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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미국의 모든 것에 동조적”인 친미·친제국주의 인사

반기문이 유엔 사무총장 임기 종료를 코앞에 두고 있다. 새누리당의 친박 인사들은 반기문을 유력한 대선 후보로 띄우기에 열심이다. 그들은 “세계 대통령” 운운하며 반기문을 포장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사무총장 임기 10년 동안 반기문은 단지 “무능”하고 “유명무실”한 것만이 아니라 철저히 제국주의 지배 질서 유지에 충실했다. 특히 미국의 이해관계를 거스르는 법이 없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문서에서 주한 미국 대사 버시바우는 반기문을 두고 “미국인과 미국의 가치, 미국 정부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고, “미국의 모든 것에 동조적”이라 평가했다. 정말로 미국이 “필요한 게 있을 때”마다 반기문이 있었다.

지배자들의 충실한 ‘사무장’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반기문을 대략 자기 사람이라고 간주한다”고 평했다. ⓒ사진 출처 미 정부

2006년 당시 미국의 대(對)중동 전략에 적극적 지지를 보낸 답례로 미국은 반기문이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하도록 적극 밀어줬다. 당시 버시바우가 “반기문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더라도 미국 정부와의 관계가 변함없을 것”이라고 평했을 만큼, 그는 철저히 친미적 인물이었다. 반기문은 취임 당시 “모두의 의견을 들어 편파적이지 않은 조직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임기 내내 친미적 태도로 일관했다.

2007년 이라크 후세인 처형을 두고 “각국이 판단할 일”이라며 사실상 사형을 옹호했다.

위키리크스 폭로에 따르면, 유엔 조사위원회가 2008~09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서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를 찾아냈지만 반기문은 보고서 내용을 축소시켰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수전 라이스가 반기문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건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스라엘 군대가 실탄·수류탄을 쓰고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겨우 돌로 맞섰는데도 반기문은 ‘양측’ 폭력 자제를 요구했다. 반기문의 ‘중재’는 실상 이스라엘의 책임을 흐렸다.

그래서 2012년 반기문은 가자지구 방문 중에 “반기문, 이스라엘에 대한 편애는 충분하다”고 외치는 시위대와 마주해야 했다. 한 시위 참가자는 반기문에게 신발을 던졌다. 이라크 기자가 부시에게 신발을 던진 일을 연상케 하는 일이었다.

2011년 아랍혁명의 일환으로 리비아에서도 혁명군이 카다피 정부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서방은 이 지역에서의 석유 산업의 이권 보장과 아랍 혁명 확산 차단에 골몰했다. 반기문은 이제껏 한 번도 채택된 적 없던 “보호 책임(R2P, Responsibility to Protect)” 개념을 적극 지지했다. R2P는 인도주의를 구실로 한 강대국의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개념으로 서방은 리비아 공습의 명분을 마련하게 됐다. 반기문은 이때도 오바마를 긴급히 만나서 “리비아 상황에는 강하고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 “일치”를 이뤘다.

2013년 반기문은 유엔의 승인 없는 시리아 공격에 반대한다고 했지만 2014년 9월 22일 미국이 시리아를 공습하고서 이틀 뒤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전세계 평화와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사실상 공습을 두둔했다.

“지나치게 편파적”

한편, 반기문은 “인권 우선”을 앞세우고, “페미니스트”를 자처하지만 실제 행보는 이와 정반대였다.

올해 1월 반기문은 한일 ‘위안부’ 합의로 피해 할머니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을 때, 박근혜에게 전화를 걸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라면서 “한일 간 어려운 관계가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에 비춰 이번 협상이 타결된 것을 매우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추어줬다.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동맹을 강조하는 미국의 입장에 서 있는 언사였다.

올해 6월에 반기문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력에 굴복해 그 나라를 아동인권침해국 명단에서 빼 버렸고, 지난해에도 ‘분쟁지역 어린이 인권 침해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을 제외시켰다. 유엔 평화유지군 자신이 아프리카 등에서 성범죄를 저지르고 있지만 반기문은 미온적 태도를 보이다가 임기 말이 돼서야 비판 목소리를 냈을 뿐이다. 반기문은 국제엠네스티가 한국의 인권 후퇴를 경고하는데도 한국의 인권과 표현의 자유가 제약되는 것에 대해서 침묵을 지켜 왔다.

반기문이 스스로 치적으로 꼽는 파리 기후협약 체결도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매우 부족한 수준이다. 이 협약으로는 온도 상승을 2도 이하로 낮추자는 목표를 결코 달성할 수 없다.

반기문은 ‘세계 대통령’은커녕 미국과 제국주의 열강을 위해 충실히 일하는 자였을 뿐이다. 미국이 반기문의 UN 사무총장 재임 길을 터 줬던 것도, 새누리당이 반기문을 내세우고 싶어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동적 전력

● 반기문은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는 데에 앞장섰다. 그래서 ‘파병반대국민행동’ 등 반전 운동 세력은 반기문을 “파병 5적”으로 꼽았다. “한국인이 납치되더라도 파병 계획엔 변함이 없을 것”이라던 반기문은 실제로 2004년 김선일 씨가 피랍됐는데도 “국민도 정신 차리고 스스로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고 파병 계획을 고수해 사실상 살해를 방조했다.

● 2002년 외교본부 대사 시절에는 미국의 미사일방어국 후원 하에 열린 비공개 회의에 참석했는데 이 회의에서는 한국 정부가 MD에 긴밀히 협력하는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 2006년에 시작된 용산미군기지 반환 협상에서도 반기문의 ‘활약’이 단연 돋보였다. 미군이 용산기지 정화 비용의 극히 일부(5억 1천5백만 달러 중 2백만 달러)를 내놓겠다고 하자 국내 반발을 우려한 정부 관료들이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이던 반기문은 환경부장관에게 압박을 넣으며 미국 측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데에 일조했다.

● 반기문은 민영화를 확대할 한미FTA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무역 자유화의 첩경이자 세계적 대세인 FTA 대열에 적극 동참하고자 한다.”

● 신자유주의 의제를 확대해 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 회의를 2005년 부산에서 열 때도 반기문은“대테러 의지 재확인”을 강조했는데 이는 미국 동맹국들의 이라크 전쟁 참여 강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 반기문이 1980년대 미국 망명 중이던 ‘김대중 동향’을 (알려진 것만) 두 번 전두환 정부에 보고했던 전력이 올해 폭로됐다. 반기문은 외교부 참사관으로 연수생이라 보고 의무가 없는데도 열심이었다.

유엔은 결코 평화의 수호자가 아니다

유엔은 “인권”, “평화”를 입에 달고 살지만 결코 세계 평화를 위한 중립적 기구가 아니다.

유엔은 그 탄생부터 제2차세계대전 후 승전국들의 이해관계 보호를 위한 것이었다. 이 기구가 처음으로 한 일이 바로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한 것이었다.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영구적·절대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다섯 상임 국가 ― 미국, 러시아, 영국, 중국, 프랑스 ― 야말로 세계 각지에서 전쟁을 일삼고 군비 경쟁을 벌이면서 이 세계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들이다.

유엔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벌이는 전쟁과 범죄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은 2011년 이스라엘로부터 강제 이주와 학살을 동반하는 서안지구 재배치 계획을 전달받고도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유엔은 1991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것을 승인했고 이후 이라크를 상대로 혹독한 경제제재를 가했다. 이 경제제재로 어린이만 5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실시된 유엔 최대 인도주의 사업으로 알려진 ‘석유식량교환 프로그램’에서 참여 기업 4천5백 곳 중 절반가량이 뇌물을 주고 부당 이득을 취한 것이 폭로됐다. 여기에는 당시 사무총장 코피 아난의 아들도 연루돼 있었다. 콩고와 코소보 등 유엔이 관여한 곳마다 뇌물 수수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유엔평화유지군은 분쟁 지역 개입을 이유로 제국주의 국가들의 영향력 확대를 돕는 구실을 해 왔다. 1992년 소말리아에 개입해 내전을 부추기고 끔찍한 살상을 저질렀고, 아이를 산 채로 불태우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또한 평화유지군은 아이티, 콩고, 수단 등 주둔 지역의 가난한 여성과 아동을 상대로 먹을 거리나 일자리 등을 미끼 삼아 성범죄를 저질렀다.

2010년 아이티 지진 피해 직후 이 지역에서 1백 년 만에 콜레라가 창궐해 80만여 명이 감염되고 1만여 명이 사망했다. 당시 과학자와 의사들은 유엔 평화유지군이 이 병을 옮겨 왔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유엔은 평화유지군의 폐기물 관리 실태에 대한 비판적 권고 보고서도 공개하지 않았다. 유엔이 콜레라 창궐 책임을 인정하는 데에 무려 5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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