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민주주의 역주행 판결 규탄한다:
부당한 출교로 3년 간 받은 고통에 배상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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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대법원이 2006년 고려대에서 출교당했다가 투쟁과 법원 판결로 복학한 학생들에게 ‘학교 당국이 1천 5백 만 원을 배상하라’ 하는 고등법원의 판결 (관련기사 고려대 출교 손해배상 소송 일부 승소)을 파기 환송했다(주심 대법관 권순일).
우리 출교생들은 징계로 인해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고려대 당국의 집요하고 악질적인 연속 징계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으며, 고려대 당국이 날조해 배포한 “감금 일지”는 우리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출교생들을 비난하게 만들었다. 출교에서 복학까지 2년이 걸린 탓에 사회 진출 시기가 늦어졌고, 본관 앞 농성을 하면서 건강이 악화하기도 했다. 가족들의 정신적 고통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같은 날 대법원은 박정희의 긴급조치 9호로 남산에 끌려가 20일 간 갇혀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도 원심 판결을 뒤엎고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독재 헌법도 헌법’이라고 판결한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 대법원은 쌍용차 해고무효확인 청구소송과 KTX 여승무원에 대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판결도 파기 환송했다. 심지어 지금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당시 수사관이었던 검사 박상옥이 대법관에 제청된 상태다. 박근혜의 반민주, 반노동 역주행에 착실히 발맞춘 대법원의 요즘 행보는 많은 이들을 분노케 했다.
이런 대법원이 오늘은 학생들을 악랄하게 징계한 고려대 당국의 손해 배상 책임을 면제해 주는 반민주적 판결을 내놓은 것이다.
출교 철회 - 권위주의적 표적 징계의 실패
2006년 고려대 당국은 삼성 이건희 회장 명예 철학 박사 학위 수여 항의 시위에 앞장서고 등록금 인상 반대 운동을 주도하는 등 각종 학내 문제에 목소리를 냈던 학생들을 출교했다. 출교는 입학 사실 자체를 말소하는 것으로, 퇴학보다 더 강력한 징계다.
고려대 당국은 고려대 병설 보건대를 통폐합한 뒤 기존 보건대 학생들을 차별했고, 심지어 진행중인 총학생회 선거에서 이들의 투표권을 박탈하라고 부당하게 간섭했다. 학생들은 이에 항의하면서 시위를 벌였는데, 당시 처장단은 요구안 수령조차 거부하며 버텼다. 처장들의 학벌주의적 막말에 분노한 보건대 학생들이 요구안 수령을 요청하며 완강히 버텨 15시간 가량 대치가 지속됐다. 법원 판결문에도 나오듯 “교수들은 … 요구안을 단지 수령만 하였다면 언제든지 고려대학교 본관 건물을 떠날 수 있었”다(퇴학효력정지 가처분 판결문). 시위가 있었던 다음날 고려대 당국은 보건대 학생들과 대화를 하겠다고 하더니 곧장 웹사이트에 ‘감금 일지’를 날조해 발표하고 마녀사냥을 시작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시위의 주력이었던 보건대 학생들은 한 명도 징계를 당하지 않았는데 시위에 늦게 참석하고 발언 한 번 하지 않은 학생까지 포함해 고려대 기존 재학생 7명에게는 출교라는 초강수 징계를 했다는 점이다. 견책-유기정학-출교 징계 순서대로 상벌위원회에 호출한 것으로 보아, 상벌위원회는 요식행위였고 징계 명단은 미리 확정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2006년 출교는 고려대 당국이 새로 통폐합한 보건대 학생들의 시위를 기회 삼아 눈엣가시였던 학생들을 권위주의적으로 표적 징계한 사건이다.
극단적 징계인 출교에 대해서 학내외 비판이 컸다. 우리 출교생들은 2년 간 본관 앞 천막에서 농성했다. 학생들 수십명이 천막 농성에 함께하고 수백명이 출교 철회 집회에 참가했으며 4천 5백 82명이 출교 철회 서명에 동참했다. 수많은 학내 자치단체와 노동조합 들이 출교를 비판했으며,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고려대민주동우회 등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과 다른 학교의 여러 학생회들, 박노자, 홍세화 등 진보적 지식인들, 임종인, 천영세, 노회찬, 이영순 같은 진보 정치인들까지 출교를 비판하는 등 사회적 지지와 연대가 모여 결국 2008년 3월에 복학했다.
고려대 당국은 출교, 퇴학, 무기정학으로 징계 수위를 내려가며 어떻게든 우리에게 징계 낙인을 찍으려 했지만, 총 5번의 재판에서 내리 패소하면서 징계를 완전히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된 소송에서 법원은 여러 차례 고려대 당국의 잘못을 지적했다. “학생들의 주장은 대학 내 자치활동의 일환인 총학생회의 구성과 관련하여 학생들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에 근거한 것 … 명백하게 부당하다거나 상식에 반한다고 할 수는 없다”, “사전에 계획되었거나 원고들의 주도에 의해 유발 내지 지속되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출교무효처분확인 소송 판결문), “원고들이 처장단 교수들에게 … 패륜적 행위를 한 것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 “대학은 … 민주적인 절차와 과정을 거쳐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성숙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음에도, 고압적이고 관료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결국 신청인들로 하여금 이 사건 감금행위에까지 이르게 한 면이 있다”(퇴학효력정지 가처분 판결문).
그러므로 이번 대법원 판결은 최소한의 민주적 권리는 인정했던 기존 판결 내용조차 감안하지 않은 반민주적 판결이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앞서 말했듯, 고려대 당국의 출교는 학생들의 정당한 저항에 대한 권위주의적 대응이었다. 특히 한국 사회의 제왕적 권력인 이건희와 그에 굴종하는 대학 당국에 항의했던 학생들을 주되게 노린 표적 징계였다. 출교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그토록 컸던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출교는 대학 구조조정 와중에 발생한 피해에 대한 반발을 겨냥한 것이기도 했다.
대학과 기업의 유착, 기업화 구조조정은 1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학 당국들은 비판과 저항에 직면해 구조조정을 원활히 할 수 없었지만 여전히 기업화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당장 중앙대와 건국대는 기업의 입맛에 맞도록 학과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으며, 두 대학 모두에서 이에 반발한 구성원들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출교 징계 당시에도 그런 일들이 있었고, 대학 당국들은 저항을 징계로 억눌렀다. 고려대, 한국외대, 동덕여대, 항공대 당국이 강력 징계를 남발했다. 학생들은 모두 투쟁으로 징계를 철회했다. 이런 승리는 비민주적이고 반교육적인 대학 당국들에 경종을 울렸으며 저항 운동에 자신감을 줬다.
대법원의 판결은 이런 효과를 조금이라도 되돌리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우리들의 복학과 졸업을 되돌릴 수 없듯이, 대학 당국들의 시도는 순탄치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이 단지 고려대 출교생들의 손해 배상 문제이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또한 다시 사건을 맡게 된 서울 고등 법원은 고려대 당국의 권위주의적 표적 징계에 분명한 손해 배상 책임을 지워야 할 것이다.
출교 사건 일지
- 2005년 5월 2일: 이건희 명예 철학 박사 학위 수여 항의 시위. 시위 직후 고려대 당국은 처장단 전원 사표 제출. 학생처장이 50명을 징계하겠다고 공언. 징계 대상자 5명 명단이 알려짐.
- 2005년 5월 24일: 어윤대 총장, 총학생회장을 만나 징계 계획을 완전히 철회한다고 밝힘.
- 2005년 말: 고려대와 고려대 병설 보건대 통합. 병설 보건대 학생회 역시 고려대 학생회 체계로 통합됨. 보건대 학생회장도 중앙운영위원회 참석 시작.
- 2006년 2월: 고려대 당국이 새내기 오리엔테이션 관련 새내기 연락처 제공을 거부해 학생 대표자 2백여 명이 2박 3일 간 입학처 점거. 고려대 당국이 연락처를 제공하면서 점거 종료.
- 2006년 4월 5일: 총학생회 선거 투표 며칠 전에 고려대 당국은 보건대 학생들이 투표에 참여하면 불법 선거라고 통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고려대 당국의 통보를 무시하기로 결정. 중선관위는 2시 경 본관 앞에서 시위 개최. 투표권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하려고 함. 학생처장은 요구안 수령조차 거부하면서 대치 상태가 15시간쯤 지속. 다음날 오후 처장단과의 면담을 약속받고 학생들은 시위 종료.
- 2006년 4월 6일 오전: 고려대 당국이 날조한 '감금 일지'를 웹사이트에 띄움
- 2006년 4월 6일 오후: 처장단과 학생대표자들, 보건대 통폐합 과정에서 불거친 차별 관련해 면담.
- 2006년 4월 11일: 고려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보건대 학생들의 투표권을 다시 한 번 인정함.
- 2006년 4월 17일: 학생상벌위원회 개최. 보건대 학생들이 아닌 고려대 기존 재학생만 총 19명이 상벌위원회에 호출됐고, 정해진 순서대로 들어가서 심의를 받음.
- 2006년 4월 19일: 학생상벌위원회에 들어간 순서대로 7명 견책, 5명 유기정학 1개월, 7명 출교
- 2006년 4월 20일: 출교생 7명 삭발 후 본관 앞 천막 농성 시작.
- 2006년 4~6월: 출교철회 서명운동에 고려대 학생 4,582명 서명.
- 2006년 5월 16일: 사범대 교수 5명, 출교 조치 철회 촉구 성명서 발표
- 2006년 5월 30일: 문과대 교수 44명, 대학 홈페이지에 학교 측 징계조치 비판하는 성명서 발표
- 2006년 11월 14일: 출교 장본인 어윤대 총장, 교수 투표에서 높은 반대표로 재임 실패.
- 2007년 4월 21일: 부당징계반대·학생자치탄압반대 시민사회연대와 출교철회 천막농성 1주년 사업단 출교 철회 요구 기자회견
- 2007년 9월: 고려대 학생 1,034명 출교처분 무효확인소송 탄원서 제출
- 2007년 10월 4일: 출교처분 무효확인소송 승소
- 2007년 10월 31일: 고려대 당국 항소 결정
- 2008년 1월 28일: 출교효력정지 가처분 소송 승소
- 2008년 2월 14일: 고려대 당국 전 출교생들 퇴학 결정. 농성 재개.
- 2008년 3월 17일: 퇴학효력정지 가처분 소송 승소. 복학 확정. 천막 농성 698일차.
- 2008년 9월: 전 출교생 서범진 졸업
- 2009년 2월 2일: 퇴학처분 무효확인소송 승소
- 2009년 2월: 전 출교생 강영만, 안형우 졸업
- 2009년 4월 13일: 고려대 당국 전 출교생들, 학교를 못 다닌 기간을 무기정학 당했던 것으로 소급해 징계하기로 결정
- 2010년 9월 1일: 무기정학처분 무효확인소송 승소
- 2010년 9월: 전 출교생들 고려대 당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제기
- 2011년 2월: 전 출교생 주병준 졸업
- 2011년 5월 19일: 손해배상 소송 1심 패소
- 2012년 2월: 전 출교생 김지윤 졸업
- 2012년 6월 22일: 손해배상 소송 2심 부분승소(졸업 후 무기정학 당한 3인에 대해 각 5백만 원씩 배상)
- 2012년 8월 14일: 손해배상 소송 2심 항소. 나머지 2명에 대한 손해배상도 인정하라는 취지.
- 2015년 3월 16일: 손해배상 소송, 대법원에서 고려대 당국 패소 부분 파기 후 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