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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정치경제학 입문》:
로자 룩셈부르크에게 배우는 마르크스 경제학

△《정치경제학 입문》,로자 룩셈부르크, 박종철출판사, 411쪽, 16,000원

로자 룩셈부르크는 1871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전쟁과 혁명의 물결이 넘실대던 20세기 초 주로 독일에서 활동한 혁명가다. 한국에도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자본축적론》, 《대중파업론》 등이 번역돼 있고, 로자는 이 책들을 통해 당시 베른슈타인 등 독일 사회민주당 우파와 논쟁하며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을 이어간 것으로 유명하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907~13년 베를린의 사회민주당 연수원의 강사로 활동했다. 주로 20~40대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강의했는데, 로자의 강의는 명쾌하고 열정적이어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정치경제학 입문》은 그 강연의 교재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그러나 로자는 다른 논쟁들을 더 우선해 《자본축적론》을 먼저 썼고, 이 책은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로자 사후 파울 레비가 남아 있는 원고를 모아 《정치경제학 입문》을 출판했다.

논쟁적

《정치경제학 입문》에는 정치경제학이란 무엇인가, 경제사, 상품생산, 임금노동, 자본주의 경제의 경향 등이 담겨 있다. 애초 원고에는 있었다고 하는 자본의 지배(이윤율)와 공황 부분은 발견되지 않아 포함되지 않았다.

로자는 매우 논쟁적이며 논지를 예리하게 전개하는 특징이 있는데, 이 책도 논쟁의 날이 살아 있다. 이 책에서 로자는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원리를 설명한다. 특히 당시 독일의 부르주아 정치경제학계에 영향력이 컸던 뷔허, 슈몰러 등 역사학파 경제학자들의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등으로 대표되는 영국의 고전학파가 이론적이고 연역적인 방식을 중시한다면, 독일의 역사학파는 귀납적이고 역사적인 방법을 중시하는 학파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도 신자유주의를 비판해 인기를 얻었던 장하준은 제도주의 경제학자인데, 제도주의는 역사학파에서 비롯했다.

역사학파 학자들은 “국민경제”를 인류사의 가장 높은 단계로 두고 그 발전 과정을 탐구하는 것을 중시했다. 그러나 로자는 “국민경제”를 최후의 단계로 보는 것에 반론을 제기한다.

특히 뷔허 교수는 “세계경제라는 것이 아직까지 등장하지 않았”다며 세계경제의 실체를 부정하고, 세계를 단지 개별 국민경제의 합으로 볼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로자가 보기에 이는 현실을 전혀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로자는 “[오늘날] ’개별경제’라는 것은 코가 하나의 개별기관인 정도에서만 그렇다”며 개별경제를 유기적으로 연결된 전체의 일부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1907년 제2인터내셔널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로자 룩셈부르크

로자는 당시 세계 주요 국가들의 무역 항목과 규모 등 풍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당시 국가들의 생산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또 1700년대 영국 제국주의의 자본들이 면방직공업을 확대하면서 북아메리카의 면화 플랜테이션도 확대되고 동시에 아프리카의 노예무역도 확대됐던 역사를 설명하며 세계 무역이 1900년 초까지 어떻게 변화 발전해 왔는지도 설명한다.

로자는 그 자신의 표현대로 “몇 줄 안 되는 글로 현대 공업 분야의 140년 역사”를 생동감 있게 서술하는 과업을 훌륭히 이룬다. “다섯 대륙 모두를 휘감는 역사, 수백만 인간의 삶을 내동댕이치는 역사, 여기서는 공황으로 저기서는 기근으로 터져 나오는 역사, 때로는 전쟁으로 때로는 혁명으로 타오르는 역사, 그 여정 어디에나 부의 황금 산과 빈곤의 심연을 남기는 역사 – 이 역사는 인간 노동이 이루어 낸 피로 물든 광활한 땀의 물결이다.”

자본주의는 “나날이 점점 더 긴밀하고 견고하게 함께 성장해 모든 민족과 국가를 하나의 전체로 연결하는 경제적 토대를 한편으로 하고 국경 푯말, 관세장벽, 군국주의로 인위적으로 민족을 그 수만큼 많은 낯설고 적대적인 부분들로 분리하고자 하는 국가의 정치적 상부구조를 다른 한편으로” 하며 그 모순이 벌어지고 있다.

독일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이를 보지 못하고 “눈길을 알맹이에서 껍질로, 세계경제에서 ‘국민경제’로” 향하게 하려는 이유는 “무정부성”이라는 자본의 본질을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전혀 조직돼 있지 않고 무정부적이다. 이는 당시 독일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이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적 무기”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고 로자는 설명한다. 그래서 노동계급의 관점에 선 마르크스주의를 통해서야 과학적 정치경제학이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꼬뮌주의 사회

로자는 사적 소유를 둘러싼 논쟁도 다뤘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사적 소유가 영원한 것이며 세상의 시초부터 존재했다는 낡은 생각을 퍼트린다. 애덤 스미스도 물물교환이 개인들의 본성이라고 했다. 독일의 역사학파 경제학자들도 온갖 피상적 특징만 보며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로자는 경제사와 관련한 장들에서 자본주의가 확산되기 이전에는 마르크스가 ‘원시공산제’라고 부른 사회와 비슷한 공동체가 세계 곳곳에 광범하게 존재했다는 사실을 풍부한 예를 들어 증명한다. 로자는 그 사회들을 ‘농업 꼬뮌주의’ 사회라고 불렀다.

“농업 꼬뮌주의라는 것을 처음에는 게르만의 민족성인 것으로 발견했다가, 그 다음에는 슬라브, 인도, 아라비아-카마일, 고대 멕시코의 민족성인 것으로 발견했다가, 페루 잉카라는 이상한 국가의 민족성인 것으로 발전했다가, 이제 모든 대륙에 있는 훨씬 많은 다른 ‘특이한’ 민족 유형에서도 발견하고 난 후에는 당연히 다음과 같은 결론, 즉 이 촌락 꼬뮌주의라는 것은 무릇 이러저러한 인종이나 대륙의 ‘민족성’이 아니라 특정한 수준의 문화 발전에 다다른 인간 사회의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형태라는 결론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게 됐다.”

또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자본주의적 제국주의가 그런 사회들을 처참하게 파괴한 과정도 묘사한다.

“모든 면에서 볼 때 유럽 문명의 침입은 원시적 사회관계에 최초로 치명적인 일이다. 유럽인 정복자들은 원주민을 종속시키고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것을 노릴 뿐만 아니라 토지라는 생산수단 자체를 원주민 수중에서 빼앗는 것도 노린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유럽 자본주의는 원시적 사회질서에게서 토대를 빼앗아 간다. … 자신의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정복당한 주민은 유럽 자본주의에게는 노동력으로만 간주되며, 자본의 목적에 노동력으로서 쓸모가 있으면 노예 신분으로 빠져 버리고 쓸모가 없으면 박멸된다.”

제국주의

국민경제나 제국주의와 관련한 이런 논쟁은 당시 독일 사회민주당 우파와의 논쟁과도 통하는 측면이 있다. 1910년경 독일 사회민주당 우파는 독일 국가를 지지하며 제국주의 정책에 타협했다. 카우츠키로 대표되는 중간파는 지배자들의 협상에 기대는 입장을 취했고, 이는 사실상 제1차세계대전 때 독일의 전쟁공채 발행을 지지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급진파들은 제국주의가 부추기는 민족주의에 맞서며 노동자 국제주의를 일관되게 옹호했다.

당시 논쟁의 맥락들을 떠올리며 이 책을 읽는다면 로자의 혁명적 정신을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상품생산과 임금노동과 관련한 장에서는 《자본론》의 개념들을 요약하며 당시 맥락에 맞게 설명한다.

《정치경제학 입문》에는 당시 자본주의 체제와 역사에 관한 서술이 많은데, 로자의 생동감 넘치는 서술을 읽다 보면 스탈린주의의 ‘역사 발전 5단계설’과 같은 도식이 진정한 역사유물론의 방법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물론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기초 개념을 익히려는 초심자들이라면 이 책보다 오늘날의 맥락에서 더 쉽게 서술된 다른 책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발전 역사나 ‘농업 꼬뮌주의’ 사회와 그 변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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