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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마르크스주의:
의회를 통해 변화를 이룰 수 있을까?

왜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가? 분명히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새로운 사회의 원리에 따라 합법적·제도적으로 투표할 수 있는 사회주의자 의원들을 선출하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야말로 영국의 정치 전통에 더 부합하지 않을까? 그리 되면 많은 불필요한 폭력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첫째, “영국의 전통”은 혁명에 근거하고 있다. 국왕에 대한 의회의 우위를 확립한 것은 올리버 크롬웰과 그의 신형군(New Model Army)이 초래한 온갖 제도 변화였다. 다시 말해, 혁명적 강압에 의해서였다.

어떻게 노동자들이 처음에 투표권을 획득했는가? 폭력이 수반되곤 했던 격렬한 대중 시위를 통해서였다. 여성은 어떻게 투표권을 얻었는가? 여성 참정권론자들의 투쟁을 통해서였다.

민중의 권리와 민주주의를 확대시킨 사소한 조처들조차 모두 대중의 집단 행동으로 쟁취한 것이다.

둘째, 폭력 문제를 추상적으로 논의해서는 안 된다.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두드러진 사실은 노동운동이 매우 평화적이었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권력과 특권을 지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폭력적 수단에 의존했던 자들은 지배계급이었다.

물론, 경찰과 군대의 폭력 위협에 맞서 노동자들은 자기방어 수단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수단 ― 모든 진정한 혁명에서 필수적인 ―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벽돌이나 총탄이나 바리케이드가 아니다. 그것은 사병들이나 경찰과 벌이는 정치적 논쟁이다. 그들이 지배계급에 봉사하기를 그만두고 민중의 편으로 넘어오게 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주의로 가는 의회의 길”에는 치명적 약점이 많다. 일단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면 그들은 자신을 뽑아 준 대중의 통제로부터 급속히 벗어난다. 소환권도 없다.

의원들은 선거구민의 염원이 아니라 소속 정당의 지도자들에게 충성한다. 영국 유권자의 대다수가 이라크 공격에 반대했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전쟁을 강행했다.

의회 선거 일정, 곧 4∼5년마다 한 번씩 치르는 선거는 사회적·정치적 투쟁의 진정한 속도와 맞지 않다. 정부는 인기가 형편없이 떨어져도 계속 집권할 수 있다.

의회는 국가를 통제하지도 못한다. 고위 공직자, 경찰 간부, 군 장교, 판사 등은 선출되지 않고 임명된다. 흔히 그들은 그들만의 반(反)민주적 의제를 추진한다. 심지어 자신들에게 제기되는 불만을 처리하는 과정을 통제하기까지 한다.

우리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결정들은 대부분 국가의 외부에서, 즉 자본주의 기업들의 이사회에서 내려진다. 거기서는 우리는 말할 것도 없고 국회의원도 발언권이 없다.

의회는 법률 일반을 다루지만, 정부의 진정한 활동은 대기업들과의 계약, 무기 판매, 병원·학교 사유화 계획, 난민 추방 등 특정 업무들을 처리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민중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쟁점들이다. 그러나 그 쟁점들은 우리가 “선거로 뽑은 가짜 대표들”, 곧 국회의원들의 권한과 능력 밖에 존재한다.

독일의 위대한 사회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가 1백 년 전에 말했듯이, 사회주의로 가는 의회의 길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목표, 즉 자본주의를 약간만 변형한 형태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주의로 가는 “의회의 길” 따위는 없다고 생각한다면 의회를 활용하는 것에 결단코 반대한다는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버너데트 데블린(Bernadette Devlin)이 북아일랜드에서 국회의원으로 선출됐을 때 그녀는 사회주의자 국회의원으로 행동했다. 그녀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전국을 돌며 노동자들에게 보수당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이라고 호소했다.

1972년 데리에서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 하원의장은 그녀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으려 했다. 그녀는 하원 회의장을 가로질러 가서 당시 내무부 장관이던 레지널드 모들링(Reginald Maudling)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TV 인터뷰에 등장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의원 자격을 이용해서 북아일랜드 가톨릭과 영국의 북아일랜드 지배에 반대하는 사람들 모두의 분노를 대변했다.

제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국회의원이던 혁명적 사회주의자 칼 립크네히트는 자신의 임무가 “창문을 통해 발언하는 것”, 즉 의회 연단을 통해 반전 선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회는 똥더미이다. 그러나 그 똥더미 위에 서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다. 국회의원(또는 지방의회 의원)으로 선출되는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적 선동에 유용한 메가폰을 얻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의회가 똥더미라는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민중 혁명의 실제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는 반동 세력이 “의회의 길”을 소리 높여 외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민중 운동을 저지하고자 하는 사람은 의회를 지지할 것이다. 그리 되면 “의회주의”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사이에서 진짜 투쟁이 벌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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