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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구조 개악과 현대·기아차 집행부의 투쟁 회피:
작업장별 분산 대응보다 중앙 차원의 투쟁 조직이 효과적이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강행할 태세다.

고용노동부 장관 이기권은 ‘임금피크제·임금체계 개악에 집중하겠다’며, 사업장별 임단협에 반영될 수 있도록 5월 중에 취업규칙-임금체계 개악 가이드라인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미 5월 7일 공공부문에 대한 임금피크제 지침을 내렸다. 6~7월엔 해고요건 완화 가이드라인이 추진된다.

특히 올해 경제 성장률이 더 낮아질 것이라는 발표가 연달아 나오는 가운데, 정부는 거듭 “구조 개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강조하고 있다. 긴장을 늦추지 말고,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 투쟁을 해 나가야 할 이유다.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본격 추진하는 상황에서 실질적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2015년 5월 1일 노동자들이 노동시장 구조 개악 반대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이미진

정부의 공격이 법 개악이 아니라 가이드라인·지침 등으로 추진된다 해서, 사업장 별로 분산 대응을 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4·24 파업 이후 민주노총의 5~6월 투쟁 계획이 제때 제시되지 못하는 가운데, 일부 노조 지도자들은 이미 투쟁을 회피하거나 배신적 양보를 시도하는 등 우려스런 행보를 하고 있다. 금속노조의 핵심 작업장인 현대·기아차지부 집행부도 그중 하나다.

현대·기아차지부 집행부는 지난 3월 말까지로 기한이 정해져 있던 통상임금 협상을 무기한 연장하면서 투쟁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심지어 사측이 호봉제를 폐지하고 직무성과급제를 도입하는 등 임금체계 개악안까지 내놓은 상황에서도 말이다.

현대차 이경훈 집행부와 기아차 김종석 집행부는 ‘인내심을 가지고 협상을 지속하겠다’고 말하지만, 개악안을 강요하는 사측과 협상 자리에서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박근혜 정부가 가이드라인 제정으로 사측을 지원하려는 마당에, 투쟁의 힘을 보여 주지 않는 한 사측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두 집행부는 현대·기아차 그룹사 연대회의 차원의 공동 대응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현실에서 이 말은 투쟁을 늦추는 핑계거리가 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통상임금 투쟁 때도 서로를 핑계 대며 투쟁을 제한했다. 이경훈 집행부는 올해 3월 말까지 사측과 합의를 연기시키며 투쟁을 마비시켰고, 김종석 집행부는 법적으로 좋은 조건을 활용해 투쟁을 발전시키기보다 이경훈 집행부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기아차지부는 얼마든지 독자적으로 싸워 성과를 낼 수 있는 힘이 있다.

이 때문에 평조합원들 사이에선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다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통상임금 확대는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 임금체계 개악까지 도입돼 성과 경쟁에 내몰리고 임금이 깎이는 것 아니냐는 타당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현대·기아차지부 집행부는 내년에 시행하기로 돼 있는 8+8 노동제(1, 2조 각각 8시간 근무)와 관련해, 노동강도를 높이고 휴일·노동조합 활동 시간 등을 줄이는 양보안까지 내놨다. 이번에도 이경훈 집행부가 먼저 후퇴를 시작했고, 곧이어 김종석 집행부가 뒤를 이었다.

양보안

안 그래도 2012년 8+9 노동제(1, 2조 각각 8시간, 9시간 근무) 도입 때 노동강도가 세져 고충을 느끼는 노동자들은 이런 집행부의 양보안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기아차에선 집행부의 양보안에 반대하는 항의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조립라인의 대의원들은 집행부 안 폐기를 촉구하며 조합원 서명, 협상장 앞 항의 시위 등을 하기로 했고, 좌파 활동가들은 ‘협상 결렬과 양보안 폐기’, ‘즉각적인 통상임금 투쟁 돌입’, ‘비정규직 신규 채용안 폐기’ 등을 내걸고 대의원대회 개최를 요구하는 연서명을 조직하고 있다.

기층 활동가들이 이 같은 항의를 더 강력하게 키운다면, 노조 집행부의 배신적 타협 시도를 좌절시키고 투쟁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금속노조 차원의 투쟁도 긴요하다. 통상임금, 임금체계, 노동시간 등의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 개악의 핵심 쟁점들이다. 이런 투쟁들을 사업장별 임단투로 흐트러 놔서는 안 된다.

특히 이런 분산적 투쟁은 사측의 취업규칙 개악에 취약한 미조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후퇴를 방치하는 결과도 낼 수 있다.

더구나 지금 새정치연합은 공무원연금 개악안 합의 모델을 노동시장 구조 개악에도 적용하고 싶어 한다. 정부도 독일에서 미니잡·파견제 등 저질 일자리를 대폭 늘린 ‘하르츠 개혁’을 “노사정 대타협 모델”로 추켜세우고 있다. 노사정위는 최근 ‘하르츠 개혁’의 주역 페터 하르츠를 초청해 강연회를 하기도 했다.

이럴 때 한국노총 집행부는 어물쩍 협상장으로 돌아가려 할 수 있고, 민주노총 내에서도 협상을 중시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정부의 가이드라인 발표를 저지하기 위한 중앙 차원의 투쟁을 계획해야 한다. 금속노조는 가이드라인 발표 시 파업으로 저지하겠다는 계획을 확정한 바 있는데, 진지하게 이 계획을 현실화하려면 지금부터 그 위험성을 알리며 투쟁을 조직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