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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사회적 합의의 쓴 경험에서 배운다

아일랜드의 사회적 합의 모델이 경제 위기 극복과 노동조합 활성화를 위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아일랜드에서는 경제 위기 시기인 1987년에 시작해 2006년까지 3년에 한 번씩 모두 7차례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그 와중인 1995~2000년 아일랜드는 연평균 9.4퍼센트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켈트 호랑이’라고 불렸다. 그 뒤로는 성장률이 다소 떨어졌지만, 그래도 2000~2008년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5.9퍼센트를 기록했다. 물론 2000년대 후반 극심한 위기를 겪으며 2010년 유럽연합·유럽중앙은행·IMF한테서 구제금융을 받게 되지만 말이다.

2006년 6월 14일 제 7차 사회연대협약을 맺은 아일랜드 노사정 대표들.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도 정부·사용자·시민단체 등과 함께하는 논의기구에 참여함으로써 정치적 발언권을 얻을 수 있고 신자유주의의 폐단을 다소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고들 한다. 아일랜드노총(ICTU)은 사회적 합의 덕분에 노사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했다고 주장한다. “노동조합과 사측 모두에게 가장 큰 성과는 서로 머리를 맞대며 상대방의 고민을 분명하게 이해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일랜드 안에서도 사회적 합의에 대한 비판이 만만치 않다. 사회적 합의 기구 내 소통은 사실상 일방통행이어서 노동조합이 사용자들의 요구를 떠안기만 한다는 것이다. 이는 몇 가지 통계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선 국민소득 중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이 크게 하락했다. 유럽연합의 다른 나라들도 노동소득분배율이 악화했지만 아일랜드는 더 급격히 악화했다. 게다가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은 경제성장으로 고용이 급격히 늘어나던 시기에 일어났다.(표1)

표1. 노동소득분배율의 변화
유럽 15개국 아일랜드
1960 ~ 70년 - 77.9
1971 ~ 80년 74.5 75.9
1980 ~ 90년 71.8 71.2
1991 ~ 2000년 68.7 62.3
2001 ~ 07년 67.3 54.0

사회적 합의의 핵심은 노동조합이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대가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한다는 정치적 거래였다. 그러나 아일랜드의 사회보장 지출 수준은 유럽에서 최저 수준이다. 그나마도 계속 삭감되고 있다. 연금 지출도 최저 수준이다. 아일랜드 노동자들은 연금을 다른 유럽 노동자들보다 더 늦게 받기 시작한다(유럽 평균 61세, 아일랜드 64.4세).

사회적 합의와 노동조합

노동조합에 끼치는 영향이라는 좀 더 좁은 측면에서 보더라도 사회적 합의는 노동조합에 결코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기간에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급감했다. 총고용이 60만 명 이상 늘어나는 와중에 말이다.(표2)

표2. 노동조합 조직률 추이
연도 조합원 수(명) 조직률(%)
1975 449,520 60
1985 485,050 61
1995 504,450 53
2004 554,300 36
2007 551,700 32

게다가 청년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노조 조직률이 더 낮다. 20~24세 노동자들의 조직률이 15퍼센트밖에 안 되고, 25~35세 노동자들의 조직률은 26퍼센트밖에 안 된다. 또 이주노동자가 많이 늘어 아일랜드 전체 노동인구의 16퍼센트를 차지하는데 이주노동자 조직률은 14퍼센트밖에 안 된다. 저조한 이주노동자 조직률은 이주노동자의 비중이 높은 호텔업이나 요식업에서 노동조합이 쇠퇴하는 주요한 요인이 됐다.

또, 2001년에는 노동조합 결성 권리를 더 제약하는 내용으로 노사관계법이 개정됐다.

이미 1990년대 말이 되면 일부 노조에서 전략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1997년 서비스노조 위원장 선거에서 무명의 여성 노동자가 출마해 42퍼센트를 득표했다. 당선하지는 못했지만 조합원들의 불만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 주기에는 충분했다. 이 선거 결과 데스 게라티와 잭 오커너를 중심으로 한 온건 좌파 성향이 새 집행부를 구성했다. 게라티와 오커너 둘 다 신자유주의와 아일랜드 사회의 불평등을 규탄했지만 동시에 사회적 합의 자체는 옹호했다.

서비스 제공 모델 VS 조직자 모델

아일랜드 서비스노조에 새 지도부가 등장하던 때 국제적 수준에서는 노동조합운동 모델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서비스 제공 모델 대 조직자 모델’ 논쟁이었다. 서비스 제공 모델은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고충을 법률적으로 처리해 주는 노무사 같은 구실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직자 모델은 노동조합이 신규 조합원을 조직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비스노조의 새 지도부는 조직자 모델을 채택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사회적 합의와 ‘기업별 노동조합운동’전통 때문에 아일랜드에서는 서비스 제공 모델이 특히나 더 안 좋은 형태로 정착돼 왔다. 사회적 합의는 개별 노조가 전국적 임금협상 타결 이상으로 임금 인상을 따내는 것을 금지했다. 사측이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구조 개편’을 할 경우에 노동조합은 반대할 수 없다.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대가로 생산성 증대 조처들에도 합의해야 했다.

이런 맥락에서 노동조합의 구실은 주로 조합원 고충 처리에 맞춰졌다. 대의원들은 개별 조합원들의 민원을 접수해 상근 교섭위원들한테 전달하고, 상근 교섭위원들은 그 민원을 노동법원 같은 데로 가져가는 식이다. 이런 서비스 제공 모델은 조합원들의 참여도를 크게 떨어뜨렸다.

둘째, 아일랜드판 경총인 아이벡이 점점 사회적 합의를 내던지려는 모습을 보였다. 아일랜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호주 사례를 보며 걱정하게 됐다.

“아일랜드 노총 : 우리는 형편없는 협상이 아니라 실질적 행동을 원한다” 2009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열린 긴축 반대 시위 참가자가 팻말을 들고 있다. ⓒWilliam Murphy (플리커)

호주에서는 1983년부터 1996년까지 호주노총이 노동당 정부와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이 사회적 합의 시기에 노동조합이 경제 정책이나 사회 정책에서 발언권을 꽤나 얻은 듯했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가 조장한 수동성 때문에 조합원들의 참여가 계속 줄고 조합원 수도 1년에 2퍼센트 이상씩 계속 줄었다. 그러다가 1996년 보수당의 존 하워드가 집권했다. 우파의 승리에 자신감을 얻은 사용자들은 “노동조합 대체” 전략을 채택하기 시작해 노동조합 죽이기에 나섰다.

아일랜드에서도 ‘켈트 호랑이’ 호황이 끝나가자 아이벡이 점점 강경해지면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서비스노조의 잭 오커너 집행부가 기존의 서비스 제공 모델이 아니라 조직자 모델을 채택하기에 이른 것이다.

미국의 서비스노동조합국제연맹 SEIU가 조직자 모델의 선구자다. SEIU는 1989년 시설관리 노동자들을 위한 운동을 벌이며 명성을 쌓았다. SEIU는 처음에는 미국노총 AFL-CIO 내에서 활동하다 2005년에 탈퇴했다.

SEIU는 조직 역량의 상당 부분을 신규 조합원 조직에 할애했다. 조합비의 30퍼센트를 할애해 학생 출신 활동가들을 채용해서 전문적인 조직팀을 꾸렸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을 가입시키는 데도 역점을 둬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SEIU 모델에도 부정적인 측면이 있었는데, 결국에는 사용자들과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생겨난 문제였다.

예를 들어, 2003년 SEIU가 캘리포니아의 민간 요양병원 체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조직했다. 그 과정에서 SEIU는 사측과 협약을 하나 체결했다. 이 협약에는 ‘노조가 사용자들을 위해서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하겠다, 인력 충원을 요구하는 환자단체들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겠다, 조합원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정부기관에 신고하지 않겠다, 사용자들의 배타적인 경영권을 인정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있었다. 그 대가로 SEUI는 노동자들을 접촉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투쟁만이 사회적 합의가 부과하는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

아무튼 아일랜드 서비스노조는 노조 조직률 하락에 대처하는 해결책으로 SEIU의 조직자 모델을 채택해 신규 조합원 가입 면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노조 지도자들이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합의를 강화하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어 이 성과가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기층의 조직들이 탄탄해져서 사용자들에게 도전하고 협상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어야 노동조합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데로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사회적 합의가 부과하는 제약을 극복해야 한다.

우선 사회적 합의는 법률적으로 걸림돌 구실을 한다. 사회적 합의하에서 1990년 제정되고 2001년 개정된 노사관계법은 합법 파업의 요건을 매우 까다롭게 규정해 파업을 벌이기 힘들게 했다. 사회적 합의를 유지하면서는 이런 법률적 제약을 넘어서기가 힘들 것이다.

사회적 합의는 외국계 기업의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서도 방해 요인으로 작용했다. 우선 사회적 합의의 내용은 결국 노사가 잘 협력해서 아일랜드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므로, 해외자본을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에 아주 취약하다.

그러나 아일랜드의 외국계 기업에서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아졌던 때는 커다란 파업이 일어났을 때였다. 1968년 제너럴일렉트릭 계열 공장에서 노동자 3백80명이 파업을 벌였고 그 뒤에 사측이 공격을 하면서 엄청나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서비스노조의 전신인 운수일반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전국적 연대파업을 벌이겠다고 했다. 이에 놀란 정부가 사측에게 노동조합을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이 투쟁을 계기로 아일랜드 정부는 외국계 기업이 보조금 같은 것을 신청할 때 해당 작업장의 노동조합 인정을 조건으로 걸었다. 이것을 뒤집는 데 15년 이상이 걸렸다.

사회적 합의와 노동조합 민주주의

사회적 합의는 노동조합 기층 활동가 기반을 강화하는 데서도 장애물이 된다. 사실 조직자 모델이 성공하려면 기층 활동가 기반이 탄탄해야 한다. 상층 조직자들이 신규 부문 조직에 전념하려면, 기층의 활동가들이 조합원들의 고충 처리 등의 일을 잘 보완해서 기존 조합원의 탈퇴를 방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사회적 합의하에서 노동조합들이 전문화되고 그래서 기층 활동가보다 상근자들의 수와 영향력이 훨씬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더해서 사용자·정부와 합의를 이뤄야 한다는 압력 때문에 노동조합의 핵심적인 의사결정 문제에 대해 현장 조합원들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즉, 노동조합 민주주의가 제약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비스노조에서 집행부 선거는 대의원 간선제로 바뀌었다.

사회적 합의의 문제점 요약

지금까지 논의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사회적 합의는 본질상 계급 간 협력을 부추기고 노동조합이 사측에 휘둘리게 만든다. 둘째, 사회적 합의는 정부와 사용자 그리고 노동조합 상층의 복잡한 논의와 합의의 중요성을 격상시켜, 조합원들의 수동성을 부추기고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

셋째, 사회적 합의는 노동조합들을 약화시키고 노동자 전체의 처지를 악화시킨다. 넷째, 그래서 사회적 합의가아니라 기층 조합원들의 활동과 투쟁을 고무해야 한다.

이 글은 전문통역가 천경록이 Kieran Allen, ‘Social Partnership and Union Revitalisation: The Irish Case’, The Future of Union Organising, algrave Macmillan, 2009를 한 워크숍에서 요약ㆍ발표한 것을 바탕으로 썼다.

녹취 주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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