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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잘못된 방식
프랑스 좌파의 오류에서 배운다

경찰이 북아프리카계 청년 나헬을 사실상 즉결 처형한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에서 거대한 소요가 일었다.

그런데 프랑스 좌파 다수가 이 소요를 당시에 지지하지 않았다. 소요에 나선 청년들이 약탈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그 주된 이유다. 그러나 그들은 소요를 비난함으로써 사실상 프랑스 국가와 기업주들을 편들었다.(관련 기사: ‘프랑스 좌파는 어째서 청년 반란의 시험대를 통과하지 못했는가’)

더 근본적으로, 프랑스 좌파들은 옛 식민지 출신 이민자의 후손들이 겪는 인종차별에 아주 오랫동안 잘못된 태도를 보였다.

오늘날 프랑스의 인종차별은 무슬림 혐오의 형태를 띤다. 프랑스 제국이 남긴 유산, 특히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모로코·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체계적 경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다. 이번에 소요가 집중된 방리외 — 대도시 교외의 가난한 지역으로, 도시로부터 다소 게토화하고 고립된 경우가 흔하다 — 들을 둘러싼 정책 논의에서는 식민지 시대의 언어와 비유가 재활용된다.

프랑스에서 이슬람 혐오가 만연한 것은 정치인들의 근시안적 기회주의 때문만은 아니다. 이슬람 혐오의 확산은 노동계급의 일자리 안정성, 생활수준, 미래 전망이 붕괴한 것과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그러나 노동계급과 좌파적 정치를 중심으로 막강한 반란이 여러 차례 일어나고 그 영향으로 급진 좌파가 선거에서 큰 성공을 거둘 때조차 이슬람 혐오는 확장했다.

지배자들이 계급투쟁의 이데올로기 전선의 중심에 이슬람 혐오를 놓았지만, 좌파들이 거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우파뿐 아니라 좌파도 구체적 형태만 달랐을 뿐 세속주의라는 이름 아래 국가 권위 방어로 결집했다.

마크롱의 이주민 추방법에 반대하는 “연대의 행진”(3월 25일) ⓒ출처 Marche des solidarités

더 근본적인 문제로 프랑스 혁명의 유산인 공화주의 사상이 있다. 공화주의는 특정 사회 집단에 구체적 이해관계가 있음을 기각하며 공화국을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집단적 정체성으로 여긴다.

공화주의에는 여러 세대의 좌파를 결집시킨 민주적·반(反)엘리트주의적 요소가 있다. 예컨대 프랑스 혁명 당시 공화주의는 귀족과 교회의 권력에 반대하고 인권을 옹호했다.

그러나 공화주의에는 전체주의적 지침도 있다. 공화국의 문화와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소수자의 배제라는 점에서 그렇다. 공화주의는 그 이데올로기 아래 좌우파 모두를 줄 세우고, 국가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광범한 정치 블록을 형성하며, 반대자들을 마비시키는 데서 비할 데 없이 유용한 수단이 됐다.

인종차별

“공화국은 나눌 수 없는 하나”라는 사상은 프랑스가 다문화 사회라는 현실을 체계적으로 부인하고, 따라서 프랑스 사회의 인종차별적 불평등을 깡그리 부인한다.

일례로 프랑스 공식 통계는 소수민족이나 인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인종이나 출신 국적에 따라 통계 조사를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또, 2018년에는 인종과 관계없이 동등한 권리를 보장한다는 조항이 아예 헌법에서 삭제됐다.

이는 인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反)인종차별적 공화주의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는 고용·교육·주거·경찰폭력 등에 만연한 인종차별을 가리는 구실을 한다.

이런 공화주의적 프레임은, 인종이란 없는 것인데도 프랑스 사회의 불평등이 이토록 심각하다면 그 불평등의 요인은 인종차별이 아니라 다른 데 있다고 시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논리를 받아들이면, 프랑스 사회에서 흑인과 북아프리카계 시민들이 어떻게 차별받느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흑인과 북아프리카계 사람들의 문화가 어떻게 그들이 프랑스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도록 가로막느냐를 묻게 된다.

즉, 문화적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흑인과 북아프리카계 사람들 자신이 프랑스 주류의 문화로 통합되기를 거부했다고 간주된다. 이슬람 혐오의 피해자들을 ‘인종차별 반대’의 이름으로 비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슬람 혐오와 인종차별이 득세하면 노동계급은 보이지 않게 된다. 노동계급의 투쟁이 회복되더라도 말이다. 싱크탱크나 여론조사가 부추기는 담론을 살펴보면, 노동계급에서 “이민자 가족 배경의” 노동자들은 체계적으로 배제돼 있고, 노동계급은 “프랑스 국민”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백인, 또는 이민자들의 “위협”을 받으며 파편화된 백인으로 규정된다. 그 결과, 노동계급이라는 이미지는 투쟁적이고 좌파적인 노동자가 아니라, 두려움에 빠져 있고 우파에 기운 “프티 블랑”(백인 소시민층)이 차지한다.

그렇지만 노동계급의 단결이 약화하면 노동계급의 힘과 독립성도 약해진다.

2005년에도 방리외 전역에서 큰 소요가 일었다. 당시 경찰의 괴롭힘을 피해 달아나던 청소년 둘이 감전사한 사건으로 촉발됐다. 그후, 인종차별 반대 운동 내에 새 흐름이 등장했다. 그 흐름은 국가를 지키려 하기보다는 공격 표적으로 삼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질책하기보다는 동원하려 한다.

이와 함께, 아직은 규모가 작지만 좌파 내에서도 새 세대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히잡을 쓰고 활동하는 무슬림 여성이 소르본 대학 총학생회장으로 당선해 마크롱의 경쟁 강화 대입제도에 반대하는 학생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이처럼, 젊은 활동가들은 세속주의에 관한 비현실적 주장에 빠져들기보다는 국가에 맞서 무슬림을 편들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럼에도 흑인과 북아프리카계 활동가들은, 극좌파를 포함한 기성 좌파가 인종차별에 맞서는 무슬림들과 대체로는 관계 맺기를 꺼리거나 아예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2018년 한 인터뷰에서 파리에서 활동하는 반자본주의신당(NPA)의 무슬림 당원 메리암은 이렇게 지적했다. “좌파가 이슬람 혐오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갖지 않는 한, 좌파는 속 빈 강정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혁명을 꿈꾸지만, 우리 계급 내에서 가장 차별받는 부분이 동력이 되지 않는 한, 다른 종류의 사회를 창조하기 위한 뭔가를 건설하는 데서 핵심이 되지 않는 한, 혁명은 오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이끌어 낸 교훈을 다른 곳에 적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프랑스 공화주의는 프랑스만의 독특함도 물론 띠겠지만,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적용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본보기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 세계 좌파를 위험에 빠뜨릴 함정이다.

이 글은 《마르크스21》 28호(2018년 11~12월호)에 실린 데이브 수얼의 ‘인종차별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 프랑스 좌파의 오류에서 배우는 교훈’을 축약·편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