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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38퍼센트 올리고, 노조 가입 권하는 대통령?:
오바마는 미국 노동자들의 친구가 아니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9월 7일 노동절을 맞이해 노동조합 대표자들 앞에서 한 연설이 화제다. 이날 연설에서 오바마는 “모든 작업장은 노동자들의 가치와 존엄을 반영해야 한다. 그것이 노동자 조직을 결성해 싸워야 하는 이유”라며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무성 같은 자가 노동조합을 맹비난하는 것에 역겨워하던 사람들에게는 오바마의 발언이 통쾌할 만하다. 초대 미8군 사령관 묘역에서 절을 하고 새똥을 치우던 김무성은 노조를 비난하는데, 막상 그가 ‘상전처럼 모시는’ 미국의 대통령이 노동조합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셈이니 말이다.

최저임금을 겨우 4백50원 올리고도 “8년 만에 최대 인상폭”이라며 날뛰는 박근혜 정부와 여당에 실망한 저임금 노동자들은, 오바마 정부가 올해 초 연방 최저임금을 기존 7.25달러에서 10.10달러로 38퍼센트 가까이 인상한 것을 보며 두 나라 정부가 대비돼 보였을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오바마가 동북아 지역에서는 제국주의적 긴장을 부추기지만, 미국 내에서는 친노동자적 정책을 취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느낄 수도 있다.

최저임금

그러나 오바마가 최저임금을 인상한 것은 “노동자들의 가치와 존엄” 때문이 아니었다.

미국은 세계에서 양극화가 가장 심한 나라 중 하나다. OECD의 임금불평등(하위 10퍼센트 임금 대비 상위 10퍼센트 임금) 통계를 보면 미국은 아예 자료를 내지 않은 멕시코를 제외하면 가장 불평등하다(5.03배). 전체 임금생활자의 25퍼센트 이상이 저임금계층(중위임금 3분의 2 미만)으로 OECD에서 가장 많고, 최저임금 수준(전일제 노동자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도 OECD 꼴찌였다.(28.4퍼센트)

노동자들에게 사실상 임금 효과를 내는 복지도 OECD 최하다. 단적인 예로 공화당 우파들이 오바마를 ‘사회주의자’라고 공격하는 가장 중요한 빌미인 ‘오바마케어’는 전국민의료보험제도 수준도 못 되는 “‘민영’의료보험에 대한 의무가입” 제도다.

경제 불황으로 양극화가 더 심화되면서 극빈층이 늘어나는 것은 미국 지배자들을 괴롭히는 심각한 문제다. 오바마는 최저임금은 올렸지만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은 주의 깊게 억제했는데, 이는 노동계급 임금 전반이 오르는 것은 피하면서도 극빈층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 미국 자본주의에 심각한 타격을 주지는 않도록 하는 조처인 것이다.

게다가 이번 인상은 “노동자들의 존엄” 운운할 수준도 아니다.

미국 최저임금은 1980년대 불황기에 물가 상승으로 실질 가치가 25.2퍼센트 하락한 후, 여전히 그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가 발표한 최저임금 10.10달러는 2013년 뉴욕 시가 추산한 4인 가족 적정 생계비(시급 32달러)의 3분의 1 수준이다. 미국 통계국이 발표한 빈곤층 기준(시급 11.05달러)에도 못 미친다. 그나마도 다섯 개 주는 주 법으로 연방 최저임금 규정이 주 내에서는 적용되지 않도록 했다.

이조차도 지난 2년 동안 끈질기게 싸워 온 노동자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2012년에 월마트 노동자들이, 2013년에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이 생계 유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낮은 임금에 항의하며 파업을 벌였다. 법정 최저임금 수준, 때로는 그 이하의 임금을 받아 온 이 노동자들은 경제 위기로 기존 제조업 일자리에서 쫓겨나 서비스 업종에 취업한 사람들이었고, 다수가 유색인종이었다. 이들의 파업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다.

이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연방 최저임금 2배 인상 요구가 등장했다. 식품상업노동조합(UFCW)이 주도한 ‘최저임금 15달러’ 캠페인은 광범한 지지를 얻었고, UFCW는 조합원이 1백30만 명으로 늘어나 미국 노동조합 연맹인 AFL-CIO 전체 조합원의 약 10퍼센트를 차지하는 대형 노조로 성장했다.

UFCW의 캠페인은 2014년 9월,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퍼거슨에서 경찰에 사살당한 것을 계기로 분출한 인종차별 반대 운동 ‘흑인들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탄력을 얻었다. UFCW는 주요 도시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반대 행진에 적극 참가했다.

이런 이유로, 오바마는 취임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연방 최저임금을 인상했다.

선거

최저임금 인상을 결정한 오바마는 내심 다가올 대선에서 공화당과 차별점을 긋고자 하는 속내도 있었을 것이다. 공화당 후보 자리를 노리는 주자들이 온갖 천박하고 반동적인 언사를 일삼으며 우파 결집을 노리고 있지만, 민주당은 낙승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오바마는 처음 대통령이 될 때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선했다. 그러나 재선 때는 첫 선거에서 오바마를 찍었던 사람 중 7백만 명이 지지를 철회했다. 오바마의 첫 4년 동안에도 경제 위기의 고통이 변함 없이 노동자 서민들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이후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크게 부상하면서, 흑인 대통령에 큰 기대를 품었던 흑인과 히스패닉 등은 (전체 인구의 4분의 1 가까이 된다) 기대가 컸던 만큼 큰 실망도 맛봐야 했다.

오바마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동계급 내에서 가장 불안정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런 유색인종들의 지지를 다시 얻고자 한 것이다. 버니 샌더스 같은 개혁주의자가 좌파적 언사로 인기를 끄는 것이 보여 주듯, 변화 열망 정서는 대단히 크다.

오바마는 이런 열망이 투쟁이 아니라 민주당 지지표로 표현되길 바란다. 역사적으로 민주당의 충실한 동맹이었던 AFL-CIO 상층 지도부들에 힘을 실어주는 행보도 그런 맥락이다.

“노동자들의 가치와 존엄”은 스스로 쟁취해야

보스턴에 간 오바마가 노동조합 대표자들 앞에서 “최저임금·초과수당·메디케어(노인층을 위한 의료보장제)·사회복지를 쟁취한 것은 거리에서, 피켓라인에서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싸운 이전 세대 노동자들이었다”고 연설한 바로 그 날, 보스턴 대중교통 노동자들은 야간·적자 버스 노선을 민영화하려는 보스턴 시 당국에 항의해 시위를 벌였다. 이 민영화 계획은 공화당 소속 시장과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의 합작품이었다.

“노동자들의 가치와 존엄”을 지키는 것은 오바마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투쟁이고, 거리에서 “흑인들의 목숨도 소중하다”고 외치는 항의 운동이다. 남한의 좌파와 노동운동 지지자들이 환호와 연대를 보내야 할 대상 또한 정치인의 사탕발림이 아니라 ‘제국의 심장’에서 움트는 노동자 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