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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당국은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하라!:
불필요하게 한발 물러서지 말자!

서울대 학생들이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를 요구하며 대학본부 2층에서 점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 11일 학교 측의 공격으로 1백53일 간의 본부 점거가 일단 중단된 바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4월 4일 2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학생총회를 열었다. 그리고는 5월 1일 다시 3백 명이 모여 본부 점거에 들어갔다. 학교 당국은 학생들을 징계하고 형사고발 하겠다고 협박했다. 하지만 점거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에 하루 만에 무려 1백79개 단체가 연명했다. 이렇듯 시흥캠퍼스 반대 투쟁에 대한 지지와 연대는 광범하다.

5월 4일 열린 연대 기자회견 단 하루만에 1백79개 단체가 동참해 지지가 넓다는 것을 보여 줬다.

가장 최근에는 점거 학생들 사이에서 점거의 동력이 충분치 않다는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그런 주장을 하는 학생들은 점거 투쟁의 요구를 낮추자고 주장한다. 민교협과 민주동문회 측 인사의 중재로 총장과의 협상 테이블이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요구 수준을 낮추자고 주장하는 학생들은 이 자리에서 총장에게 징계, 형사고발 철회와 “시흥캠퍼스 추진 과정에 대한 검토 및 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원회) 구성 등을 요구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만약 총장이 이를 수용하면 점거를 철회하자는 것이다.

이런 타협안은 점거를 이끌고 있는 사회변혁노동자당 서울대분회 학생들이 제안했다. 5월 14일에 긴급히 열린 점거위원회 회의와 총운영위원회(단과대 학생회장들과 총학생회장이 참가하는 회의)에서 이 제안이 통과됐고, 총운위는 1주일 동안 의견 수렴을 거쳐 이를 확정키로 했다.

이들은 징계 철회와 조사위원회 구성을 조건으로 점거를 해제하더라도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는 계속 요구할 것이므로 후퇴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점거 투쟁에 나서게 된 원래 요구(실시협약 철회)가 아니라 수위가 낮은 다른 요구(징계 철회 등)를 내놓으며 점거를 해제하면 그것은 명백한 후퇴다.

이렇게 후퇴하고 나면 설사 학교 측이 낮아진 요구를 전폭 수용한다고 해도 그 뒤 시흥캠퍼스 철회 투쟁이 만만찮게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2011년 서울대 총학생회가 법인화 반대 점거를 해제할 때도 이후 대국회 투쟁 등 더 큰 투쟁을 하기 위해서라며 거창한 목표를 제시했지만 이는 투쟁 포기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투쟁의 리더들이 불필요한 후퇴를 숨기려고 그럴듯한(또는 별로 그럴듯하지 않은) 목표와 명분을 들이대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러한 태도는 투쟁 지지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뿐이다. 결국 점거라는 수단을 포기한 이후에 법인화 반대 투쟁은 흐지부지됐다. 당시 총학생회는 학교와의 비공개 협상 과정에서 점거를 모양새 좋게 마무리할 명분을 달라는 식으로 학교 측에 매달렸다. 이 녹취록이 이후 폭로돼 학생들의 지탄을 받았다.

이번에 타협을 주창한 학생들도 2011년 총학생회처럼 솔직하지 않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민주적 결정을 거슬러 타협을 하려니 그런 것일 테다.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는 지난해 10월 10일과 올해 4월 4일 각각 2천여 명이 모인 학생총회에서 결정된 요구다. 온건파의 타협 시도가 있었지만, 올해 2월 학교 측의 징계 협박 속에서 열린 두 차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격론을 벌인 뒤에도 이는 성공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런 타협을 학생들 일반에게 충분히 공지하지도 않고, 긴급하게 소집해 단 두 명만이 참가한 점거위원회 회의와 총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도 없고 비민주적이다.

서울대 시흥캠퍼스 철회 투쟁에 많은 학생단체들과 진보·좌파 단체들이 연대했다. 또한 최근에는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와 학생 탄압 중단을 위한 시민사회 공동대책회의(준)”이 출범했다. 시흥캠퍼스 철회라는 목표를 무기한 유보하는 것은 연대체 결성 취지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원칙 있는 좌파라면 불필요한 타협을 하면서도 타협이나 후퇴가 아니라고 포장하는 기만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레닌은 러시아 혁명이 내전과, 서구 혁명의 실패로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후퇴 조처들을 도입하며 이렇게 말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계급에게 진실을 숨기지 않는다. 고액의 봉급을 주고 부르주아 전문가들을 채용하는 것이 파리 코뮌의 원칙에서 후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부르주아 정치인의 수준으로 전락한 사기꾼과 마찬가지다.”

불가피?

타협안을 추진한 학생들은 이런 타협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5개 단과대가 점거 불참을 결정하며 투쟁주체들이 고립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고, “점거 동력은 매우 떨어진 상태”이고, 지금 후퇴하지 않고 “점거를 지속할 경우 출교를 포함한 징계와 형사고발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후퇴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판단하는 것에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 이런 판단은 전체 한국 사회의 세력관계를 보지 않고 협소한 시야로 서울대 상황만을 보다 보니 생긴 것인 듯하다. 투쟁의 전술을 고민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전 사회적 세력관계이다.

현재 전체 한국 사회의 세력관계는 서울대 활동가들에게 결코 불리하지 않다. 촛불운동의 여파로 박근혜 정권이 물러났고, 이 때문에 대중적으로 개혁의 열망이 큰 상황이다. 학생들이 점거 투쟁을 굳건히 하면서, 이렇게 개혁 염원이 고양된 정세를 활용한다면 서울대 안팎으로부터의 연대를 더욱 크게 건설해, 성낙인과 민주당 정부를 압박할 능력이 있다. 지난 5월 4일 점거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에 단 하루 만에 1백79개 단체가 연대한 것은 연대 확대의 잠재력을 보여 준다.

학생들의 투쟁이 학내에서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하지만, 박근혜 정권을 등에 업고 선임된 2등 총장 성낙인이 처한 상황도 결코 녹록지 않다. 자신을 지금의 자리에 앉혔던 박근혜 정권이 날아가고, 교육부 장관도 이제 교체되는 상황에서 서울대 총장으로서의 성낙인의 입지도 좁아질 수 있다. 지금 성낙인은 학생들에게 제명 같은 초중징계 협박을 하고 있지만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그렇게 높은 수준의 징계를 하는 것이 쉬운 상황은 아니다. 학교 당국의 협박에 위축되기보다는 투쟁을 전진시키며 대담해져야 하고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전체 사회적 세력관계라는 맥락 속에서 시흥캠퍼스 철회 투쟁을 보지 않고 협소하게 학내 쟁점으로만 접근하는 관점은 이번 투쟁 과정에서 서울대 학생들이 거듭 보여 온 약점이었다.

서울대 시흥캠퍼스 반대 점거가 시작된 지난해 10월 10일 이후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이 분출하며 정치 투쟁이 매우 고양된 국면이 펼쳐졌다. 이런 정치 상황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면 친박 총장 성낙인과 시흥캠퍼스를 추진한 민주당 정치인들을 압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투쟁을 협소한 학내 투쟁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다 보니 투쟁 초반에 연대를 건설하려는 시도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저절로 연대가 건설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연대란 의식적으로 추구되고 건설돼야 한다.

유리한 정치 상황 속에서조차 동력이 없으니 점거를 접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미 1월부터 나왔다. 다행히도 논란 끝에 점거를 유지하기로 하고 연대 확대를 위해 나서자 심상정 의원, 데이비드 하비 등 3천여 명의 진보·좌파 인사와 수백 개 국내외 단체들이 연대를 나타냈다. 지금도 상황을 비관적으로 볼 필요 없다. 좀 더 넓은 정치적 시야를 가지고 연대 확대를 모색해야 한다.

4월 4일 학생총회 2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가해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 요구를 결정했다.

타협을 추진하는 학생들은 지금 타협해야 징계와 형사고발 등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징계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연대를 넓히고 투쟁을 강화하는 것이다. 투쟁의 당사자들이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세를 보이고 투쟁의 대의명분과 정당성이 널리 알려질수록 학교 측이 징계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학교 측은 1월에도 징계 카드를 꺼내어 들었지만 학생들이 물러서지 않고 연대가 확대되자 쉽사리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요구를 후퇴시키며 불가피하지 않은 타협을 추구하다 보면 학생들의 사기와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연대를 끌어들이는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는 징계에 맞서는 데도 효과적이지 않다.)

학생회

“5개 단과대가 점거 불참을 결정하며 투쟁주체들이 고립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도 현재상황의 한 측면을 묘사한 것일 뿐 제대로 된 상황 설명이 아니다.(전체적이지 않고 일면적이다.) 이 다섯 개 단과대는 자연대, 공대, 농생대, 음대, 생활대인데 이들 중 대부분의 단과대 학생회는 1백53일간의 점거 투쟁 동안에도 실질적으로 힘을 보태지 않은 곳이다.

더구나 해당 단과대 학생회가 참가하지 않는다 해서 그 단과대 소속의 학생들이 점거에 참가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자연대와 공대 등에도 헌신적으로 점거 투쟁에 함께해 온 활동가들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학생회 대표자들이 점거 불참을 선언했다고 해서 투쟁이 고립됐다고 보는 것은 상황을 부당하게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실제로 투쟁에 나선 학생들보다 학생회 대표자들의 입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관점은 이번 투쟁을 전진시키는 데에서 거듭 걸림돌이 돼 왔다. 1백53일 동안 본부 점거에 헌신적으로 참가하며 투쟁을 이끌어 온 것은 본부점거본부에 참가하며 이 투쟁을 지지한 일부 학생회 활동가들과 함께 기층의 학생들이었다. 따라서 점거 투쟁의 중요 결정은 민주적으로 이들이 내릴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투쟁에 참가하지도 않는 학생회 대표자들이 다수 포함된 회의체에 점거 투쟁의 향방을 결정할 권한이 주어졌다.

투쟁을 지지하지 않는 학생회 대표자들이 다수 존재하는 상황에서 점거 투쟁의 향방을 결정할 권한을 학생회 대표자들에게 맡겨 두다 보니 투쟁에 힘이 실리기보다는 끊임없이 내부 논쟁으로 발목이 잡히는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지난해 10월 10일 학생총회에서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 기조를 확인한 뒤에도, 2월 두 차례의 전학대회와 4월 4일 학생총회에서 거듭 같은 기조를 유지할 것인지를 묻고 논란을 벌여야 했다. 학교 당국에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를 요구하기로 했다면, 그 방향으로 온 힘을 모아서 한껏 싸워 봐야 하는데, 실제 투쟁에 힘을 모으기보다는 투쟁 요구안 관련 논란을 벌이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헛되이 낭비한 것이다. 투쟁을 전진시키려 하는 학생들에게 이런 반복된 (불필요한) 논란은 힘만 빠지게 만드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 투쟁이 전진하려면, 학생회 대표자라는 형식적 지위 여부를 떠나 투쟁을 지지하며 참가해 온 학생들이 직접, 민주적으로 투쟁을 이끌어야 한다. 1백53일간의 점거 투쟁 당시에는 본부점거본부가 그 구실을 했어야 했고, 지금은 점거위원회가 지도부를 자임해야 할 것이다.

이 투쟁을 지지하지 않는 학생회 대표자에게 투쟁의 향방을 결정할 권한을 주다 보니 다섯 개 단과대들이 점거 불참을 선언하며 투쟁에 찬물을 끼얹는 구실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오히려 이렇게 투쟁의 대의를 저버린 학생회 대표자들을 분명히 비판하면서, 투쟁을 지지하는 기층 학생들의 참가를 이끌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와 타협을 추구하는 학생들은 “학생사회가 통일된 실천”을 보여야 한다는 진부한 대동단결론을 내세워, 투쟁을 배신한 학생회 대표자들의 뒤꽁무니를 쫓으려 하는데, 이는 투쟁의 대의를 훼손하는 무원칙한 태도다.

가능성

타협을 추구하는 학생들은 지금 당장 점거 투쟁의 동력이 충분치 않다는 점을 부풀려, 동력을 키울 가능성조차 없는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이 투쟁에 적극 참가해 오지는 못했어도 지지를 보내 왔던 학생들의 정서는 지난 한 달 사이에 크게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학교 측의 폭력성에 분노하고, 투쟁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답답한 마음이 커졌을지라도 말이다.

사회적 세력관계와 정치 상황이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 투쟁의 구심이 분명하다면 다시금 동력을 모으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얼마 전에는 시흥캠퍼스 사업을 한라건설과 함께 추진하기로 결정한 오연천 전 총장이 울산대 총장으로 임명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한라건설은 범현대 계열사인데 현대그룹의 입김이 큰 울산대 총장으로 간 것은 무언가 부패한 고리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들게 한다. 대규모 건설 사업에서 부패 문제가 빠지지 않는 것을 고려하면 새로운 문제가 폭로되면서 투쟁이 전진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투쟁의 동력이 충분히 크지 않다는 것만을 일방적으로 보며 상황에 쫓기듯이 후퇴하기 시작하면 더 많은 후퇴로 이어지며, 무원칙한 후퇴를 반복하고 타협에 매달리는 처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런 과정에서 사회 변혁을 꿈꾸는 활동가로서의 투혼과 정치가 훼손되는 것이야말로 진정 재앙적인 결과일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원칙한 후퇴를 중단하고, 다시금 투쟁의 구심을 분명히 하며, 연대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정치적인 시야로 사회 전반의 세력관계를 보며 가능성을 찾아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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