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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정치적 각성: 우리 시대 대표적 리더와 사상가 20인의 인생을 바꾼 정치적 각성의 순간들》:
낯설지만 흥미롭고 다채로운 비판적 교양 서적

노엄 촘스키, 타리크 알리, 하워드 진. 목차에서 이 이름들을 보자마자, ‘한번 사 읽으면 본전은 뽑겠다’ 싶었다. 대체로 믿고 읽어 볼 만한 좌파 저술가들이 아닌가. (사실 고백하자면, 이 책에 나오는 20인 중에 이들 밖에 알지 못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그 이상으로 괜찮은 책이었다.

이 책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국제관계연구소 상임이사인 해리 크라이슬러가 〈역사와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에서 진행한 진보적 지식인과 활동가들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은 2010년 《진실에 눈을 뜨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는데, 내용상의 큰 변화는 없는 듯 하다.

《정치적 각성 - 우리 시대 대표적 리더와 사상가 20인의 인생을 바꾼 정치적 각성의 순간들》, 해리 크라이슬러 지음, 이마고, 372쪽, 15,500원

이 책의 뒷 표지에는 “그들은 왜 행동하는 지식인, 비판적인 지식인이 되었는가”라고 써 있고 몇몇 인물들이 ‘정치적 각성’을 겪은 순간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이 책이 주로 좌파 지식인·활동가들의 의식 변화에 관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물론 타리크 알리와의 대담을 다루는 장에서는 그가 젊은 시절 어떻게 급진화했는지 무협지처럼 재미있게 서술돼 있다. 이 외에도 68운동·반전운동을 비롯해서 60년대 후반의 운동들이 어떻게 ‘한 세대를 급진화시켰’는지 새삼 알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책의 대부분은 대담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사회적 쟁점이나 참여하고 있는 운동에 대한 소개를 다루고 있다. 이런 부분은 표지와 살짝 다르지만 충분히 흥미로우니 읽어 보길 권하고 싶다.

앞서 언급한 세 사람의 이름은 독자들에게도 익숙할 것이다. 〈노동자 연대〉에도 그들의 글이나 그들을 소개하는 글이 실린 바 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낯설게 느껴지는 이름이 많다. 다수가 미국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이고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스펙트럼 또한 여러 의미로 다양하다. 분야로 치자면 좌파 저술가들과 활동가들은 물론 작가나 영화감독, 법조인, 정치인까지 포함한다. 이념적 성향도 미국 민주당 성향의 자유주의자에서 사회주의자, 포스트구조주의자까지 다양하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글들은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지만, 어떤 글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읽게 된다.

이들 중에는 자유주의 정당에 의존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고 “진보적 애국”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부분에서 이견은 있지만 그들이 던져 주는 통찰은 고찰해 볼 만하다.

통찰

이 책에는 다양한 ‘정치적 각성’들이 소개된다. 노엄 촘스키나 조앤 스콧 등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부모나 주변 환경을 통해 진보적 신념을 갖게 됐고, 타리크 알리 등은 보수적인 어린 시절 환경에 도전하면서 급진화했다. 오마에 겐자부로, 오론토 더글라스 등은 특정한 운동에 우연히 혹은 의식적으로 개입하면서 사고의 변화를 겪었고, 하워드 진은 자신이나 주변의 경험을 통해 생각이 바뀌었다. 심지어 지배적 계급과 그 사상에 종사하다가 환멸을 겪으면서 1백80도 변한 사람들도 있다!(대니얼 엘스버그와 찰머스 존슨의 사례가 인상적이다)

책에서 다뤄지는 소재는 노동운동부터 반전·반제국주의 운동, 역사, 저항적 예술, 인권운동에서 환경운동까지 다채롭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관심 있는 분야를 탐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중동지역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꽤나 도움이 되는 내용들도 있다. 특히 아미라 하스의 인터뷰를 추천하고 싶다. 그는 이스라엘 출신의 저널리스트인데, 팔레스타인 문제와 오늘날 이슬람 근본주의에 관해 상당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 장을 읽다 보면 팔레스타인 인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잔혹한 현실에 가슴이 짠해지고 이스라엘 정부의 가혹한 만행에 분노하게 된다.

이 외에도 마이클 폴란이 쓴 자본주의적 농업과 식품문제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찰머스 존슨이나 대니얼 엘스버그의 글을 읽다 보면 제국주의의 추악한 민낯을 생각하게 된다.

몇몇 부분이 제시하는 대안들은 상당히 공감할 만하다.

“지금 우리가 당연시하는 모든 것이 그 당시에는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것들이 등장했을까요? 천사가 선물로 줬겠습니까? 아닙니다. 투쟁을 통해서. 자신을 헌신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공동 투쟁을 벌였기 때문입니다.”(노엄 촘스키)

“글쟁이 한 명이 뭔가를 바꿀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려면 운동이 필요합니다. 일종의 사회운동, 거리로 뛰쳐나가 분명히 외치는 사람들의 특정한 행동이 필요한 것죠. (…) 이런 목소리가 단 하나뿐이라면 …… 그것은 급진적인 극단주의자, 비관주의자의 목소리로 간주됩니다.”(아미라 하스)

“그래서 저는 이른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지지합니다. 저는 민주주의만이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있다는 입장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양립하기 어려움을 점점 깨닫고 있습니다.”(타리크 알리)

“민중이 행동하고, 지속하고, 단결하고, 조직해서 변화를 이끌어낸 역사적 사례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하워드 진)

그럼에도 일부 인물들은 다소 온건하거나 무망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때문에, 그런 내용은 비판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상당수의 인물들이 한국에서는 낯설기 때문에 한국인 독자들을 위한 친절한 인물 소개가 부족하다는 점, 꽤 오래 전에 진행된 몇몇 인터뷰의 경우 현실과 조금 다르다는 점은 아쉽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이제 갓 진보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 보려는 사람들, 보다 다양한 분야를 좌파적으로 고찰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여유가 있다면 가까운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이 책을 꼭 접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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