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민영화를 도울 ‘경제활성화 3법’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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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8월 6일 대국민담화에서 이른바 ‘경제활성화 3법’ 처리를 국회에 주문했다. ‘3법’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관광진흥법,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이다. 박근혜는 이 법들을 통과시켜 의료 등 유망 서비스 산업에 대한 투자를 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 온 다른 ‘투자 활성화 대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법들도 공공서비스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법들이다. 특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대표적인 의료 민영화 추진법이다.
그동안 정부는 ‘영리추구를 금지’한 현행 의료법을 개정하는 대신 시행규칙을 개정하거나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등 꼼수로 의료 민영화를 추진해 왔다. 의료 민영화 반대 여론이 너무 강해 법 개정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영리병원 설립도 ‘외국인 병원’이라며 의료법을 피해 추진해 왔다.
그런데 최근 국회법 개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이 보여 주듯이, 이는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자본가들이 보기에, 정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맞춰 병원의 영리 자회사를 설립했다가 나중에 이 조처가 위법한 것으로 판결될 경우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병원 부대사업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시행규칙 개정안을 발표했다가 상위법에 어긋난다는 국회입법조사처, 대한변협 등의 반론에 부딪혀 일부 후퇴한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의료 ‘산업’에 투자하려는 삼성 등 대자본가들은 더 확실한 규제 완화를 요구해 왔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다. 법 체계상 ‘기본법’은 다른 관련법들의 상위법으로, 이 법이 정한 ‘투자활성화’ 조처와 충돌하는 관련법 조항들은 효력이 약해지거나 아예 그 법률이 개정될 수 있다. 만에 하나 나중에 법적 공방이 벌어져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박근혜가 지난해부터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을 그토록 강조해 온 이유다.
게다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제조업·광공업·농수축산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산업에 적용될 수 있는 법이다. 그렇게 해서 ‘의료 관광’처럼 다소 경계가 모호한 사업의 규제부터 허물어 의료 민영화를 추진할 수도 있다. 예컨대 대형 병원들이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한 호텔(메디텔)을 세울 수 있도록 허용하면 이는 장차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영리병원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당장은 ‘관광업’을 위한 것이라고 포장할 수 있다.
눈 가리고 아웅
이는 결코 억지 추측이 아니다. 제주도와 인천 송도 등 경제자유구역에서 추진해 온 ‘외국인 병원’ 관련 규제는 지난 10여 년 사이에 조금씩 완화돼 왔다. 결국 지금은 국내 자본이 국내 의료진을 고용해 내국인들을 진료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영리병원이 들어서고 있다. 메디텔 관련 규제도 지난 몇 년 사이 대폭 완화돼 사실상 내국인을 상대로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새정치연합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의료 민영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국회 통과에 반대해 왔지만, 결코 일관되진 않다. 반대 여론과 의료 민영화 저지 운동 때문에 상임위에 상정되지도 못하던 법안을, 결국 상정하기로 합의해 준 게 새정치연합이다. ‘보건의료’를 빼면 통과시킬 수 있다거나 ‘공공의료’만 제외하면 통과시킬 수 있다는 식의 타협안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보건의료 분야를 포함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벌어진 몇 차례 논란 끝에 정부·여당은 ‘보건의료를 빼고 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게다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서비스업의 경계가 모호하므로 ‘보건의료 제외’ 정도로 의료 민영화를 예방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경제활성화 3법’의 하나인 관광진흥법 개정안은 학교 근처에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허가하는 내용인데, 얼핏 의료와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학교 근처에 세워진 대형병원들이 외국인 환자 유치를 명분으로 호텔을 세우려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당장 삼성서울병원 인근 지역도 각급 학교들 때문에 대부분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으로 묶여 있다. 공공의료기관이 전체 의료기관의 10퍼센트도 안 되는 상황에서 ‘공공의료’를 빼면 통과시킬 수 있다는 얘기도 ‘눈 가리고 아웅’이다.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도 의료 관광을 명분으로 의료법상 규제를 폐지하는 조항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동안 보험사들은 외국인 환자 유치업을 할 수 없었다. 순전히 이윤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보험회사가 병원 운영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에서는 이를 허용하도록 했다.
‘외국인 환자 유치업자’는 의료관광호텔(메디텔)을 세울 수 있으므로 아예 병원과 협약을 맺어 영리병원처럼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다. 국적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한미FTA 등 각종 국제협약들 때문에 이런 조처는 장차 내국인에게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 그러면 사실상 보험회사가 운영하는 미국식 영리병원 설립에 물꼬가 트이는 셈이다.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은 외국인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원격 진료’도 허용하는데 이것도 장차 내국인을 대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광범한 반대 여론을 무시하며 제주도에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고, 의료법으로 금지돼 있는 원격진료를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여 곳곳으로 확대하고 있다.
요컨대, ‘경제활성화 3법’은 의료 등 공공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악법이다. 보건·의료, 공공서비스 부문의 노동조합들,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 등은 이를 저지하기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