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이 박근혜의 적폐를 밀고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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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탄핵심판이 조기에 이뤄질 듯하다는 관측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내년 상반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올랐는데, 새누리당은 지지율 폭락과 함께 둘로 쪼개졌다. 정권 교체 가능성도 높아진 것이다.
연인원 1천만여 명이 참가한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이 두 달여 만에 만들어 낸 정치적 변화다. 민중의 투쟁과 분노가 오만방자한 집권당을 극심한 위기에 빠뜨렸다.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역설이게도 정권 퇴진 운동이 아직 그 목표를 이룬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정도에서 멈추려고 그 많은 사람이 영하의 날씨에 눈비 맞고 거리에 나온 것이 아니다.
사실 박근혜의 ‘비선’ 통치가 문제가 된 마당에, 박근혜의 ‘공식’ 업무가 정지됐다고 정권의 악행이 멈출 거라고 생각할 근거가 애초에 없었다. 박근혜는 구속 수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탄핵심판의 시간을 끌 것이다. 우파는 여전히 호시탐탐 역전 기회를 노린다.
그럴수록 운동은 황교안과의 대결이라는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지금 정치적 유폐 상태의 박근혜를 대신해 권한대행 황교안이, 잠시 멈춘 강성우파 정권의 시계를 다시 돌리려 한다. 황교안 내각이 설사 은밀한 부패의 몸통은 아닐지언정, 그 부패와 융합해 박근혜 정권이 벌인 반민중·반민주적 학정의 몸통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박근혜 퇴진이 기정사실화됐으니, 차기 대선을 겨냥한 입법·개헌 과제 목록 작성과 정권 교체를 위한 야당 후보 암묵적 지원에 더 신경을 쓰자는 일부 세력들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익의 새 아이콘으로 등극한 황교안
황교안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정원 권한을 늘려 공작정치를 부분 합법화할 국가사이버안보법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정부 입법을 발의한 것이다. 국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그가 여소야대 국회에 어떻게 맞서려 하는지는 잘 알 수 있다.
그는 ‘미스터 국가보안법’이라는 별명답게 국가보안법 위반 신고자 포상액도 20억 원(종전 5억 원)으로 대폭 올렸다. 한일 ‘위안부’ 합의 1년을 맞아서는 “[이보다] 더 좋은 합의가 어떤 것이냐”며 기존 합의를 옹호하고, 차기 정권에서도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적폐 청산 요구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한 종편 채널은 경찰청이 11월 19일 퇴진 운동 주말 행진을 경복궁역까지 허용한 것을 황교안이 질책했다고 보도했다. 권한대행을 맡은 후, 경찰이 주말 시위에 더 전진 배치된 것이나, 부산에서 ‘위안부’ 소녀상 설치를 경찰 폭력으로 막으려 한 것도 황교안의 우파적 통치 유지 기조와 연관돼 있을 것이다.
이런 황교안 아래서 적폐 장관들의 행태도 여전하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만든 문화체육부의 장관 조윤선은 ‘내부 제보자를 데려와 봐라’ 하며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가임기 여성 전국 지도를 만들어 지자체별 경쟁을 시키겠다는 황당한 짓을 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장관은 세월호 참사 추가 ‘진상 규명’에 반대했다. 노동개악을 추진해 온 노동부, 한일 ‘위안부’ 협상을 옹호하는 외교부 등 여전히 변함이 없다.
일부 우파 언론과 논평가들은 정권이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밀리지 않는다며 황교안을 우익의 새 아이콘으로 치켜세운다. 심지어 정통 보수의 차기 대선 주자로까지 거론한다. 벌써 황교안을 대입한 대선 여론조사가 발표되고 있다. 황교안 내각을 겨눈 투쟁의 중요성이 더 커진 것이다.
현 시점에서 개헌 논의는 본질 흐리기다
애초 박근혜 정부의 존재 이유는 경제 위기의 책임과 고통을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고 이를 잘 관철하려고 우파적 통치를 실행하는 것에 있었다.
지배계급 다수는 더는 보호하기 힘들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박근혜를 제거하고 고통전가 기조를 조금이라도 더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이를 ‘국정 정상화’라고 부른다. 탄핵 인용 결정이 1월 말에 나올지 모른다는 예측까지 나오는 이유다. 특검이 박근혜를 압박하는 강도도 세지고 있다(물론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전경련의 기관지라 할 만한 〈한국경제〉는 “모두가 경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다”며 운동의 압력 때문에 기업 규제 완화가 늦춰지는 것에 짜증을 부렸다.
그러나 폭발적인 대중 저항 때문에 노골적인 우파 통치 기조를 대놓고 유지하기는 힘이 드니, 현 상황에서는 황교안 체제를 지지하면서 여야정 협치를 주문한다. 더는 기존 정치체제의 안정을 흔드는 일들(야당들이 운동을 지지하며 그 요구를 국회에서 대변하는 일)은 중단하라는 것이다. 위기 속에서 박근혜를 도마뱀 꼬리 자르듯 버리고 이제는 지배계급이 큰 틀에서 단결(협치)하자는 것이다.
그 방안 하나가 개헌 정국을 조성하는 것이다. 12월 30일자 〈조선일보〉의 사설 제목은 “역사적 개헌특위 출범, 통치 끝내고 협치 열어 달라”이다. 탄핵안 가결 직후 야당들이 여·야·정 협의체 구성에 합의한 것이나, 1월 30일 여야 주류 4당(민주당, 새누리당, 국민의당, 개혁보수신당)이 1월 임시국회를 열고 개헌특위를 가동하는 것에 합의한 것은 ‘위기 속 단결(협치)’을 주문한 지배계급 여론에 부합하는 행위다.
그러나 현행 헌법 아래서, 군사독재 정권의 핵심 일원인 노태우가 집권해서도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강력할 때에는 “물태우” 소리를 들었고, 한때 지지율 90퍼센트를 구가하던 김영삼은 “산 송장” 소리를 들었으며, 김대중은 임기 초 반 년이나 총리를 임명하지 못했다. 노무현은 그 스스로 “권력은 시장에게 넘어 갔다”고 푸념했다.(그럼에도 노동계급을 향한 공격은 줄기차게 계속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아래서 대통령과 국회 모두 새누리당이 지배하고, 우파 지배자들이 이 정권을 전폭 지지하는 상황이 이른바 제왕적 권력 현상의 실체다. 계급적 이익(과 정권 존속)이라는 커다란 목표를 위해 서로서로 감싸 주고 덮어 준 것이다. 이명박의 ‘4자방’ 비리를 박근혜(의 검찰)가 덮어 준 일이 한 사례다.
그러므로 현행 헌법의 조문 때문에 박근혜 게이트 따위가 생겼다고 보는 것은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잘못(적폐와 책임)을 가리고 면제해 주는 허구적 담론에 가깝다. (피억압 대중에겐 헌법이 국가권력을 더 제약하고 기본권을 더 많이 보장하는 게 좋겠지만, 그것이 권리로 보장되는 것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강력할 때이다.) 퇴진 운동 일각에서 특정 지지 후보에 대한 유불리를 따져 개헌 정국에 섣불리 부화뇌동하다가는 운동이 낭패를 겪을 수도 있다.
오히려 불평등 사회를 더 공고히 해 온 박근혜의 학정 때문에 민중이 겪은 좌절과 분노, 투쟁이 적폐 청산 요구에 더 반영돼야 한다.
헌재가 박근혜를 조기 탄핵할 수도 있다
박근혜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심리에 무더기 사실조회 신청을 내며 시간을 끌고 있다. 최순실도 거의 모든 혐의를 부정하고 있다. 이들 모두 탄핵 결정을 최대한 늦추려 한다. 친박 우파도 헌재 앞 시위를 벌이며 “탄핵 무효”를 외친다.
그러나 박근혜는 현직 대통령으로서 헌법상 형사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 형사재판 식으로 탄핵심판을 하자는 것은 세력 균형 변화를 꾀할 시간을 벌어 보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관계만으로도 박근혜 탄핵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헌법재판관 구성인데도, 박근혜가 시간을 끄는 의도가 무엇이겠는가? 정말로 자신 있다면, 우주 최강급 독점욕을 가진 박근혜가 헌재 심리를 빨리 해서 권좌로 복귀할 생각을 하지 않고 왜 시간을 끌려고 하겠는가?
이는 헌재 탄핵심판이 단순히 사실 심리가 아니라 정치 재판임을 알기 때문이고, 그것이 정치·사회적 세력 균형에 영향을 받게 됨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수백만의 거리 투쟁이 국회를 압박해 압도적으로 탄핵소추를 가결토록 만든 것은, 박근혜를 탄핵하라는 거대한 압박이 헌재에 가해져 있음을 뜻한다.
이런 세력 균형 때문에 지배계급 다수도 만신창이가 된 박근혜의 존재를 부담으로 여기고 빨리 털어 버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애초 빠르면 3월초에나 결정이 될 것 같다는 전망이 우세했으나, 헌재소장인 박한철의 퇴임 전인 1월 말(설 연휴 전)에 결론이 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대두되고 있다. 헌재는 주 2회 심리를 하겠다며 속도를 내고 있다.
비선의 농락이 문제의 본질인가?
기존 정치 시스템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고, 박근혜와 연계된 소수 비선 실세들의 농단과 농락이 박근혜 게이트의 본질이라고 보는 것은 피상적이다.
박근혜의 특수한 개성이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드러난 이 권력형 부패의 실체에서 그런 문제들은 부차적일 뿐이다. 어떤 면에서는 박근혜만의 특수성도 아니다. 계급 사회의 고위층 중에 자기 연설문을 직접 쓰는 자가 몇 명이나 되는가. 대의기구와 대중의 의사와 무관하게 비밀스런 측근들과 정책을 상의하는 일도 흔한 일이다.
물론 이런 저질스런 자들에게 박해를 받고 힘겹게 지내왔다는 것이 노동자·민중 운동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긴 하다. 그들의 부정 축재와 특권은 국민적 박탈감도 자극했다.
일각에선 노동운동과 좌파를 겨냥해 ‘초점을 흐리거나 참가자들을 불편하게 할 요구는 자제하고 쟁점을 최소화하자’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박해받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지지 호소는 광장에서 큰 지지를 받는다. ‘노동 의제는 시민에게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아전인수식 주장을 펴거나, 민주당 등을 곤란하게 할까 봐 노동 의제를 일부러 배제하려는 사람들만 광장에서 노동이 외면 받는다는 (실제 경험과도 다른) 주장을 한다.
그러나 1천만 넘는 사람들이 영하의 날씨에 눈비 맞아가며 광장에 모여 청와대로, 총리 관저로, 헌재 앞으로 행진하는 것은 단지 박근혜 일당의 은밀한 사생활 때문만은 아니다. 애초에 가진 자들을 위해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민중을 천대하는 정책들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 온 자들을 향한 반감과 증오가 그 전부터 전개돼 온 노동자 투쟁을 발판 삼으면서 (스스로도 놀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뛰쳐 나올 수 있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는 ‘박근혜가 시녀에게 지시받거나 농락당한 것’이 아니다. 정권이 자신의 권력(검찰 등)을 이용해 국가예산, 친기업 정책들을 대기업들과 부당 거래하며, 상호간에 부당한 재산과 특권을 챙겨 왔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작정치 수단도 동원됐다.
가령 세월호 참사에 관해 정부 대응 잘못을 지적한 감사원 보고서가 청와대를 거치며 윤색됐다는 폭로가 나왔다. 세월호 유가족의 항의를 묻어 버리려고 다양한 여론 조작 방법이 동원됐다.
국민연금으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도왔는데, 엉뚱한 학생들을 탈락시키며 최순실의 딸을 이화여대에 보내는 것에 그 삼성이 수십억 원을 들여 협조한 것도 그런 사례다. 그런 주고받기 속에서 이들은 고통전가와 세월호 참사 항의 탄압하기 등 온갖 악행에 서로 협조해 왔다.
지금도 구속된 최순실은 국정조사를 당당히 거부한다. 서울구치소에서는 최순실 혼자만 식수와 온수로 샤워할 수 있다고 한다. 여전히 정권의 비호를 받는 이런 특혜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누리지 못했을 것들이다.
따라서 주범은 박근혜 정권인 것이고, 정권의 존재 자체가 적폐인 것이다. 이는 적폐 청산이 결코 몇몇 개혁 입법(당연히 개헌)으로 환원될 수 없고 많은 정책들의 폐기와 함께 인적 청산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운동이 황교안 퇴진과 내각을 향한 공격을 강화해야 하고, 이것이 적폐 청산 투쟁의 알맹이를 이뤄야 하는 이유다.
지금은 어느 정도의 피로감과 안도감, 목표의 일차적 성공에 따른 낙관 등으로 운동의 기세가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다. 여전히 수십만 명이 거리로 나오지만, 12월 9일 이후 조금씩 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뿌리 깊은 증오가 겨우 박근혜의 직무정지 정도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박근혜 일당이 범죄 혐의를 부인하며 헌재에서 시간 끌기로 나오는 것이 분명해지자, 12월 17일 행진에서 조기 탄핵을 촉구하는 헌재 앞 행진 대열이 (전 주와 다르게) 크게 형성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운동이 혁명이나 항쟁 수준은 아직 못 되기에 제도상 방법인 헌재의 탄핵심판을 촉구하는 것으로 표출되지만, 하루라도 빨리 이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지겨운 자들을 끝장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여전한 것이다.
따라서 퇴진행동은 다수 굴곡을 겪더라도 올곧게 대중의 염원을 대변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정치적이고 투쟁적인 리더십 발휘를 회피할수록 이 운동을 차기 대선에 이용해 먹을 생각만 하는 주류 야당의 보조물로 운동을 조율시킬 뿐이다. 그것은 이 운동의 잠재력을 갉아먹어 전진을 방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