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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일간의 철도 파업, 무엇을 남겼나?

이 글은 12월 14일 노동자연대 서부지구 토론회 ‘74일간의 철도 파업, 무엇을 남겼나?’에서 철도노조 서울기관차승무지부 강철 지부장이 연설한 내용을 녹취해 정리한 것이다. 강철 지부장은 74일 동안 현장 노동자들의 투지를 적극 대변하며 파업을 이끈 지부장 중 한 명이다. 

이 연설은 철도 파업의 의미와 파업에 헌신적으로 참여한 현장 조합원들의 정서를 훌륭하게 대변하고 있다. 또, 투쟁의 전진을 위한 진지한 고민과 문제의식도 담겨 있다. 다른 철도 노동자들이 이번 파업의 의미와 교훈을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강철 지부장의 승낙을 얻어 게재한다. [  ]안의 내용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넣었다.

철도노조는 2013년 파업이 끝나고 그 다음해 민주노총의 2·25 하루 파업을 했고 이후 근속승진제 폐지 반대 투쟁을 했습니다. 정부 공공기관 ‘정상화’ 문제에서는 사실 이기지 못했습니다. 물론 [2013년 파업 직후 벌어진] 강제전출 저지 투쟁의 경우, 애초 1천 명으로 예상된 전출 규모를 1백여 명으로 줄였으니 성과가 있었지만요.

근속승진제 폐지 반대 투쟁의 경우, 노조 중앙과 현장의 인식 차이가 굉장히 컸던 것 같습니다. 현장 조합원들은 ‘근속승진제가 노동조합을 유지하고 동료 간의 경쟁을 막는 가장 훌륭한 기제다, 철도노조가 근래 십여 년간 가장 잘 한 일 중의 하나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노조 중앙의 판단은 현장 조합원들의 정서와 달리, [정치]공학적 계산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런 격차가 사실은 두세 번 있었고, 그런 상태로 2년을 보냈어요.

성과연봉제 저지 파업

성과연봉제 반대 투쟁에서는 조합원들의 의지가 굉장히 남달랐어요. 올해 초부터 ‘이 파업을 해내지 못하면 우리 삶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해 왔고, 교육과 토론이 일찌감치 진행됐습니다. 그래서 이번 파업에 대해서는 전국적으로 ‘시기가 어렵네, 조직력이 어렵네’ 하는 얘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간부들 토론이나, 지부장·확대간부 회의, 대의원대회 어디서도 그런 얘기를 내뱉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어요. 다만 투쟁을 언제 벌일 것이냐는 얘기만 조금 나왔어요. 그만큼 성과연봉제에 대해서는 지부장들과 간부들의 의지도 강했지만 현장 조합원들의 위기의식도 강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사실 [전면 파업에 비해] 필공 파업은 쉽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2006년에 전면 파업을 할 때만 해도 파업을 한 번 하려면 준비하는 데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고, 심지어는 전야제만 하고 파업이 무산된 경우도 많습니다. 이번 파업은 필공 파업이라 상대적으로 돌입하기가 수월했고, 현장 조합원들의 의지를 모아서 굉장히 열성적으로, 또 별 무리 없이 돌입했습니다.

그런데 애초 공공운수노조는 이번 파업을 공공부문 총파업으로 계획했잖아요? '공동 파업을 하더라도 하루만 하거나 일주일만 하는 곳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철도노조는 동요하지 말고 이 문제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준비했어요. 조합원들은 흔쾌히 이 점에 동의하고 파업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파업 시작하고 의도치 않게 ‘최순실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조합원들이 당황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태가 터진 이후에 모든 게 다 묻혔잖아요. 그 전까지는 그래도 철도 파업이 언론에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나왔는데, 최순실 사태가 터지면서 파업이 사실은 완전히 묻혔습니다.

“박근혜도 쫓아내고 성과연봉제도 막아내고, 둘 다 이기고 돌아와 보자”

그러나 철도 조합원들은 곧 ‘이 문제를 해결해야 우리 문제가 해결이 되겠구나, 이 정치적인 투쟁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이 성과연봉제 투쟁에도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겠구나’ 하고 판단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초반에 평일 촛불집회에 사람들이 얼마 안 나올 때도 수많은 조합원들이 ‘우리가 촛불집회 가야 한다’고 주장해서 실제로 촛불집회에 많이 결합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이제 조합원들은 ‘성과연봉제 저지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지만 박근혜를 몰아내고 권력을 바꾸는 것이 노동자들의 삶에 굉장히 중요하겠다, 이게 핵심적인 문제다’ 하고 여기기 시작했어요. 적어도 우리 서울기관차지부는 그랬습니다. 우리들의 성과연봉제 저지 투쟁이 박근혜 정권 퇴진 투쟁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서 매우 흔쾌히 동의가 됐어요. 그래서 저희가 일주일에 네 번 정도 촛불집회를 갔습니다. 다들 즐거워하면서 촛불집회에 참가했습니다.

현장 조합원들은 ‘이번에는 진짜 한 번 이기는 싸움 해 보겠구나’ 하는 확신을 다들 가졌습니다. 철도노조는 그동안 수많은 싸움을 했습니다. 우리가 민주노조 된 다음에 파업을 2002년, 2003년, 2006년, 2009년, 2013년에 했는데, 그 중에서 현장의 노동자들이 ‘우리가 이겼다’ 하고 생각하는 파업이 거의 없습니다. 처음에 했던 2002년 파업의 경우, 철도노조 외부의 평가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조합원들이 ‘처음 하는 파업이어서 진짜로 기세도 좋았고 뭔가 좀 얻어냈다’ 하는 감정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파업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구나’ 하고들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조합원들이 파업 들어갈 때마다 ‘파업을 해야 하니까 하겠는데,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합니다. 그런데 이번 파업은 현장 노동자들이 ‘이길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철도노조] 중앙의 평가를 보니까 중앙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지면서 모든 게 다 묻혀서 철도노조 파업에게는 악재’라는 식으로 판단하던데, 현장에서는 이와 다르게 조합원들이 ‘이 싸움을 진짜로 이길 수 있겠다, 박근혜도 쫓아내고 성과연봉제도 막아내고, 둘 다 이기고 돌아와 보자’ 하는 의지가 굉장히 컸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끝장을 못 보고 돌아온 싸움이 됐죠.

의식의 성장

그런데 싸움을 끝내고 돌아왔는데, 현장의 분위기는 매우 좋은 것 같습니다. 철도노조 중앙이 세 번이나 ‘투쟁 전술 전환’[파업 종료를 의미함]을 시도했고, 결국 마지막 시도는 노조 중앙이 ‘성공’을 거뒀습니다.

노조 중앙은 ‘올해 안에 결판 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더는 파업 지속이 의미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첫 두 번의 파동에서 우리 조합원들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조합원들은 ‘아직 싸울 게 많이 남았고 충분히 싸움을 통해서 이길 수도 있어’라는 전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굉장히 격렬한 반발이 일어났고, 그 반발 때문에 위원장이 한번은 돌아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조합원들의 요구가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이번 투쟁이 12월 안에 판가름이 안 날 수 있겠구나’ 하는 고민도 현장 조합원들 사이에서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싸우겠다는 의지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파동 때는 더 싸워야 한다는 것 자체 보다는 ‘파업 전술을 변경하는 데 있어서 그 결정권을 당신들[철도노조 중앙 집행부]에게 줄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합원들은 ‘70일 가까이 파업한 현장의 노동자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요구했고, 그것을 원천 봉쇄한 철도노조 중앙에 대한 분노가 높았던 거죠.

이번 파업 투쟁을 통해서 조합원들의 열화와 같은 투쟁 덕분에 조합원들의 정치 의식이 굉장히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파업조에 참가했던 조합원들이 그렇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파업이 끝나는 과정과 파업 이후에 대한 조합원들의 태도와 눈빛이 그전과는 좀 다르다고 느껴집니다. 예전 같으면 "파업 끝나면 내가 다시는 노동조합 뒤통수도 안 쳐다봐. 다시 노동조합과 같이 투쟁하나 봐라. 개xx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지부장은 믿지만" 하는 얘기는 꼭 덧붙이지만 말입니다(웃음). 그런데 이번에는 조합원들이 물론 분노의 감정도 크지만, 파업 이후에 대해 훨씬 긍정적이기도 합니다.

파업을 접으면서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과정에서 굉장히 상실감도 컸고, 이 조합원들에게 ‘이 노동조합을 여전히 붙잡고 가자’고, ‘여전히 당신의 삶은 이 노동조합이 어떻게 싸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과연 얘기할 수 있을까 사실은 좀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합원들이 대부분 제 어깨를 두드리며 "힘 내! 뭐 끝난 것도 아닌데" 하고 격려하고, 파업 참가한 조합원들이 대부분 오히려 저보다 스스로 생각의 정리도 굉장히 빨리 하더라고요.

저는 좀 절망감으로 정리했다고 하면, 우리 현장의 조합원들은 ‘굉장히 분하고 억울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싸움의 과제가 남아있고 이 싸움의 과제들을 어쩔 수 없이 노동조합 조직과 같이, 옆에 있는 동료들과 같이 앞으로 풀어 나가야겠다’, ‘우리는 할 만큼 했으니까 들어갈 때는 힘차게 들어가고 또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투쟁 열심히 하겠다’는 결의를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파동 벌어질 때부터 벌써 조합원들이 이렇게 마음 먹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기고 들어가는 것만 하겠습니까마는…

하여튼 파업 투쟁을 70일 넘게 하니까 사람들이 바뀌더라는 겁니다. 조합 활동 열심히 안 하던 사람들조차 그런 걸 볼 때 ‘아, 파업이 노동자들을 변하게 만드는 곳이다’ 라고 하는 걸, 책에서 봤지만, 실제로도 그렇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일상으로 돌아오면 유지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투쟁의 전진을 위한 교훈

그러나 이번 파업 투쟁은 철도노조의 큰 한계를 보여 줬습니다.

첫째, 우리는 이번 파업 전까지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버티냐의 문제지 잘만 버티면 우리 파업의 파괴력은 엄청나다. 파업으로 인해 전국을 뒤흔들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데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물론 약간 불안하긴 했죠. 2013년 파업 때 23일간 했는데 잘 안 돼서. 그럼에도 여전히 파괴력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파업을 통해서 필공 파업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죠. 철도공사와 정부의 대응은 기가 막혔습니다. 세 번째 필공 파업을 앞두고 파업의 파괴력을 최소화시킬 완벽한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반면 우리 노동조합은 ‘필공 파업 하니까 너무 쉽네, 준비할 것도 별로 많지 않고 그냥 하면 되는구나, 파업 비용 마련은 해야 하지만’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전술에 대해서 고민이 없었습니다. 2013년도 마찬가지였고 2016년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던 대로 했는데 상대방의 대응은 너무나 뛰어났고 이 대응으로 인해 철도노조의 파업이 우리가 예상한 파괴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여기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면 [앞으로] 파업 진짜 못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현장의 조합원들을 어떻게 설득을 하겠어요? ‘파업을 통해서 우리가 파괴력을 가질 수 있고 이 파괴력으로 철도공사와 정부를 물러서게 할 수 있다’는 논리로 우리가 파업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게 없어서 현장의 조합원들에게 이길 수 있는 무기를 쥐어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노동조합 집행부 선거 시기가 다가오는데 치열한 고민을 조합원들과 함께 토론하고 이후의 대응 방향, 대책, 전망을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둘째, 현장과 노조 중앙 간부들의 괴리 현상이 굉장히 심각하더라고요. 여러 가지 당황스러운 점 중에 가장 큰 게 뭐였냐 하면, 노조 중앙 간부들은 현장 조합원들이 왜 노조 중앙의 안을 동의하지 않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까 말씀 드린 파동이 일어났을 때, 서울기관차 조합원들이 노조 중앙 사무실에 항의하려고 찾아갔죠. 그런데 노조 중앙 간부들은 지부장이 조합원들에게 노조 중앙이 한 얘기를 잘 전달하지 않아서라고만 보더라고요. 그래서 한 간부가 조합원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지부장이 노조 중앙이 얘기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전달하고 설명했느냐?” 그래서 우리 조합원들이 대답했습니다. "네 다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저는 파업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랬더니 이 양반이 놀란 거예요.

철도노조는 굉장히 큰 노동조합입니다. 그래서 중앙으로 올라가면 일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중앙 간부로 있는 동안 현장에 와서 조합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조합원들과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한 달에 두세 번 씩 현장에 내려와서 근무를 하지만 현장에 와서도 조합 일 실무를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현장의 조합원들이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모르고 사실은 판단이 굉장히 정치공학적이고 수치나열적인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조 중앙 간부들은 '지부장들이 설명을 제대로 안 하고 내용이 어려워서 그렇지, 잘 설명하면 노조 중앙의 입장을 조합원들이 다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현장에서 전혀 그렇지 않았거든요.

저는 항상 노조 중앙의 입장을 있는 그대로 먼저 알려 줍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위원장 얘기를 그대로 전달했다가 ‘네가 위원장 대변인이냐’는 항의까지 들은 적도 있습니다(웃음). 물론, 제가 동의해서가 아니라 정확히 전달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전달했어도 우리 조합원들 반응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그거[파업 종료] 말도 안 돼.”

그런데 이게 과연 위원장과 조합 중앙의 간부들의 개인적 성향 문제로 치부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 듭니다. 왜냐하면 지금 중앙에서 일하는 간부 대부분은 지부에 있을 때는 파업을 열심히 이끌었던 분들이거든요.

셋째, 우리가 파업을 하면서 위원장에게 많은 권한을 줬습니다. 합의안에 도장 찍는 거 말고는 나머지 전술과 관련된 권한을 모두 위원장에게 위임했습니다.

그런데 2013년 파업까지만 해도 위원장이 [수배 때문에] 맨날 도망 다녔습니다. 한 번도 도망을 안 다닌 적이 없습니다. 사실 핵심 간부들은 다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중요한 순간에 이 간부들이 나와서 조합원들과 토론하기가 만만치 않은 구조입니다. 그래서 위원장이 일단 잠정 합의하면 그 후 조합원 총투표로 결정하는 식이었고, 위원장한테 모든 권한을 줬거든요. 그런데 이번 파업 때는 위원장이 [수배 상태가 아니라서] 숨어 다니지도 않았는데 그 권한을 갖고 파업을 마음대로 끝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번 파업 끝나고는 조합원들이 요구합니다. “위원장한테 그런 권한 주지 마시오.”

그런데 지금처럼 파업 중에 위원장이 수배 상태가 아니면 관계가 없는데, 다음 파업 때 지도부가 또 수배당해 도망 가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고민이 듭니다. 또, 만약 전면 파업을 한다면 지부장들까지 도망 다녀야 하는 상황도 생길 텐데, 이럴 때 중요한 순간에 조합원들 의견은 어떻게 수렴할 것인지, 어떻게 적절한 시기에 판단할 것인지, 지금처럼 2박 3일이라도 모여서 토론하는 게 가능한 조건인지 등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 드리고 싶은 점은, 철도가 전국 작업장인데 서울과 지방, 직종별로 조합원들의 정치적 불균등이 심합니다. 더 근본적으로 보면 사실은 간부들의 불균등도 굉장히 심합니다. 그런데 해결책이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예전에 철도에도 ‘현장 조직’이라고 불리는, 나름 전국 네트워크를 가지고 활동을 했던 조직들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조직들이 유명무실해졌습니다.

올해 ‘철도 현장 투쟁위원회’를 꾸렸지만, 사실은 이 역시 지지부진합니다. 서울 쪽에서는 그나마 활동을 좀 하지만, 전국적인 영향력은 사실 크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문제도 답답하지만, 매번 투쟁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면 이런 불균등 문제 때문에 가장 큰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철도노조가 미래에도 노조로서 제기능을 하면서 투쟁해 나갈 수 있을지 아닐지에서 중요한 문제이고, 해결 과제들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녹취 박충범·정리 최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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