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좌파들 ─ 시리자, 공산당, SEK, 안타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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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 활동가 소티리스 콘토야니스가 2012년 7월 방한해 노동자연대 회원들의 모임에서 한 연설을 녹취한 것이다. 2년이 지난 것이지만 시리자, 공산당, 안타르시아 등 그리스 좌파들의 주장·실천·역사, 그리고 좌파들 사이의 논쟁을 다루고 있어 현재 그리스의 상황과 운동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
2012년 6월 17일에 치러진 2차 총선 결과에 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혁명적 반자본주의 좌파 연합 안타르시아는 득표율 0.33퍼센트로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뒀습니다. 안타르시아의 저조한 성적은 이미 선거 전부터 국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던 논쟁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안타르시아가 2차 총선에 나가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시리자를 지지하거나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시리자에 투표하는 것을 방해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 하는 논쟁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광범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협소한 것입니다. 협소한 주장은 이런 식입니다. 2차 총선에서는 표가 시리자로 몰리고 다른 좌파들의 득표는 줄어들 테니, 그럴 바에 차라리 출마하지 말고 1차 총선에서 얻은 7만 5천 표(1.2퍼센트)를 지키자. 광범한 주장은 이런 식입니다. 그리스 운동에 필요한 것은 좌파들의 단결이다. 그러니 안타르시아는 출마하지 말고 시리자에 투표하자고 대중에게 호소해야 한다. 타리크 알리 같은 저명한 좌파 인물들도 이렇게 주장했고, 심지어 안타르시아에 속한 ‘좌파 재구성’이라는 단체의 일부 회원들도 “안타르시아의 출마에 반대하고 시리자에 투표하자”는 공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사실 이 논쟁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논쟁의 연장선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안타르시아 창립 자체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즉, 그리스에 필요한 것은 좌파의 단결인데, 공산당이야 종파적이어서 누구와도 협력하지 않지만 그 밖의 다른 좌파는 시리자와 함께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범좌파 정당 모델을 모두 따라야 하는가 ─ 나라마다 조건은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안타르시아에 속해 있는]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 SEK가 국제사회주의경향 IST의 입장을 따르지 않는다는 식으로 비판합니다. 독일의 IST 조직인 ‘마르크스21’ — 이 동지들의 옛 명칭은 링크스룩(좌선회)이었습니다 — 은 좌파당(디링케)에 들어가 있고,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SWP는 리스펙트를 결성했었는데, 좌파당과 리스펙트는 안타르시아 같은 혁명적 반자본주의 좌파라기보다는 시리자 같은 범좌파 정당에 가깝다. 그런데 왜 SEK는 별나게 구는 것이냐?
SEK는 이런 주장에 반대해 논쟁했고, 저는 그렇게 한 것이 완전히 옳았다고 봅니다. 반박 주장의 요지는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치는 여전히 국민국가 단위로 이뤄집니다. 나라마다 정부, 법, 운동, 좌파의 상태가 다 다릅니다. 그리스와 독일은 운동 상황이 다르고, 좌파의 상태는 훨씬 더 다릅니다.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좌파들을 완전히 파괴한 1933년 뒤로는 사회민주당보다 더 왼쪽에 있는 대안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 좌파당이 창당했습니다. 좌파당이 단지 옛 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것만은 아닙니다. 독일 운동의 발전을 반영하는 존재였습니다. 좌파당은 끔찍했던 슈뢰더 집권기를 거치고 독일 사민당이 분열하면서 탄생한 정당입니다. 사민당에서 이탈해 나온 주축은 일부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오스카 라폰텐이었습니다. 라폰텐은 재무장관을 지낸 사민당의 지도적 당원이었습니다. 그는 사민당에서 떨어져나와 선거대안(WASG)이라는 정당을 창당했습니다. 여기에 옛 동독 공산당 출신자들이 결합해 좌파당이 창당됩니다.
시리자의 역사는 이와 매우 다릅니다. 2008년 그리스에서는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경찰이 한 고등학생을 살해했는데, 이에 항의해 청년들이 한 달 넘게 거리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당시 원내정당으로는 유일하게 시리자가 이 반란을 지지했습니다. 이 얘기를 드리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시리자보다 공산당이 더 좌파적이라고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공산당은 이 반란이 프락치들의 선동으로 일어난 것이라며 비난했습니다. 물론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면 시리자는 다름아닌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입니다.
시리자는 어떤 단체인가?
시리자의 중추는 ‘좌파 연합’이라는 뜻의 시나스피스모스입니다. 1968년 그리스 공산당이 골수 스탈린주의 경향과 유러코뮤니즘 경향으로 분열하는데, 이때 유러코뮤니즘 파가 시나스피스모스로 이어집니다.
시리자가 좌파에 자리 잡고 있어도 개혁주의 정당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사례가 민주좌파당입니다. 민주좌파당은 현 연립정부에 속해 있는데, 반년 전에만 해도 시나스피스모스 소속이던 인물들이 만든 정당입니다. 즉, 현재 정부 안에 들어가 있는 정당과 시리자는 반년 전에만 해도 한 정당이었던 것입니다. 시나스피스모스와 민주좌파당은 이데올로기 면에서 공통점이 많습니다. 둘 다 유로존과 유럽연합을 지지합니다. 민주좌파당이 시나스피스모스에서 [오른쪽으로] 떨어져나갈 때 민주좌파당과 성향이 비슷한 많은 당내 우파 인사들이 함께 나가지 않고 시나스피스모스에 남았습니다. 이 우파 인사들이 현재 시리자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리자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1차 총선과 2차 총선 사이에 〈파이낸셜 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시리자만이 그리스에 안정과 성장과 사회적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리자 안에는 시나스피스모스 외에 몇몇 소규모 단체가 있습니다. 마오주의 단체, 트로츠키주의 단체, 2000년 SEK에서 분열해 나간 단체 등이 있습니다. 이 단체들은 시리자 안에서 별 구실을 하지 못해 왔습니다. 그들은 시나스피스모스에 견줘 너무 작습니다. 그리고 이 단체들이 시리자 지도부와 다른 주장을 하면 시리자 지도부가 나서서 입을 다물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몇몇 단체들이 자신들의 기관지에서 SEK와 안타르시아가 주장하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와 아래로부터의 디폴트를 지지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는데, 그때 시리자 지도부는 그들의 입을 막아 버렸습니다. 어떤 단체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부정하기까지 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비판적 목소리를 틀어막는 것은 스탈린주의의 악습입니다.
개혁주의 정당의 보수적 성향이 반자본주의 좌파가 그 당 바깥에서 별도의 선거 대응 기구를 건설해야 하는 이유로 충분치는 않습니다. SEK도 시리자의 이데올로기가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안타르시아를 결성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SEK가 종파적이라는 일각의 비난이 옳은 것일 테죠.
시리자로부터 독립적인 반자본주의 좌파 조직의 필요성
하지만 SEK가 시리자와 별도로 반자본주의적 연합체를 건설하려 한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첫째, 2006년 이후 기층에서 강력한 운동이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2006년 대학생들이 1년 내내 점거 운동을 벌였습니다. 당시 신민당 정부가 헌법을 개정해 대학을 민영화하려 한 것에 맞선 반란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매우 중요한 운동이었습니다. 사회당의 청년 당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회당 지도부는 개헌에 찬성했습니다. 사회당 학생 당원들은 반대했고요. 이런 상황은 혁명적 반자본주의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함의가 있었습니다. 조금 이따가 이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대학 점거 운동
안타르시아를 결성한 둘째 이유는 그리스의 극좌파가 강력하다는 점입니다. 1974년 독재 정권이 타도된 뒤로 그리스에서는 극좌파가 항상 강력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극좌파들은 마오주의, 스탈린주의, 알튀세르주의를 사상적 기반으로 했고 대체로 종파적이었습니다. 극좌파들은 대학을 주된 기반으로 활동했습니다. 대학을 주된 기반으로 하고 있던 극좌파들에게 2006년 점거 운동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강력한 대학 점거의 물결이 가능했던 것은 사회당 청년 당원들이 사회당 지도부로부터 이반한 덕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의 극좌파들은 ‘종파주의’라는 말을 듣기 딱 좋았는데, 그들은 사회당을 그저 우파라고 부릅니다. 심지어는 사회당과 노동자·학생의 관계도 일방적 지배 관계인 것처럼 봅니다. 즉, 사회당이 노동자·학생들을 조종하다시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루이 14세가 ‘짐이 곧 국가이니라’고 했듯이 그리스의 종파적 극좌파들은 ‘짐이 곧 운동이니라’는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별안간 짐이 곧 운동이지 않은 상황, 즉 자기들이 아닌 수많은 학생들이 강력한 운동을 벌이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죠. 게다가 대학 바깥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 물결이 일었습니다.
혁명적 반자본주의 연합 안타르시아
안타르시아의 뿌리는 2007년 2월에 열린 SEK의 대의원협의회입니다. 그 협의회는 이런 운동들의 분출로 대중 정서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보고, 이런 상황에서는 극좌파 측의 선거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결정했습니다. 즉, 거리 시위나 파업뿐 아니라, 중앙 정치 무대에서도 극좌파적 대안을 제시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운동이 더 발전하는 데 제약이 있을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식탁이 제대로 서 있으려면 다리가 적어도 세 개는 있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SEK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더해 세 번째 다리로 정치 운동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이것은 바로 1918년 독일 혁명 당시 로자 룩셈부르크가 주장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1918년 12월 룩셈부르크는 신생 공산당이 선거에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룩셈부르크는 이 주장을 관철시키지 못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룩셈부르크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독일은 혁명 상황 속에 있고, 노동자 평의회가 존재한다. 의회는 노동자 평의회에 대항하는 기구이다. 적들은 선거를 통해 노동자 평의회를 분쇄하려 한다.’ 룩셈부르크가 왜 옳았는지 여기서 더 자세히 말하기는 힘듭니다. 아무튼 그리스에서 SEK가 안타르시아라는 반자본주의 좌파 연합체를 결성하기로 한 것은 완전히 옳았습니다.
이처럼 안타르시아의 시작은 SEK 대의원협의회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르시아 결성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SEK의 결정은 2007년에 있었는데 안타르시아가 창립된 것은 2009년입니다. 그 사이에 안타르시아에 포함될 다른 단체들과의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안타르시아 창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2008년 말에 일어난 거대한 반란이었습니다. 안타르시아를 만들자고 다른 좌파들을 설득하는 데는 또 한 차례의 거대한 투쟁 물결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체제에 순응하라는 지배계급의 압박과 시리자의 우경화
과거사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안타르시아가 2차 총선에 출마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쟁으로 되돌아가겠습니다. 어차피 나가 봐야 패배할 것이 뻔한데, 노동자 계급에 그런 모습을 보이지 말자는 협소한 주장을 자세히 다룰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노동자 계급은 어리석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노동자 계급을 속이면서 혁명적 당을 건설할 수는 없습니다. 안타르시아가 출마하지 않는다고 해서 1차 총선에서 얻은 7만 5천 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좌파의 단결이 필요하니 안타르시아는 출마하지 말고 시리자를 적극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자세히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현재 시리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안타르시아의 독자 출마 필요성을 보여 줍니다. 1차 총선과 2차 총선 사이 한 달 동안 시리자는 급속히 우경화했습니다. 국제 지배계급과 언론은 그리스 유권자들을 협박했습니다. 시리자가 집권하면 그리스는 유로존에서 쫓겨나고 마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처럼 될 것이라고 협박했습니다. 이런 압력에 시리자는 우경화로 응답했습니다. 시리자의 우경화는 바로 국제 지배계급과 언론이 벌인 공포 부추기기가 노린 바였습니다.
사실, 의석수로만 따지면 2차 총선은 치를 필요가 없었습니다. 현재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신민당·사회당·민주좌파당이 1차 총선에서 확보한 의석수는 전체 3백 석 가운데 1백 68석으로 절반을 넘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 정당은 TV에 나와서 시리자가 2위를 했으니 연립정부에 들어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리자의 대표 치프라스가 총리가 되는 것을 모두 지지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이것은 사실 시리자를 우경화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시리자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지지해 왔습니다. 오히려 공산당보다 더 많이 지지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국회의사당 앞에서 수많은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을 포위해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봉쇄하기도 했습니다. 거의 모든 거리 행진의 최종 목적지는 국회의사당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공산당만은 국회의사당 쪽이 아니라 반대쪽의 노동부를 향해 행진했습니다. 아무튼 지난 2년 동안 시리자는 운동과 반란의 일부였습니다. 2차 총선에서 지배계급이 벌인 공포 부추기기 캠페인의 목적은 거리의 민중과 시리자의 연결 고리를 끊는 것이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해, 시리자로 하여금 거리의 민중에게서 거리를 두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전은 성공했습니다. 시리자를 우경화하게 만들고, 시리자가 “책임 있는” 야당이 되겠다고 말하게 만든 것이죠.
시리자와 똑같이, 어쩌면 더 중요하게 안타르시아는 운동의 일부였습니다. 그러나 만약 안타르시아가 시리자가 따라간 흐름을 따라갔다면 큰 실수였을 것입니다. 안타르시아가 이런 흐름을 따라갔다면 지금 아무 말도 못하는 신세가 됐을 것입니다.
안타르시아가 독자 출마해야 하는 둘째 이유는 첫째 이유와 관련 있습니다. 그리스 노동자들이 급진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리자 대표 치프라스가 시리자가 당선하면 좌파정부를 구성해 국제 채권단과 맺은 양해각서를 즉각 폐기하겠다고 [즉, 긴축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어서 노동자들은 시리자에 투표했습니다. 노동자들의 의식은 균등하게 변하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급진적이 될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모순된 것이죠. 노동자들은 의회가 양해각서를 통과시키는 것에 반대해 스스로 나서서 국회를 포위하고 싸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서서 ‘내가 당선하면 양해각서를 폐기하겠다’고 하면 그에게 투표하기도 합니다.
노동자들의 의식이 모순돼 있다고 해서 시리자가 우경화한 것과 똑같이 노동자들도 우경화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단지 그람시의 [“모순된 의식”] 이론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안타르시아 동지들은 선거운동을 하면서 수많은 작업장을 방문해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1차 총선에서는 안타르시아에 투표했다가 2차 총선에서는 시리자에 투표하려는 노동자, 두 번 모두 시리자에 투표하려는 노동자 등을 만나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이렇게 말합니다. ‘안타르시아의 주장도 지지하고 시리자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일단 양해각서를 폐기해야 한다. 시리자의 집권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니 일단 시리자에 투표해야 한다. 다음 선거에서는 당신들에게 투표하겠다.’
그리스 반자본주의 좌파의 과제
마지막으로, 안타르시아 내부의 논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SEK와 제4인터내셔널 그리스 지부를 제외하면 다들 선거 결과를 부정적으로 봅니다. 그러나 SEK는 선거 결과를 매우 긍정적으로 봅니다. 선거 결과는 대중 정서의 굉장한 급진화를 보여 줬고, 이는 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말이죠.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이런 좌경화를 기회로 보기보다는 위협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보다 오른쪽에 있는 시리자 같은 좌파가 커지면 자신들 같은 극좌파는 입지가 더 약해질 것이라는 인식입니다.
그러나 SEK는 그런 생각은 틀렸고, 오히려 극좌파의 청중이 훨씬 더 커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시리자가 우경화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시리자로부터 왼쪽으로 이탈해 혁명적인 사상 쪽으로 이끌리고 있습니다.
그리스 반자본주의 좌파에게는 두 가지 중요한 과제가 있습니다. 첫째, 파시즘에 맞선 싸움입니다. 둘째, 노동운동에 개입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더 혹독한 공격이 들어올 것이고 이에 맞서 노동자들도 분명 들고일어날 것입니다. 반자본주의 좌파는 우선 노동자들의 저항을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운동 안에서 투쟁을 전진시킬 혁명적 핵심 활동가층을 건설해야 합니다.
질의 응답
Q 노동운동에서 안타르시아의 영향력은 얼마나 됩니까? 안타르시아에는 어떤 세력이 포함돼 있습니까? 노동운동에서 시리자와 공산당의 영향력은 어떻습니까
안타르시아는 교원노조에서 영향력이 강합니다. 교원노조는 공립과 사립이 따로 조직돼 있고, 각각 초등과 중등 노조가 따로 있습니다. 안타르시아는 공립 초등과 중등에서 강하고 사립에서는 공립만큼 강하지는 않습니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노조와 병원노조에서도 안타르시아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 병원은 작업장이 워낙 분산적이라 작업장마다 영향력이 다르지만 보통 투쟁적인 병원에는 안타르시아 회원이 있습니다.
SEK는 민간부문에도 영향력이 있는데, 그리스 최대 전자제품 생산 기업 인트라콤에서 주로 SEK 회원들이 주도해 노동조합을 건설하기도 했습니다.
노동조합 운동에서 안타르시아의 영향력은 두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선거를 기준으로 보면 안타르시아는 10퍼센트 정도의 영향력이 있습니다.
둘째, 그러나 투쟁 면에서는 영향력이 더 큽니다. 예를 들어, 2011년 6월 아테네에서 큰 운동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24시간 파업이 있었고 국회의사당 봉쇄 시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정부를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노동조합 관료들은 ‘파업 전술이 실패했다’며 이 운동의 힘을 빼려 했습니다. 시리자와 공산당도 마찬가지 태도였습니다. ‘민중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그들은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들은 그들의 몫을 다했다. 이제 좌파들이 제 몫을 해야 한다.’ 이 말은 이제 선거가 중요하다는 뜻이었고, 실천적 결론은 파업을 중단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반대해, 쓰레기 수거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습니다. 거기에서 안타르시아가 핵심적 구실을 했습니다. 이 파업의 압력을 받아 상급단체 노조가 총파업에 나섰습니다. 뒤이어 대규모 시위도 일어나고 작업장 점거투쟁도 일어났습니다. 결국 정부가 무너졌습니다. 이렇게 투쟁의 면에서 보면 노동운동에서의 영향력은 안타르시아가 시리자보다 큽니다.
안타르시아는 크게 두 개의 좌파 경향이 합쳐서 만든 연합체입니다. 하나는 SEK를 중심으로 한 블록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SEK는 2007년 대의원협의회에서 반자본주의적 좌파 연합체를 건설하기로 결정했고, 여기에 4개 단체가 모여 ‘통합 반자본주의 좌파’(ENANTIA; United Anti-Capitalist Left)라는 조직을 결성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급진좌파전선(MERA; Radical Left Front)입니다. 급진좌파전선의 핵심은 신좌파조류(NAR)입니다. 신좌파조류는 1989년 공산당에서 이탈해 나온 조직으로 SEK보다 큽니다.
노동조합 운동에서는 공산당이 시리자보다 더 강력합니다. 시리자는 사무직 노동자와 교사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습니다. 공산당은 블루칼라 부분에 영향력이 있습니다. 거리 동원력으로 보면 시리자는 공산당과 상대가 안 됩니다. 공산당은 쉽게 2~3만 명을 동원합니다. 반면 시리자는 그렇지 못합니다. 거리 동원력 면에서 시리자는 안타르시아보다도 약합니다.
Q 시리자는 개혁주의 정당입니까, 아니면 중간주의 정당입니까? 시리자가 니코스 풀란차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러면 혁명적 주장을 하면서 실천은 개혁주의적으로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둘째, 시리자는 노동조합보다는 거리의 청년들에게 영향력이 큽니까? 셋째, 노동운동에서 사회당(PASOK) 등 각 세력의 영향력은 어떻습니까
시리자는 중간주의 정당이 아닙니다. 중간주의는 혁명을 말하면서도 개혁주의적인 경향을 말합니다. 개혁주의자와 혁명가의 결정적 차이는 기존 국가를 대하는 태도인데, 시리자는 혁명을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시리자 안에 있는 혁명가들은 극소수이고 영향력도 없습니다. 시리자는 말로도 실천으로도 개혁주의적인 정당입니다. 비록 좌파에 속한 개혁주의이지만 말입니다.
시리자가 풀란차스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시리자가 풀란차스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뿐입니다. 시리자가 풀란차스 연구소를 운영하는 것은 풀란차스의 혁명성을 이용하려는 것보다는 그저 풀란차스가 그리스인이어서 그런 면이 더 큽니다.[평범한 그리스인들의 애국심에 영합한다는 뜻.]
시리자가 노동자 계급에 끼치는 영향력을 말할 때 선거적 영향력과 실질적 영향력을 구분해야 합니다. 선거적 영향력은 그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투표하도록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실질적 영향력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자신을 따라오게 하고 멈추게도 할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즉, 다른 사람들을 지도할 능력입니다. 시리자에는 이런 지도력이 없습니다.
시리자의 지지율은 오랫동안 4퍼센트를 오르락내리락해 왔습니다. 시리자는 항상 ‘우리 같은 정당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정당 등록을 유지할 수 있는 선(득표율 3퍼센트)을 지키고자 애썼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득표율이 치솟은 것입니다. 시리자는 대중을 동원하고 조직할 능력이 없습니다.
시리자가 급진화하는 청년들 사이에 뿌리를 내린 것도 아닙니다. 이를 보여 주는 사례가 대학교 학생회 선거 결과입니다. 학생회 선거에서 시리자 경향은 7퍼센트, 안타르시아 경향은 11퍼센트, 공산당 경향은 15퍼센트를 득표합니다.
노동운동을 보면, 지난 2년 동안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은 사회당(PASOK)입니다. 사회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그 정의상 노동자 계급과의 접촉면이 가장 넓습니다. 사회당은 여전히 노동조합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에는 2개의 노총이 있는데, 그 양대 노총의 사무총장이 모두 사회당 당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당 당원인 노동조합원들이 수동적이라고 보면 안 됩니다. 노동조합 안에서도 사회당으로부터의 이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공공연히 사회당 당적을 버리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사회당 당적은 유지하지만 사회당의 정책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지자체 공무원노조 안에서 활동하던 사회당 조직이 집단으로 탈당해 버린 일이 있습니다.
더 중요한 사례는 사회당이 주도하고 있는 전력노조입니다. 위원장도 사회당 당원입니다. 그러나 전력노조는 매우 강력해서 정부의 민영화 계획에서 전력회사는 빠져 있을 정도입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전력노조의 전투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사회당 정부는 부동산세를 도입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인들이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작은 집이라도 소유한 사람들 모두에게 세금을 물리려 했습니다. 정부는 부동산세를 전기세와 함께 내도록 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두 달에 한번 전기세를 내는데, 그 고지서에 부동산세도 함께 고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전기세를 밀리면 전기가 끊기는데, 정부는 부동산세를 밀리면 전기를 끊도록 했습니다. 전력노조가 이에 반대하며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세금을 걷지도 않을 것이고, 세금을 체납해도 전기를 끊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세금 고지서를 인쇄하는 건물을 점거해 버렸습니다. 사회당이 주도하는 노동조합이 사회당 정부에 맞서 싸운 것입니다.
이 사례를 보면 그리스 일부 극좌파의 인식, 즉 자신들만이 [진정한] 운동이고, 노동자들은 (특히 사회당과 연계된 노동자들은) 사회당의 명령을 받기만 한다는 식의 인식이 얼마나 틀렸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회당의 기반은 허물어지고 있고, 바로 그 속에서 시리자와 안타르시아가 성장하고 있습니다.
Q 안타르시아 안에서 SEK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안타르시아의 대의원은 모두 8백 명 정도 됩니다. 그중 SEK 당원인 대의원은 2백 명 조금 넘습니다. 단순 수치로만 보면, SEK는 안타르시아 안에서 25퍼센트의 영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르시아의 대의원대회는 그리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안타르시아의 많은 소속 단체들이 스탈린주의 출신이라는 점이 작용합니다. 물론 마오주의적 단체와 알튀세르주의적 단체도 있습니다. 스탈린주의의 ‘민주주의’ 모델은 이렇습니다. 당 내에 여러 계층을 만들고 하위 계층의 선거부터 시작해서 간선제로 최상층까지 올라갑니다. 그 과정에서 당권파의 영향력이 점점 확대됩니다. 그래서 결국 사무총장이 정치국을 지배하고 정치국이 중앙위원회를 지배하고 중앙위원회가 당 전체를 지배합니다.
그럼에도 그리스에서는 운동이 계속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고 안타르시아는 지역 위원회들이 있습니다. 지역 위원회들은 각자의 지역에서 운동에 개입해 왔고, 그 운동 안에는 논쟁이 있어서 결국 안타르시아 대의원대회에서도 논쟁이 있습니다. SEK는 이 논쟁에 개입해 다른 단체의 회원들에게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습니다.
안타르시아에서 가장 큰 세력은 신좌파조류(NAR)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신좌파조류는 1989년 공산당에서 떨어져나온 세력입니다. 당시 주로 청년들 3만 명이 떨어져나왔습니다. 현재는 2천 명으로 규모가 줄었습니다. 그런데 그나마도 내분을 겪고 있습니다.
앞에서 안타르시아 안의 많은 동지들이 시리자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괜시리] 두려워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신좌파조류도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이 동지들은 안타르시아 대의원대회를 소집해 이데올로기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정하고 조직적 결속력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운동이 분출하는 상황에서 내향화하자는 것이죠. 그래서 많은 동지들이 외향적으로 활동하자는 SEK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SEK가 안타르시아에서 주도력을 발휘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안타르시아를 결성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논쟁은 대표적으로 무엇이 있습니까
많은 쟁점을 놓고 논쟁이 있었습니다. 반자본주의적 좌파를 결집시키는 것을 반대한 주된 세력은 신좌파조류였습니다. 그들의 주된 공격 대상은 SEK였는데, SEK가 사회당과 너무 친하다는 게 주된 이유였습니다. 그들은 SEK의 노동조합 내 활동을 그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신좌파조류는 공산당 출신이고 스탈린주의 전통에 속해 있습니다. 모두 국회의사당을 향해 행진할 때 공산당만은 반대로 행진한다고 앞에서 말씀드렸는데, 사실 공산당은 행진을 반대쪽으로 할 뿐 아니라 집회도 따로 합니다.
신좌파조류는 제3의 장소에서 노동조합이나 공산당보다 훨씬 더 작은 규모로 집회를 따로 합니다. 나머지는 다 잠재적 적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2003년 2월 15일 대규모 반전 시위가 있었습니다. 그날 신타그마 광장에 30~50만 명이 모였습니다. SEK와 시나스피스모스는 이 집회에 참가했습니다. 공산당은 약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1만 명을 모아 따로 집회를 했습니다. 신좌파조류는 또 다른 곳에서 약 8백 명을 모아 따로 집회를 했습니다.
SEK는 노동조합들의 집회에 함께했습니다. 노동자 계급의 주력 부대와 함께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노동조합에서는 사회당의 영향력이 매우 강합니다. 공산당과 신좌파조류의 눈으로 보면 조합원들은 노동자 계급의 주력 부대가 아니라 노조 관료들의 부하들일 뿐입니다.
2007~09년 안타르시아 결성 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SEK는 우선 ‘통합 반자본주의 좌파’를 건설하면서 지역마다 반자본주의 좌파들의 집회를 열자고 호소했습니다. 이 호소에 호응이 커서 여러 도시와 마을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습니다. 그래서 신좌파조류도 참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좌파조류는 집회에 와서는 주로 SEK를 비판하기만 했고 이런 집회를 해 봐야 소용없다는 식으로 얘기했습니다. SEK는 신좌파조류에 압력을 넣는 수단으로 신좌파조류 없이 ‘통합 반자본주의 좌파’를 결성했습니다. 그 뒤에 신좌파조류의 대의원대회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평회원들이 지도부를 비판하며 안타르시아 결성에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Q 시리자와 공산당의 계급적 기반, 실천, 이데올로기를 비교해 주십시오. 또, 안타르시아는 기관지를 발행합니까
공산당은 여전히 강경 스탈린주의 정당입니다. 그러나 이제 소련은 없으므로 소련은 버렸습니다. 잠깐 동안 중국을 대안으로 여겼다가 그만뒀고, 그래서 지금은 공산당이 내세우는 대안은 불분명합니다. 공산당은 이론적으로는 혁명을 주장합니다. 공산당이 추구하는 것은 인민공화국입니다. 공산당이 힘이 커져서 집권을 하면 그것이 인민공화국이 됩니다. 이것은 노동자 권력은 아니고 인민 권력입니다.
전술 면에서 공산당은 시리자와 달리 언제나 유로존과 유럽연합을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안타르시아와 거의 비슷하게 디폴트, 유로존 탈퇴,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시기상조라는 말을 합니다.
안타르시아와 공산당의 주된 차이점은, 안타르시아는 운동의 압력으로 지배자들로 하여금 이런 조처를 하도록 강제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공산당은 자신들이 집권해 인민공화국이 설립되면 그때 가서 이런 조처를 도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절망의 당이기도 합니다. 현재 거리에서 싸우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시리자를 당선시켜 좌파 정부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이에 SEK는 좌파 정부가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는 것은 환상이고, 좌파 정부가 우리 꿈을 이뤄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 스스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공산당은 뭔가 희망이 있다고 보는 것 자체를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안타르시아는 기관지를 발행하지는 않고 공지사항과 논평을 싣는 웹사이트만 있습니다. 그런데 논평 하나 올리려 해도 다른 단체들과 며칠 동안 조율을 해야 하고, 어떤 때는 그 논평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10월에 열린 시위에서는 웬일인지 공산당도 다른 시위대와 함께 국회의사당 쪽으로 행진해 국회 봉쇄에도 동참했습니다. 정말이지 잘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 식으로 동참했습니다. 대다수 시위대는 국회 쪽을 바라보고 구호를 외치는데, 공산당원들은 국회 반대쪽 시위대를 바라보고 구호를 외쳤습니다. 국회를 포위하는 동시에 국회를 지키는 형세를 취했던 것입니다. 이에 아나키스트들이 분노해서 마치 경찰을 공격하듯이 공산당원들을 공격했습니다. 매우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청년들이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형국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경찰이 시위대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공산당 당원인 노동자 한 명이 최루탄에 질식해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논평하느냐가 매우 중요했는데, 안타르시아는 옳게도 공산당이 이 시위에 함께한 것을 칭찬하고, 양해각서에 맞서 노동자들이 단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비록 공산당이 좀 괴상하고 개혁주의적인 방식으로 행동했지만 시위에 동참한 것은 일보전진이라고 하는 논평을 냈습니다. 시리자는 공산당이 국회를 방어했다는 비난 입장을 냈습니다. 이는 안타르시아 내에도 영향을 줘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공산당을 칭찬할 게 아니라 비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개혁주의의 영향력은 혁명적 사상의 영향력보다 사회적으로 훨씬 더 크고, 심지어 안타르시아 안으로도 미치는 것입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민주적 중앙집권제에 따라 활동하는 혁명적 당이 있어야 하는데, 안타르시아는 그런 조직이 아닙니다.
혁명적 당은 개개인이 잘못된 결론을 내리더라도 집단적 토론을 벌여 교정할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집단적으로 내린 결정은 개인적 결정보다 올바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안타르시아는 그런 조직이 아닙니다. 안타르시아와 SEK 둘 다 강화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사실 SEK를 강화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Q 급진좌파 모델을 두고 영국 SWP의 알렉스 캘리니코스와 그리스 SEK의 파노스 가르가나스가 논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반자본주의신당 NPA는 실패하고 있지만 안타르시아는 성공하고 있는 듯합니다. 어떤 차이점 때문이라고 보십니까
첫째, 안타르시아가 성공했다고 보기는 아직 이른 듯합니다. 앞으로 큰 전투와 난관이 남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NPA도 실패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둘째, 알렉스와 파노스는 둘 다 한 가지 점에서는 완전히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NPA를 창당하며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 LCR을 해산하는 것은 실수라는 것입니다. 알렉스와 파노스의 의견 차이는 주로 그리스 경험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알렉스와 파노스가 논쟁을 벌였다기보다는 알렉스의 분석에 빠져 있던 것을 파노스가 보완해 줬다고 봅니다. 오랫동안 커다란 투쟁이 일어난 그리스의 역사적 맥락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2차 총선 결과를 놓고 그 많은 좌파 지식인 중에서 안타르시아를 지지한 사람은 알렉스가 거의 유일합니다. 알렉스는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에 안타르시아의 선거 출마와 시리자 등에 관한 아주 훌륭한 논문을 기고했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Q 첫째, 안타르시아 결성 배경을 설명하시면서 급진화 과정을 설명하셨는데, 그 급진화가 시리자를 넘어 더 왼쪽 대안으로도 향할 수 있다는 확신 같은 것이 SEK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판단의 배경이나 근거를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둘째, 안타르시아 안에 못 말리는 종파적 좌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과 함께 연합체를 꾸리는 것이 건강한 개혁주의 지지자들과 공동전선 등을 펼칠 때 방해 요인로 작용하지는 않습니까? 셋째, 조직 좌파 외에 영향력 있는 자율주의나 아나키스트 세력이 있습니까?
둘째 질문부터 답변하겠습니다. 2007년 이전에는 SEK도 종파적 좌파와 함께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 세력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우리는 주로 사회당이나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운동이 성장하면서 종파적 좌파들도 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앞에서 말씀드린 2006년 대학 점거 물결이 있습니다. 그 전에 대학에서 종파적 좌파들은 이런 식으로 활동했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겨서 학생총회에 점거 투쟁이 제안됐을 때 사회당 학생들이 지지하면 다른 좌파들은 반대했습니다. 사회당이 생각하는 점거의 상과 우리가 생각하는 점거의 상이 다르다면서 말입니다.
이런 행태가 2006년에 바뀌었습니다. 사회당 학생들이 사회당 지도부의 입장을 거슬러 행동했습니다. 그때도 처음에는 종파적 좌파들은 별 의미 없는 선명성 드러내기에 집착했습니다. 사회당 학생들이 하루 동맹휴업을 제안하면 이틀 동맹휴업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SEK 학생 당원들은 달랐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무기한 점거 투쟁을 벌이자고 하고 싶지만 부결 가능성이 높았겠죠. 사회당 학생들이 일주일 점거를 제안하고 그것이 통과 가능성이 높다면 SEK 학생 당원들은 그 제안에 함께 투표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1년 내내 점거 운동을 벌일 수 있었습니다.
운동이 이렇게 벌어지고 사회당 학생들도 사회당 지도부의 입장을 거스르며 싸우니까 종파적 좌파들도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노동운동에서도 변화가 생겨 공산당이 계속 따로 집회를 여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의문이 공산당원들 사이에서 생겼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신좌파조류가 결국 안타르시아에 합류하게 된 것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였습니다.
첫째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사회당으로부터의 이탈에서 시리자만 득을 보고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물론 그러리라는 보장은 절대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알렉스 논문의 주요 주장은 사회민주주의가 큰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위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대중이 개혁주의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을 내버려 두고 싶지 않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대중을 끌어당기느냐입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독일에서처럼 범좌파 정당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이고, 다른 하는 그리스에서처럼 극좌파들을 결집시키는 방법입니다.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고, 특히 운동과 좌파의 상황이 다르니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조직 좌파를 제외하면 아나키즘이 가장 중요한 세력입니다. 아나키스트들은 큰 시위가 있을 때마다 참가해 불을 지르고 경찰과 투석전을 벌입니다. 한번은 돌을 워낙 많이 던져서 경찰을 후퇴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나키스트들은 공식적 이데올로기도 없고 사실 조직되지 않은 분노를 표출하는 것 이상의 구실을 하지는 못합니다.
그리스에서도 스페인처럼 광장 점거 운동이 있었습니다. 국회의사당 앞 광장 점거는 몇 달 동안 지속되기도 했습니다. 그 안에서는 대규모 토론이 열렸는데 그리스가 디폴트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주제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안타르시아와 시리자 등 모든 세력이 이런 토론에 영향을 미치려고 참가했습니다.
광장 점거 운동이 처음 시작됐을 때 언론은 이 운동을 노동운동과 대립시키려 했습니다. 노동운동은 자기 잇속 챙기는 타락한 운동이지만 광장 점거 운동은 바람직한 운동이다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나 이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두 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전력노조가 파업을 벌이고 집회를 한 뒤에 사람들이 점거하고 있는 광장으로 행진했습니다.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조합원들을 박수로 환영했습니다. SEK는 광장 안에서 이민자 차별 반대 집회를 열었습니다. 이렇게 운동이 하나가 됐고 결국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통역 천경록, 녹취 전문기·장미순·박충범, 정리 차승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