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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리아에 불을 질렀나?

서방 정치인들은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이하 아이시스)라는 반동적 집단이 제기하는 “파시스트적” 위협과 싸우기 위해 시리아에서 전쟁을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아이시스 등장의 진정한 배경은 무엇이고 왜 폭격은 서방 제국주의가 일으킨 혼란을 더 격화시키기만 할 것인지를 살펴본다.

아이시스는 무엇이고 어디서 생겨났나?

아이시스는 철저히 반동적이고 종파적인 집단이다. 아이시스는 군사적 저항에 성공하며 성장했지만 종파적 성격 때문에 제국주의를 물리치지는 못한다.

아이시스는 그것을 낳은 환경, 즉 미국이 이끈 이라크 전쟁·점령과 시리아 정권의 반혁명의 거울 이미지이다.

서방 제국주의가 낳은 공포는 아이시스가 낳은 공포와는 차원이 달랐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서방이 이라크에서 벌인 전쟁과 경제제재로 이라크인 2백만 명이 죽었다.

2004년 미국은 (공기 중으로 흩어져 피부에 달라붙어 살을 태우는) 화학무기 백린을 사용해 이라크 도시 팔루자를 공격했고 민간인들을 고문했다.

이라크 전역에서 일어난 저항 운동을 분쇄하려고 미국은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를 이간질했다.

미국은 종파적인 시아파 정치인들을 후원했고, 그들은 정실주의와 부패를 이용해 빠르게 권력을 굳혔다.

이것이 아이시스의 전신인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AQI)가 성장할 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는 같은 저항 세력이어도 종파가 다르면 공격했고, 이 때문에 다른 수니파 조직들은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와 거리를 뒀다. 그러자 미국은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를 격퇴하면, 그 대가로 ‘권력을 공유하겠다’고 수니파 단체들에 약속했다.

이후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는 이라크에서 약화됐지만 미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계속해서 수니파를 이라크 정치에서 배제했다.

이런 종파적 갈등을 극복할 기회가 있었다. 아랍 혁명의 물결이 이라크에 닿았던 2012년 ‘이라크의 봄’이었다. 하지만 2013년부터 반혁명이 전진하며 혁명적 대안이라는 희망이 사라졌다.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는 이라크에서는 세력이 약화됐지만, 시리아로 건너가 전열을 가다듬었다. 시리아 혁명을 파괴하기 위해 아사드 정권은 종파적 내전을 일으켰고, 그 틈에 아이시스는 반정부군에서 유력한 세력이 될 수 있었고, 다시 이라크로 건너가 세력을 넓혔다.

ⓒ그래픽 조승진

아이시스는 파시스트 운동인가?

파시즘은 다양한 “프티부르주아”(소자본가들)를 기반으로 한 대중운동으로 노동계급의 전투성 파괴를 목표로 한다.

유럽에서 파시스트 운동은 1918년 이후 유럽을 휩쓴 노동자 혁명에 대응해 일어났다.

영국 노동당 의원 힐러리 벤은 “우리”가 “파시스트들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하며 의회에서 시리아 공습 필요성을 역설했다. 프랑스 우파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레비도 시리아 개입을 지지하며 아이시스를 “제3세대 파시즘”이라고 불렀다.(그가 말한 1세대는 히틀러의 나치, 2세대는 ‘공산주의’였다.)

그러나 아이시스는 폭력적이고 반동적이지만 파시스트는 아니다. 아이시스는 노동계급을 파괴하기 위한 대중적 사회운동을 건설하려 애쓰지는 않는다.

정치인들의 파시즘 운운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전쟁 지지 여론을 끌어내려고 종종 “새로운 히틀러”, 파시즘 같은 말을 들먹인다.

아이시스는 시리아 내전이라는 맥락에서 등장한 무장조직이다. 아이시스는 무장단체를 보유한 정치운동을 표방하기보다는, 국가를 자처하는 군대로서 움직인다.

이런 맥락은 유럽에서 파시스트 운동이 떠올랐던 맥락과도, 오늘날 파시스트들이 활동하는 맥락과도 다르다.

이라크에서 수십 년간 계속된 전쟁과 경제제재와 점령이 아이시스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 기간 동안 이라크 사회는 완전히 파괴됐고, 시리아 사회는 내전 때문에 뿌리째 뽑혀 나가고 있다.

게다가 이런 제국주의 옹호자들은 원칙 있는 파시스트 반대자도 아니다. 그들의 의도는 더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지지하도록 명분을 제공하려는 것이었다.

왜 영국 지배자들은 시리아 폭격에 그토록 열을 올리나?

영국 제국이 몰락한 이래 영국 지배자들은 미국의 옷자락에 매달려 국제적 위상을 지키려 애썼다.

영국은 2013년 국회에서 시리아 공습안이 부결돼 체면을 구겼다. 그때부터 영국 정부는 어떻게든 자신의 제국주의적 위상을 세우고 세계 무대에서 영국의 지위를 유지하고자 했다.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시리아와 레바논이 오토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19세기부터 이곳에 눈독을 들여 왔다.

제1차세계대전을 거치며 오토만 제국이 무너지자 영국과 프랑스는 1916년 비밀리에 사이크스·피코협정을 맺고 전리품을 나눠 가졌다. 이 협정을 통해 프랑스는 시리아와 레바논을 지배하게 됐고 영국은 팔레스타인·아라크·요르단을 점령했다. 하지만 중동 지도를 펴 놓고 프랑스와 흥정할 때조차도 영국 관료들은 아랍 족장들을 부추겨 오토만 제국에 맞서 싸우게 했다.

1920년 프랑스 군은 아랍인 왕 파이잘 알하시미의 시리아 독립 시도를 분쇄했는데, 그 뒤 영국은 서둘러 파이잘을 이라크 바그다드로 보내 이라크 왕으로 만들었다.

현재 영국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소규모 공군이 시리아 전황에 대단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전쟁에 뛰어든 것이 아니다. 미국 지배자들에게 영국이 쓸모있음을 입증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다.

아이시스가 너무 야만적이어서 폭격하는 것이라면, 왜 사우디아라비아는 폭격 대상이 되지 않는가?

아이시스는 반대자들을 참수하고, 여성을 천대하고, 공개적이고 야만적인 폭력 행위를 벌이며 자신이 지배하는 대중에게 공포심을 불어넣는다.

지배자들은 아이시스가 이처럼 야만적인 세력이기 때문에 폭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시스가 저지르는 야만 중 많은 일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벌어진다. 그런데도 사우디아라비아 독재 정권이 서방의 동맹인 이유는 무엇인가?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활동하는 지하드 세력 중 최소 몇 개는 지원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시리아 내전을 이용해 자신의 지역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경쟁국 이란을 약화시키고자 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모두 사우디아라비아와 매우 가까운 동맹이다. 이것만 봐도 서방 국가들이 중동의 민주주의 운운 하는 것이 죄다 위선임을 알 수 있다.

서방이 벌인 제국주의 전쟁으로 중동 지역의 불안정성이 심화하자, 안정적인 석유 공급자로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또한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 연안국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 중 하나로 발전했다. 이 나라들은 엄청난 돈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다른 중동 국가들에 투자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 카타르와 더불어 사우디아라비아 지배자들은 반혁명의 보루 구실도 해 왔다. 그들은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는 반란을 짓밟고 독재 정권들이 다시 세워지는 것을 돕는다.

2011년 사우디아라비아 군대는 이웃 나라 바레인에서 일어난 혁명을 파괴하고자 바레인을 침략했다. 사우디아라비아, UAE, 쿠웨이트는 이집트의 독재자 압델 파타 엘시시의 반혁명을 지원하기 위해 시시 집권 후 무려 2백억 달러(약 23조 원)가량을 지원했고, 올해 3월 1백20억 달러(약 14조 원)를 추가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이집트의 세입 규모는 총 8백억 달러 수준이다.)

서방이 이런 국가들을 폭격할 일은 한동안 없을 것이다.

바샤르 알아사드는 누구인가?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는 2000년에 그의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에게서 권력을 물려받았다.

그가 이끄는 바트당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를 몰아낸 급진적 분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바트당은 시리아가 근대적 자본주의 국가로 발전하기를 원했던 중간계급 분파를 대표했다.

바트당은 1963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바트당은 국가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국가자본주의적 정책을 펼쳤는데, 여기에 반제국주의 언사와 팔레스타인 게릴라 운동 지지를 가미했다.

중동 지역에서 서방의 경비견 구실을 하는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 전쟁(‘6일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그 일환으로 시리아의 영토인 골란 고원을 점령했다.

이 패배에 더해 1970년 요르단에 대한 시리아의 군사 개입이 실패하자, 시리아에서 정치 위기가 발생했다.

그해에 벌어진 또 한 번의 쿠데타로 하페즈 알아사드를 중심으로 한 바트당 내 군부 세력이 권력을 틀어쥐게 됐다.

아사드 정권은 저항을 조금치도 용납하지 않는 극심한 탄압 정책을 펼쳤다. 1982년 하마 시에서 봉기가 일어나자 군부는 수만 명을 살육했다.

시리아 정권은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1991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걸프전)에서 미국 편을 들었다. 국가 탄압은 계속됐지만 서방은 2000년에 바샤르 알아사드가 집권하자 그를 개혁가라고 치켜세웠다.

2001년 9·11 이후 미국은 사람들을 고문하는 일을 용의자 인도 프로그램을 통해 시리아에 ‘하청’을 주기도 했다.

2005년 시리아는 레바논 총리 라피크 하리리를 암살했다는 비난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미국은 시리아에 경제제재를 가했다. 또, 미국은 시리아가 이라크의 저항 운동을 지원한다고 비난했다.

시리아는 현재 러시아의 중동 지역 우방이다.

시리아 전쟁은 ‘아랍의 봄’을 따라 시리아를 휩쓸었던 진정한 대중 혁명에서 비롯했다.

아사드는 종파적 내전을 벌임으로써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시리아의 많은 지역에서 통제권을 잃었다. 그러는 동안 경쟁하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시리아를 놓고 서로 다투고 있다.

서방의 폭격이 쿠르드족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서방 강대국들은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는 데 쿠르드족의 처지를 이용해 왔다. 좌파들 중 일부도 아이시스에 맞서 서방이 쿠르드족을 무장시키고 있는 것을 지지한다.

시리아에서 충돌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쿠르드 저항 단체들이 제국주의자들의 장기짝 구실을 한다면, 오직 서방 제국주의만 득을 볼 것이다.

쿠르드족은 제국주의자들이 제1차세계대전 후 오토만 제국의 옛 영토를 분할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주요 희생자들이다. 그들의 민족자결권은 부정됐고, 그 결과 쿠르드족은 이란, 이라크, 시리아, 터키에 흩어져 살게 됐다.

그때부터 쿠르드족은 민족 해방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은 이 투쟁을 지지한다.

아사드 정권은 내전을 벌이면서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거주 지역들을 포기했다.

터키의 쿠르드노동자당(PKK)에 가맹한 YPG 그룹(인민수비대)이 그 지역을 장악했고 지금은 아이시스로부터 그 지역들을 방어하기 위해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시리아의 쿠르드족 전사들은 미국에게 가장 효과적인 군사 동맹이 되고 있다. 그래서 올해 여름 터키 전투기가 쿠르드족을 공격했을 때 미국의 동맹국들인 나토 회원국들이 불평했던 것이다. 하지만 터키의 처지에서는 쿠르드족의 힘이 커지는 것을 두고볼 수만은 없다.

터키는 지난 10년 동안 쿠르드족 분리 독립주의자들에 맞서 게릴라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터키는 쿠르드족의 자치나 독립을 허용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미국은 이라크 북부 지역에 있는 쿠르드족이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될 만큼은 강하지만, 터키에게 위협이 될 만큼 강하지는 않도록 하려 애써 왔다.

쿠르드족은 1백 년 전처럼 또다시 제국주의 강대국들과 중동 지역 지배계급들이 벌이는 책략의 희생자가 될 위험에 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