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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사회운동의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기업이 사회운동의 적이 아니라 동반자라는 주장이 NGO들을 중심으로 부쩍 많이 제기되고 있다.
얼마 전 제주에서 열린 제4회 전국시민운동가대회에서는 “사회 공헌을 위한 기업과 NGO의 유쾌한 만남”의 자리가 마련됐다.
삼성, LG전자, SK텔레콤, 현대자동차, 포스코, 교보생명, CJ, KT, 한화, 이랜드 등 10여 개 대기업 ‘사회 공헌’ 실무자들이 사회운동 NGO들의 연대체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초청을 받아 토론회에 참가했다.
전경련 관계자도 참가했고, 대회는 대기업의 후원을 받기도 했다.(한화리조트가 장소를 제공했고 아시아나항공은 요금을 절반으로 할인해 줬다.)
“NGO와 대기업의 첫 키스”(〈한겨레21〉)로 표현된 이 날 만남은 그 동안 일부 NGO들과 기업들 사이에 이뤄져 온 협력 관계를 공식화·본격화하는 자리였다. 기업과 NGO들이 대결보다 “우정어린 파트너십“(〈시민의 신문〉)을 맺어 함께 ‘사회 공헌’ 캠페인을 벌이자는 생각은 NGO들 사이에 빠르게 확산돼 왔다.
NGO와 기업의 제휴는 기업들이 내는 기부금에 크게 의존하는 ‘아름다운 재단’이나 환경재단, 한국여성재단 등에서 두드러졌지만, 근래에는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에서 협력 모색이 증가해 왔다.
한 예로, 올해 환경운동연합은 독일계 다국적기업 바이엘과 함께 공동으로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녹색연합은 다국적 은행 HSBC와 수년째 환경캠프를 진행해 왔고, SK텔레콤, 아베다코리아와도 환경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의 ‘사회 공헌 활동’ 증가는 많은 NGO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사회 공헌 활동’ 증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감 증가보다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기업들의 대응을 나타낸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산업은 우리 나라보다 선진국에서 더 발달했는데, 선진국에서는 1970년대 말 이후부터 이런 산업이 크게 증가했다.
1970년대 말 이래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환경 파괴와 인권 침해, 불평등 등에 대한 대중의 우려가 증가했는데, 기업들은 이런 분위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이 경쟁사를 물리치고 더 많은 이윤을 얻는 데 해가 되기보다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자본가 신문 〈파이낸셜 타임스〉가 지적했듯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산업은 기업 이미지 개선 등 기업 홍보 수단으로 광고보다 훨씬 싸게 먹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나찌 시대 독일에서 독가스를 비롯한 각종 화학무기들을 개발했고, 제2차세계대전 당시 강제노동을 사용했고, 유전자변형(GM) 농작물 개발과 상업화에 앞장선 독일계 거대 농화학제약사 바이엘이 ‘사회적 책임’에 적극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쓰레기만두 파동으로 대규모 매출 감소를 겪은 CJ도 비슷한 사례다. 국내 식품업계 1위인 CJ는 쓰레기만두 파동 이후 환경운동연합과 ‘먹거리 안전을 위한 공동실무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다.
셸, 영국석유(BP), 포드 같은 화석연료 대기업들이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중의 우려 증가에 대응해 ‘환경친화적’ 기업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던 것도 비슷한 예이다.
그러나 기업들의 이런 노력들은 대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인데, 예컨대 이들 화석연료 대기업들은 환경친화적 말과 달리 계속해서 온실 가스를 다량 배출하고 있고 재생 가능한 무공해 에너지 투자를 기피한다.
이것은 환경단체와 환경 관련 행사에 28억 원을 지원하며 ‘환경 경영’을 내세워 온 포스코가 2003년에 5개월 동안 독극물 청산이 포함된 폐수 11만여 톤을 섬진강에 몰래 내버린 것과 비슷하다. 포스코는 또한 광양과 포항의 제철소에서 오염원 배출량을 축소 신고하는 방법으로 2000년부터 3년 넘게 최대 60억 원 이상의 대기오염물질 기본 배출부담금을 탈루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의 국정감사 요청 자료).
이런 포스코의 ‘환경 경영’ 사기극이 밝히 드러났는데도(전남 환경운동연합은 포스코 앞에서 지역 주민들과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포스코가 시민운동가대회에 초청된 것은 얄궂은 일이다.
포스코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과의 활동도 비슷한 모순을 안고 있다. 사실, NGO들이 ‘전략적 파트너십’을 모색하는 대기업들은 탈세를 밥먹듯 하고 환경과 식품안전 규제 등 각종 규제 완화에 목청 높이는 기업들이기도 하다.
NGO들이 기업과 공동으로 ‘사회 공헌’ 활동을 벌이는 것 자체가 이런 기업들의 신망을 높이는 것을 돕는데도, 기업 비판을 무디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공허하게 들린다.
기업들이 제공하는 후원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에 쓴다면 괜찮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일 뿐이다.
기업 후원을 통해 사람들이 받게 되는 복지는 기업들이 주창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삭감되는 공공서비스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다. 환경과 식품 규제완화와 임금 삭감, 기업 세금감면 등으로 기업들이 덜게 되는 비용 삭감과 이윤 상승과도 비교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이 세계에서 그 어느 때보다 증가했지만,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가난과 불평등, 환경 재앙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이 갈수록 증가하는 것은 아래로부터 저항에 직면한 기업들이 그 운동을 흡수해 운동을 약화시키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이 몇몇 주요 다국적기업들과 함께 ‘세계적 협약’을 출범시킨 목적도 대기업과 ‘시민사회’를 묶으려는 시도였다.
이런 시도는 주요 반자본주의 운동가인 월든 벨로가 경고했듯이 시애틀 시위 이후 성장한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정당성 위기”에 시달리는 기업들의 “부드러운 반격”이다. 이러한 반격을 맞받아치지 못하고 순응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한국의 주요 NGO들이 2002년 아셈 항의 시위 때와 달리 지난 6월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 경제정상회의에 불참한 것은 단적인 예다.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효과에 반대하면서도 신자유주의의 주요 추진자인 기업에 반대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부패와 탐욕으로 신뢰성 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들의 대화 노력을 거부하고 기업의 실체를 폭로하는 것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사회 운동을 성장시키는 데 이바지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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