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5주년:
원전 재가동과 반핵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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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11일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지 5년이 되는 날이다. 5년이 지났지만 후쿠시마의 참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수많은 피해자들은 지금도 심각한 고통에 처해 있다.
끝없이 쌓인 방사능 폐기물, 여전히 허용량의 수십 배를 상회하는 방사선량, 방사능으로 인한 급성백혈병과 갑상선암으로 죽어가는 주민들은 후쿠시마에 드리운 암담한 현실이다. 후쿠시마 곳곳에서 제염(방사능 오염을 제거하는 작업)작업이 계속되고 있지만, 피해 상황이 완전히 해결되려면 수십 년 이상이 지나야 한다. 현재 일본 정부는 폐허가 된 사고 원자로의 수습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명백한 인재
이 사건은 일본 정부도 인정했듯이, 일본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 인재(人災)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핵발전과 사고를 둘러싼 정·재계의 추악함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사건의 주범인 도쿄전력은 민간기업으로, 정부의 실질적인 규제나 감사가 전혀 미치지 않았다.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하기 3년 전에 이미 내부에서 지진 쓰나미로 인한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중요한 경고가 제기되었지만, 상층부는 이를 무시했다. 정기검사도, 정비도, 사고 대책도, 원전 부품의 점검도 모두 엉망이었다. 핵발전소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 대부분은 규정된 위험수당도 받지 못한 열악한 비정규직이었다.
일본의 원전을 감독할 책임이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주요 인사들은 핵발전 관련 기업들로부터 매년마다 수천만 엔씩의 뇌물을 받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 액수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무려 8천만 엔 이상이었다.
사고 당시 30여 시간 사이에 원전을 안정시키기 위해 해수를 투입했으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도쿄전력의 상층부는 원전이 아깝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마저 해수 투입을 지시했음에도 이행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 결과는 사상 최악의 원자력 사고로 이어졌다.
사건 발생 1년 후 일본 정부의 사고조사위는 이 사고를 “인재”라고 평가하면서도,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황당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1년 후 일본 검찰은 사고 관련자 40여 명을 전원 불기소 처리했고, 현재까지 핵발전소 사고에 책임을 지고 처벌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당시 도쿄전력 임원들 대다수가 해외로 도피했다.) 올해 2월에서야 후쿠시마의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로 이루어진 검찰 심사회가 사고 당시 도쿄전력의 임원들을 기소했다.
지금까지 약 5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제염작업을 했는데, 이들의 노동조건은 너무나 참담하다. 하청업체 파견직인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무려 최대 10단계에 걸친 하도급 계약의 가장 밑에 위치하고 있다. 제염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안전장비도 갖추지 못해 방사능 피폭을 당하면서, 월 약 1만~2만 엔의 수당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올해 갑자기 급성백혈명이나 갑상선암에 걸린 노동자들이 증가했다.
일본 시민들은 핵발전소 사고에 한심한 대응을 보인 민주당 정권에 분노를 드러냈고, 반사이익으로 자민당이 정권을 잡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 총리 아베 신조 정권의 대처는 민주당 정권보다 더욱 한심한데다가 악랄하기 그지없다. 여전히 수백 톤의 방사능 오염수가 쏟아져 나오는데도, 아베 정권은 제염 작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짓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복구 작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피난을 한 주민들을 피폭지로 돌려보내고, 올해 안에 피해를 겪은 주민들에 대한 정부 지원을 끊겠다고 공언했다. 방사능에 오염된 동일본산 식재료들을 무턱대고 유통시키고 있다.
어찌나 악랄한지 캐나다의료협회는 “체르노빌 원전사고 당시 소련의 행동이 지금 일본 정부의 행동보다 더 책임감이 있다”고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반핵운동으로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 국회의원이 된 야마모토 타로는 이런 일본 정부의 행태를 두고 “범죄 국가”라고 말했다.
원전 재가동
일본 시민들은 강력하게 ‘탈핵’을 요구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0퍼센트가 “원전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고, 다른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50퍼센트가 “원전의 재가동에 반대”했다. 현재 일본에 있는 48기의 원자로 중 거의 대부분이 가동을 하고 있지 않고 있는데, 이는 전임 민주당 정권이 원전 재가동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베 정권은 핵발전을 대체하고 있는 화력발전의 비용이 너무 부담이 된다며, 작년부터 원전의 재가동을 강력하게 추진해 왔다. 2015년 아베 정권은 가고시마현의 센다이 핵발전소를 다시 가동시켰으며, 작년과 올해에 걸쳐 후쿠이현의 다카하마 핵발전소를 다시 가동시키려고 온갖 수를 쓰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다카하마 핵발전소는 건조된 지 40년이 넘었을 뿐 아니라(아베 정권은 ‘새로운’ 안전 기준에 합격했다면서 더 쓰겠다고 한다), 바로 아래에는 지진을 일으키는 활성단층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핵발전소 바로 밑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당연히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일본의 진보정당들과 사회단체들은 주민들과 힘을 합쳐 핵발전소의 재가동을 강력하게 저지했다. 덕분에 해당 지역의 지방법원은 3월 10일에 다카하마 핵발전소의 가동을 정지시켰다.
그러나 아베 정권이 핵발전소를 재가동하려는 이유는 단순히 대체발전의 비용이 많이 나가서가 아니다. 이러한 아베 정권의 행보는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핵무장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핵발전소를 가동시키면 플루토늄이 나오고, 플루토늄만 확보되면 핵무기를 제조하기가 아주 쉬워지기 때문이다.
일본 지배자들은 오랫동안 핵무장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미 2차 대전 후인 1950년대에 A급 전범인 총리 기시 노부스케는 국회에서 일본이 핵무장을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일본의 본격적인 군사대국화를 이끈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정치 생활 내내 핵발전소 건설에 줄곧 박차를 가했다. 아베 또한 “일본은 결심만 하면 1주일 안에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을 이어갔다. 자민당의 유력 우익 정치인인 이시바 시게루는 핵연료 재처리 자체가 핵 억지력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겉으로는 일본의 핵무장에 제제를 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의 핵연료 재처리는 막지 않고 있으며, 또 얼마든지 중국에 대한 견제를 확실하게 도모하기 위해 일본의 핵무장을 묵인하거나 용인할 수도 있다. 미국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수습에 미군의 피폭까지 감수하며 적극적인 지원을 한 이유는 단순히 “인도적인 이유” 때문이 결코 아니다. 사고의 여파로 일본이 완전하게 탈원전이 되면 미국의 대중국 동아시아 정책과 미일동맹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즉, 아베 정권의 원전 재가동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과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경쟁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 동아시아의 주요 이해당사국들(한국, 북한, 중국, 일본, 대만) 중에 2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의 지배자들은 북한의 핵무장을 연일 과장하며 자체적으로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소리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결국 미국의 대중국 정책과 엮여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결국 그렇게 되면 지금 3분 전인 ‘운명의 날 시계’만 더 앞당겨질 뿐이다.
실제로 일본은 지금 보유하고 있는 약 45톤 정도의 플루토늄으로 6개월 만에 수천 기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또, 일본 정부가 온갖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데다가 고장까지 난 고속증식로 원자로인 ‘몬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속증식로는 핵연료 재처리를 거친 특수한 핵연료를 사용해, 소비한 핵연료 이상의 핵연료를 제조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무려 19번이나 원자력 사고를 낸 롯카쇼무라 핵연료 재처리장도 마찬가지이다. 핵연료 재처리는 핵무기 개발의 가장 기본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의 원전 재가동에 대해 후쿠시마의 주민들은 물론이고, 일본 시민들도 분노하고 있다. 지난 2월 사고 5주년을 맞아 후쿠시마에서 개최된 한 심포지움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직접 겪은 한 참가자는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피해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핵발전소의) 재가동을 추진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반핵운동
아베 정권의 원전 재가동 강행에 맞서서, 일본의 많은 진보정당들과 사회단체들이 저항하는 한편 반발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연대하고 있다. 앞서 말한 다카하마 원전을 지방법원이 다시 멈추게 한 일도 반핵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진보좌파세력의 중요한 성과이다.
특히 반핵운동과 반전운동이 효과적으로 결합하고 연대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반핵운동단체들의 연합체로는 ‘수도권반원전연합’, ‘원전을 없애는 전국연락회’, ‘안녕 원자력발전, 1천만 명 액션’, ‘반원자력발전운동전국연합회’가 있다. 이 연합체들은 모두 정치적인 지향점이나 성격이 다르지만, 수년간 공동으로 운동을 벌여왔다. 특히 탈핵을 위한 1천만 명 서명운동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현재 이 서명에는 8백5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사고 5주년인 올해 3월 26일에는 6번째 공동행동인 ‘NO NUKES DAY’를 주최한다. 여기에는 작년부터 집단적자위권의 법제화를 반대해 반전운동을 펼쳐 온 '전쟁을 용납하지 않는다·9조를 망가뜨리지 마라! 총력행동 실행위원회(총력행동 실행위)‘,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SEALDs, 실즈)’도 참가한다. 오키나와의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쳐 온 단체들의 연합체인 ‘올(All) 오키나와 회의’도 연대한다.
지금까지 정치적으로 대립하거나 연대를 하지 않았던 단체들이 반핵이라는 쟁점으로 뭉친 것은 일본 반핵운동·반전운동의 유의미한 성과이다. 이는 작년 아베 정권이 집단적자위권을 용인하는 안보법안을 강행 처리하면서, 시민사회의 분노와 위기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분열과 갈등만을 거듭하던 일본의 진보정당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앞서 말한 ‘총력행동 실행위’로 단결한 일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아쉽게도 일본의 운동진영에서 사회주의자들과 개혁주의자들 사이의 갈등은 깊기 때문에, ‘모든 원전을 지금 당장 없애자! 전국회의(NAZEN, 나젠)’ 등의 사회주의자 단체들은 이러한 공동행동에 연대하지 않고 있다.
핵발전은 민중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발전방식이다. 따라서 반핵운동은 반드시 필요하다. 핵발전은 핵무기의 개발과 필연적으로 연결되므로, 반핵운동에 반전운동이 결합해야 운동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후쿠시마의 참사는 여전히 일본 사회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안전한 삶을 위한 운동은 이전보다 더 활력 있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를 움직이는 진정한 힘인 노동자들이 반핵을 내걸고 조직적으로 나서야 한다. 가령 지금 반핵운동에 참가하고 있는 일본의 노동조합 내셔널센터인 연합(렌고)의 원전 노동자들이 반핵을 내세우며 조직적으로 파업을 한다면 파급력은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전력노동자들의 산별조직인 전력총련이 핵발전을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는 점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일본의 조직노동운동은 형해화되어 있고 분열되어 있다.
일본 사회의 진정한 탈원전을 위해서는 국회 앞에서의 집회도 중요하지만, 반핵을 위한 조직노동운동의 재건도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