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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여성 정책 평가

새누리당, 노동 개악 + 시간제 일자리 확대

△시간제 일자리 등 박근혜 정부 정책 뒷받침하는 공약 내놓은 새누리당 ⓒ조승진

박근혜 정부 들어 평범한 여성들의 삶은 더 나빠졌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 위기 고통전가 기조 속에서 “노동개혁”을 밀어붙였다. 정부는 여성들에게 일도 하고 아이도 보라며 시간제 일자리를 대폭 늘렸다. ‘무상보육’을 약속한 박근혜는 재정 부담을 교육청에 떠넘겼다. 해마다 반복된 보육 대란의 피해는 고스란히 학부모와 보육 교사들에게 돌아갔다. 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면 여성노동자들의 이중의 굴레를 더 강화해 온 정부 정책에 반대하고, 질 좋은 정규직 일자리 확대와 여성노동자 차별 개선, 보육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 등을 분명히 요구해야 한다.

새누리당의 공약들은 이와는 정 반대다. “노동개혁”을 적극 홍보할 뿐 아니라, 시간제 일자리도 더 확대하는 정책을 내놨다. 보육 공약도 실질적인 보육의 국가 책임은 빠져 있거나 생색내기 수준이다.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청에 떠넘기는 데 혈안이 돼 있기도 하다. 새누리당이 ‘5대 핵심 개혁 과제’ 중 하나로 제시한 ‘마더센터’ 설립 공약도 육아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은 미미하고, 시간제 일자리만 늘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얼마 전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은 각 정당에 성평등 정책에 대한 공개 질의서를 보냈는데, 여연이 요구한 과제들에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안 철회, 평균임금의 50퍼센트로 최저임금 인상, 상시지속 업무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 국공립어린이집 30퍼센트로 확충, 이주여성의 취업 이동의 자유와 체류권 보장, 성적지향·성별정체성을 차별금지 사유로 예시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등 여성의 삶을 개선할 좋은 요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이에 대한 답변 자체를 거부해, 차별받는 여성들의 처지 개선에는 아예 관심이 없음을 보여 줬다.

새누리당 여성 비례대표들의 면면을 봐도, 이런 점이 드러난다. 이들은 대부분 성공한 여성 기업인들, 정부의 친기업 정책을 옹호해 온 이들이다. 코레일 사장 최연혜처럼 철도 민영화를 밀어붙인 자나 세월호 유가족들을 모욕한 김순례도 포함돼 있다. 이런 이들이 평범한 여성들의 삶을 이해할 리 없다.

더민주당, 새누리당보다는 낫지만 한계 명백

△우클릭 중인 더민주당 ⓒ〈노동자 연대〉

더민주당의 여성 노동, 보육 문제 관련 공약들은 새누리당과는 구별된다. 상시적 업무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고용, 최저임금 1만 원, 생활임금제, 공공 돌봄 서비스 일자리 확대와 처우 개선, 국공립어린이집 30퍼센트까지 단계적 확충, 육아휴직 급여 인상 등. 더민주당은 NGO 여성 단체들과 긴밀하게 소통해 왔는데, 여성 단체들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인 듯하다. 그럼에도 여연이 요구한 핵심 과제 중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임신중절(낙태) 허용은 제외됐다.

더민주당이 자신의 공약들을 얼마나 우선순위에 두고 진지하게 실현해 나갈지도 의문이다. 지난해 더민주당은 ‘노동개혁’ 문제에서도 당론으로 ‘노동개혁’ 5법에 반대한다고 했지만 결국 비정규법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쟁점 법안을 놓고 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후퇴했다. 이보다 더 후퇴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이는 더민주당이 주되게 자본가 계급에 기반을 둔 친자본주의 정당이기 때문이다.

국공립어린이집을 전체의 30퍼센트까지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이를 위한 비용으로는 한 해 2천5백억 원만을 계획했다. 국공립어린이집을 전체의 30퍼센트까지 확대하려면 1만여 곳을 짓거나 전환해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더민주당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비용절감형’ 국공립어린이집 모델을 추진하려는 듯하다. 물론 이 모델이 민간어린이집보다야 나은 측면이 있지만, 위탁 운영에서 오는 문제점(여전히 보육의 질과 고용 조건이 낮은 문제, 위탁체 선정시 비리 문제) 등 한계도 명백하다.

게다가 최근 김종인을 영입해 전권을 쥐어 준 데서 보듯, 더민주당은 경제·안보 위기 속에서 우클릭 해 왔다. 이런 정당이 일관되게 여성 노동자·서민의 처지 개선을 위해 노력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진보·좌파 정당들, 새누리당·더민주당보다 월등히 낫다

여성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에 중요한 공약들을 제시한 진보·좌파 정당들 ⓒ이미진

반면, 진보·좌파 정당들은 여성 노동자·서민의 삶의 질 향상에 중요한 공약을 제시했다. 가령, 정의당과 노동당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좋은 일자리 만들기, 최저임금 1만 원,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노동운동의 요구들을 폭넓게 반영했다. 사회서비스 노동자나 돌봄노동자 처우 개선도 주요 공약으로 포함돼 있다. 국공립보육시설 확대, 보육교사 처우 개선, 누리과정 예산 국가 부담 등 보육에 대한 국가 책임도 강조하고 있다. ‘여성과 남성의 평등한 돌봄’을 강조하며 유급 육아휴직 확대, 육아휴직급여 인상, 아빠 육아휴직제 의무화도 제시했다. 녹색당의 여성 정책에도 핵심적이고 중요한 공약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민중연합당도 여성노동자 차별을 없애기 위한 여러 공약들을 제시했다.

노동당은 국공립보육시설을 2020년까지 전체 어린이집의 50퍼센트까지 확대하겠다고 했다. 정의당은 국공립어린이집 이용 아동수를 기준으로 약 30퍼센트까지 늘리겠다고 공약했는데, 노동당의 여성 관련 정책은 대체로 정의당의 것보다 더 폭넓고 급진적으로 보인다. 기본소득과 함께 아동돌봄수당을 도입하겠다고 한 것도 노동당 공약의 특징이다.

정의당 공약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강화와 피해자 유급 휴가·휴직 도입’ 공약이 눈에 띈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정의당과 노동당은 몰래카메라 촬영물 유포 사이트나 스토킹 범죄와 같은 신종 범죄 관련 조항을 법에 명시하고, 과도한 미용·성형 산업에 대한 규제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주 여성과 북한 이탈주민 여성 등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 것도 눈에 띈다.

정의당·노동당·녹색당이 모두 성적 지향·성별정체성을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한 것도 훌륭한 일이다. 앞서 말했듯, (새누리당은 물론) 더민주당은 이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물론 아쉬움이 남거나 한두 개 정도는 선뜻 지지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가령, 낙태 허용을 “사회경제적 사유”로 제한한다거나 ‘비양육자의 양육비 이행 강제조항’을 강화한다거나 성매매 비범죄화와 함께 성구매 남성 처벌도 요구한다거나 데이트 폭력에 대한 대응으로 ‘클레어법’(데이트 상대방의 전과를 조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도입한다거나 하는 공약은 다소 지지하기 어렵다.(아래 박스 기사 참조)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정의당과 노동당 등 진보·좌파 정당들의 여성 공약은 새누리·더민주당보다 월등히 낫다.

아쉬움이 남거나 선뜻 지지하기 어려운 몇 가지

정의당은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임신중절 허용”을 공약했다. 이는 여연이 제시한 핵심 과제 중 하나이기도 했다. 낙태를 불법화하고 있는 현행 한국의 법률에 비춰보면 이는 분명히 진보한 것이다. 새누리당·더민주당은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 다만, 사회경제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여성들이 있고, 그럴 때에도 여성에게 자신의 몸과 삶을 통제할 권리, 낙태권을 보장해야 한다. 몇 년 전 프로라이프의사회의 낙태 단속 캠페인에 반대해 여성·진보·좌파들이 모여 결성한 ‘임신출산결정권을위한네트워크’는 “여성의 요청에 의한 낙태 시술을 전면 허용”하라는 요구안을 발표한 바 있다. 노동당이 “사회적, 경제적 이유”뿐 아니라 “개인적” 이유로 인한 낙태 보장도 공약한 것은 그런 점에서 좋은 일이다. 녹색당도 “사회경제적” 사유로만 한정하지 않았다.

한편, 정의당·노동당·여연이 한부모 가족 지원의 일환으로 제시한 ‘비양육자의 양육비 이행 강제조항 강화’ 요구는 지지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이혼한 가정에서 남성들이 양육비를 보내지 않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의 처지를 고려한 요구인 듯하지만, 개별 가족 구성원에게 양육부담을 강제하는 방안보다는 한부모 가정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대폭 강화하라고 요구하는 게 옳을 것이다. 자칫 의도치 않게 국가가 가족제도를 강화하려는 시도를 돕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매매 비범죄화 요구는 꼭 필요한 정책이지만, 성구매 남성 처벌 요구는 지지하기 어렵다. 이른바 노르딕 모델의 경험에 비춰 보면, 성구매 남성 처벌은 성매매 감소 효과는 불확실하고, 성매매 음성화로 성매매 여성들을 더한층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았다는 지적이 있다. 국가권력 강화가 노동계급과 천대받는 사회집단들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성매매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는 본지 146호에 실린 정진희의 기사 '성매매 처벌은 성매매 여성들을 더욱 고통에 빠뜨릴 뿐이다'를 참고하시오.)

정의당이 데이트 폭력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겠다면서 영국의 ‘클레어법(데이트 상대방의 전과를 조회할 수 있도록 하는 법) 도입’을 내건 것은 데이트 폭력에 대한 편견에 타협한 결과로 보인다. 경찰도 총선을 앞두고 데이트 폭력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겠다면서 이 법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전과자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찍을 뿐, 실효성은 없다는 점에서 여성단체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여협) 기념행사에 참가한 것은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원 중 여성 비율이 매우 적은 현실은 여성차별적 현실을 보여 주는 것이므로,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강화하라는 요구는 지지할 만하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들의 처지를 악화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보수 단체인 여협 행사에 심 대표가 참가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다(지난해 여협은 이화여대에서 자신들의 행사에 박근혜를 초청했다가 학생들의 큰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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