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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개악에 맞선 운동 방향 논쟁

파업이 아닌 다른 대안을 찾자?

박근혜 정부가 “노동 개혁” 속도전에 나선 가운데, 이에 맞선 대응 방안을 두고 정의당,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민주노총 등이 잇따라 토론회를 개최했다. 그런데 우려스럽게도 이 토론회들은 (전적이지는 않지만) 대체로 총파업이 아닌 다른 대안을 찾는 논의들로 채워졌다.

9월 24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긴급 토론회에서도 발표자들은 대체로 이런 주장을 폈다.(전종휘 〈한겨레〉 기자, 조돈문 교수,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처장 등) 총파업은 안 되니 거리시위로 가자거나, 국민적 여론을 모아 나가자거나, 노조 가입 운동을 펴자거나, 정규직이 양보하라는 제안이 그것이다.

하반기 총파업 투쟁의 시기와 방식을 두고 논의가 한창인 지금, 민주노총이 토론회를 통해 제시하고자 한 방향은 그에 부합한 것이 아니었다. 총파업을 주장한 발표자는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뿐이었다.(그조차 권영국 변호사의 연행에 따라 대신해 나왔다.) 애당초 패널 구성 등 기획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이날 정리 발언에서 “(정규직의) 선제적 양보 문제에 대해 내부에서 심각하게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이 제 조합원들의 발등을 찍고 힘을 갉아먹을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이창근 실장의 말이 진정 민주노총의 책임 있는 발언인 것인지 묻고 싶다.

잠재력

한편, 국회 논의를 통하거나 현실 가능한(그래서 때로 정규직의 양보를 포함하는)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국민적 지지를 얻고 어느 정도 개악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런 주장은 총파업의 필요성을 기각하는 것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러나 박근혜가 누누이 “노동개혁”을 국정 최대 과제라고 강조했듯이, 경제 위기 속에서 정부와 지배자들은 아주 집요하게 노동계급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는 여러 논란 속에서도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고 개악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므로 정부의 노동 개악에 제동을 걸려면, 상당한 투쟁의 힘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 정부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 자본가들의 이윤에 차질을 줄 노동계급의 잠재력, 즉 파업을 최대한 큰 규모로 일으키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런데 적잖은 활동가들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총파업에 나설 수 있느냐며 회의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상반기 총파업에 비록 파업에 돌입한 사업장이 많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온건한 노조 지도자들이 총파업 전선에 초를 치거나 힘을 싣지 않았기 때문이지 조합원들 탓이 아니다.

오히려 현장 조합원들은 노조 지도부가 단호하게 파업을 호소하면 이에 응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총파업을 내세웠던 “변방”의 한상균 위원장이 당선하고, 상반기 총파업 찬반투표가 가결됐던 것은 이를 보여 주는 사례다.

현장 조합원들이 상층 지도자들보다 왼쪽에 있다는 점도 거듭 드러났다. 지난해 강제전보 합의를 부결시킨 철도노조, 8월 29일 대의원대회에서 연가투쟁을 통과시킨 전교조 등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이 아닌 현대중공업노조 내에서도 9·23 파업에 동참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적잖이 나왔다. 이 때문에 정병모 위원장은 조합원들이 모인 집회에서 “파업을 선포하고 대규모 상경 투쟁을 했어야 했지만 임투 상황이 어려웠다”고 해명해야만 했다.

물론 이것이 곧 현장 조합원들이 노조 지도부를 건너뛰어 스스로 투쟁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아직 조합원들의 자신감 수준이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노조 지도부에 의존하지 않는 ‘아래로부터 총파업’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지거나 혹은 일부 활동가·투사들의 소수 행동으로 그칠 위험이 있다.

그보다는 노조 지도부의 공식적인 파업 호소를 기회로 삼아 기층 조합원들의 사기와 활력을 올리는 것이 활동가들의 과제다.

진정한 사회적 합의?

9월 19일‘노사정 야합 규탄! 노동개악 저지! 민주노총 총파업 선포 결의대회’ ⓒ이미진

9월 13일 노사정 야합을 비판하는 입장들이 모두 견결한 파업 투쟁으로 저항하자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노사정위원회가 사회적 대표성을 갖지 못한 합의를 했다며 ‘진정한 사회적 합의’를 촉구한다. 정의당이 대표적이다.

심상정 대표는 박근혜의 행정부 독주 스타일을 비판하면서 “노사정위에서 배제돼 온 비정규직과 청년들, 그리고 시민사회계까지 두루 포함한” 국회 내 사회적 합의기구를 제안했다. 이런 식의 국회 내 논의기구에 대한 기대는 민주노총 지도자들에게서도 나온다.

파업으로 박근혜 정부의 공세를 막아 내기 어렵다는 생각에 국회 내 논의기구를 구성해 속도전에 제동을 걸어 시간을 벌자고 생각할 법도 하다. 게다가 민주노총과 청년, 비정규직들이 사회적 논의기구에 포함된다면 정부와 기업주들의 갈라치기에 대응하기가 더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제안이 박근혜식 일방적 속도전 스타일에 흠집을 내는 것일 수는 있어도, “노동개혁”에 대한 효과적 반격이 되기는 어렵다.

이미 여권은 노사정위 야합 이전 7~8월에 민주노총의 ‘국회 내 논의 기구’ 제안을 거부한 바 있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그저 “노동개혁”에 노동계도 동참한다는 외피가 필요했을 뿐임을 보여 줬다.(그것이 꽤 유용한 수단이긴 했지만 말이다.)

공상

사실 경제 위기 때문에 노동계급에게 고통을 떠넘기려는 정부의 공격을 대화로 막아 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공상적 기대다.

국회 내 과반 다수당인 여권이 만일 국회 내 논의기구 구성에 동의한다면, 그것은 “노동개혁”을 밀어붙이는 데 더 그럴듯한 외피가 필요해서지 진정한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그런 필요를 느낄 때는 지금의 “노동개혁” 공세가 강력한 노동자 저항에 부딪힐 때일 것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와 여권의 태도를 바꾸게 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대중 투쟁이다.

문제는 국회 논의 기구에 기대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견결한 투쟁을 구축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국회 내 논의기구 제안에 기대를 걸게 되면, 여권 내 동향과 새정치민주연합의 협상에 수동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그런데 새정치연합 소속인 은수미 의원조차 자기당 지도부의 여야 합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또 지도자들이 아무리 말로 투쟁에 무게중심을 둔다고 해도, 둘을 병행하려고 하면, 정부와 기업주들이 협상에 임할 진정성을 증명하라고 압박하는 것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렵다.

노조 지도자들이 이런 압력 속에서 좌고우면하며 주춤하는 것은 현장 조합원들에게 진지하게 파업을 건설하는 것인지 의구심을 줄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투쟁과 협상 병행론’은 조합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보다는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양보론이 돌파구를 열 수 있을까

9월 24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한겨레〉 전종휘 기자는 ‘정규직의 일정한 희생 통한 감동을 줘야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보전분을 청년고용 지원에 쓰는 식으로 말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나 일부 노조 지도자들도 비슷한 제안을 한 바 있다.

흔히 이런 주장은 투쟁으로는 어차피 막아 낼 수 없다는 생각의 반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양보론이 투쟁의 힘을 극대화하고 민주노총이 하반기 파업을 단호하게 건설하는 데 방해가 된다.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이 양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투쟁 전선을 흐리게 만드는 데 주요한 구실을 했던 것을 떠올려 보라.

게다가 양보론을 노동운동이 수용하면,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동안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덕을 봤다는 우파의 분열 담론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청년 실업이 조직 노동계급의 고임금과 고용안정 탓이라며 노동계급 내 이간질에 열중하는 박근혜 정부에 맞서 단결하는 게 중요한 데 말이다.

한국은 OECD 내에서 국민총소득 중 기업소득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다. 노동자들이 양보할 이유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민주노총이 조합원들뿐 아니라 더 큰 위험에 처한 미조직 노동자들을 대변해 싸움에 나서는 것이 진정한 노동자 연대다. 그럴 때, 더 큰 지지를 받아 낼 수 있을 것이고 노동자들의 사기도 오를 것이다.

좌파 포퓰리즘의 약점

노동운동 안에서 양보론과 비관론이 유포되는 것에 반대해 좌파들은 투쟁의 힘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노동당은 “국회 내 사회적 기구 구성과 같은 출구전략을 짤 때가 결코 아니다”라고 옳게 강조했다.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변혁정치〉 10호(10.1.)에서 11·14 민중총궐기 투쟁을 특집으로 다뤘다. “투쟁 속에 답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저항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노동자 파업’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노동당은 피해 대중이 거리에서 연대해서 싸우는 방식을 더 선호한다. 추진위도 재벌 이윤 환수 운동을 부각하면서 민중총궐기 투쟁에 기대를 거는 듯하다. 거리에서 민중적 저항을 구축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파업 같은 계급투쟁 방식에 토대를 두고 거리 항의가 결합될 때 진정으로 지배자들을 위협할 수 있다. 10~11월 총파업 투쟁이 현실적일 때 11·14 민중총궐기 같은 거리 투쟁도 더 힘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좌파는 민주노총의 노동 개악 저지 파업 건설에 기여하는 것을 당면 과제로 삼아야 한다. 좌파들이 대체로 박근혜의 노동 공세를 ‘경제 위기 시대에 이윤 보호를 위한 자본의 총공세’로 분석하는 만큼 이윤에 타격을 주는 파업을 강조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일관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 조합원들 사이에서 선동해야 할 뿐만 아니라, 상층 지도자들의 소심함과 투쟁 회피 문제에도 정치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좌파는 오랜만에 들어선 좌파 집행부를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비판을 삼가는 듯하다. 그러나 좌파가 침묵하고 기층의 압력이 약할수록 좌파 집행부가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 열망에 부응하도록 하는 일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미조직 조직화는 투쟁의 대체물이 아니라 결과여야 한다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개혁”의 가장 커다란 피해를 입을 위험이 높다. 취업규칙 요건 완화나 일반해고 가이드라인은 이런 노동자들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노총과 잘 조직된 노동자들은 이런 노동자들의 조건 악화를 반대하며 강력히 싸워야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민주노총의 “계급 대표성”을 강화할 방안이다.

그런데 일각에선 “노동개혁”에 대한 대응으로서 미조직·비정규직을 대상으로 노조 가입 운동을 벌이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근 정의당,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처장 등이 오마바의 노동절 발언을 본떠 이렇게 말한다.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조건을 방어할 우산이 될 수 있고, 미조직 노동자들을 노조로 조직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반으로 말해 옳다. 그러나 이들의 노조 가입 운동은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줄 당면 “노동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지는 회피하거나 부차화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물론,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예컨대, 김혜진 철폐연대 활동가와 같은 좌파는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기각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노동계급 주체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조직화를 강조하고 있으므로, 이런 점을 구분해 봐야 한다.

만일 노동조합이 투쟁하지 않고 양보나 한다면 노조 가입의 의미는 무엇인가.

따라서 민주노총의 조직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계급을 대변해 투쟁의 전면에 나서며 대안을 보여 줘, 수많은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민주노총에 지지를 보내고, 이를 통해 더 많은 노동자들이 노조 가입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향이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