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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새누리당은 왜 보편적 복지에 반대하고 선별적 복지를 선호할까?

나는 한부모 가정, 저소득층 가정에서 자란 아이였다. 어머니는 휴일도 없이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셨다. 여성의 적은 임금으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은 힘들었고 자녀를 돌보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정부에서 저소득층 가정에 대한 지원을 해주어서 생활에 최소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도움이 그냥 주어진 것은 아니다. 어머니께서는 하루종일 일을 하셔야 했기 때문에 코를 질질 흘리는 꼬마였던 내가 해마다 어머니 대신 관공서에 가서 우리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관공서에 가는 일은 귀찮긴 하지만 크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학교등록금, 학교급식, 방과후수업 등 학교에서 내야 하는 비용을 지원받을 때였다. 나는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가난한 집 아이는 손을 드시오”할 때 손을 번쩍번쩍 들어야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생활보호대상자 증명서를 떼와서 제출해야 했다. 도시락을 싸가던 시절에는 가난한 반찬으로 가난한 집 아이란 걸 들켰는데, 집단급식을 시작하자 급식비 지원을 받기 위해 가난한 집 아이란 걸 들켜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사정이 좋은 편이었다. 부끄러운 것은 잠깐이다. 더 큰 고통은 그 복지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한부모 가정의 자녀였던 내 친구는 집이 우리집보다도 더 가난했지만 정부의 생활보호 정책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그 친구는 어머니의 건강 문제로 소득이 거의 없었는데도 가족명의의 조그만 싸구려 주택을 하나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생활보호대상 선정에서 번번이 제외된 것이다. 경제위기 시기에는 내 친구집 같은 가정이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이렇게 선별적 복지는 가난 증명 강요와 까다로운 심사로 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 그래서 나는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며 등장한 무상급식 확대 실시를 환영한다. 이런 보편적 복지제도가 다른 복지 부문에서도 실시돼야 한다.

하지만 새누리당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이와 거꾸로 무상급식 중단을 선언하며 못된 선별적 복지로 되돌아가겠다고 총대를 맸다. 홍준표는 2013년에 진주의료원을 폐쇄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아마 우익 사회에서 명확한 입장과 추진력을 보여주어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는 듯하다. 이에 조선일보는 “경남서 중앙 정치권 뒤흔드는 '이슈 메이커' 홍준표”라며 칭찬하고 있다. 한 우익 정치관료의 야심 때문에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겪을 어려움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가난을 증명하기

그런데 새누리당은 왜 보편적 복지에 반대하고 선별적 복지를 선호할까? 부자에게 복지를 줄 필요는 없으니 진짜 가난한 사람에게 복지를 몰아주자는 새누리당의 논리는 언뜻 보기에 합리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새누리당이 부자보다 빈자를 위한다는 넌센스를 믿을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지금 복지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간단히 말하면 정부의 재정이 부족하자 정부가 복지비를 삭감해 만회하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복지제도가 자본에게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관해 살펴보면 좀 더 진정한 이유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의 보수 정치인 퀸틴 호그가 “여러분이 사회 개혁을 국민에게 선사하지 않으면, 국민이 여러분에게 사회혁명을 선사할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복지제도는 노동계급의 투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강제로 일단 복지제도가 만들어지자 그것은 체제의 일부가 되었고 자본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국가에 의해 운영되었다.

19세기 영국에서는 저임금, 장시간노동, 악명 높은 아동노동으로 노동계급의 건강과 노동력 재생산능력이 극도로 나빠졌다. 개별 자본은 노동을 최대한 쥐어짜내 착취율을 높이는 데 이해관계가 있었지만 전체 자본의 장기적 성장이라는 관점에서는 건강한 노동력의 지속적인 공급이 필수적이었다. 한동안 개별 자본의 사내복지나 종교단체·자선단체의 빈민 구제 사업이 부분적으로 그런 기능을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결국 국가가 나서서 이 일을 떠맡아야 했던 것이다.

복지제도는 비록 노동계급의 투쟁으로 도입됐지만 그 운영권을 가진 자본과 국가의 관점에서는 건강하고 숙련된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해 공급하는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제도여야 했다. 자선사업은 그 혜택이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만 선별적으로 제공되고, 노동계급에게 재원 마련을 호소한다. 복지제도 초창기의 특징은 자선사업과 유사했다. 혜택을 받는 사람은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보다 사정이 더 열악해야 했다.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일하도록 강제하는 방식으로 혜택이 제공된 것이다. 새누리당의 선별적 복지는 노동시장의 경쟁을 악화시키는 열등 처우의 원칙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초창기 복지제도는 또 노동계급 안에서 재원을 마련하는 보험의 원리가 적용됐다. 이 또한 자선사업과 같은 특징이다. 자선사업이 구조적 빈곤을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계급내 재분배를 주장하는 정규직 양보론이나 사회연대전략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자본과 국가의 노동력 수급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복지지출은 모두 똑같지는 않다. 복지는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장애인, 병자와 같은 자본의 입장에서 노동력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제공된다.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제공하는 복지는 노동력 수급에 도움을 주는 생산적인 지출이다. 반면,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제공하는 복지는 비생산적인 지출이지만 사회구성원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헤게모니 수단으로 작용한다. 박근혜 정부는 노인 복지 공약을 내팽개치고 주던 복지마저 삭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는 사회 통합 수단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비생산적인 복지 지출을 줄이려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별적 복지 논쟁은 단지 저소득층 자녀들의 눈칫밥에 관한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모두 노동시장 경쟁으로 내몰고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의 생존권을 빼앗으려 한다. 복지를 지키는 문제는 노동계급의 삶과 투쟁 여건을 지키는 문제다. 게다가 정부가 복지를 삭감할 때는 복지를 담당하는 공공부문의 노동자들이 동시에 공격받는다. 복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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