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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신문의 위기?

‘종이신문의 위기’가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지난 5월 15일 〈한겨레〉는 창간 29돌을 맞아 “종이신문 구독률 추락에 따른 경영수지 악화”를 언급하며 독자들의 지지와 지원을 호소했다. 한국의 종이신문 구독률은 1996년 69.3퍼센트에서 2015년 14.3퍼센트로 “폭락”했다. 열독률*도 2002년 82.1퍼센트에서 2016년 20.9퍼센트로 크게 줄었다.

통계를 보면 스마트폰 등 모바일 인터넷 기기의 보급이 이런 추세를 한층 가속한 듯하다. 종이신문 열독률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사이 모바일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는 사람의 비율은 2011년 19.5퍼센트에서 2016년 70.9퍼센트로 빠르게 늘었다.(그림1)

2015년까지 소셜미디어로 분류되던 매체들은 2016년부터 SNS(페이스북, 트위터 등)와 메시징 서비스(카카오톡 등)으로 재분류됐다. ⓒ자료 출처 : 한국언론진흥재단

이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2016 세계신문동향》(World Press Trends)을 보면 지난 5년 사이 유럽에서 일간 종이신문 발행부수는 19.2퍼센트 줄었다. 북미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각각 10.9퍼센트, 28.7퍼센트 줄었다. 여섯 대륙 중에 유일하게 아시아에서만 38.6퍼센트 늘었는데, 중국과 인도가 증가세를 이끌었다.(그림2)

ⓒ자료 출처 : World Press Trends 2016

그러나 세계적 수준에서 종이신문의 ‘몰락’을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2015년 전 세계 신문산업의 총 수익은 1천6백80억 달러로 영화 산업의 두 배, 음악 산업의 네 배 가까이 된다.

신문사들은 수익 하락을 만회하려고 2000년대에 앞다퉈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성과는 보잘것없다. 전 세계 신문사 수익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여전히 종이신문 구독료와 광고수입으로 각각 45퍼센트 안팎을 차지한다. 전 세계적으로 온라인 광고비 규모가 오프라인 광고를 넘어섰지만 신문의 경우 여전히 대부분의 광고주들은 지면 광고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종이신문 독자는 줄었어도 온라인 독자가 더 많이 늘었는데 왜 신문사들이 어려움에 처했을까?

첫째, 네이버, 구글, 페이스북 등 언론사 아닌 곳들이 온라인 광고의 상당 부분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론사의 전용 앱이나 웹사이트가 아니라 이들을 통해 뉴스를 본다.

둘째, 흔한 착각과 달리 오늘날에도 가장 강력하고 유력한 언론 매체는 TV다. TV가 보급돼 신문의 영향력을 뛰어넘은 이래로 아직 어떤 매체도 TV의 영향력을 뛰어넘지는 못하고 있다. 뉴스 이용률, 이용시간, 신뢰도, 영향력 등 모든 면에서 TV가 압도적 1위를 지키고 있다. 언론재단의 조사에서도 ‘왜 종이신문을 읽지 않는가’ 하는 물음에 응답자의 67.6퍼센트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국에서 TV 광고비는 전체 광고비의 20~30퍼센트로 온라인 매체의 성장에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신문이 둘 사이에 끼인 처지가 된 것이다.

셋째, 한국 일간지의 경우 광고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60퍼센트 가까이 되다 보니 온라인 매체 성장으로 인한 광고비 감소에 더 큰 타격을 받았다.

TV의 시대

‘종이신문의 위기’는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인터넷 붐이 일었을 때에도 제기된 바 있다. 온라인 매체가 지닌 장점, 즉 신속함과 사용자 중심적인 이용 환경에 매료된 이들은 종이신문의 시대가 끝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주장했다. 일부 좌파도 이런 생각을 받아들였는데 그러다 보니 ‘집단적 선전가⋅선동가⋅조직자’로서의 신문은 그 시효를 다했고, 따라서 신문을 통한 당 건설이라는 레닌주의 당 모델도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나아갔다.

예컨대 인터넷과 PC 같은 단말기를 활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사람들은 더는 조간이나 석간, 9시 뉴스를 기다리지 않고 필요한 정보를 찾아다닐 수 있게 됐는데, 새 소식을 싣는 데 하루가 꼬박 걸리는 신문은 이런 대중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또, 더는 신문 ‘편집’이 전하고자 하는 바, 즉 주제의 우선순위와 기사들의 연결성에 의존해 수동적으로 뉴스를 읽지 않고 원하는 때에 필요한 기사를 골라 읽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온라인 매체의 비용이 종이신문보다 훨씬 저렴하므로 종이신문은 시장 경쟁력에서도 밀려날 것이라고 여겼다.

이런 예측은 오늘날 상당 부분 현실이 됐다. 사람들은 모바일 인터넷을 통해 원하는 때에 원하는 기사를 찾아 읽는다. 언론사 웹사이트보다 포털을 이용한 뉴스 구독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다. 인터넷 언론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종이신문을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 때문에 일부 신문사들은 종이신문 발행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예상과 달리 현실화되지 못한 것도 있다. 독자들이 수많은 온라인 기사들의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사실 이런 기대는 소비자가 ‘자유롭게’ 상품을 선택한다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를 연상케 하는데, 기사를 ‘골라’ 읽는 것이 주류 언론의 편집보다 나은 선택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드문드문 밑바닥 인기를 얻는 뉴스들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가장 많이 읽히는 기사는 주요 언론사들이 가장 강조하는 기사다. 시간이 흐르면서 온라인 공간에서도 기사들을 배치하고 연결시키는 기술, 즉 편집 기술이 발달해 독자들이 부지불식간에 편집자의 안내에 이끌리기도 한다.

온라인 시대에 들어 속보가 예전보다 빨리 전달되지만, TV로 방송되거나 적어도 주요 신문사들이 크게 다룬 뒤에야 진정으로 영향력 있는 뉴스가 된다. 청년들이 보통 때 신문을 잘 읽지 않고 기껏해야 기사 한두 개만 골라 읽고 마는 것도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엄밀하게 말해 온라인 매체가 신문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모바일) 화상 기기를 이용한 매체가 인쇄 매체보다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온라인 매체를 통해 읽는 기사들은 대부분 주요 종이신문 발행사가 생산한 기사들이고, 이를 위한 비용은 종이신문 광고비로 충당한다. 그 광고비를 대는 것은 주요 기업주들이다.

이들은 왜 여전히 종이신문에 투자할까? 종이신문은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종이신문의 ‘종말’은 섣부른 예단이다. 언론은 단순히 이윤 논리에만 따르는 다른 기업과 달리 자본주의 옹호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수익률 저하 때문에 간단히 용도폐기되지는 않는다. 적어도 이를 대체할 대안이 마련될 때까지는 그렇다. 이점에서 종이신문은 온라인 매체는 물론이고 TV나 라디오도 대체하지 못하는 고유한 장점이 있다. 사실 온라인 매체가 등장하기 수십 년 전에 TV가 등장했을 때에도 그보다 훨씬 전에 라디오가 등장했을 때에도 곧 종이신문은 사라질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이 유행하곤 했다.

인쇄매체의 특징

종이신문의 장점은 근본에서는 고유한 물리적 특성에서 비롯하는데, 종이에 글자를 찍어내는 인쇄매체로서의 특징이 그것이다. 수백 년에 걸쳐 발전시켜 온 인쇄⋅편집 기술은 그 장점을 극대화한다. 흰 종이 위에 고정된 문자는 깊은 사고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많은 정보를 빠른 시간 내에 반복해서 볼 수도 있고, 필요한 내용만 골라서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숙고를 위해 시선을 고정해도 주의를 분산시키는 강한 자극은 없다.(사람의 눈은 빛이 나거나 움직이는 물체에 자동으로 반응한다.) 덕분에 오랜 시간을 들여 머릿속에 생각을 쌓아 올리듯이 읽어 나갈 수 있다.

신문은 이런 인쇄매체 중에서도 휴대성이 좋아 어디서든 혼자 집중해서 볼 수 있는데, 시야를 가득 채울 정도로 넓은 공간에 다양한 글 꼭지를 배치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눈에 여러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신문 외에는 어떤 매체도 이처럼 독립된 읽기를 보장하면서도 입체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

이런 장점 덕분에 신문은 가장 오래된 대중 매체이자 가장 열렬한 독자층을 보유할 수 있었다. 편집자와 핵심 독자층 사이에서는 일방적인 정보전달 뿐 아니라 신문의 편집 방향에 대한 상호작용이 이뤄진다. 이런 매체의 특성을 이해하고 잘 활용하는 신문의 핵심 독자층은 대개 여론 주도층이기도 하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해야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자들에게 이런 독자층을 거느리는 것은 무력 만큼이나 필수적인 조건이다.

반면 주로 시각과 청각 정보를 전달하는 TV와 라디오는 엄청난 속도를 가진 전파를 활용하므로 그 확산 능력은 매우 뛰어나지만 내용을 곱씹으며 깊은 사고를 발전시키는 데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 TV를 보는 사람의 눈과 의식은 인쇄 매체를 읽을 때와 달리 수동적으로 끌려 다닌다. 한때 TV를 ‘바보 상자’라고 부른 이유다.

TV와 라디오의 장점과 약점은 똑같이 화상⋅음향 기기를 이용하는 온라인 매체에도 적용된다. 물론 온라인 매체는 TV에 비해 더 많은 문자 정보를 활용하지만, 아직까지 화상 기기는 시각을 지나치게 자극해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숙고를 방해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오늘날의 인터넷 매체는 상업적 필요 때문에 사용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장치들을(예컨대 광고) 발전시켰는데,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사용자들의 시선을 이러저리 움직이게 만들어 집중하기 어렵다. 어떤 정보든 기억에 남으려면 일정한 시간과 반복적 회상이라는 과정이 필요한데 온라인 매체의 특성은 우리의 기억 형성과 기억에 기초한 깊은 사고를 방해한다.

다만, 화상 매체를 통한 읽기는 키워드를 찾아 검색하듯 문서를 검토하고 순식간에 여러가지 판단을 하도록 훈련시키는 데에서는 일정한 구실을 한다. 이처럼 매우 기계적이지만 신속하게 다양한 결정을 내리는 능력의 발달은 사무직 노동자들의 단기적인 생산성 향상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점 때문에 화상 기기의 약점은 보완되기는커녕 오히려 커지고 있다. 역설이게도 이는 온라인 매체의 언론으로서의 잠재력을 약화시킨다.

선전, 운동, 조직

사실 사회주의자들이 신문을 활용하는 것도 이런 매체의 특징과 연관돼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혁명가들이 신문이라는 매체를 활용했지만 그 의의와 필요성을 가장 명료하게 정식화한 것은 1백 년 전 러시아 혁명을 승리로 이끈 혁명가 레닌이다.

레닌은 “신문은 집단적 선전가이자 선동가일 뿐 아니라 집단적 조직자”라고 썼다. “집단적 선전가이자 선동가”라는 말은 사회주의 정치와 사상을 대중에게 알린다는 뜻인데, 이는 현실의 운동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이뤄진다. 즉 신문은 운동 속에서 읽혀야 하고, 운동의 가장 능동적인 부위와 소통하며 현 상황에서 운동을 전진시킬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 같은 매체이지만 사회주의자들의 신문은 부르주아 신문과는 다른 맥락에서 판매되고 읽힌다.

특히, 혁명적 당 건설 문제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가장 진지하고 능동적인 투사들을 핵심 지지층으로 규합하고 조직하는 데에서 신문은 다른 매체들로 대체할 수 없는 장점이 있다. 높은 신뢰도가 필요한 투쟁 조직이나 정치 결사체는 온라인 접촉만으로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같은 TV 채널을 본다고, 혹은 같은 페이스북을 사용한다고 이들 사이에 정치적 신뢰 같은 게 쌓이지는 않는다. 반면, 공장, 사무실, 학교 등에서 직접 판매되는 신문은 사회주의자들과 그 주변을 연결해 주는 기초적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레닌은 “이 점에서 신문은 건축되는 건물 주위를 둘러싸고 세워 놓는 비계[가설물]에 비교될 수 있다”고 썼다.

사실 21세기 초에 좌파의 일부가 신문의 필요성을 기각하고 온라인 매체를 찬양한 것은 이들이 ‘혁명적 조직 건설’이라는 과제를 포기한 것과 연관이 있다. 일부는 수동적 지지층에 의존하는 개혁주의 정치로, 일부는 조직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자발성주의⋅운동주의로 후퇴했다.

다양한 운동에서 집단적으로 이뤄지는 신문 판매는 혁명적 조직과 대중이 소통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혁명적 조직의 구성원들을 재조직함으로써 더욱 단단한 구심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회주의자들의 신문은 다양한 투쟁의 경험과 교훈들을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민주적 의사 결정에 필수적인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토론의 효율성이라는 점에서도 신문은 온라인 매체에 비해 훨씬 나은 조건을 제공한다. 토론 참여자들이 공유하는 공동의 목적과 경험, 신뢰가 단단한 기초를 놓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온라인 매체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혁명적 조직’ 건설이라는 과제를 내버리지 않는 한 종이신문은 여전히 사회주의자들의 손에 쥐어져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의 신문은 집단적 선전가⋅선동가⋅조직자다. ⓒ이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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