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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은 단지 피부색에 따른 것이 아니다

경제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세계적으로 인종차별이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최근 영국 정부의 긴축 정책에 대한 반감 속에서 인종차별적 우익 정당인 영국독립당이 성장했다. 다음 글은 서구의 인종차별을 다루고 있지만 인종차별에 대한 일반적 분석을 포함하고 있어서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유익할 것이다. ─ 〈노동자 연대〉

다미안 치트코는 올해 초 런던에서 15명에게 습격당했다. 그는 〈가디언〉에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폴란드로 돌아가, 네 고국으로 돌아가’ 하며 저를 때렸습니다.”

영국에서는 폴란드인에 대한 증오범죄로 체포되는 이가 하루 2명에 달한다.

인종차별과 공격은 대부분 여전히 흑인과 무슬림을 대상으로 벌어진다. 그러나 불황이 시작된 뒤로 동유럽인에 대한 공격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올해 초 한 폴란드인 단체는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에게 공개 서한을 보냈다. 그들은 이렇게 썼다. “폴란드인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포퓰리스트 정치인들 때문에 영국과 폴란드 간의 좋았던 관계가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

“폴란드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없애는 데 힘써 달라.”

많은 사람들이 폴란드인들은 백인이고 대부분 그리스도인이므로 동유럽인에 대한 편견은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틀렸다. 인종차별은 단 한 번도 단순히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영국에서 아일랜드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광범하게 존재하지만, 아일랜드인은 대부분 백인이고 그리스도인이다. 나치의 홀러코스트(대학살)도 유대인 등 주로 백인을 학살한 사건이었다. 나치는 폴란드인을 비롯한 슬라브인도 자신의 지배를 받아야 할 열등한 인종으로 여겼다.

홀러코스트의 잔인함 때문에 생물학적 인종차별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 오늘날에는 1945년 이전에 그런 생각이 얼마나 만연했는지 알기 어려울 수 있다.

서열

언제나 인종차별 관념은 피부색에 대한 편견 이상의 것을 의미했다.

18세기 신흥 자본가들은 아프리카인을 잔혹하게 노예로 예속시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종을 분류했다. 당시 그들은 계몽주의와 평등에 대해서 한창 이야기하면서도 그랬다.

어떤 이는 세계 인류를 과학적으로 분류하려는 것이 계몽주의 운동의 일환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종 분류는 서열을 매겨 분열을 조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스웨덴 식물학자 칼 린네는 현대의 생물학적 인종 분류를 확립했다. 1734년 그는 인간을 네 인종으로 분류했다.

그가 내린 정의 중 두 가지 예시를 보면 객관적인 묘사와 주관적인 판단이 결합된 해악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아시아인: 누런 피부색, 음울하다, 완고하다; 검은색 머리카락; 짙은색 눈동자; 엄격하다, 거만하다, 탐욕스럽다; 헐렁한 의복을 입는다; 의견에 따른 질서 유지.

“유럽인: 흰색 피부, 낙관적이다, 근육질; 긴 머리카락, 유창하다; 파란 눈; 점잖다, 예리하다, 독창적이다; 꼭 맞는 의복을 입는다; 법에 따른 질서 유지.”

이것은 과학자들이 인간을 다양하게 분류하고 세분화하는 과정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19세기 후반 유럽의 식민 제국이 확장되면서 지배계급은 유럽인을 북유럽인, 지중해인, 알프스인의 하위 집단 세 개로 나누었다. 여기에도 서열이 있었고, 북유럽인이 최상층이었다.

우생학자 프랜시스 골턴은 1869년 영국에서 《천재성의 세습》이라는 영향력 있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통계학적으로” 인종 등급을 나누었고, 심지어 영국인들 사이에도 종족적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스코틀랜드 저지대와 잉글랜드 북부지역 주민들의 평균적인 수준은 잉글랜드 일반인들의 수준보다 높다.”

1862년 영국 왕립인류학협회장인 존 베도는 《영국의 인종들》이라는 책을 썼다. 거기서 그는 턱 모양으로 천재를 구별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그는 천재들이 “정악적”, 즉 턱이 안쪽으로 들어간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아일랜드와 웨일스 사람들의 턱은 큰 경향이 있다고도 주장했다.

당시만 해도 이런 견해는 전혀 황당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관념들은 지배계급의 지위를 정당화했고, 유럽인의 지배를 자연의 질서에 따른 것인 양 생각하도록 했다.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는 계급을 뛰어넘어 단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부추긴다. 이런 사상은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체라는 착각을 자아낸다. 신흥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고자 할 때 다른 계급들을 끌어들이려고 이런 착각을 조장했다.

계급

노동자 계급이 이런 관념을 받아들이면 분열되고 약해지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이런 관념을 매우 존중했다.

이는 단순히 노동자 계급을 속이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자본가들은 실제로 그들 자신이 다른 인종보다 뛰어나고 남들을 지배할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관념 탓에 많은 노동자들은 국민국가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처럼 여기게 됐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자본가들의 부를 늘려 주기 위해 착취당한다.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는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서 변화했다.

2010년 미국 이주민 차별 반대 집회 ⓒJacob Anikulapo (플리커)

미국은 유럽에서 온 많은 이주민들 덕분에 성장했다. 미국 지배자들은 이주민들이 자기 자신을 흑인 노예나 미국 원주민들과는 다른 존재로 생각하도록 부추겼다.

그러나 20세기 초가 되자 미국 지배자들은 백인 이주민들의 불만이 커지는 것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백인 이주민 중에서도 일부 집단이 다른 백인들보다 더 골칫거리라고 여기게 됐다.

1922년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기자 케네스 로버츠는 《왜 유럽인들은 고향을 떠나는가》라는 책을 썼는데 이민에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북유럽인들이 미국을 세우고 발전시켰다. 만약 알프스인, 지중해인, 유대인 수백만 명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온다면 틀림없이 중앙 아메리카인과 동남부 유럽인 같은 쓸모없는 잡종만 미국에 가득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자리 잡은 노동자와 이주민을 이간질하는 시도는 오늘날 영국에서 대중 매체가 무슬림과 동유럽인들에게 퍼붓는 온갖 모욕과 비슷하다.

인종의 차이는 국적·민족의 차이와는 구분되지만 둘 사이에는 얼마든지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

현재 영국인들이 독일인에게 보이는 적대감은 외국인 싫어하기로 볼 수 있지만 인종차별은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 힘의 관계가 바뀌면 독일인이 박해받는 소수가 되는 상황도 도래할 수 있다.

그래서 20년 전 영국에는 폴란드인들에 대한 체계적인 차별이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이런 이데올로기가 위험한 가장 큰 이유 하나는 같은 이해관계를 갖는 사람들이 서로 적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뛰어난 반(反)인종차별주의자 W E B 두 보이스는 노동자들이 갖는 잘못된 인종차별적 특권의식을 ‘심리적 임금’이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심리적 임금’은 백인 노동자들에게 물질적 이익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심리적 임금’으로 인해 그들은 실제의 이익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 뿐이다.

두 보이스는 미국 남부의 흑인과 백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인종차별이 그들을 어떻게 갈라놓는지 연구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 오늘날 세계 어디서도 사실상 같은 이해관계를 가진 두 집단의 노동자들이 이토록 서로 깊이 증오하고 두려워하는 곳은 또 없을 것이다.”

경제 위기

과학을 동원한 인종차별은 홀러코스트의 잔인함 때문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인종차별은 되살아나서 유럽인들을 또다시 인종으로 나누고 인종 간의 서열을 세우고 있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의 전쟁은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간의 싸움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사실 그 전쟁의 대부분은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 사이에서 벌어졌다. [둘은 같은 그리스도인들이고,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 〈노동자 연대〉]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의 인종차별을 끄집어 내서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이 서로 다른 인종이라고 주장했다.

인종차별의 귀환은 경제 위기와 맞물린 것이었다. 유고슬라비아의 서로 다른 민족 집단들은 40년 넘도록 비교적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경제 위기가 찾아오면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조건을 지키기 위해서 파업했다. 유고슬라비아 연방 소속국 각각의 지배자들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 민족주의를 이용했다.

인종차별은 결코 단순히 개인들이 갖고 있는 편견 문제가 아니다. 인종차별 문제는 인종들 간에 원만한 관계를 맺게 하는 방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그런 식의 접근은 인종차별 문제의 근원이 여러 집단 사이의 편견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인종차별을 없애려면 인종차별과 속죄양 삼기(책임 전가)의 진정한 원인에 맞선 적극적 투쟁이 필요하다.

오늘날 영국에서 아프리카계 카리브해 지역 출신자들과 무슬림이 겪는 인종차별은 동유럽인들이 겪는 차별에 비해 훨씬 심각하다.

동유럽인과 로마인[‘집시’는 이들을 경멸조로 부르는 것이다 ─ 〈노동자 연대〉]에 대한 편견이 심해진다고 해서 다른 집단에 대한 차별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저 온갖 종류의 인종차별이 더 용인되는 분위기만 조성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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