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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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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러시아 혁명 - “역사적 사건에 대한 대중의 직접적 개입”
《러시아 혁명사》 레온 트로츠키 지음 |풀무질

레온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는 러시아 노동계급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 어떻게 싸웠는지를 보여 주는 최상의 저작으로 남아있다.
트로츠키는 위기가 어떻게 발생했고, 어떻게 대중의 의식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지 못하면 1917년 혁명을 이해할 수 없다고 보았다.
1917년 초 러시아 사회는 거대한 농민층을 가진 아주 후진적인 사회였다. 그러나 동시에 러시아는 가장 선진적이고 집중된 노동계급을 보유하고 있었다. 트로츠키는 1917년에 노동계급의 지도 아래 이 두 계급이 어떻게 단결할 수 있었는지를 묘사한다.
당시의 위기는 사회 밑바닥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점차 일상의 삶으로부터 유리돼 온 왕정을 포함한 최상층에까지 미치고 있었다. 트로츠키는 왜 짜르가 군대와 거리에서의 점증하는 위기를 포착하지 못했는지 뛰어나게 그려낸다.
1917년 2월에 혁명적 물결이 분출됐을 때 이 물결은 뜻밖의 곳에서 흘러나왔다. 여성 방직 노동자들은 국제여성의 날을 파업과 시위로 기념했고 이 행동은 다른 부문의 노동계급에게 급속히 확산됐다.
이러한 움직임은 매우 강력하고 힘있는 운동을 만들어 냈고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에서 절정에 달했다. 당시 사건들의 핵심 인물이었던 트로츠키 본인의 말을 인용해 보자.
“혁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대중의 직접적 개입이다. 보통 때는 왕정이든 민주정이든 국가가 국민 위에 군림하며, 역사는 왕·장관·관료·의원·저널리스트 등 특수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대중이 구질서를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느끼는 바로 그 결정적 순간에 그들은 자신을 정치 영역으로부터 소외시킨 장벽을 부수고 자신의 전통적 대표들을 쓸어버린 다음 자주적으로 새로운 체제의 기반을 만들어 낸다.”

절정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열쇠였다. 당시 러시아에서 볼셰비키당은 혁명 운동을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평가했다. “볼셰비키는 대중의 이익 방어라는 주관적 목표를 객관적으로 조건지어진 과정인 혁명의 법칙에 종속시킬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볼셰비키 중에서도 레닌은 만약 노동계급이 구질서를 타도한다면 소비에트를 건설할 수 있고, 더 중요하게는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음을 노동계급의 가장 선진적인 부문에 확신시키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다.
레닌은 노동계급의 혁명적 가능성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혁명적 지도부 내 보수적 분파와 투쟁해야 했다. 또한, 노동자의 통제 아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투쟁했다.
레닌은 이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승리하지 못한다면, 우리 당은 파괴되고 혁명은 실패할 것이다.”
볼셰비키당은 살아남았고 혁명은 성공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볼셰비키와, 레닌과 트로츠키를 중심으로 한 당 지도부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는 1917년 싸웠던 모든 노동자에 대한 헌사이자 그들의 전통을 잇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여전히 귀중한 무기이다.



반자본주의 운동의 상징이 된 책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조제 보베 / 프랑수아 뒤푸르(대담자 질 뤼노) | 울력

1999년 시애틀 시위의 대성공 이후로 반자본주의 운동의 탄생과 성장에 기여한 주요 인물들이 반자본주의 운동의 상징적 대변자로 등장했다.
보베는 바로 그러한 인물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1999년 동료 농부들과 함께 프랑스 미요의 맥도날드 매장을 해체한 일로 커다란 명성을 얻었다. 2000년 여름 미요에서 그의 맥도날드 매장 해체 사건에 대한 공판이 열렸을 때는 무려 10만 명이 시위와 토론 그리고 축제가 한데 어우러진 어마어마한 대중동원에 참가했다.
이 책은 보베와 그의 동료인 프랑수아 뒤푸르와의 인터뷰들로 구성돼 있다. 그들은 유럽의 농업 생산을 증대하기 위한 시도들이 점점 더 농업 생산 자체의 토대와 더 광범한 환경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폭로한다.
오늘날 ‘생산주의’가 농업을 지배하게 된 결과, 갈수록 더 많은 항생제가 가축들에게 사용되고 있다. 생태적 균형을 무시한 단작 재배와 제초제, 화학 살충제의 과도한 사용으로 토지는 생명력과 자정 능력을 상실한 채 메말라 간다.
떨어진 지력(地力)을 만회하기 위해 더 많은 화학 비료가 사용되고, 정화하지 않은 가축 분뇨와 농업 폐기물, 화학 비료, 살충제, 제초제 등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광우병과 유전자 조작 식품의 위험은 정확한 예측조차 불가능한 형편이다. 결국 이러한 모든 과정의 최종적 피해자는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는 인간일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생산’과 이윤을 위한 이러한 ‘비용’들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빈곤과 기아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대다수 농민들의 삶도 거의 나아지질 않았다.
반면, 한 줌의 거대 다국적 농화학 기업들(몬샌토가 대표적이다)은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다. 때문에 이들은 이러한 악순환이 중단되지 않도록, 즉 자신들의 이윤 획득이 중단되지 않도록, 갖가지 방법으로 정부와 국제 기구에 압력을 행사한다.
과학적 연구 활동들 역시 대기업들이 가하는 이윤추구 압력에 갈수록 종속되고 있다. 보베는 오늘날 국가가 운영하는 “공적 연구 기관들이 사유화의 방향으로 변질”되었다고 말한다. 연구 기관에 자금을 대는 “기업들은 자신들의 상업적 이해에 치중하여 연구원들의 작업 방향을 설정한다.” “수십 년에 걸친 식물 게놈에 관한 공공 연구의 성과물들이 극소수 기업체의 통제 아래로 들어간다.”

이윤

저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세계화에 반대하는 더 폭넓은 운동에 대한 논의에 기초해 전개하면서, 시애틀과 미요 그리고 다른 곳에서 벌어진 투쟁들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보베는 시애틀 시위가 “새로운 저항의 시기가 시작되고 있다는, 오랜 기간의 실패와 이전 세대의 침묵 이후에 정치가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고 증언한다.
몇 가지 대목 ― 특히 마르크스주의와 정당에 대한 배격이나 소생산자들의 “자율적인 조합 운동”을 대안으로 내세우는 점 ― 은 논쟁적으로 읽어야 하지만, 그 때문에 저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폭로가 갖는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김용민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낼 진정한 힘은 어디에?
《대기 오염 그 죽음의 그림자》 데브라 데이비스 지음 | 에코리브르

전 세계에서 대기 오염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더 많다. 1990년대에 뉴욕에서는 9·11 사건 사망자보다 많은 사람들이 대기 오염으로 죽었다.
대기 오염의 실태와 그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북극곰의 굶주림, 양성 생식기를 모두 가진 흰 돌고래, 암에 걸린 야생동물, 유방암 발병율의 증가, 생식기능 장애.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것들의 원인은 모두 대기 오염이다.
유행병학자이자 세계보건기구 선임자문위원인 데브라 데이비스는 이 책에서 대기 오염의 끔찍한 현실과 그것과 질병의 상관관계를 입증하려는 과학자들의 ‘고독한 투쟁’을 다루고 있다.
1948년 저자의 고향 펜실베이니아 도노라에서는 극심한 스모그 때문에 일주일만에 마을에 관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될 지경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정부당국은 이 같은 죽음의 원인을 ‘이상 기후’나 전염병이라고 밝힐 뿐이다.
오늘날 GM과 스탠더드 오일의 납 함유 휘발유는 대기 오염 ‘기여’ 목록의 윗줄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 매우 길고 험난한 60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것은 과학자들에 대한 연구자금과 직접적 위협 때문이었다. 기업과 그들에게 지원을 받는 과학자들은 요인의 복합성을 이야기하며 더 많은 실험과 확실한 증거를 요구했다.
하지만 대기 오염이 질병을 악화시킬 작은 위험이라도 예상된다면 그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는가. 대기오염도 감소를 위한 기술들은 1980년에도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런 기술을 바로 그 때부터 이용했다면, 1백만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때이른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대기오염과 질병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의식있는 과학자 연합’은 현재 사용가능한 고효율 연료를 사용한다면 이산화탄소 총 배출량이 60퍼센트가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누구의 힘에 기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저자는 ‘2000년 지구의 날’ 행사를 후원한 포드나 새 ‘녹색’ 로고를 만든 BP 같은 ‘계몽된 기업’에서 한가닥 희망을 보는 듯 하다.

희망

그러나 이윤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될 때만 자동차 배기가스를 줄이기 위한 컨버터와 프레온 대용물을 생산하는 것이 바로 시장과 기업의 논리이다. 또한, 정부의 환경 정책은 환경오염에 기민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냉소적인 겉치레이거나 선거 득표용이다. 미국 최초로 환경보호청을 신설한 닉슨의 본심은 “정신 나간 환경주의자들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클린턴 행정부에서 나는 여러 직책을 맡았다. 불행히도, 정부 내에서 나의 지위가 높아질 때마다 정말로 뭔가를 바꿔놓을 수 있는 힘은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고백한다.
서울은 OECD 국가들 중 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높다. 그런데도 정부는 최근 ‘경제살리기’의 일환으로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대기환경 규제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정부와 기업에 기대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김세원

알 포인트 - 손에 피 묻힌 자 돌아오지 못한다?

처음에 프랑스군이 한날 한시에 몰살당하고, 그 이후로 그 지역에 들어가는 병력은 죽거나 실종돼 버린다. 영화는 최 중위를 중심으로 한 아홉 명의 대원이, 앞서 이 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하던중 실종돼 버린 병사들의 생사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작전을 전개하면서 시작한다.
〈알 포인트〉는 더 좋은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 고향에 있는 홀어머니에게 송아지를 사 드리기 위해 작전에 자원하는 어린 병사는 마치 취업과 경제난을 걱정하며 월 2백만∼3백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바라보고 이라크로 지원하는 사병들 같다. 서로 적으로 만나야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증오에 휩싸여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나는 숨바꼭질을 펼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 자본주의 국가가 강요하는 전쟁의 모습이다.
그러나 〈알 포인트〉는 예전의 〈플래툰〉이나 〈하얀전쟁〉 들이 가졌던 반전의식에서 크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전쟁의 잔인함, 부도덕성, 비인간성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비판하고 있으나 전쟁의 근본 원인과 모순에 대한 비판은 빠져 있다.
베트남의 우리 군대가 그 곳에 파병된 진정한 이유, 박정희가 미국의 원조를 얻어내기 위해서 침략 전쟁에 팔아치운 용병단에 불과했다는 부분은 빠져 있다. 〈알 포인트〉를 온전한 반전 영화라고 부르기가 어려운 이유다.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공포물’이라는 설정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쉽게도 ‘손에 피 묻힌 자, 돌아가지 못한다’는 비석이나 ‘한 명 더 있다’는 오래된 괴담부터 시작해서 모두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준다.
제작사측이 강요한 듯한 억지스런 공포감도 문제다. 군인들을 해친 것이 ‘귀신’이라기보다는 죄책감과 공포감으로 인해 스스로 미쳐가고 서로 죽이는 모습들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후반부의 귀신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이런저런 악재들은 있지만, 올 여름 극장가에 블록버스터와 액션 등의 상업영화가 주류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래도 〈알 포인트〉는 나름대로 봐줄 만한 영화다. 소재도 참신했고, 배우들의 연기나 극중 구성도 무난한 편이며 전쟁에 반대하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다만 영화는 “손에 피 묻힌 자 돌아오지 못한다” 라고 하지만, 사실은 ‘손에 피 묻히도록 만든 자들, 당신들이 가서 돌아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최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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