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맞이 기자회견:
정부는 이주민 차별을 멈춰라
〈노동자 연대〉 구독
3월 21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다.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은 196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의 끔찍한 인종차별 정책에 맞서 싸우다 숨진 활동가 69명을 기리는 데서 시작됐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 인종차별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인종차별에 맞선 저항도 존재한다. 3월 19일 유럽 15개국과 레바논, 호주에서 인종차별에 맞선 행진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3월 21일 70여 단체가 공동 주최해 ‘3·21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맞이 이주 · 인권 · 노동 · 사회 단체 국제연대 공동 기자회견 ━ 인종차별적 법과 제도를 바꿔라!’가 광화문에서 열렸다.
이주노조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정부의 이주노동자 차별 정책을 규탄했다. 그는“한국 경제는 발전해 왔지만, 이곳에서 일한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는 전혀 그렇지 않다”며 “취직부터 퇴직까지 권리는 모두 노동자가 아닌 사업주에게 있”고 “사업장 인권 유린은 매우 심각하다”고 했다. 이는 정부의 고용허가제와 맞물려 있다고도 했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 유입에 대한 관리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됐다. 고용허가제는 고용주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고, 노동자들에겐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다. 임금 체불, 폭언, 폭행 등 부당한 처우가 그들의 삶에 만연해 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기는커녕 계속 후퇴시켜 왔다”며 “체불임금 때문에 노동청에 갔는데 이주노동자만 가면 취급도 안 해 주고 노무사를 데리고 가면 그제서야 얘기라도 해 준다”며 분노했다. “우리(이주노동자)는 이 사회의 노동자로 살아 왔다. 그러나 차별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며 한국 정부에 고용허가제 폐지를 강력히 촉구했다.
결혼 이주민 여성과 아동에 대한 차별도 심각하다. 이주노동희망센터 안은주 실장은 “현재 한국에 미등록 이주 아동은 약 2만여 명”인데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커야 할 아이들이 불법이라는 낙인 하에 차별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어 발언한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레티미아투(한가은) 인권팀장은 “한국에 산 지 10년이 넘었지만 한국 사회가 결혼 이주 여성들에게 보내는 차별적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이주민 여성이 혹여 이혼을 하게 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해서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데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더불어 “한국 국적을 취득해도 외국인으로 취급당하기 때문에 부모를 초청해 함께 살 권리도 없다”며 “이주민들에게 동등한 권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는 결혼 이주민에 대한 심사 기준을 강화해 왔다. 한국어 능력, 배우자 연소득 등의 기준을 강화해, 결혼을 하더라도 영주권을 얻거나 귀화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더욱이 정부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체류 자격을 취득하거나 연장하려면 남편의 ‘보증’을 받도록 해서 이주민 여성이 남편의 학대나 폭력을 겪더라도 저항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공익법센터 어필 김세진 변호사는 입국과 동시에 차별받는 난민들의 처지를 폭로하고 정부를 규탄했다. 그는, 햇빛도 보지 못하는 송환대기실에 수개월 구금된 한 난민이 “나는 여기서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 된 것 같다”고 말한 것을 언급하며, 난민에 대한 인종차별적 정책을 비판했다. “지난 파리 테러 이후 박근혜 정부는 난민을 포함한 이주민들을 ‘테러리스트’ 취급하며 통제를 강화”해 왔다. 테러방지법 제정도 그 일환이다.
노동자연대 임준형 활동가는 박근혜 정부의 테러방지법 제정과 출입국관리법 개악안을 규탄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테러방지법은 한국에 사는 사람들의 민주적 권리를 축소시킨다.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해 사람들을 마음대로 사찰하는 법이다. … 테러방지법의 첫 타깃은 이주민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파리 참사 직후 한국 정부는 테러 대책이랍시고 이주민 밀집 지역을 조사했다.”
그의 말대로 정부는 이주민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라고 여긴다.
테러방지법, 그와 함께 통과된 출입국관리법 개악안은 서로 맞물려 이주민의 강제 추방을 쉽게 하고 차별을 강화할 것이다. 최근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한 명이 비자를 연장하러 출입국관리소에 갔다가 6년 전 받았던 기소유예 사건으로 20일 동안 강제 추방 위협을 받으며 강제 구금을 당하다 겨우 풀려난 적이 있다.(자세한 내용은 https://ws.or.kr/article/16966을 참고하시오.) 그러나 그 6년 전 사건조차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당시 정부는 거짓 혐의를 뒤집어 씌워 놓고 조사하다 그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이 밝혀지자 무효도 아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이처럼 테러방지법과 출입국관리법 개악안은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임준형 활동가는 “정부는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통해 분노했던 그 말, ‘가만히 있으라’를 이주민들에게 던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 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적 편견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인종차별은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지배자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만들어져 왔다. 그러나 우리는 인종차별에 맞서 싸울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국제행동(이하 국제행동)이 전 세계 17개국에서 벌어졌다. 국제행동은 시리아 난민이 가장 많이 유입된 레바논을 비롯해 호주, 유럽 15개국 등에서 열렸다.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전후로 열리는 국제행동은 올해로 3년을 맞이했다.
특히 이른바 ‘유럽 난민 위기’에 대한 우파들의 인종차별적 공격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영국·프랑스·독일 등지에서 “우리는 난민을 환영한다!”는 국제행동이 벌어진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특히 파리 참사를 빌미로 난민에 대한 공격이 강화되는 가운데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국제 행동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세계경제 위기 상황에서 각국의 지배자들은 실업과 복지삭감, 테러 등의 책임을 이주민에게 돌리며 속죄양 삼기를 강화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인종차별 정책도 그런 공격의 하나이다. 따라서 이에 맞서 이주민을 방어하고 연대하는 것은 한국 운동진영에게도 중요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