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연세대:
노동자와 학생들이 악질 용역업체 KT텔레캅을 퇴출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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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이 내리쬐던 7월 말, 연세대에서 기쁜 일이 있었다. 연세대 주차관리 임대 계약에서 KT텔레캅이 입찰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KT텔레캅은 건국대, 영남대, 서울대, 심지어 자신들의 직영회사에서도 민주노조의 씨앗을 싹쓸이한 악질 용역업체로 유명하다. 지난해 KT텔레캅은 건국대에서 무인 경비 시스템을 도입한다며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민주노조를 악랄하게 탄압한 바 있다.
노동자들은 만약 KT텔레캅이 연세대에 들어온다면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게다가 이번 주차관리 임대 재계약은 기한이 5년이나 되고, 이번 계약을 맡은 KT텔레캅 측 담당자는 지난해 건국대 계약을 맡았던 자였다. 입찰 전에 학교와 KT텔레캅의 짬짜미 의혹도 불거졌다. 만약 KT텔레캅이 주차관리 부문에 들어온다면 건국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후에 있을 청소와 경비 부문 재계약에서도 KT텔레캅이 학교의 특혜를 업고 들어올 공산이 컸다.
이에 노동자와 학생들이 뭉쳐 약 1달 간 치열하게 싸웠다. 노동자들은 “학교와 KT텔레캅은 임단협 승계를 서면으로 보장하라. 못하겠다면 KT텔레캅은 연세대에서 나가라. 그렇지 않으면, 학교는 5년 동안 전쟁터가 될 것이다.” 하고 말했다. 결국 KT텔레캅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조합원들의 투쟁이 중요했다
투쟁 승리의 핵심 고리는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탄탄한 조직력과 강력한 투쟁이었다. KT텔레캅이 민주노조를 말살해 온 다른 학교들과는 달리, 연세대는 민주노총이 꽤 단단하게 토양을 닦아 온 곳이다. 2008년 초부터 지금까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와 그 산하 연세대 분회 조합원들은 강력하게 투쟁해 왔다. 노동자들이 투쟁 경험을 쌓을수록 노동조합의 힘과 자신감도 강해졌다. 서경지부 연세대 분회 조합원들은 2008년 1월 32명에서 시작해 2015년 8월 현재는 약 3백60여 명에 이른다.
이번 투쟁에서도 조합원들의 그간의 투쟁 경험이 발휘됐다. 서경지부와 연세대 분회는 입찰 관련 주요 일정에 맞춰 신속하게 대응했다. 그러나 학교는 어떻게든 조합원들을 따돌리고 결국 KT텔레캅을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해 버렸다. 이후 노조는 총무팀실에서 농성 투쟁을 시작했고, 평일마다 중식 집회를 진행했다. 7월 15일 서경지부는 시한부·부분 파업을 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집중 집회를 열었다. 또, 계약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서경지부는 아침마다 총장 공관(총장 사택) 앞에서 팻말 시위를 했다. 본관 진입 시도도 있었다. 비록 치열한 몸싸움 후에도 본관 진입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조합원들의 투지와 힘을 확실하게 보여 줬다.
KT텔레캅이 입찰을 자진 포기한 날 오후에도 서경지부의 연세대 집중 투쟁이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그 날 아침 학교 총무처장이 농성장에 찾아와 ‘당신들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 오늘 예정된 집중 집회를 좀 취소해주면 안됩니까’라고 했다고 한다. 학교는 이미 KT텔레캅의 입찰 포기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노동자들의 저항 때문에 학교는 KT텔레캅과 계약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음이 분명하다. 학교가 세부계약 과정에서 모종의 입김을 KT텔레캅 측에 넣었고, 이에 KT텔레캅이 입찰을 자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KT텔레캅 측 담당자는 “학교가 이전 입장과 다른 요구”를 한 것이 입찰을 포기하게 된 이유라고 밝힌 바 있다.(NSP 통신)
KT텔레캅 측도 딜레마가 있었다. KT텔레캅은 무인 경비 업체라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고 관리비를 받으며 이윤을 챙겨 왔다. 노동자들의 요구대로 임단협을 승계하면 자신들에게 남는 것이 별로 없고, 보장을 안 하면 5년 동안 노동자들의 격렬한 투쟁에 맞닥뜨려야 하는 처지가 됐던 것이다.
학생들의 연대와 투쟁
학생들의 연대 또한 승리의 중요한 요소였다. 방학임에도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노동자 투쟁에 연대했다. 두 달 전에 있었던 국제 캠퍼스 청소 노동자들의 투쟁 승리가 좋은 영향을 줬다. 국제 캠퍼스 투쟁의 영향을 받아 각성한 학생들 다수가 이번 KT텔레캅 투쟁에서도 두각을 발휘했다. 이들은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에 소속돼 더 많은 학생들의 연대를 이끌었다.
노동자연대 연세대 회원들도 공대위와 함께 연대를 건설하려고 애썼다. 노동자연대 연세대 회원들은 주요한 투쟁 일정마다 참가해 연대 발언을 하고, 철야 농성에도 결합했다. 학교를 규탄하고 학생들에게 연대를 호소하는 글도 작성했다.
한편, KT텔레캅 투쟁이 진행되는 동안 학생 부문에서 다른 투쟁들이 진행된 점도 투쟁 승리에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농성 이외에도 연세대 안에서는 2개의 다른 농성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학교 당국의 수강신청제도 개악과 백양로 공사로 인한 사물함·농구장 철거 문제 때문이었다. 특히 노조가 학교 본관 진입을 시도하던 그 날, 연세대 총학생회가 수강신청제도 개악에 반대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본관에 진입하여 농성을 시작했다. 학교 입장에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3개나 됐던 것이다.
투쟁의 근육
이번 투쟁의 의의는 우선 민주노조가 KT텔레캅과 맞서 싸워 이긴 전례가 생겼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KT텔레캅과 싸워 이겼다는 사례는 들어보질 못했다. 물론 이전까지 노조가 KT텔레캅에 패배했던 경우는 노조가 막 생겨나고 있거나 힘이 약한 경우였다. 한편 연세대 분회는 지난 7년 동안 용역업체와 학교당국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며 그 힘을 키워 온 강력한 노조다.
그럼에도 KT텔레캅이 강한 적으로 인식돼 왔기 때문에 아무도 이렇게 갑작스레 승리할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다른 사업장에서 KT텔레캅이 들어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모두들 잘 알고 있었기에 모두들 이번 투쟁이 상당히 힘겨울 거라고 예측했다. 김경순 연세대분회 분회장은 “우리가 싸워 온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투쟁이 될 것”이라 말한 바 있다. 투쟁이 승리한 이후, 조합원들도 “앞으로 5년 동안 싸워야겠다고 생각” 했다며 솔직하게 밝혔다.
그럼에도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우리가 뭉쳐 KT텔레캅을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서로 의지하며 싸웠다. 지난 세월 투쟁하며 쌓아 온 믿음이었다. 결국 투쟁의 근육을 단련하면 더 강한 적들과도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이번 투쟁을 통해 보여 주었다. 이 투쟁의 과정과 결과가 다른 학교나 공장 등 작업장에서의 비정규직 투쟁들을 고무하고, 참고할 만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연세대는 현재 백양로 공사에 쓴 수백억 원대의 돈을 충당하는 데 혈안이다. 그래서 올해와 내년에도 노동자, 학생에 대한 공격은 계속될 공산이 크다. 연세대 조합원들과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학생들은 끝까지 함께 연대하며 권리를 지켜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