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방송’ 거부 KBS 파업:
“청와대 개입, 이제는 정말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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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8일 오전 6시부터 전국의 KBS 노동자들(민주노총 언론노조 KBS본부와 KBS노동조합)이 ‘공정 방송 쟁취, 보도 참사·독선 경영 심판’을 위한 파업에 돌입했다. 양 노조 조합원들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의 KBS 보도·인사 개입의 책임을 물어 당시 길환영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파업을 벌인 이후 2년 6개월 만에 파업 투쟁으로 다시 뭉쳤다. 송출기본근무자 등을 제외한 3천7백82명이 양 노조의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조합원인 앵커나 진행자가 파업에 참여하면서 TV 뉴스와 라디오 등 주요 생방송 프로그램에서는 간부 아나운서들이 대체 투입됐고, 일부 코너는 불방되는 등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 성재호 위원장이 “새벽부터 파업에 동참한 아나운서 조합원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자, 다른 조합원들은 커다란 박수로 서로를 응원했다.
8일 오후 2시부터 KBS 본관 계단에서 진행된 양 노조 파업 출정식에는 서울부터 제주까지 전국에서 온 노동자 1천5백여 명이 모여 본관 계단과 광장을 가득 메웠다. 노동자들은 출정식 내내 밝은 표정을 지으며 한 손에는 손팻말을 꽉 쥐고 힘 있게 구호를 외쳤다.
특히 노동자들은 청와대 낙하산으로 내려온 사장과 간부들이 보도 통제를 일삼으며 KBS를 ‘청와대 방송’으로 망쳐 놓은 것에 분개했다. 그러면서 이번 파업 투쟁에서 꼭 승리해 박근혜 퇴진 촛불에 화답하자고 결의를 다졌다. 연단에서 발언한 양 노조 대표자들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 참사’를 비판하며, 이번 기회에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일명 ‘언론장악방지법’)을 개정하고 KBS 안에서 박근혜 체제를 뿌리 뽑자고 주장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은 공영방송 이사를 13명으로 늘리고(여야 추천 비율 7 대 6), 사장 임명 시 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 동의를 받는 특별다수제 도입 등이 주요 골자다.
방송 엔지니어 노동자는 “중계차가 낙서로 도배되고 직원들은 부끄러워 KBS에 다닌다고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선 권력에 의해 낙점되는 사장 선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지금이 가장 호기다. 이번에 반드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이뤄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노동자들은 파업 출정식을 마치고 새누리당사 앞까지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행진해 갔다. 이어 노동자들은 새누리당사 앞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 퇴진! 언론장악 분쇄! 언론노조 총력투쟁 결의대회’에 참가했다. 다른 집회 참가자들도 KBS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에 적극 지지를 표했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최영준 공동상황실장은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고자 하는 수많은 이들이 ‘청와대 방송’을 거부하고 파업에 나선 KBS 노동자들을 커다란 자랑으로 삼고 있다”며 “박근혜 정권 퇴진과 언론 개혁을 위해 함께 투쟁하자”고 호소했다. 노동자들은 그날 저녁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 집회에도 함께했다.
그런데 이날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불참 등으로 개최되지 않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의 법안심사소위 회부가 또다시 불발됐다. 다음 날인 12월 9일에 정기국회가 종료돼 이번 회기 내 처리는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됐다.
새누리당은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공영방송 이사를 새로 구성해 사장을 선출(신임)해야 하고 이에 따라 청와대 낙하산인 현 공영방송 사장들이 교체될까봐 반대하고 있다. 내년 초에 있을 MBC 사장 인사를 겨냥해 거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심각한 정치 위기를 겪고 있음에도, 언론 장악의 야욕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것이다.
KBS 양 노조는 9일 저녁에 정기국회 종료에 따라 이틀 간 진행한 파업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공정방송 쟁취의 핵심 조건인 ‘언론장악방지법’(방송법 개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향후 국회 미방위 등의 주요 일정에 맞춰 또다시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양 노조의 이틀 간의 파업 행동은 그간 KBS 노동자들이 ‘청와대 방송’이라는 오명 속에서 정권과 사측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켜켜이 쌓아 왔다는 것을 보여 줬다. 그리고 당당히 ‘청와대 방송’ 거부를 선언한 노동자들에 대한 지지가 상당하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파업을 발판으로, 공정 방송 쟁취와 사측의 임금 삭감, 인사제도 개악을 저지하는 투쟁이 한층 더 발전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