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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기고] 온전한 강사교원 지위 회복과 교육공공성

강사 문제, 동정론을 넘어서!

전국 7만 명에 달하는 대학강사는 정교수-부교수-조교수-비정년트랙-시간강사로 이어지는 위계적인 교수사회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있는 존재이다. 1천만 원도 안 되는 연봉을 받는 매우 열악한 처지이다. 강사들 앞에 비단 경제적인 문제만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1977년 유신에 저항하는 강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군사정권이 강사의 ‘교원 지위’를 박탈한 이래로 강사들은 연구실조차 없고 수업 환경 개선에 대해 스스로 목소리도 내지 못한다. 강사는 계약직이기 때문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 얼마나 오래 일했건 간에 계약해지라는 명목으로 해고를 당할 수 있다. 이처럼 강사로서 일하면서 기본적인 생존권은 물론이고 교원으로서의 최소한의 긍지를 갖고 일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고려대 김영곤, 성균관대 류승완 강사뿐만 아니라, 특례입학생에 유리한 시험지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당한 이화여대 남봉순 강사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대중의 공분을 산 바 있다. ‘오늘의 유머’라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비슷한 현실을 다룬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이다’라는 게시물이 올라오면서 많은 공감을 얻은 바 있다. 이처럼 대학 내의 봉건적 예속 관계에 놓여 있는 강사는 물론이고 ‘예비 시간강사’인 대학원생의 처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커지고 있지만 강사 문제에 대한 마땅한 해결책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선량한’ 교육관료와 정치인 그리고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교수들은 강사 문제에 대한 공감을 일단 표하고서, 너무 까다롭고 미묘한 문제라고 덧붙이길 잊지 않는다. 대교협도 강사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한다. 그들의 말대로 ‘동정론’을 넘어선 강사 문제에 대한 명확한 대안은 없는 것일까?

온전한 교육공공성과 반쪽짜리 교육공공성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사회주의적인 가치에 공감을 표하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교육 문제에 대한 가장 올바르고 진보적이며 ‘가능한’ 대안은 ‘사회주의적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사립대학이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고 그 대부분이 독점자본과 공모하고 있는 한국 실정에서 대학 운영의 공공성을 높이고 사회적 통제를 강화해서 교육 전반을 정부·지방정부·시민사회가 책임지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교육공공성이란 등록금을 내리고 일부 교육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넘어서, 대학 구성원들이 대학 운영과 교육과정의 ‘주인’이 됨으로써 비로소 실현된다.

한국의 대학법인은 분노한 학부생 앞에서 등록금을 약간 내리면서, 뒷구멍에서는 강사와 노동자를 해고하고 대학원 등록금을 인상하곤 한다. 이는 대학에 대한 공적 통제가 없는 반쪽자리 교육공공성이다. 교육공공성 강화를 말하면서 엉뚱하게 대학에 세금을 더 주자는 방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진보적인 대안이라 해도 이러한 반쪽짜리 대안은 우파와 기득권의 꼼수에 의해 이용당하고, 현실에 좌절한 대중의 냉소에 부쳐질 수밖에 없다. 이는 실제로 반값등록금 운동의 퇴조로 드러났다.

사회주의적 교육 대안에서 중요한 연결 고리는 대학교육의 절반을 담당한 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이다. 나아가 그것은 대학 문제의 ‘전체 사슬을 움켜잡을 수 있는’ 핵심적인 연결 고리이다. 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이란 고등교육법에 명시된 호봉제 등의 경제적 처우는 물론이고 학사참정권, 수업 커리큘럼에 관한 결정권, 학문적 양심의 자유 등등 교육자로서의 권한과 의무를 강사에게도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류승완 박사처럼 일개 강사 따위가 삼성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하는 일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며, 김영곤 강사처럼 대형강의를 없애라는 요구를 했다는 이유로 잘리는 일이 없는 것을 의미하고, 나아가 남봉순 강사처럼 특례입학생을 둘러싼 대학내 비리에 더 이상 동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진보적인 연구자들이 자신의 독립적인 연구 기반을 획득하는 의의가 있다. 좌파들이 대중 강연에 저명한 외국 학자들을 초청하면서 정작 진보적인 연구자의 씨를 말려버리는 대학구조에 결코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강사법’에 대한 물타기와 협박에 동요하는 진보세력

이처럼 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은 ‘진정한’, 즉 ‘사회주의적인’ 교육공공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연결 고리임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대안에 대한 전망을 근원에서부터 잘라내기 위한 물타기가 지속되고 있다. 몇 가지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보편적인 교육권을 내세운 반값등록금 운동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차등적인 ‘국가장학금’ 제도를 내세운 박근혜 정부가 있다. 대학원생 인권에 대한 문제 제기가 경제적 문제로까지 급진화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선포하며 대학원생 문제를 ‘비양심적인 교수와 불쌍한 대학원생’ 사이의 갈등 구도로 만들어버린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가 있다. 이것은 내부 동요를 일으키기 위한 전형적인 극우들의 꼼수이고 스톨리핀식 개혁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강사 문제를 한낱 임금 문제로 환원해버리는 물타기는 물론이고 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이 강사의 대량해고를 야기할 것이라는 협박도 여기에 해당된다.

시행이 연기되고 있는 2011년 개정된 ‘강사법’에서는 시간강사의 명칭을 강사로 바꾸고 1년간의 계약 보장 등의 교원 지위를 일부나마 보장하도록 돼 있다. 문제는 일정 수업 일수를 채운 강사를 (대학평가에 반영되는) 교원확보율에 산정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강사법이 통과되면 대학이 일부 강사에 수업일수를 몰아주고 나머지를 대량해고 한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같은 우려를 부추기는 한 축이 바로 대학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도둑이 문단속을 못한 피해자를 털겠다고 협박하는 꼴이다. 이럴 때일수록 도둑에게 더욱 철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문제는 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안이 비현실적인 데 있는 게 아니다. 고등교육법 제14조 ①항에서는 강사를 교원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밑에 ‘제14조의2’라는 단서 조항을 달아 “사립학교법·사학연금법·교육공무원법을 적용할 때는 교원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여 상위조항의 교원 지위를 부정하고 있다. 이 모순적인 고등교육법의 한계 그리고 무엇보다 법정정규교수 비율을 1백 퍼센트 확충하는 대안을 처음부터 배제하는 한계가 문제이다. 단순한 셈으로만 접근하면 OECD 국가들의 평균 교수 당 학생 수는 15명인데 이 기준을 따르고 대형강의를 없애면 전국 300만 대학생 중에서 필요한 교수는 20만 명에 달한다. 학령인구 감소 추세에도 불구하고 전국 7만 명에 달하는 강사의 신분 보장이 되고도 남는 규모이다.

문제는 온전한 교육공공성에 대한 대안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강사들이 부패한 대학자본과 교육관료 카르텔의 악선전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대학자본의 카르텔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에서 강사들에게 돌린 한 설문조사에 빠져 있었던 것은 바로 법정정규교수 확충과 ‘온전한’ 교원 지위 회복에 대한 대안이었다. 설문조사 결과는 다수의 강사들이 강사법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올바른 대안에 기초하여 강사에게 끊임없이 진실을 알리고 설득해야 한다. ‘온전한’ 교원 지위 회복 없는 강사 처우 개선은 수사권과 기소권 없는 세월호 특별법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상층부 강사만의 이해를 반영하는 한교조

한편 대학 카르텔의 공세에 한국의 대표적인 강사조합인 한국비정규교수노조(이하 한교조)마저 상층부 간부들을 중심으로 동요하며 협박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강사법을 폐기하는 대신 시간강사와 초빙·겸임·연구교수 등 대학의 비정년트랙 강사 자리를 국고 보조를 통해 2년의 계약 기간과 생활임금을 보장하는 ‘연구강의교수’로 통합하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핵심은 명시적인 교원 지위를 포기할테니 임금과 계약 기간을 (심지어 대학도 아닌) 국가가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이미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는 그것이 “이상에서는 강사들을 비정규직 공무원으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에 불과하고, 현실에서는 일부 비정년 트랙 교수만의 특권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대학 사회의 현실을 잘 아는 대학원생의 입장에서 ‘연구강의교수제’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미 대학에는 2~3년 단위로 계약하고, 연구프로젝트 수주에 전념하는 ‘연구교수’가 있으며 또한 강의만을 전담하는 ‘강의전담교수’라는 비정년 트랙 교수들이 존재하고 있다. 삼성의 성균관대 비전2020에는 모든 교수 자리를 이렇게 만들겠다고 나와 있다. 이들은 시간강사에 비해 처우가 조금 나으며 학생 유치와 프로젝트 수주에서 발군의 성과를 거두면 정년 보장을 기대할 수 있다. 결국 대학자본의 이윤에 복무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한 고용 형태인 셈이다. 한편 시간강사들은 학부교양용으로 싸게 부리기 위한 고용 형태이며 이들은 하위 50퍼센트와 대학원생들을 포괄한다. 정년은커녕 교수회에서 수업 환경 개선에 대해 발언하는 것도 언감생심이다. 이처럼 한교조의 일부 간부들이 대안으로 내세우는 연구강의교수제는 (현실의 연구교수와 강의전담교수가 그러하듯) 자본에 대한 종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강사들의 학문적 자유와 대학 내의 발언권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현실의 역관계와 이윤 목적으로 분화된 교수자리를 고려할 때 ‘연구강의교수제’가 설사 수용되더라도 ‘2년 계약’과 ‘생활임금’은 비정년트랙 교수 일부의 특권으로 전락할 공산이 높다. 비정규직 악법이 2년 계약을 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점에서 비정규직 운동 전체의 퇴보이기도 하다. 대학자본(학교법인)이 내야 될 강사 인건비를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도 문제이다.

한교조가 내세우는 강사법 폐기와 연구강의교수제는 지금-여기 존재하는 강사들의 처지를 개선하기보다는 한교조 상층간부들의 이해관계만을 반영하고 있다. 일례로 임순광 전 한교조 위원장의 대학신문과의 인터뷰는 노조 상층부와 대다수 강사와 대학원생 사이의 인식의 괴리를 잘 보여준다. “강사법의 본질은 재임용 과정을 통해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던 전임강사 대신 1년 계약 강사로 교원을 대체하는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마치 대다수 강사들이 일정 기간만 거치면 재임용을 통해 전임강사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남봉순 이화여대 해고강사는 10년 넘는 동안 총 7천만 원의 임금을 받으며 시간강사로 일했지만 정년보장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처럼 현실에서는 십수년 동안 만년 시간강사로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다수이다.

왜 이런 인식상의 괴리가 생겨났을까? 뒤이은 발언에 주목해보자. 그는 “강사법은 정규교수가 될 사람을 비정규교수로 뽑는 개악안”이라 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핵심이다! 결국 일부 한교조 간부들에게 강사법이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교수자리 승진을 목전에 둔 일부 비정년트랙 상층부의 앞길을 가로막기 ‘때문에’ 나쁜 법이다. 강사와 대학원생의 근본적이고도 실질적인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보다는, 반쪽짜리 교원 지위를 온전한 교원 지위로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강사법이 자신들의 안정적인 교수 자리 확보에 미칠 당장의 부작용에만 관심을 둔 셈이다.

한교조는 대교협을 비판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강사의 다수가 강사의 교원 지위를 명목상 인정한 강사법에 반대하는 설문조사 결과를 앵무새처럼 답습하고 있다. 당연히 다수의 강사들은 반쪽짜리 강사법, 가짜 교원 지위에 반대한다. 오히려 강사와 대학원생들이 원하는 것은 교원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실질적인 교원 지위’와 ‘실질적인 학문의 자유’ 그리고 ‘신부격차 해소’이다. 한교조는 이 점을 얼버무리면서 강사법 반대라는 현상론만을 되풀이한다.

교육공공성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주체와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조직해야

심각한 건 비정규강사를 대변한다는 노동조합과 정치조직이 부당해고를 당한 강사들에 대한 연대에 소홀하다는 점이다. 여기서부터 한교조 상층부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게 된다. 강사법 개정의 계기가 된 것은 교수 자리를 미끼로 54편의 논문 대필을 한 사실을 폭로하며 자살한 고 서정민 강사였다. 유가족은 가해 교수 그리고 대학을 상대로 퇴직금 및 손해배상청구 그리고 근로기준법 위반 소송을 진행 중이다. 무관심 속의 지독하게 외로운 싸움이다. 또한 조합원인 경성대 민영현 교수도 부당해고를 당했지만 한교조는 ‘이래서 강사법이 문제’라는 화제로만 이용할 뿐 제대로 보호하지 않고 있다. 성균관대 류승완 강사에게는 3년째 그의 투쟁을 외면해오고 있다. 나 역시 고려대학교에서 김영곤 해고 강사의 외로운 투쟁과 미약하게나마 연대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역부족이라는 느낌이다.

나는 강사법을 만악의 근원으로 상정하는 이들에게 역으로 되묻고 싶다. 강사법을 폐기하고 반쪽짜리 교원 지위마저도 없애면 당신들이 외면하는 서정민 열사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는가? 강사법마저 없던 시절에는 강사에 대한 부당해고와 착취 그리고 논문 대필 관행이 없었는가?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강사법은 핑계에 불과하다. 강사에 대한 부당해고와 차별과 착취는 강사법 시행 이전에도 이윤 목적으로 이미 진행되어 왔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강사법 자체에 분노를 결집시키는 이런 작태를 보고 있노라면 모든 문제를 외부에 전가하며 주민들을 위협하던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의 한 장면이 생각날 지경이다. 이렇듯 앞뒤가 안 맞는 한교조의 이러한 태도는 시간강사와 대학원생 등 교육공공성의 사각지대에 있는 교육 주체들을 조직하고 결집하는 데 무관심한 데 연유한다.

진짜 문제는 지금-여기의 현실에 존재하는 시간강사들의 지위와 처우를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대학원생의 진정한 관심도 임금 인상뿐만 아니라 대학 내의 위계 질서와 신분 격차를 해소하고 학문연구의 자유를 보장받는 것이다. 이것은 강사의 실질적인 교원 지위 회복 없이는 달성될 수 없다. 무엇보다 대학자본을 포위할 학생, 노동자, 교원 3주체의 연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임순광씨의 경우 ‘맑시즘’과 같은 강연 자리에서 ‘말로만’ 신자유주의 비판과 교육공공성을 떠들 것이 아니라 교육공공성 실현이라는 비전을 위해 강사와 대학원생 등의 예비강사들을 조직하고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 최근 한교조 내부에서도 “연구강의교수제”에 대한 자성이 나오고 있다. 다행스런 일이다. 노동자연대도 사회주의 정치조직을 자임하는 세력으로서 강사 문제에 관한 일부의 조합이기주의에 마냥 무비판적이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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