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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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남측 실무단은 이미 북한에 들어갔고 북한의 소년예술단이 서울을 방문해 공연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정상회담이 상징적인 회담에 그치지 않기를, 그래서 반짝 해빙이 아닌 항구적 긴장완화가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정상회담 개최 합의 소식이 알려진 뒤 정상회담이 이것을 이뤄 내야 하고 저것도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가 여러 단체들에서 제기됐고, 이를 촉구하기 위한 운동들이 일어났다.
4월 말에 이미 학계·시민단체에서 '냉전 법률' 개폐론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지금껏 쉬쉬하며 처리해 온 재북 가족에 대한 송금을 정삼회담도 한다는 마당에 이제 좀 공개적이고 합법적으로 해보자는 별것도 아닌 시도가 국가보안법과 교류협력법의 개폐라는 뜨거운 쟁점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던 것이다. 이 논의는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 게 국가보안법상 '금품제공' 죄도 되고 교류협력법상 교류협력도 되는 모순적 상황 때문에 불거졌다.
냉전 법률 가운데 단연 국가보안법 문제가 핵심이다. 정상회담 하겠다면서 회담 상대를 반국가단체 수괴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버젓이 존속시키겠다는 것은 부조리한 일이다. 김대중 자신이 반국가단체 수괴 김정일과 '회합·통신'을 하기 위해 북한을 '잠입·탈출'하고, 김정일과 포옹하며 '찬양·고무'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말이다. 이런 모순이 한껏 부각된 정상회담 국면을 타고 국가보안법 철폐 연대회의가 지난해에 이어 재가동됐다.
그 동안 월북 간첩 가족 취급 받으며 불이익까지 당해 왔던 납북자 가족들도 납북자 송환 문제를 정상회담 의제로 삼아 달라고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5월 12일치 〈한겨레〉에는 납북 어부의 딸이 북한의 수용소에 갇혀 있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애절한 편지가 실렸다.
남북 정상회담 국면에서 단연 두드러지게 떠오른 쟁점은 미국 반대였다. 정상회담이 발표되자마자 미국 국방장관 코언이 "우리는 한반도에 주한미군을 장기주둔할 계획을 여전히 갖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발언한 데다 때마침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 앞바다에서 벌어진 오폭 사건이 주한미군 주둔의 문제점을 부각시켰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한미행정협정 전면 개정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대학생들의 미대사관 앞 시위를 비롯해 여러 사회 단체들이 한미행정협정 개정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잇달아 벌였다.
민주노총은 5월 15일 여러 요구들을 종합해 남북 정상회담에서 반드시 논의해야 할 4가지 의제와 3가지 선행조처를 제시했다. 4가지 의제는 △군비축소와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긴장 완화와 삶의 질 개선 △통일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법·제도의 제거 △자유교류와 협력, 민간 차원을 포함한 자유로운 통일논의 △초국적 자본의 신자유주의 반대와 남북 민중의 생존권 보장이고, 3가지 선행조처는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석방, 장기수 북송, 자유로운 통일 논의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 전면 개정과 한·미·일 공조체제를 남북 간의 민족 공조 체제로 바꿈 △주 5일 근무제 실시와 자동차 산업 해외매각 철회 등 노동자·서민의 생존권 보장이다.
우리는 민주노총의 이러한 요구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이것은 노동자 계급이 원하는 의제를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뿐 아니라 아래로부터 제기되는 이런 의제들에 정부가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도 밝히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 계급이 원하는 항구적 긴장 완화와, 북한 위협을 근거로 유지돼 온 국내 정치 억압 철폐가 노동자들 자신의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될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지난 호에 기고한 나의 글 '남북 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는 아쉽게도 이런 실천적 과제를 제시하지 못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하겠다면서 국가보안법 등 억압 법률을 그대로 유지하려 하고 평화를 외치면서 군비증강에 여념이 없는 김대중 정부의 위선을 폭로하는 데 그쳤던 것이다. 지난 50년 동안 북한 존재를 근거로 온갖 억압과 탄압을 일삼아 온 남한의 지배자들 자신이 반국가단체 '수괴'와 만나려는 이 모순된 상황은 남한 통치 이데올로기의 으뜸인 대북 위협 이데올로기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한다면서 국가보안법 웬말이냐, 국가보안법 철폐하라"는 구호가 잘 드러내듯이 이데올로기 위기를 이용해 대중 자신이 투쟁하게끔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편, 폭로도 여전히 중요하다. 우리 운동에는 이것이 거의 결여돼 있다. 정상회담 국면을 이용하려는 것은 앞서 지적했듯이 올바른 일이지만, 폭로가 빠진다면 환상을 조장하거나 기껏해야 환상을 추수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다.(지금 벌어지는 여러 운동들은 폭로가 빠진 개입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에 항구적인 긴장완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며 북한을 근거로 유지돼 온 국내 정치 억압도 저절로 완화되지 않을 것임을 설명해 정상회담에 대한 환상을 경계하는 동시에, 대중의 환상을 이용해 운동을 고무할 줄도 알아야 한다.
계급의 관점
정상회담이 한반도에 항구적 긴장완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는 나의 주장이 많은 사람들이 상식처럼 받아들이는 생각과 사뭇 다르기 때문에 여러 오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내 주장을 분명히 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점을 먼저 간단히 지적하려 한다.
첫째, 정상회담을 비판한다고 해서 그것이 다 냉전 우익적 입장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김대중이 이한동을 총리로 지명한 것에 대해 한나라당이 비판한다고 해서, 이한동 총리 지명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한나라당과 똑같이 취급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여러 시민단체와 노동단체 들은 한나라당과는 다른 관점과 취지에서 이한동을 비판하고 나섰다. 운동권 일각에서는 자기네 주장을 비판하면 무조건 반공주의에 찌든 사람 취급하곤 해 왔는데 이것은 올바르지 않은 태도다. (북한의 인권 문제나 탈북자 문제를 비판하면 즉각 냉전주의자 취급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 호에 실린 글은 냉전주의자들과 분명한 선을 긋고 출발했다. 무엇보다 냉전주의자들은 적대, 군비증강, 냉전입법 등이 유지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정상회담을 비판하지만, 우리는 진정한 평화와 군축과 냉전입법 폐지를 가져올 수 없다는 점에서 정상회담을 비판한다.
둘째, 어떤 사람들은 '그러면 정상회담을 반대하자는 것이냐'고 묻는다. 그렇지 않다. 정상회담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반대한다는 게 아니다. 정상회담을 해도 노동자 계급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지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저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지지한다는 것은 물심양면으로 지원·협조한다는 것인데, 정상회담에 대해 이런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은 그 성격상 행위 주체가 김대중이고 그는 노동자 계급의 적이다. 그래서 엊그제까지 운동 세력 거의 모두가 "김대중 정부 반대"를 외쳤다. 그는 엊그제까지, 아니 지금도 구조조정을 강조해 해고를 부추기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감옥에 처넣고, 집회에 참여한 노동자와 학생들을 두들겨 패고, 노동시간 단축 요구를 외면하고 노사정위에 떠미는 책략을 부림으로써 시간 벌기나 하려 하는 노동운동의 적이다. 적이 하는 일을 어떻게 물심양면 지원·협조할 수 있는가? '김대중 정부 반대'를 접는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실제로 일부 운동 세력은 정부에 대한 공격을 회피한 채 반미만을 외치기도 하고, 운동 세력이 '너무 나가면' 우익의 반발을 불러 정상회담에 해를 끼칠까 봐 두려워 행동을 자제하기도 한다.
적이 하는 일이어서 지지할 수 없다면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 아니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이 하는 일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마음을 먹어서가 아니라 근본적인 이해관계의 대립에서 비롯하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예컨대 겉으로 좋아 보이는 조처도 사실은 노동자 계급을 회유·분열시키기 위한 것이거나 더 큰 악을 가리기 위한 눈가림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밀려서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예컨대 인권법을 제정한다면 그것은 겉으로는 좋은 일로 보일지 몰라도 피억압 민중의 인권을 항상적으로 억압하는 자가 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위선일 뿐이다. 정상회담도 마찬가진데 김대중이 평화를 떠드는 것은 완전한 위선이다. 지난해에 김대중은 서해교전이 자신의 대북정책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며 승전을 자랑스러워했다. 김대중은 한반도의 항구적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할 진지한 의지도 없고 능력은 더더욱 없다.
국제적 관점
셋째, 많은 사람들은 정상회담의 성사와 그것이 거둘 성과가 남북 정상들의 손에 달려 있는 양 생각한다. 김대중 대북 정책의 성과라거나 북한 자주외교의 성과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조금 더 시야를 넓혀 북미 관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정상회담 국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 세계 체제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미 관계도 미국과 북한 둘만의 관계에 따라 변하는 게 아니다. 제국주의 세계 체제의 정치·경제 상황과 열강 사이의 세력 관계가 더 근본적인 규정력으로 작용한다.
냉전 해체 이후 제국주의 세계 질서는 열강 간의 다극화된 경제적·군사적 경쟁을 특징으로 한다. 미국은 소련 붕괴 이후 최후의 승자처럼 보였지만, 다른 서방 국가들이 소련이라는 외적 때문에 미국의 지도를 따라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압력에서 벗어나자 미국은 패권적 지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미국은 패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전쟁 벌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1990년대 이래 벌어진 전쟁들(제2차 걸프전, 나토전쟁 등)은 대부분 '세계 깡패'인 미국이 일본, 독일, 다른 유럽 나라들에게 자신의 지위를 확인시키기 위해 '지역 깡패'를 손보는 방식을 취했다. 2차 걸프전은 부분적으로 석유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는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해야 함을 서방 나라들에게 일깨운 전쟁이었고, 나토 전쟁(유고 공습)은 유럽 연합이 자기 뒷마당에서 벌어지는 문제조차 미국에 의존해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북한은 잠재적으로 동아시아판 이라크(후세인), 동아시아판 유고(밀로셰비치)다. 미국이 북한을 동아시아에서 패권적 지위를 재확인하는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는 뜻이다. 1994년에 미국이 북한에 전쟁 위협을 가한 것도, 1998년에 금창리 핵시설과 미사일을 빌미로 압박을 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미국은 냉전 해체 이후 패권적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지위를 재천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최근에 북미 관계에 긴장 완화 국면이 펼쳐지고 있는 것도 제국주의 세계 질서 속에서 열강 간의 세력 균형을 반영하고 있다. 1999년 8월에 일본이 전역미사일방위체제(TMD)에 가입하기로 약속했는데, 이로써 미국은 일본의 안보가 미국의 손에 달려 있음을 일본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효과적인 수단을 확보하게 됐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지위를 넘볼 수 있는 잠재적 경쟁 세력(일본)을 일단 자기 영향력 아래 묶어 둔 미국은 걱정을 한시름 덜게 됐다. 미국은 1990년대 초와는 달리 일본의 경제 추격도 따돌리고 있다. 이 추세는 1998년 일본을 포함해 동아시아를 강타한 경제 위기 이후 더 두드러졌다.
일본의 TMD 가입은 나토 전쟁으로 미국과 러시아·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된 것과 관련 있는 듯하다. 잘 알다시피 러시아와 중국은 핵강국들이다. 반면, 일본은 제2차대전 이후 군사 강대국으로 나서는 데 근본적인 제약이 따랐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미국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함으로써 미국은 일본을 자기 세력권 안에 두는 이점을, 일본은 미국의 방패막이 아래 군사력을 증강할 수 있는 이점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일본의 TMD 가입이 확정된 뒤 〈뉴욕 타임스〉는 "일본은 이제 민주주의 국가로, 특히 미국과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하는 한, 폭력적인 역사를 되풀이할 가능성은 적다."고 일본의 군비 증강을 두둔했다.
이러한 사실은 1999년 하반기 이래 동아시아에서 러·중을 한편으로 하고 미·일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세력 균형이 이루어져 있음을 뜻한다. 이 국면은 제국주의의 관점으로 볼 때 '안정'으로서, 전부터 이런 국면에서 해빙이 찾아오곤 했다. 그러나 이 국면이 중단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불안정 요인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동아시아는 스프라틀리 군도, 대만과 중국 관계 등 세계적으로 봤을 때 불안정 요인이 산재한 위험 지역이다. 무엇보다 일시적 안정을 가져온 TMD 자체가 역설적으로 동아시아 군비 증강을 부추겨, 대비극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북미 관계 변화의 칼자루를 북한이 쥐고 있었던 양 얘기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북미 관계가 긴장 완화 국면으로 돌아선 것은 북한이 미국을 미사일로 위협했기 때문도 아니고, 북한이 새삼 관계개선을 바랐기 때문도 아니다.
미국을 군사력으로 대적할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북한밖에 없으며, 이를 깨닫고 미국이 무릎을 꿇었다는 한호석 씨와 한총련 지도부의 주장은 완전히 황당한 얘기다. 이런 논리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휘두르며 미국을 쥐락펴락한다고 보는 우파의 '핵카드', '미사일 카드'론을 그대로 뒤집어 놓은 것과 다름 없다. 하지만 미국의 군사비는 러시아, 중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의 군사비를 다 합친 것보다도 많고, 북한의 약 56배나 된다.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때문에 TMD와 국가미사일방위(NMD)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완전한 사기다. 미국의 과학자협회는 북한 미사일 기지 위성 사진을 구입해 정밀 분석한 뒤 이렇게 결론내렸다. "이러한 원시적인 미사일 위협을 근거로 수백억 달러의 비용을 투입하면서 (미국이) 미사일 정책을 재조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최근에 공개된 상업위성사의 촬영 결과는 노동 미사일 기지가 거의 주목할 만한 가치도 없는 가장 원시적인 시설임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최근의 북미 관계 변화는 북한이 새삼 관계개선을 바랐기 때문도 아니다. 1992년에도 북한은 북미/북일 관계개선을 바랐지만 미국은 느닷없이 핵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미국은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핵, 미사일, 화학무기, 심지어 마약과 인권까지 빌미로 삼을 수 있다.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바란 것은 최근 일이 아니다. 주민을 염두에 둔 북한 당국의 반미 구호와 북한을 호전 세력으로 몰기 위한 서방 언론에 이중으로 가려 제대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국방위원장 김정일은 1997년에 한 논문에서 "미국을 백년숙적으로 보려 하지 않으며 조-미 관계가 정상화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일성도 죽기 얼마 전인 1994년 4월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미국과 대화하기를 원한다. … 미국에 방문해 낚시·사냥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싶다." 지난 몇 년 동안 평화협정 체결은 북한의 한결같은 요구였지만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한의 처지가 아니라 제국주의 세계체제의 처지에서 비판적으로 봐야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남북 관계는 제국주의 세계 질서에 연동될 수밖에 없다. 남북 두 정상들의 의지에 따라 한반도에 항구적 긴장완화가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몽상이다. 진정한 평화체제 수립은 김대중의 능력도, 김정일의 능력도 벗어난 일이다. 평화를 그저 전쟁의 전주곡일 따름으로 만드는 제국주의 세계체제 자체에 반대해 싸울 때만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정상회담과 이한동
정상회담 국면을 맞아 여러 요구들이 아래로부터 제기됐지만 김대중 정부는 이런 의제들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김대중 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조차 실태 파악도 제대로 안 돼 30년 전 통계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첫술에 배부르랴는 말로 기대치를 낮추려 하는 한편, 군축·국가보안법 철폐 요구 등은 아예 억누르려고 한다. 우익의 대표 주자인 〈조선일보〉 컬럼니스트 김대중은 "북한은 지난 십수년간 남북한 당국간 대화의 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남한내 연북세력의 자유로운 활동을 내세워 왔다."며 "우리의 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는 그 어떤 양보도 '묵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겉으로는 북한을 겨냥한 듯한 이 발언은 사실상 대북 이데올로기 균열을 뚫고 올라올 수 있는 남한내 운동 세력의 투쟁을 염두에 둔 것이다. 1994년 김일성 사망 뒤 있었던 조문파동이 그랬듯이 말이다.
운동의 일각에서는 김대중 정부의 정책 지지 기반이 좁아 우익의 반동에 직면해 뜻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지금껏 우익의 반대는 김대중 정부에게 좋은 핑계거리였을 뿐이다. 김대중은 정치적·시민적 권리의 억압을 완화할 생각이 전혀 없다.
김대중은 야당 총재 이회창과 만난 영수회담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기로 약속했고, 통일부 장관 박재규는 지난 4월 28일 한나라당사를 방문해 국가보안법 개폐가 제기되더라도 "우리의 입장을 확고하게 견지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남북 정상회담이 발표된 뒤에도 김대중 정부는 한총련 대의원들에게 이적단체 가입 혐의로 소환장을 발부했고, 노동절 집회에 참여한 학생들을 폭력을 휘두르며 구속했고, 주말 도심 집회를 제한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9월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구속자는 계속 양산되고 있다. 지난 5월 23일 라창순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의 항소 기각은 김대중 정부의 위선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재판장은 라창순 고문의 항소를 기각하기로 결정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북한은 6·25 전쟁 이래 줄곧 대남 적화전략을 고수하고 남한의 전복을 꾀해 왔으며, 북한의 최근 주장은 위장평화전술로 볼 수 있고, 국가보안법은 유효하다."
정상회담 성사 자체가 국가보안법을 무력화시킬까?
이런 사실은 "남북 정상회담 성사 자체가 국가보안법의 무력화를 촉진할 것"이라는 한총련 지도부와 한호석 씨의 기대가 전혀 현실적이지 않음을 보여 준다.
이런 기대는 전국연합 기관지 《민》 지에 실린 한호석 씨의 글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잘 드러나 있다. 이 글에서 한호석 씨는 "북(조선)[이] …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총선 사흘 전에 합의해 줌으로써 총선에서 김대중 정권에게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서두르기까지 했[던]"(128쪽) 것은 김대중의 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해 국가보안법을 개정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한다. "적어도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려 하거나 철폐를 반대하지 않는 세력이 승리하도록 하는 것이 북(조선)에 유리할 것은 자명하다."(129쪽)는 것이다. 한호석 씨가 북한 〈로동신문〉을 인용하면서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를 뜨겁게 달구었던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에 참여했던 많은 투사들은 김대중이 국가보안법 철폐에 진지한 의사가 없음을 알고 있다. 김대중은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날치기 통과도 서슴지 않고, 동티모르 파병처럼 야당의 온갖 반대도 무릅쓸 각오가 돼 있지만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서는 결코 이만한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애초에 김대중이 추진하려던 개정안은 국내 운동 세력 탄압의 핵심 조항들은 그대로 놔둔 별볼일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들은 국가보안법은 백번을 개정해도 악법이라고 맞섰던 것이다.
김대중은 총선 뒤에도 국가보안법 개정에 한사코 반대해 온 자민련과의 공조를 깨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그가 총리로 지명한 이한동은 극우익 잡지 〈한국논단〉이 1997년에 대통령 후보로 지목한 자이고, 1988∼89년 내무부 장관 시절에 풍산금속, 지하철 파업 등에 경찰력을 투입해 노동자 투쟁을 탄압하고 좌파 마녀 사냥을 진두지휘한 자다.
이런 김대중을 지지하는 것은 우리 운동에 해를 끼치는 일이다. 게다가 지난 총선에는 노동자·학생의 정치 운동인 민주노동당이 출마하지 않았는가. 한호석 씨도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세력은 김대중 정권을 투쟁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데, 북(조선)은 그 정권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인식의 혼동"(128쪽)을 염려한다. 그러면서 "북(조선)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국가보안법 체제를 무너뜨릴 돌파구를 내려 하고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136쪽)고 당부한다. 북한 당국의 깊은 뜻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정권이 우리 운동의 투쟁 대상인 남한 정권과 거래('북풍')한 게 한두 번도 아닌 마당에 새삼스레 정상회담 핑계를 대는 것은 너무 군색하다.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지 않았던 1996년 4·11 총선 당시의 비무장지대 총격사건은 어떻게 된 것인가?
또, 정상회담 자체가 국가보안법 체제를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1972년에 북한 부수상 박성철이 서울을 방문하고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이 평양에 갔던 일, 1985년에 북한의 허담이 김일성의 친서를 들고 서울을 방문하고 답례로 안기부장 장세동이 평양에서 김일성을 만난 일, 1990년에 북한 정무원 부총리 김달현이 남한의 산업 시설을 시찰하고 정원식 등 고위급회담 대표단이 평양에서 북한 당국 고위 간부들과 흥겹게 술을 마신 일 등 이 모든 것이 국가보안법의 존재에 의구심을 갖게 한 일들이지만 지금껏 국가보안법이 철폐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북 이데올로기의 위기를 틈타 "남북 정상회담 한다면서 국가보안법이 웬말이냐"고 김대중 정부의 위선을 폭로하고 자주적으로 투쟁할 때만 국가보안법 체제를 무너뜨릴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 자체가 국가보안법의 무력화를 촉진한다"는 주장은 '국가보안법 철폐'를 회담 수락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번번이 말꼬리를 내린 북한 당국에게는 그럴듯한 변명이 될 수 있겠지만, 남한 운동의 입장에서는 정상회담에 기대게 함으로써 투쟁의 발목을 잡는 해로운 주장이다.
민족대단결을 통한 한미 공조의 균열?
정상회담 국면에서 두드러지게 떠오른 쟁점은 반미와 주한미군 철수였다. 매향리 오폭 사건이 있은 뒤 학생과 여러 시민·사회단체들('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은 한미행정협정 개정, 매향리 사격장 폐쇄, 한국전 당시 양민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를 잇달아 열었다. 우라늄탄 사용 의혹은 분노를 더욱 증폭시켰고 이에 대해 미군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것(NCND)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1997년 3월 주한미군 대변인 짐 콜슨은 "[우라늄탄은] 한반도 유사시 사용을 위한 것으로 관리상 문제가 없으며,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그 존재를 인정한 바 있다. 한미행정협정 개정 요구는 미군 범죄 등과 관련돼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는데, 미국은 개정 논의를 차일피일 미뤄 왔다.
미국에 반대하는 것은 중요한 투쟁이다. 미국은 세계 여러 곳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약소국에 불평등을 강요하고, 자기들 이익에 부합한다면 대량 학살자들과 고문자들을 후원해 왔다. 미국 제국주의의 전력은 이윤과 권력이 최우선이고 평범한 사람들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일관된 양상을 보여 준다.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반미 투쟁을 마땅히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한 민족이 만나는데 미국이 웬 참견이냐'는 소박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데는 근본적인 약점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민족의 일원인 김대중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공격을 자제하게 된다. 심지어 김대중이 반미 투쟁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착각도 가능하다. "남과 북이 민족대단결 정신에 입각해서 반미자주투쟁을 벌여"내야 한다거나 "남북 정상회담을 민족자주 실현을 위한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상 이런 착각을 담고 있다.
김대중을 미국에서 떼어내 민족자주를 위한 투쟁으로 견인할 수 있다는 생각은 완전한 몽상이다. 김대중은 집권 이래 지금까지 한·미·일 공조체제를 유지해 왔고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3국간 조율을 계속 하고 있다. 한·미·일 3자 대북정책 조정감독그룹(TCOG)의 미국쪽 수석대표 웬디 셔먼은 방한 중에 "정상회담에서 그 동안 한미공조를 통해 논의된 사항들(핵과 미사일)이 적절히 논의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충고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주도권을 놓칠까 우려하며 입국한 셔먼은 김대중 정부와 만난 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양국 및 국제사회의 공통 관심사와 목표가 더 진전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데 확신"을 갖고 출국할 수 있었다.
김대중은 집권 기간 내내 미국을 거슬러 행동한 적이 한번도 없다. 미국이 금창리 지하시설을 문제삼아 대북 압박을 넣을 때 김대중은 미국편을 들면서 북한에게 "의혹을 해소하라"고 다그쳤다. 김대중은 주한미군이 통일 뒤에도 주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3월 미국 국방장관 윌리엄 코언이 방한했을 때 김대중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세력균형을 위해 미군이 주둔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김대중은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북한을 겨냥한 한미 전쟁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한미 양측은 정상회담 합의 사실 발표 닷새 뒤인 4월 15일부터 '연합전시증원 연습'을 실시했고 이와 함께 '화학 제독훈련'도 했다.
친북 좌파가 반미 투쟁을 펴면서 김대중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자제하고 있는 것은, 북한 당국이 남한의 정상인 김대중을 대화 파트너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사상과 이념,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지닌 각당 각파 각 계층이 조국통일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통일의 주인, 대화의 대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남한내 다른 친북·연북 세력보다 당국자간 대화에 우선 순위를 둬 왔다. 올해 2월 29일 평양방송은 "우리는 남조선의 집권 상층, 여당 인사들, 대자본가들과 군장성들이 민족 공동의 리익을 귀중히 여기고 나라의 통일을 바란다면 그들과도 민족대단결의 기치 밑에 단합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평양방송의 이 방침은 행동으로 먼저 나타나고 있었다. 북한 당국은 남한의 대자본가인 정주영, 김우중, 박보희 등의 투자 제의를 융숭한 대접으로 환영하고 그들을 "민족 기업인"으로 치켜 세웠다. 김정일과 정주영이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손을 꼭잡고 찍은 사진은 널리 공개됐다. 그런데 정주영이 어떤 자인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노동시간 단축에 한사코 반대하는 노동자 운동의 적이다. 그뿐인가. 1989년에는 현대 노동자들에게 식칼 테러까지 자행했던 자다. 노동자 계급이 민족대단결이라는 기치 밑에 이 자와 단합해야 하는가?
부정부패를 일삼고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김대중·집권 상층·여당 인사들·대자본가들·군장성들과 노동자 계급은 같은 한국어를 쓴다는 것말고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이들과 민족대단결 아래 단합하라는 것은 투쟁을 자제하고 계급 협조를 하라는 권고나 다름 없다.
남북 정권 모두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자 운동
항구적 긴장 완화와 북한 위협을 근거로 유지돼 온 국내 정치 억압의 철폐는 노동자들 자신의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 따라서 남북 정상회담에 기대어 행동을 자제하거나 김대중 정권에 대한 공격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남한 노동자 운동의 적과 손잡으려는 북한 당국이 남한 당국보다 조금도 나을 바 없다. 탈북자들을 강제 송환·처벌하는 북한 당국의 태도는 그들이 자유왕래에 진지한 열의가 없음을 보여 준다. 북한 당국은 이산가족 문제를 "정치적" 사안으로 취급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한편, 북한 출신 기업인들의 방북은 공식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난한 보통 사람들은 왜 뒷전인가? 북한 당국은 정상회담 한다면서 북한판 국가보안법인 '국가전복음모죄', '반동선전선동죄', '조국반역죄' 등을 온존시키고 있다.
남북 정권 모두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자 운동이 진정한 대안이다. 그리고 남한 노동자 운동의 연대 대상은 우리의 적과 손잡는 북한 관료들이 아니라 북한 노동자들이다.
이 잡지에 실린 '현 상황과 활동가들의 태도'에서 '90% 지지 10% 비판'을 강조해 놓고 정작 이 글에는 왜 '90% 지지 10% 비판'을 적용하지 않는냐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배 계급에 맞서는 노동자나 피억압 민중의 투쟁에 대해서는 '90% 지지 10% 비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정상회담은 지배계급의 일이다. 지배계급이 하는 일 또는 이것을 정당화하는 것에 대해서 '90% 지지 10% 비판'을 적용할 수는 없다.
우리는 친북 좌파가 북한 관료들을 지지하더라도 이 둘을 똑같이 취급하지는 않는다. 북한 관료는 북한의 지배계급이고, 친북 좌파는 남한의 피억압 계급이기 때문이다. 친북 좌파는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고 있긴 하지만 우리 운동의 일부이다. 친북 좌파가 국가보안법 철폐·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위해 지배계급에 맞서 투쟁할 때 우리의 태도는 '90% 지지 10% 비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