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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주의란 무엇인가?

이 글은 원래 2005년, 당시 영국 SWP 당원 이언 버철이 쓴 것을 조금 줄이고, 우리가 잘 모르는 논쟁 상대자 이름(앤드류 코트) 대신에 프랑스 공화주의 전통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프랑스 공화주의자라고 번안했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노동자 연대〉 편집팀이 첨가한 것이다.

역사적 맥락 속에서 계몽주의 이해하기

포스트모더니즘의 공격으로부터 계몽주의 전통을 옹호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계몽주의는 반드시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볼테르와 그의 동료들이 살아 있던 시절, 교회는 여러 면에서 주적(主敵)이었다. 전제군주는 신권으로 지배했다. 1766년 가톨릭 미사 행렬에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문당하고 처형된 기사 드 라 바르의 경우처럼 신성모독죄는 사형으로 처벌받았다. 볼테르는 용감하게도 그런 저항을 이어간 것이다.

그러나 [18세기 후반 이후] 계몽주의는 대개 부르주아적이었다. 지도적 계몽주의자들은 대중을 뿌리 깊게 불신했다. 출처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볼테르의 평소 견해를 잘 보여 주는 일화가 있다. 한 번은 손님 한 명이 무신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볼테르는 하인들을 방 밖으로 내보냈다. 하인들이 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자신이 자고 있을 때 죽일지도 모른다고 걱정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어떤 면에서는 계몽주의를 계승했지만, 계몽주의에 대한 변증법적 비판을 담고 있다. 마르크스는 혁명가의 주요 과제가 종교를 공격하는 것이라는 관념론을 거부했다. “대중의 아편”이라는 구절로 유명한 글에서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은 종교는 사회 상황의 산물이므로, 오직 종교를 만든 사회 상황이 사라져야만 종교도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면 종교가 바로 사라질까? 시간이 걸릴 것이다.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의 잘못된 세속주의 정의

프랑스의 세속주의 전통은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모호하다. 1882년 프랑스에서 세속주의에 기반해 보편적 초등교육이 처음 도입됐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부분적으로 경제가 근대화하면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노동력인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이유도 있었다. 프랑스는 크고, 대부분이 농촌인 나라였다. 대다수 농민들은 자신들이 프랑스 시민이라는 생각이 모호했다. 반면 모든 마을에는 사제가 있었다. 프랑스 공화국[제3공화국]의 지배자들은 많은 농민들이 자신들이 아니라 바티칸의 정치를 따를까 봐 걱정했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조국이라는 개념을 심어 주도록 설립됐던 것이기도 했다.(인도차이나 반도의 식민지화 정책을 고안했던 쥘 페리 같은 정치인들이 보편 교육에도 긴밀히 관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략은 성공했다. (많은 용감한 교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14년 프랑스 정부는 독일에 맞서 프랑스 농민들을 “그들의” 공화국을 방어하기 위해 전쟁[제1차세계대전]에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 정계를 주의깊게 살펴본 사람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사회적 폐해에 맞서 싸울 태세가 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기꺼이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경멸적인 농담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세속주의를 변명거리로 삼았다. 프랑스 급진당의 역사 전체가 이를 증명한다.

“종교적 교리로부터 공공영역의 해방”이라는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의 세속주의 정의는 너무 모호해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

세속주의가 교회와 국가의 완전한 분리를 뜻하는 것이라면 나도 동의한다. 영국성공회는 국교(國敎)의 지위를 박탈당해야 하고, 신성모독죄는 폐지돼야 하고, 학교의 종교 수업은 역사와 사회 연구의 일부로서 다양한 종교의 역할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시간으로 대체돼야 한다. 비록 대다수 시민들이 이 문제들에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은 국가 기관에서뿐 아니라 “공공영역”에서도 종교를 금지하고 싶어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갖고 있고, 그들의 정치적 실천에 신앙이 불가피하게 영향을 끼친다. 무신론자들은 이를 개탄하지만, 무신론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인 우리는 개탄하기보다는 이에 대한 사회학적인 설명을 제시할 것이다. 하지만 종교의 이런 영향력 자체를 우리가 막지는 못한다.

“종교에 몰입하는 자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핵무기를 가진 펜타곤의 기독교 광신도들이 무슬림 광신도들보다 훨씬 더 걱정스럽다. 하지만 똑같이 종교에 몰입해도 그들과 다른 경우도 많다. 마틴 루서 킹과 말콤X도 종교적인 믿음에서 동기를 부여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공공영역”에서 배제돼야 하는 것일까? 나는 브루스 켄트[전 가톨릭 사제이자 사회운동가]와 많은 이견이 있지만, 반전 활동가라면 그의 지칠 줄 모르고 용감한 활동에 존경을 표해야 한다. 내가 속한 노동조합 회의에 누가 와서 파업 대신 기도를 하자고 한다면, 나는 정중히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신은 우리를 평등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저 망할 CEO 놈들은 우리보다 몇십 배나 더 받습니다”라고 한다면 나는 박수를 치고 신학적 토론은 다음으로 미룰 것이다.

종교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전통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은 [종교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살펴봐야 한다. 1905년 레닌은 열정적으로 가폰 신부와 관계를 발전시키려 했다. 많은 볼셰비키가 경찰 끄나불일지도 모를(실제로 나중에 그렇게 밝혀졌다) 성직자에게 너무 호의적이라고 레닌을 비판했음에도 말이다. 크룹스카야는 《레닌을 회상하며》(박종철출판사, 2011)에서 이렇게 돌이켜 보았다. “가폰은 러시아를 휩쓴 혁명의 주역이었다.” 1903년 볼셰비키는 특별히 종교를 가진 이들을 겨냥해서 〈라스베트〉(새벽)이라는 신문을 창간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1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러시아 정교회가 아닌 종교 신앙을 가졌다. 러시아 혁명 이후, 트로츠키는 무슬림들에게 세심하고 종파적이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무슬림 민족주의를 러시아 민족주의와 같은 반열에 놓으려는 어떤 시도도 거부했다.

“변하지 않는 원칙은 러시아 민족주의와 무슬림 민족주의를 다르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굽힘 없이 투쟁하고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행정·통치 분야에서 드러나는 러시아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특히 그래야 한다. [반면] 무슬림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참을성 있고, 조심스럽게, 공들여 토론해야 한다.”

그렇다면 히잡[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에 쓰는 스카프]의 경우는 어떨까?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은 히잡이 억압적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나는 의문이 있다. 전형적인 기독교인인 나의 어머니는 머리에 스카프를 자주 착용했다. 욕정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는지 그냥 점잖게 보이기 위해서였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서로 다르게 입는 관습이 있는 것은 그저 ‘단순한 사실’이다.

게다가 국가가 히잡을 금지하면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이 원하는 것과 정반대 결과가 나올 것은 자명하다. 히잡이 금지되면 될수록 히잡은 저항의 상징이 될 것이고, 더 많은 청년들이 원리주의에 끌리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 단체가 히잡 착용하는 여성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여성들과 동료들을 사회주의에 등을 돌리게 하는 짓이다.

1백년 남짓 전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드레퓌스를 지지하기를 거부했다. 신디컬리스트인 에밀 뿌제의 표현을 빌리자면, 드레퓌스가 “돈 많은 장교 중 하나인 알자스 출신 유대인 놈”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계급 정치”가 조야하고 기계적으로 적용된 결과다. 많은 유대인들이 사회주의에 완전히 환멸을 느꼈다. 그 결과는 시온주의 운동의 성장이었고, 이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히잡이 억압적인 것이 설사 맞다손 치더라도 국가의 히잡 착용 금지를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계몽주의의 엘리트주의와는 다르게) 사회주의 전통에서는 언제나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은 억압받는 자들 자신의 힘으로 이뤄야 한다.

여전히 생생한 반전 시위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두 명의 젊은 아시아 여성이 생각난다. 그들은 나란히 행진하며, 확성기를 돌려 쓰며 반제국주의 구호를 외쳤다. 한 명은 히잡을 썼고, 다른 한 명은 쓰지 않았다. 어쩌면 사석에선 그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내 의견을 물어 봤다면, 나는 아마도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의 편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억압받고 있는지 아닌지, 억압받는 것이라면 어떻게 스스로 해방될 것인지는 오로지 그들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종교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는 다음 글도 함께 읽어 보시오.

최일붕, ‘박창신 신부와 정의구현사제단을 옹호하며 ─ 마르크스주의와 종교’, 〈레프트21〉 1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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