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안보법안:
아베의 폭주와 새롭게 부상하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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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일, 일본 ‘안보법안(11개의 안보 관련 법안)’이 참의원을 통과했다.
일본 지배계급의 오랜 숙원인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 만들기 프로젝트’의 하나인 ‘안보법안’은 그동안 1960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 반대 투쟁(안보투쟁) 이후 최대 저항에 직면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아베 내각이 반대 여론을 거슬러 강행 통과시킨 것이다.
아베 내각은 9월 16일에 참의원 본회의를 열어 ‘안보법안’을 통과시키려 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국회 앞에 모인 시위대 수만 명과 야당의 반발로 본회의 개최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지난 8월 30일 전국 1천 곳 이상에서 ‘전쟁을 용납하지 않는다·9조를 망가뜨리지 마라! 총력행동 실행위원회’(이하 ‘총력행동 실행위’) 주최로 열린 ‘안보법안 폐기! 아베 정권 퇴진! 8·30 대행동’ 집회에 결집한 노동자·학생·시민들은 우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날 국회 앞에만 12만 명이 모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노동자·민중의 삶을 위협하는 아베를 향해 참아 왔던 분노를 터뜨렸다. 참가자들은 “안보법안을 강행하려는 아베를 지금 막아야 한다”며 국회 앞 도로로 진격했다. 국회 앞 도로를 점거하며 집회를 연 것은 1960년 안보투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참의원 본회의 표결 직전까지, 국회 앞과 전국 각지에서는 연일 수만 명이 ‘안보법안 폐기, 아베 즉각 퇴진’을 외치며 항의 시위를 이어갔다.
특히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한 세대’로 여겨지던 청년·학생들이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일본 사회가 우경화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는 달리, 이들은 이라크전쟁 반대 운동, 반핵 운동 등을 통해 2000년대 들어 조금씩 급진화하기 시작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행동(SEALDs, 실즈)’과 같은 청년·학생 단체들이 이런 흐름 속에서 만들어졌다.
“지난 70년 동안 일본이 전쟁에 [직접 참전]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전쟁에 반대해 온]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들이 지금의 우리 세대를 위해 계속 투쟁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동을 여기서 멈출 순 없다”며 행동에 나서자고 호소하는 청년·학생들의 외침은 노쇠하고 무기력하다고 지탄받아 온 일본의 기존 운동을 고무했다.
여기에 그동안 분열돼 있던 일본의 운동 세력이 단결해 ‘총력행동 실행위’를 구성하고 전국적으로 연대하는 것도 운동이 확산되고 결집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
노동자 행동
경제 위기를 구실로 고통 전가를 강요받아 온 노동자들의 항의 행동도 곳곳에서 이어졌다. 9월 11일 지역 9곳에서 건설 노동자들이 아베와 ‘안보법안’에 반대해 2시간 파업, 잔업 거부, 연차 휴가 등 행동에 나섰다. 이 밖에도 병원, 교사, 철도, 인쇄·출판 등 다양한 직업군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포함한 중식 집회, 작업장 홍보전 등을 벌였다. 개인으로만 참가하던 노동자들도 조직 대열로 집회에 참가했다.
8월 중순 한반도 긴장 사태의 영향으로 소폭 상승세를 보였던 아베 정권 지지율은 다시 최악을 갱신하고 있다. 운동이 확산되자 ‘연휴 지나면 다 잊는다’며 저항 운동을 무시하던 우파들 안에서도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아사히 신문〉 여론 조사를 보면, 국회 회기를 연장했음에도 ‘논의가 불충분(75퍼센트)’하고 이번 국회에서 강행 처리할 ‘필요가 없다(68퍼센트)’는 답변이 다수였다.
그런데 왜 아베는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안보법안’을 고집했을까? 아베 내각은 집권 직후부터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내세워 특정비밀보호법 제정, 일본판 NSC 설치, 무기 수출 3원칙 폐지,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 미·일 방위협력지침 재개정 등을 강행해 왔다.
전후 일본 지배자들은 줄곧 경제적 위상에 걸맞는 군사력을 갖추고 싶어 했다. 군대 보유와 무력 행사를 금지한 헌법 9조는 이를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개헌 시도는 번번이 저항에 직면해 좌절됐고, 이 때문에 일본 지배자들은 우회적 방식으로 사실상의 ‘일본 군대’를 유지·강화해 왔다.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 경기 침체와 중국 경제의 성장은 일본 지배자들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경제 대국 2위에 오른 중국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증대해 왔다. 일본 지배자들은 아시아에서 누려 왔던 자국의 경제적·지정학적 지위가 중국에게 위협받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일본 지배자들의 위기감을 부추긴 것이 바로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이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면 지역 동맹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누구보다도 찬사를 보낸 것이 미국 지배자들이다. 일본의 실질적 군사력 행사가 가능한 미·일 동맹은 미국과 일본 지배자들의 바람이다. 그리고 이는 동아시아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
퇴진
일본 국회 앞에 모인 시위대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아베의 외조부인 기시 내각을 몰아냈던 1960년 안보투쟁을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는 앞선 투쟁에서 교훈을 이끌어 내야 한다. 당시 최대 33만 명이 모였던 안보투쟁은 기시 내각을 몰아냈지만 안타깝게도 안보조약 개정을 막아 내는 데까지 발전하지 못했다.
당시 투쟁 지도부는 더 전진하려는 시위대를 진정시키며 국회 청원운동으로 선회했다. 지도부의 온건함에 반발한 전투적 학생 조직들은 초좌파적이고 종파적인 태도를 보이며 운동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한 달 동안 세 차례에 걸쳐 벌어진 ‘총파업’은 매우 제한적 수준이라 노동계급의 진정한 힘(이윤에 타격을 주는)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이번에 ‘안보법안’이 참의원을 통과했지만 일본 정부가 이를 휘두르기 위해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일본 평화운동은 “만약 이 법안을 날치기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국회 앞으로 모일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제국주의적 경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은 일본에서 부상하는 운동이 더욱 성장하기를 바라며 지지와 연대를 보내고 있다. 운동의 힘으로 아베를 퇴진시킬 수 있다면 이는 전 세계 노동계급을 고무할 것이다.
그러나 2012년 핵발전소 재가동에 맞서 10만여 명이 모였던 반핵 시위 경험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베 퇴진을 포함해 일본 지배자들의 ‘보통국가화’ 야욕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앞선 투쟁들이 왜 한계에 봉착했는지 그 실종된 고리를 찾아내어 극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