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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모임의 “새로운 정치세력 건설” 제안에 대해

지난해 12월 진보적 지식인들이 주축이 돼 국민모임(정식 명칭은 ‘국민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국민모임’)을 결성했다.

아직 구체적 창당 계획이 발표되지 않았는데도 국민모임에 참여 의사를 밝힌 노동계 인사들이 적잖다고 한다. 노동·정치·연대 내에서도 국민모임과 함께 창당하자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노동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나경채 후보도 국민모임과 함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국민모임이 제안하는 신당이 전투적 선진 노동자들에게 최선의 정치적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사진 출처 〈참세상〉

박근혜 정부에 대한 대중적 분노만큼이나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냉소가 강한 반면, 진보 정당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그 대안이 못 되고 있는 현실과 관계있는 듯하다.

국민모임은 강한 어조로 새정치연합을 비판한다. 김세균 국민모임 공동대표는 새정치연합이 “야당이라기보다는 제2여당” 구실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프레시안〉 2015년 1월 21일 자). 국민모임이 주최하는 전국 순회 국민대토론회 제목도 “야권 교체 없이 정권 교체 없다”이다.

그런데 “분산되고 분열된 진보 정당”은 새정치연합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므로(‘국민모임의 105인 선언문’ 중), 국민모임은 “새로운 진보적 대중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새로운 진보 정당의 성격

국민모임이 추진하는 신당의 성격, 특히 기반과 강령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요 국민모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대체로 영국 노동당 같은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모델로 삼는 듯하다. 김세균 공동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국에선 과거 보수당-자유당 양당 체제였다가 노동당이 생겨났고, 그 노동당이 자유당을 대체해 보수당-노동당 양당 체제 속에서 집권도 했다. 우리 또한 진보적 신당이 올라와 새정치연합을 대체하는 영국 모델[노동당]로 갔으면 한다.”(〈프레시안〉 2015년 1월 21일 자)

2000년대에 줄곧 민주노동당을 사회민주주의적이라고 비판했던 김세균 교수가 “영국 모델”을 말하는 것에 놀랄 사람들도 있겠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니다. 이미 2010년 김 교수는 PD 좌파가 국민승리21에서 분리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좌파가 계속 남아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민주노동당 운동에 참여해야 했다고 생각한다.”(〈레디앙〉 2010년 7월 3일 자) 이것은 정치연대 → 노동자의힘 →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준비모임(사노준) →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 →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로까지 이어지는 PD 좌파 부활의 기원을 부정하는 발언이었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도 김 교수와 비슷한 전망을 제시했다. “영국에 노조를 기반한 노동당이 출연하면서 자유당의 힘이 약해져 제1야당이 노동당으로 바뀌었다.”(〈폴리뉴스〉, 2015년 1월 20일 자)

물론 국민모임이 서구식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단순 재연하려는 것은 아니다. 서구식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핵심 기반으로 삼는 데 반해, 국민모임은 노동조합 지도자들뿐 아니라 진보적 지식인들과 심지어 일부 부르주아 포퓰리스트 정치인들까지 기반으로 삼고자 한다.(부르주아 포퓰리스트 정치인은 과거 민주노동당에는 없었던 기반이다.)

정종권 〈레디앙〉 편집장은 새로운 진보 정당의 기반을 이렇게 특정했다. “새정치연합을 이탈한 진보세력들, 국민모임 등의 재야와 사회운동의 진보인사들, 노동 중심의 진보 정당을 추진하고 있는 노동·정치·연대 그리고 사민주의 지향의 정의당, 보다 좌파적인 노동당이 하나의 큰 울타리를 짓고 연합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레디앙〉 2015년 1월 15일 자)

이를 통해 새정치연합 바깥에서 신흥국형 또는 한국형 개혁주의 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진보 정당이 끌어들이고자 하는 기반들을 보면 대략 그 정당의 성격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김세균 공동대표는 부르주아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N 분의 1로 참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의 정치적 상징성이 만만치 않아 그의 바람대로 될 것 같지는 않다.

민주노총은 다양한 정치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단일한 지지 정당 방침(“정치 방침”)을 채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그런 시도가 노동조합을 분열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래서 국민모임은 노동·정치·연대에 구애를 보내고 있다.

정의당은 서구식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선호한다. 천호선 대표는 정의당이 “과거 운동권 이념을 완전히 털어버린 정당”이라고 강조한다. 노회찬 전 의원도 “탈운동권 진보”를 주장한다. “정치와 정당은 선거에 나가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다.(《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비아북, 182∼185쪽)

반면, 노동당은 진보 재편을 놓고 그 내부가 심각하게 분열해 있다. 그래서 하나의 당으로 진보 재편 과정에 참여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이렇듯 국민모임이 구상하는 신당은 전망이 아직 유동적이고, 잠재적인 정치적 스펙트럼도 넓다. 실제로 ‘국민모임의 105인 선언문’은 “뜻있는 모든 정치인”에게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당적, 계파와 소속을 넘어 연대하고 단결”해 “새로운 정치 세력”을 건설하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이 정당은 좌파 개혁주의 정당(가령, 2000년대 민주노동당 같은)에는 못 미치는 중도 주류 개혁주의 정당이 될 공산이 크다.

공식 정치를 군부 독재 정권의 잔당들과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즉, 노골적으로 친자본주의적인) 정당이 지배해 온 한국 정치 현실을 감안하면, 이런 정치 프로젝트에도 얼마간 진보성이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 또, 새정치연합이 대중적 불신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당 왼쪽에서 진보 정치 세력이 성장할 공간이 형성될 수 있다.

올바른 전술

그러나 한국의 노동자 계급이 이런 종류의 정당을 처음 경험하는 것도 아니다. 먼저 일국적 수준에서 봐도, 국민승리21이 발족한 1997년 이래 거의 18년 동안 경험했다. 민주노동당은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으로 출발했지만, 당 역사의 후반부로 갈수록 좌파성이 약해지고 점점 더 개혁주의적인 본질을 드러냈다.

그다음 세계적 수준에서도, 적어도 선진 자본주의 세계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잇달아 집권하기 시작한 1997년 이래로 지난 18년 사이에 배신을 거듭했다. 바로 이 때문에, 유럽의 광장 점거 운동에서 나타났듯이, 급진화한 서구 청년들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에 커다란 반감을 나타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대한 노동자들의 충성도도 역사상 최저 수준이다. 그래서 그리스 같은 곳에서는 좌파 개혁주의 정당인 시리자가 집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렇듯 1990년대 후반 이후의 바뀐 국제적·국내적 정세를 보면, 국민모임이 주도할 신당의 진보성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금세 큰 실망을 낳을 것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한국의 전투적인 선진 노동자들에게 국민모임이 제안하는 신당이 최선의 정치적 대안이기에는 너무도 미흡하다. 이들은 더 나은(더 투쟁적이고 더 좌파적인) 대안을 바랄 자격과 필요가 있다.

특히, 세계경제는 1930년대 대불황 이래 가장 심각하고 오래 지속되는 위기를 겪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노동자 계급에 그 책임을 떠넘기려고 전방위적으로 신자유주의 공세 — 공무원연금 개악, 노동시장 구조 개악, 비정규직 확대 등등 — 를 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르주아 포퓰리스트 정치인들과 정의당까지 참여하는 신당이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에 진지하게 반대할지 의문이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지금으로선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에 더 신경 써야 한다. 민주노총 선거에서 좌파 지도부가 당선한 것은 노동자 계급이 좌경화하기 시작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지표다.

즉, 우리는 계급투쟁의 침체 국면이 아니라 노동자 투쟁이 큰 규모로 분출할 가능성이 작지 않은 시기에 살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를 저지할 수 있는 기본적인 동력도 먼저 계급투쟁에서 찾아야 한다. 노동자 연대를 가로막는 각종 분열 이데올로기와 다계급적 민중주의 정치를 반대하고 반자본주의적·반제국주의적 대안을 발전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물론 국민모임이 건설하고자 하는 새로운 진보 정당에 초좌파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을 것이다. 선거에서 더 좌파적인 대중 정당이 부재한 가운데 신당이 새누리당이나 새정치연합 등 부르주아 정당과 맞붙는다면 신당에 (비판적) 투표를 해야 한다.

또한, 특정 쟁점을 놓고 신당의 좌파 계열과 공동전선을 구축할 줄도 알아야 한다. 정의당 지도부가 “탈운동권 진보”를 주장하며 정당과 운동을 예리하게 분리시키고 있지만, 이에 동의하지 않을 세력도 그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과 공동전선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선진 노동자들이 투표를 넘어 신당에 참여하는 수준으로까지 지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선진 노동자들은 대중 투쟁을 바탕으로 신당보다는 더 좌파적이고 투쟁적인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