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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편지에 대한 답변:
성 구매와 성 노동권을 어떻게 볼 것인가

146호에 실린 내 기사, ‘성매매처벌법 21조 1항 위헌법률심판 ― 성매매 처벌은 성매매 여성들을 더욱 고통에 빠뜨릴 뿐이다’에 대한 몇 가지 의문들이 독자 편지로 들어왔다[‘성매매처벌법 위헌심판 관련 기사를 읽고 궁금한 점’(박연오)]. 독자 편지에서 박연오 씨는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째, 성 구매 남성을 처벌하지 않더라도, 성 구매를 도덕적 지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것 아닌가? 둘째, 성 노동권을 지지해야 하는가? 셋째, 성매매방지법의 효과에 대한 여성주의자들의 견해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답한다.

성 구매는 성과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의식을 나타내지만, 성 구매를 도덕적 지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처벌 강화 논리로 이어지기 쉽다. 2004년 10월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집창촌을 단속 중인 경찰. ⓒ사진 제공 〈오마이뉴스〉

성매매는 자본주의에서 여성의 낮은 지위와 인간의 소외를 나타내므로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존재하는 광범한 성매매는 단순히 개인들의 욕망이나 의식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산물, 즉 경제적 착취와 불평등, 소외의 복합적 산물이다. 따라서 성매매의 사회적 요인들을 무시한 채 성 판매자나 성 구매자 개인들의 도덕성 문제로 접근하면 문제 해결은커녕 성매매를 낳는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지배자들의 위선을 은폐하고 지배계급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성매매에 관한 지배계급의 전통적 태도는 성매매를 성 판매 여성들의 도덕적 타락 문제로 취급하며 성 판매 여성들을 억압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이런 태도가 유지되는 가운데 오늘날에는 여러 나라에서 여성주의 이데올로기를 일부 흡수해 성 매매 문제를 성 구매 남성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 효과로 성 구매자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강화되고 있다.

평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면 남성이 열악한 처지의 여성에게 돈을 주고 성을 사는 행위에 불쾌감을 느끼고, 성 구매에 비판적 태도를 취할 것이다. 분명 성 구매는 성이나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의식을 나타낸다. 그러나 성 구매자들의 악영향은 성산업에서 이득을 취하는 업주나 알선업자와 대등하게 취급될 수 없고, 성 구매자들 중 진정한 권력자는 극소수다. 대규모 빈곤과 여성의 저임금을 만들고, 육아 부담을 개별 가정에 전가하며, 왜곡된 성 의식을 확산하는 핵심 주체는 경제·정치 권력을 장악한 집단들이다.

낙인

성 구매자들을 도덕적 지탄의 대상으로 삼으면 성매매의 구조적 요인을 가리고 성 구매자들을 형사 처벌하라는 목소리를 강화하기 쉽다. 그리고 성 구매자들에 대한 형사 처벌이나 도덕적 비난 강화는 성매매를 감소시키지도 못했고 종종 성 판매자들의 조건을 악화시켰다. 따라서 성매매 자체는 비범죄화하고 성 판매자들에게 더 나은 일자리와 복지 혜택, 교육 기회 등이 제공돼야 한다.

이런 입장은 성 노동권 옹호와는 다소 다르다. 성 노동권 주장은 흔히 성매매를 여느 직업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지만 성매매는 여느 일자리에 견줘 신체적·심리적 건강에 끼치는 위험도가 훨씬 더 높은 일이다(물론 성 판매자들의 처지가 다 동일한 것은 아니다). 성 노동권론자들 주장처럼 성 판매자들에 대한 낙인은 사라져야 하지만, 이를 위해 성매매를 좋은 일자리로 미화해서는 안 된다. 또한 성매매가 성과 여성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을 왜곡하며 불평등을 강화한다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성산업을 합법화해 국가가 관리하는 나라에서도 성 판매자들에 대한 낙인은 사라지지 않는다. 국가가 성산업을 관리하는 모델에서는 성 판매자 등록을 요구하는데 이것은 성 판매자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 강화를 뜻하기도 한다. 성매매를 경제적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일시적인 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매춘부’로 평생 기록될까 두려워하는 여성들은 등록을 거부하고 불법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성 판매자에 대한 낙인은 노동계급과 민중이 집단적 투쟁을 통해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인간의 필요에 기초한 사회를 건설할 때만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한편, 현재 여성주의자들은 대체로 성매매 여성의 비범죄화에 찬성하지만 모두 같은 생각을 지닌 것은 아니다. 많은 여성주의자들은 성매매 여성을 비범죄화하고 성 구매자 처벌을 강화하는 스웨덴 모델을 옹호하고, 또 상당수 여성주의자들은 성 노동권 옹호라는 시각에서 비범죄화와 합법화를 찬성하기도 한다. 성매매 비범죄화에 찬성하지만 성 노동권 주장에는 비판적인 사람들도 있다.

성매매처벌법 21조 1항 위헌법률심판에 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여성주의자들이 많지 않아서 현재 여성주의자들 다수가 성매매방지법의 효과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한국여성단체연합 소속 여성단체들은 성매매방지법이 여성 인권 신장에 거대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이전 법률보다 알선업자 처벌이 강화됐고 성매매 여성이 ‘윤락녀’가 아니라 ‘피해자’로 인정됐고 성매매가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을 강화했다는 점 등을 주요 성과로 꼽았다. 그러나 성매매방지법에서 ‘피해자’로 인정된 여성들이 매우 제한적(폭력이나 강요가 입증돼야 한다)이라는 점을 한계로 꼽았다. 2013년에 남인순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 개정안이 그 점을 보완해 모든 성판매 여성의 비범죄화를 담았는데 다수 NGO 여성단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 같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소속 여성단체들이 2004년 성매매방지법을 환영하면서 강력한 단속을 촉구하던 입장과 비교해 보면, 모든 성매매 여성의 비범죄화 주장은 과거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강력한 단속을 통해 성매매를 근절해야 한다는 태도는 변함이 없다(현재 성매매처벌법상의 성 구매자와 알선업자 처벌은 남인순 의원안에서 더 강화된다).

이런 태도는 여전히 결정적 문제를 안고 있다. 빈곤과 저질 여성 일자리 양산의 주범인 국가에 성매매 근절을 요구하는 것은 목표 성취가 무망할 뿐 아니라 지배계급의 사회 통제에 이용돼 억압 강화에 뜻하지 않게 일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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