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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한 기업 성차별:
성차별은 체제의 문제다

기업들이 하반기 채용을 시작했지만, 대체로 여성 채용을 기피한다. 또, 얼마 전에 게임 업체 넥슨은 메갈리아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여성 성우를 해고했다.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이지원이 기업의 성차별을 살펴본다.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이 부당하게 차별받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한국은 2015년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세계 성평등 지수’에서 145개국 중 115위를 차지했다.

한국에서 여성들의 고등기관 진학률은 꾸준히 상승해 왔다. 2009년에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82.4퍼센트로 남성(81.6퍼센트)을 추월했다. 또한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입은 지속적으로 늘어 왔다. 2015년 통계청의 조사를 보면, ‘여성도 직업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3세 이상 인구의 85.4퍼센트에 이른다. 이렇게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남녀 모두의) 의식이 변화하는 추세이지만,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겪는 차별은 여전하다. 역겹게도 기업들은 노동시장에서 온갖 성차별을 유지·조장하고 사회 전체에서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데 앞장서 왔다.

ⓒ인포그래픽 김준효 (크게 보기)

1987년에 만들어진 〈남녀고용평등법〉에는 “성별, 혼인 또는 가족 안에서의 지위, 임신 또는 출산 등의 사유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채용 또는 근로의 조건을 다르게 하거나 그 밖의 불리한 조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법이 제정된 지 30년이나 됐지만,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상당하다.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2년 이래 부동의 1위다. 2013년 기준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36.1퍼센트로 OECD 28개국 평균(15.8퍼센트)의 갑절을 훌쩍 넘는다. 1989년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법에 명문화됐지만, 기업들은 이런저런 꼼수를 부리며 차별을 유지해 왔다.

대표적으로,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에 여성 노동자들과 여성·노동 단체들의 저항으로 금융권의 ‘여행원제도’는 폐지됐다. 금융 기업들은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남성 노동자들과 다른 임금 체계를 적용해 차별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에 기업들은 분리직군제를 핵심으로 하는 ‘신인사제도’를 도입해 여성 노동자들을 차별했다. 분리직군제는 임금·승진 차별을 고착화시켰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2015년에 공개한 자료를 보면, 국내 11개 은행 여성들의 평균 연봉은 남성들의 63퍼센트에 불과하고 여성 임원 비중은 6.6퍼센트에 머물고 있다. 특히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서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직원의 평균 연봉(5천6백만 원)은 남성 직원의 평균 연봉(1억 원)의 절반 가량에 지나지 않았다. 산업은행에는 여성 임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성별 임금격차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노동자들보다 비정규직이 될 가능성도 더 크다. 2013년 기준 여성 노동자 7백62만명 중 57.5퍼센트가 비정규직이다(통계청).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은 정규직 남성 노동자 임금의 35.4퍼센트밖에 안 된다. 임신과 육아 등으로 인한 경력단절현상이 여성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한 요인이다.

임신, 출산, 육아 등을 이유로 한 차별도 여전하다. 악명 높던 ‘결혼퇴직제’는 1970~80년대에 여성 노동자들과 여성·노동단체들의 저항으로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얼마 전 주류업체 금복주가 결혼을 앞둔 여성 직원에게 퇴사를 종용했다는 사실이 폭로돼 사회적으로 큰 빈축을 산 바 있다. 취업 준비를 위한 온라인 카페를 조금만 둘러봐도, 면접 때 유독 여성에게만 “결혼은 할 거냐”라고 물어보는 사례가 꽤 많았다.

육아휴직 사용률은 41.4퍼센트로, 꾸준히 느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특히 불안정한 고용형태에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기는 매우 어렵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직장맘센터의 1년치 상담 결과를 보면, 육아휴직을 사용하며 해고를 포함한 불이익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52퍼센트나 됐다.

‘사원 복지’ 운운하는 대기업에도 여성 차별은 만연하다. 지난 6월 삼성물산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한 여성노동자들에게 ‘각종 권리를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쓰게 한 것이 폭로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삼성 물산은 취업 준비생들이 가고 싶어하는 건설 회사 1위다. 국립대병원인 서울대병원에서는 가임기 간호사들이 관리자들의 지시 하에 임신 순번을 정하는 일도 있었다.

정부는 저출산을 해소해야 한다면서도 정작 이런 기업들의 행태에는 강력히 제동을 걸지 않는다.

〈남녀고용평등법〉에는 ‘사업주는 여성 근로자를 모집·채용할 때 그 직무의 수행에 필요하지 아니한 용모·키·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 미혼조건 … 을 제시하거나 요구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외모차별 금지 조항’이 있다.

여성들에게 “단정한” 외모를 요구하는 채용 광고들은 여전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장 얼마 전 박근혜가 방문하는 정부 주관 행사였음에도 행사 업체가 통역사 채용 광고에 ‘용모 중요·예쁜 분’을 조건으로 제시해 지탄의 대상이 됐다.

대형 영화관들이 아르바이트하는 여성들에게 화장과 구두 착용 등을 강요하고 립스틱 색깔까지 지정해 준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알바노조가 공개한 ‘CGV 미소지기 용모 복장 기준’을 보면, 여성 노동자들은 생기 있는 피부화장을 반드시 하고, 눈썹 형태가 또렷이 드러나도록 해야 하며, 옅은 눈 화장과 붉은 립스틱은 필수라는 규정이 있다. 심지어 본사가 정한 외모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이달의 꼬질이’로 선정해 벌점을 주고 있다.

채용 시 외모를 보는 관행 때문에 많은 여성들은 각종 스펙을 쌓는 것에 더해 외모까지 신경써야 하는 처지다. 그래서 흔히 여대생들이 취업 준비에 뛰어 들면 가장 먼저 접하는 정보는 “면접 화장 배워 보기”, “이력서 사진 잘 찍어주는 사진관” 따위의 것들이다. 심지어 ‘면접 성형’이라는 것도 생겼다!

성 상품화

기업들은 노골적으로 여성의 몸을 상품화해 이윤을 벌어들이고 여성에 대한 차별적 관념을 퍼뜨린다. 호프집 벽에 붙은 흔한 주류광고는 물론이고, 음료, 택배, 면도기, 이동통신사까지 여성의 성적 이미지를 부각한 광고들 천지다. 대형 연예인 기획사들은 젊은 여성들을 거의 벌거벗겨 놓고 섹시 춤을 추게 해서 돈을 벌고, 언론과 TV프로그램들은 그런 몸매와 섹시미를 갖는 것이 여성의 본분이라도 되는 양 치켜세운다. ‘못생기고’ 뚱뚱한 여성들을 비하하는 것은 당연할 뿐 아니라 재미있는 것으로 치부된다.

메갈리아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여성 성우와의 계약을 해지한 넥슨은 게임에 옷은 반만 걸치고 가슴과 엉덩이를 부각시킨 여성 캐릭터를 출현시켰다가 항의에 직면했다. 결국 〈서든어택2〉는 23일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렇듯 기업들의 성차별적 행태는 너무 많아 지면이 모자랄 지경이다. 기업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차별적 구조를 유지하고 차별 관념을 퍼뜨릴 수 있는 진정한 권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여기에 이해관계가 있다.

정부와 사용자들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적은 임금을 주고, 안 좋은 노동조건을 강요함으로써 이득을 얻는다. 이것은 결국 여성 노동자들뿐 아니라 남성을 비롯한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 조건을 하락시킬 수 있으므로 기업주들에게 더욱 이득이다. 이렇듯 자본주의 체제의 차별과 억압은 노동계급을 분열시켜 더욱 효과적으로 착취하기 위한 것이다.

여성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전진할 수 있다 2015년 홈플러스 파업 집회 ⓒ이미진

여성 노동자 10명 중 4명이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 확대 정책 폐기해야

한국의 여성 노동자 10명 중 4명이 저임금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월 18일 OECD의 발표를 보면, 2016년 기준 여성 임금 노동자 중 저임금 노동자(임금 중위값의 3분의 2 미만) 비중은 37.8퍼센트로 OECD 비교가능한 22개국 중 가장 높았다.

여성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2000년의 45.77퍼센트에 견주면 떨어진 수치이지만, 다른 OECD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높은 수준이었다. 한국의 뒤를 잇는 나라는 아일랜드, 미국, 영국, 독일 순이었는데, 이 나라들도 한국보다 7~12퍼센트포인트가량 낮았다.

박근혜 정부는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시간제 일자리 확대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런 저질 일자리 양산 정책은 여성들을 더욱 저임금층으로 내몰게 할 것이다.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중단하고,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와 국공립 보육시설과 같은 질 좋은 보육시설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착취와 차별에 맞선 투쟁

여성 노동자들이 차별받는다고 해서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이 주변적이라거나 힘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여성 임금노동자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44퍼센트를 차지한다. 여성 노동자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노동계급의 주요한 일부가 됐다. 여성 노동자들 역시 파업 등 노동자로서의 고유한 힘을 발휘한다면 이윤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집단이다.

최근에도 여성 노동자들이 투쟁해 전진을 이룬 사례는 많다. 각종 수당 문제 해결, 정기 상여금 쟁취 등 전반적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단호한 파업 등으로 일정 부분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몇 년 전 인기를 얻은 영화 〈카트〉는 2007년 실제 있었던 이랜드 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뤘다. 여성 노동자들은 투쟁 속에서 그들의 잠재력을 한껏 보여 줬다. 이랜드일반노조는 매장 점거파업을 통해 꿈쩍도 않던 사측을 교섭테이블로 끌어내고 비정규직 쟁점을 전국적으로 떠오르게 했다. 최근에도 홈플러스 등 마트 노동자들이 투쟁을 벌여 사측의 양보를 얻어낸 바 있다. 2000년대 이래 조직된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최저임금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 정책에 도전하는 투쟁에서는 여성 조합원 비율이 높은 전교조, 보건·의료 관련 노조 등 여성 노동자들도 남성 노동자와 함께 나섰다.

착취와 차별에 맞선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 남성 노동자들이 함께 투쟁했고, 지지를 보냈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7월 전국철도노동조합 호남지방본부의 사례는 매우 고무적이다. 익산역 역무원인 한 여성 노동자가 생리휴가를 사용하려 하자 여성인 관리자가 “산부인과에서 확인서를 떼다 내라”, “직접 확인해보겠다”는 말까지 일삼으며 연차로 대체할 것을 강요했다. 그 과정에서 다수 남성 조합원들은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노동조합의 일로 삼아 함께 문제제기를 했고, 현재까지도 재발 방지 등을 요구하며 함께 싸우고 있다.

이런 고무적인 사례들은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들이 단결해 싸울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기업들의 성차별적 행태에 맞서 남녀 노동자가 함께 단결해 싸우자.

△임신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에 항의하는 보라매병원 노동자들 ⓒ사진 이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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