지 않겠냐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진짜 더 심각한 문제는 전자산업, 특히 반도체 산업에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황유미 씨가 일을 하던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한 곳에서만 5백40여 가지의 화학물질이 사용됩니다. 반도체 칩 하나를 생산하기 위해서 굉장히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이나 가스들이 사용된다는 겁니다. 유대인을 학살할 때 쓰인 포스틴이라는 맹독성 가스도 사용되고요. 반도체는 현대 디지털 산업 시대에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우는 첨단 부품인데, 이걸 생산하는 데서 엄청나게 많은 화학물질들이 집약적으로 사용됐다는 거예요.
‘이 화학물질들을 잘 규제하면 되지 않겠냐’ 하는데 그러기가 힘듭니다. 왜냐하면 이 산업의 속도가 되게 빠르잖아요? 전자 제품의 처리 능력이 18개월마다 두 배씩 향상된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발암 물질로 인해서 10년 뒤에 암이 생길 수도 있는데 10년 뒤에 이걸 연구해 보려고 하면, 10년 전 공정을 아무리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는 거예요. 불과 수년 전 작업 현장도 남아 있지 않아요.
뿐만 아니라 빨리빨리 변모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전자 쓰레기들이 생산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반도체 산업의 대표적 문제인 직업병 문제와 환경오염 문제는 규제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방식으로 빠르게 진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반도체의 직업병과 환경오염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는 것은 이미 1970~80년대 미국에서부터 알려져 왔어요. 그 지역 주민들이 반도체 공장에서 흘러나온 TCA 같은 화학물질 때문에 유산하 고 기형아 출산을 하고 그래서 지역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죠. 또 공장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났어요. [미국에서는] 그러면서 규제를 하기 시작한 거예요.
문제는 이걸 생산하려고 규제가 약한 나라로 점차 이전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한국, 대만, 중국, 최근에는 베트남에까지 진출해 있습니다. 대만의 RCA 같은 전자 회사 같은 경우에는 암 피해자가 1천3백 명 정도 있어요.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는, 반도체 산업이 이렇게 굉장히 위험천만한 산업인데, 그렇다고 다시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인터넷 없이 살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잖아요. 그렇다면 반도체를 안전하게 생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제가 생각할 때 안전하게 생산을 하려면 적어도 이런 산업은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운영하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온 국민이 감시할 수 있게 하고요. 또 전 세계적으로 규제를 하면서 안전하게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제일 좋은 대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진짜 큰 문제는 가장 위험한 기업인 삼성전자가 가장 위험한 이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는 겁니다.
삼성: 가장 악독한 기업
지금 여기에 계신 분들이 삼성에 대해서 다들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겪어온 삼성은 가장 악독한 기업인 것 같습니다. 반올림 사례 말고도 그래요. 예를 들어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추구해 왔는데 어떤 노동자가 사내 인트라넷에 ‘노동조합 만드는 법’이라는 글을 인터넷에서 퍼다가 올렸대요. 그랬더니 글을 퍼다 나른 사람은 해고를 당하고, 그 글을 본 사람들까지도 다 인사고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거나 징계를 받는…. 얘는 뭔가 좀 위험하다 싶으면 불러다가 심지어는 가족들의 은행 계좌나 개인 정보까지 다 써서 내게 하고 ‘신상 털기’를 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쫓아냈다는 거예요. 이런 일을 겪었던 분들의 제보도 저희한테 들어오기도 하는데요. 그러니까 맘만 먹으면 한 개인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아 갈 수 있다, 우린 그렇게 큰 힘이 있다, 이렇게 굉장히 오만한 행동들을 해 왔습니다.
아마도 황유미 씨 아버님이 겪었던 일도 그중에 하나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와가지고 약속한 치료비는커녕 ‘5백만 원으로 끝내자’고 하고, 진상규명을 시도하자 이제는 ‘10억 줄게’ 하고.
그리고 반올림을 만들고 저희가 처음에 제일 많이 힘들었던 것이, 저희가 한 명의 피해자를 만나려고 하면 이 피해자를 다 삼성이 만나는 거였어요. ‘삼성이 치료비는 물론이고 집도 바꿔 주고, 반올림만 만나지 않으면 다 해준다는데 왜 내가 꼭 반올림과 해야 되냐.’ 사실 이런 피해자들 한 명 한 명 설득하면서 지금까지 왔거든요.
그리고 2010년에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던 박지연 씨가 황유미 씨처럼 23살에 백혈병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어요. 반올림 만들어지고 나서 처음으로 ‘나도 백혈병에 걸렸다’면서 제보한 피해자였어요. 그때 박지연 씨의 죽음[이 알려지는 것]을 막으려고 삼성이 한 짓이 최근에 삼성전자서비스의 염호석 씨 시신을 경찰이 탈취해 간 일과 똑같아요. 박지연 씨가 죽고 저희는 지연 씨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려고 유족을 설득해서 삼성 본관 앞에라도 한번 들렀다 가려고 했어요.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병원에서 성남 화장장까지 가는 동안 영구차가 다른 데로 샐까 봐 진짜 경찰이 영구차를 호위해 주고 길을 다 터주는 거예요. 영구차에 타지 않았던 다른 활동가들이 이대로 그냥 보낼 수는 없다, 1인 시위라도 하자고 해서 삼성 본관으로 가려 했는데, 경찰이 성모병원을 완전히 에워싸서 아예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했어요.
박지연 씨가 죽고 나서 삼성이 또 다른 백혈병 피해자가 나온 것을 무마하려고 몇 가지 일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세계적인 안전 보건 컨설팅 회사에 의뢰해서 백혈병이 직업과 관련 있는지를 밝혀내겠다, 삼성 자체 재조사를 하겠다, 그리고 건강 연구소를 설립하겠다 등등. 기업 이미지를 바꿔야겠다면서 ‘공장’이라고 하지 말고 ‘캠퍼스’라고 불러 달라(온양캠퍼스, 기흥캠퍼스), ‘삼성반도체 공장’이 아니라 ‘삼성나노시티’로 불러 달라고도 하고요. 공장 외벽도 흰색에서 색깔 들어간 걸로 바꾸고.
그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인바이런 조사였는데요. 인바이런 조사를 통해서 삼성반도체 공장의 업무와 백혈병이 아무런 상관이 없음이 밝혀졌다는 거예요. 그렇게 대대적으로 홍보를 해요. 한국에서는 싸우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조심스럽게 하는데 해외 학술대회 같은 데 나가서 엄청나게 홍보를 합니다. 그런데 이 인바이런사라고 하는 데가 어떤 데냐. 담배 회사랑 손잡고 담배가 폐암을 유발하지 않는다라거나 고엽제가 사람 몸에 그렇게 해롭지 않다는 이런 친기업적 연구들을 했던 뎁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는 황유미 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이 최소한 정부로부터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싸움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건 회사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한 게 아니라, 국가를 상대로 이 정도의 개연성이 있으면 치료받을 권리, 혹은 치료 때문에 망가진 생계를 최소한 보전해 줄 권리, 이런 것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공공 보험인 산재 보험을 적용시켜 달라고 하는 산재 신청을 한 것이에요. 그런데 아버님이 얘기했듯이 이러저러한 방해로 산재가 불승인 당했고, 그래서 그것은 정부가 잘못 판단한 것이니 제대로 다시 판단해 달라고 하는 행정 소송을 했는데, 삼성은 행정 소송에까지 피고 보조 참관인이라고 하는 제도를 이용해서 참여를 했어요. 산재 소송에 기업이 참여하는 경우는 사실 처음 봤거든요. 정말 이건 정부를 상대로 한 게 아니라 거의 1백 퍼센트 삼성을 상대로 소송하는 그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7년의 저항
그런데 최근에 삼성이 행정 소송에 보조 참가하는 것을 철회하겠다, 그리고 반올림과 교섭하겠다, 피해자들과 교섭하겠다고까지 나왔어요. 사실 이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불가능한 얘기였어요. ‘직업병’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말라 하고, 힘으로 누르더니 결국에는 협상을 해보겠다고 하면서 권오현 대표이사가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얘기 드리고 싶은 것은, 사실 저희들이 큰 힘이 있지는 않아요. 피해자 가족들 많이 있지만 다들 병 치료하느라고 거의 대부분 나서서 싸우지 못해요. 앞장서 싸우는 피해자 가족 몇 명과 활동가들이 소수이지만 뭉쳐서 싸웠고 끈질기게 저항했다는 겁니다.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지금 삼성과 협상을 가능하게 했던 힘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녹취 오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