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집권과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불안정성을 반영하는 동시에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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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본주의가 각종 불안정에 휩싸여 있지만 분명한 것도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극도로 거만한 서방 지배자들이 자신의 말을 다른 지배자들이 따르지 않거나, 자신의 이익을 조금치라도 침해할 성싶으면 과격할 정도로 예민하게 군다는 것이다(노동자·민중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2015년 그리스에서 당선한 시리자 정부를 대하는 유럽 지배자들의 태도가 그랬고, 러시아를 대하는 미국과 유럽 지배자들의 태도도 그렇다.
러시아의 경우는 좀 더 들여다봐야 한다. 우크라이나와 시리아에서 러시아는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미국에 들이댔다. 이를 두고 ‘신냉전’이 도래했다는 일각의 관측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오늘날 두 나라의 경제·군사·외교적 역량은 냉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격차가 크고, 러시아가 아직은 세계적 패권을 두고는 미국과 경쟁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지배자들은 지역 수준에서나마 러시아가 도전했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더욱이 러시아는 미·중 간 줄다리기가 벌어질 때 일종의 ‘캐스팅보트’ 구실을 하려 한다. 북한 문제에서도 최근 러시아는 미국의 “최대한의 압박” 기조를 거슬러 북한에 접근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 북한은 러시아에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런 이유들로 미국과 유럽의 지배자들은 트럼프의 ‘러시아 내통’ 의혹에 예민한 것이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이 러시아의 선거 개입 때문이라는 주장은 서방 지배계급들의 자기 기만일 뿐이다. 오히려 40년 가까이 이어진 신자유주의와 10년에 가까운 경제 위기에 정치적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 그 본질이다.
바로 이 점이 또 한 가지 분명한 점인데, 그 징후로 미국과 서방 지배자들이 수십 년 동안 구축해 온 질서에 금이 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는 것이다. 그 수혜자가 모험심 강한 우익 망나니(도널드 트럼프)라는 사실은 분명 불쾌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의 집권을 일회적이고 우발적인 사건일 뿐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지금의 체제가 갈수록 각종 이변에 취약해지는 징후로 봐야 한다.
최하층의 지배자들은 네덜란드 총선(3월 중순)에서 우익 포퓰리스트 정당인 자유당이 예상과 달리 제2당에 그치고, 프랑스 대선(4월 말~5월 초)에서 파시스트 마린 르펜의 대권 도전이 좌절한 것을 보며 대체로 안도했다. 그러나 지난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과, 미국 트럼프의 부상이 낳은 불안정성은 쉽게 사라질 성격의 것이 아니다.
트럼프가 구성한 내각에는 월스트리트와 군 출신자들이 많다. 하지만 적어도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공화당 정부들과 비교할 때 명백하고 큰 차이점도 있다. 트럼프는 미국이 수십 년 동안 구축해 놓은 기존의 국제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미국의 패권을 확립하려 한다.
그러나 미국 지배자들의 다수는 트럼프의 이런 전략이 지나치게 모험주의적이고 과격하다고 우려하고 그를 견제하려 한다. 그 결과,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고 노동자들을 쥐어짜야 한다는 데는 서로 이견이 없는 지배자들 사이에서 갈등이 계속돼 왔다.
단적으로, ‘무슬림 나라 7개 출신자 입국 금지’ 등 트럼프가 지시한 행정명령들이 인종차별 자체에는 결코 반대하지 않는 사법부에 의해 기각되거나 상징적 조처에 그쳤다. 또한 트럼프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으로 임명했던 마이클 플린을 사퇴시키는 데 앞장선 것은 미국의 대표적 보수 언론인 〈워싱턴 포스트〉였다. 무엇보다 국가 정보기관들의 전·현직 고위관계자 무려 9명 이상이 그에 협조했다.
그러나 이런 견제 속에서도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감행하고 G20이 “모든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한다”고 선언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 그리고 이런 행보를 비난하는 주류 언론을 향해 “기업 친화적 세계화주의 언론”이라고 일갈했다. 또한 4월 백악관이 ‘닷새 안에 NAFTA 탈퇴를 캐나다와 멕시코에 공지한다’는 행정명령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배자들은 긴장했다.
그러나 이런 일들과 동시에, 트럼프는 특검 수사에 직면해 ‘탄핵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렇듯 지난 넉 달은 트럼프가 기존 국제 질서에 칼을 대는 방향으로 발을 떼려 하고, 유력한 지배자들이 그에게 굴레를 씌우려 하면서 충돌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이 점이 중요한 까닭은 이런 모순이 체제의 불안정성을 키우기 때문이다.
지배계급 내분의 이면에 있는 전략상의 이견
트럼프를 둘러싼 미국 지배계급의 이런 내분은 미국 제국주의가 직면한 더 근본적인 문제를 반영한다. 미국의 경제력이 예전만 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제적 영향력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점 말이다.
그래서 많은 미국 지배자들은 뭔가 조처가 필요하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트럼프처럼 선명하지는 않아도). 2003년 조지 W 부시와 네오콘들의 이라크 침공도 바로 그런 조처의 일환이었다.(그러나 실패했다.)
트럼프는 이 문제에 대해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미국이 그간 구축해 놓은 자유시장 국제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미국의 패권을 확립하자는 것이다. 자유시장 국제 질서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려고 구축한 질서이다. 과거 열강이 식민지를 거느리고 세계를 지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미국은 자유무역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것이었다.(자유시장 국제 질서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크리스 하먼의 새로운 제국주의론》(책갈피) 일독을 권한다.)
그런데 이런 지배 방식이 가능하려면 미국의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미국의 제조업이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하던 때는 이 점이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은 약해진 경제력 때문에 갈수록 허덕이고 있다.
트럼프가 취임 연설에서 “미국 우선”을 공세적으로 표방하며 “보호무역주의가 우리를 번영과 강대함으로 이끌 것”이라고 천명했을 때 그는 바로 이 자유시장 국제 질서에 대한 공개적 거부를 분명히 한 것이다. 트럼프를 오랫동안 관찰한 역사학자 찰리 레더만과 브렌던 심즈는 이렇게 말했다. “자유무역 국제 질서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트럼프는 제2차세계대전 이래 모든 민주당·공화당 대통령들, 심지어 조지 W 부시와도 다르다.”
그래서 지배자들 다수는 트럼프가 자유시장 국제 질서를 지탱하는 각종 국제 기구와 협정, 규범(예컨대,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TPP, 북대서양조양기구(NATO))을 공격하고 흔드는 것을 우려한다.
트럼프는 또한 국제 생산망을 해체하고 기업들이 생산설비를 미국으로 옮기도록 만들려 한다. 다국적기업들이 국경을 가로질러 구축한 국제 생산망은 세계 교역량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걸로 추산될 정도로 자유시장 국제질서의 중추로 자리잡았다. 미국 기업들은 국경 넘어 멕시코(트럼프의 또 다른 공격 대상)와 태평양 건너 중국으로 생산망을 확장했다.
2000년대 독일 자본주의도 산업을 재편하면서 저임금 숙련 노동력 인구를 노리고 생산 설비를 동유럽과 중부 유럽으로 확장했다. 영국에 본사가 있는 다국적기업들도 도버 해협 건너 유럽 본토로 뻗은 생산망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다국간 생산 네트워크의 확장 때문에 친기업 신문 〈파이낸셜 타임스〉는 “트럼프의 무역정책이 현대 세계경제의 주요 기둥을 겨냥한다”며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트럼프는 미국 기업들의 이런 생산망을 뜯어내어 미국으로 돌려놓겠다며 국경세를 신설하겠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사상 최대의 기업 감세, 금융과 노동 규제 완화를 추진하며 생산망 이전 과정이 촉진되길 기대한다. 예컨대 애플 같은 기업들은 법인세를 피하려고 막대한 해외 수익을 미국으로 가져오지 않고 있는데 감세로 이를 본국으로 들이겠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나아가려는 방향에 큰 틀에서 동의하지 않는 지배자들도 감세, 규제 완화 등 트럼프가 꺼내든 일부 수단들에는 떨칠 수 없는 유혹을 느끼고 있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신자유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감을 이용하면서도 더 많은 신자유주의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또한 트럼프는 오늘날 미국이 처한 곤경을 죄다 남 탓으로 떠넘기면서, 특히 ‘이주민이 일자리를 빼앗고, 무슬림이 미국 문명을 위협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의 이러한 역겨운 인종차별도 미국 자본주의 부흥에 대한 그의 전략과 맞물려 있다.
더 불안정해지는 체제
트럼프를 미국 지배계급의 다수가 견제하려 나서면서 트럼프의 정치 위기가 생겨났다. 물론 앞서 봤듯 지금의 갈등에는 지배자들의 더 광범한 우려가 반영돼 있다.
지금 초점은 국가 정보기관들이 트럼프의 ‘러시아 내통’ 의혹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에 맞춰져 있다. 그 배경에는 서두에서 살폈듯 러시아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에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것과, 지금 트럼프를 공격하는 정보기관들이 전통적으로 러시아를 견제하는 데 앞장서 온 당사자라는 점이 있다.
지난 넉 달은 트럼프를 비롯한 지배자들이 공통의 이해관계로 묶여 있는 동시에, 자기들끼리의 쟁투에 골몰하기도 한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소수의 지배자들이 세계를 모두 조종한다는 음모론적 시각과는 정반대다.
국가와 자본의 관계는 국가가 단순히 자본에 굽실거리며 그 비위를 맞추는 관계가 아니다. 국가는 깃털이고 자본이 몸통인 관계는 아니라는 말이다. 국가 운영자들과 자본가들의 파트너 관계는 서로 의존하되 각자 이해관계를 갖는 관계다. 그래서 국가와 자본 각각의 부문들이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에 대해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이렇게 썼다.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국가 정책이 아무리 결과적으로 자본에 유리하더라도 그렇게 결정되기까지의 과정은 시행착오를 통해 균형점을 찾아가는 길고 험난한 상호작용 과정일 수 있[다.] 자본가들과 국가 운영자들 간의 실랑이는 제도와 정책 구성 면에서 당초 출발점과는 현격히 다른 지점으로 균형점을 이동시킬 수 있[다.] 이를테면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자유방임주의에서 케인스주의로 전환이 일어난 것과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신자유주의가 채택된 것과 같은 중대한 경제 정책 수립 방식의 변화를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전환은 부분적으로는 맹목적이고 부분적으로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추동되는 모색과 발견의 과정으로서, 자본 축적에 유리한 조건을 복원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지만, 결과적으로 축적 과정 자체의 성격을 적잖이 바꿔놓을 수 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 《제국주의와 국제 정치경제》, 책갈피, p135~136)
지금 미국의 지배자들은 미국 경제를 부흥시킬 방안이 딱히 없는 상황에서 일치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 점을 노리고 자신이 가려는 방향으로 다른 지배자들을 끌어당기려 한다.
전략 상의 방향 전환을 주장하는 트럼프의 등장은 세계 자본주의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미국의 더 넓은 지배계급과 모종의 균형점에 도달하는 것도, 또 어쩌면 백악관 내부 세력들끼리 균형점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을 수 있다.
미국 지배자들의 이런 갈등으로 인한 불안정이 세계 경제의 추가적인 위기나 유럽연합의 내파 위기, 중국의 부상 등 다른 국제적 요인과 맞물리면 세계 자본주의의 불안정이 더 커질 수 있다. 이미 트럼프 당선으로 체제가 각종 이변에 취약해졌음이 드러났는데, 앞으로도 작은 변화가 의도한 것보다 커다란 결과를 낳거나 전혀 예상치 못한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지배자들이 이처럼 기본적인 방향을 놓고 서로 다투는 상황에서 아래로부터 대중적 저항이 일어난다면 트럼프와 지배자들의 취약점이 커질 수 있다. 트럼프 취임 때 벌어진 미국뿐 아니라 각국의 시위들이 그런 대중적 저항의 잠재력을 보여 줬다. 특히 미국의 시위는 반전 운동 이래 최대 규모였다. 자본주의 최강 국가에서 이런 운동이 또다시 분출하면 체제의 불안정성을 더 키울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미국의 동맹과 그들의 질서에 맞서는 사람들의 투쟁을 고무할 것이다.
물론 지난 넉 달 동안 지배자들이 그나마 서로 화기애애했을 때가 언제였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바로 트럼프가 시리아에 토마호크 미사일 59발을 퍼붓고, 한반도에 항공모함을 보내고 언론을 동원해 전쟁 위기설을 조장하고, 아프가니스탄에 ‘핵폭탄 다음으로 강력하다’는 초대형 폭탄을 투하했을 때였다. 이 점은 이 자들이 얼마나 미친 살인마인지 적나라하게 보여 줄 뿐 아니라, 트럼프가 국내 정치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군사적 모험을 감행할 수도 있다는 것도 보여 준다.
이 글은 다음 논문을 많이 원용했다. Alex Callinicos, ‘The neoliberal order begins to crack’, International Socialism 154 (winter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