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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
트럼프에게 환대받은 문재인의 친미 외교

6월 29일 미국에 간 문재인의 첫 일정은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였다. 장진호 전투는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11월 미국 제1해병사단이 적에게 포위돼 큰 피해를 입고 철수해야 했던 전투로, 이 전투에서 미 해병대가 시간을 벌어 줘 흥남 철수가 가능했다고 한다.

문재인은 기념비에 헌화하며 “장진호의 [미군] 용사들이 없었다면 내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다” 했다. 이 연설은 2003년 노무현의 방미 연설을 연상케 한다. 당시 노무현은 “미국이 한국을 도와 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 모른다” 하고 말했다.

문재인의 이런 행보는 트럼프와의 정상회담과 하원 간담회 등 주요 일정을 소화하기 전에 자신이 한미동맹에 충실하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한 가지 놓쳐선 안 되는 점이 있다. 장진호 전투 당시 미 해병대가 상대했던 적이 누구인지다. 미 해병대를 포위하고 끝까지 괴롭힌 적은 바로 중국군이었다. 당시 중국군도 장진호에서 큰 인명 손실을 입었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경쟁과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문재인의 장진호 기념비 헌화와 발언이 미국과 중국 지배자들한테 어떤 메시지를 줬을지는 불문가지다.

이번 방미로 문재인 정부는 한미동맹의 기존 합의를 재확인하고 미국 제국주의의 패권 전략에 협력할 것임을 트럼프한테 분명히 약속해 줬다.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 지배자들이 이번 정상회담 결과에 만족스러워하며 한·미 관계에 “빛 샐 틈 하나 없다”고 말하는 까닭이다.

방미 기간에 문재인이 한 발언들을 보면 왜 그런 반응이 나오는지 알 만하다.

“한국의 촛불혁명은 미국이 한국에 이식해 준 민주주의가 활짝 꽃을 피운 것.”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힘에 기반한 외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사드 문제는 구체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미국 하원 중진들과의 간담회에서 문재인은 사드 배치를 번복할 의사가 없다고 확언했다. 주요 하원 의원들은 그 답변에 “매우 만족스럽다”고 했다. 다른 자리에서 문재인은 중국을 향해 “사드 배치는 주권 사안”이니 간섭하지 말라고 했다.

메르켈도 못한 트럼프와의 악수, 이게 과연 좋은 일일까 ⓒ출처 청와대

운전석

문재인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으로 한국이 한반도 문제를 주도해 나갈 수 있게 됐다고 자평한다. “주변국에 기대지 않고 우리가 운전석에 앉아 주도하겠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트럼프한테 인정받았다고 방미 성과를 포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이 그어 놓은 한계 안에서다. 게다가 그간 트럼프 정부가 추구해 온 각 동맹국의 ‘책임 분담’이라는 더 큰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미국은 자국이 감당해 온 여러 국제 문제에서 현지 동맹한테 미국의 전략에 협력하는 동시에 책임과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라고 요구해 왔으므로, 앞으로 ‘한국의 주도권’은 빛 좋은 개살구임이 드러날 것이다.

트럼프와 문재인의 공동성명 내용을 살펴보면 이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트럼프는 ‘남북 간 대화 재개’를 지지한다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올바른 여건 하에서”라는 단서를 붙였다.

북핵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와 문재인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데서 “한·미·일 3국 안보 및 방위협력”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3자 협력을 발전시키기로 했다. 북핵 문제 대처에서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개입할 수 있는 3각 동맹이 기본이라고 밝힌 셈이다. 킬 체인 등 기존의 대북 선제공격 전략이 유지됨도 확인했다.

미국과 한국은 기존 대북제재 외에 “새로운 조치들을 시행”하기로 하면서 제재 강화를 예고했다. 마침 미국은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과 거래한 중국 단둥은행을 ‘돈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하고 미국과의 거래를 전면 금지했다. 중국 은행을 제재함으로써 북한의 돈줄을 지금보다 휠씬 더 옥죄고, 중국에 경고를 날린 것이다.

공동성명에서는 북핵 문제 해결의 목표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한반도 비핵화(CVID)”라고 했다. CVID는 과거 부시 정부가 북한을 압박하며 제시한 비핵화 조건이었는데, 당시 북한은 CVID는 “패전국에나 강요하는 주장”이라며 강하게 거부했었다. 그만큼 CVID는 미국의 대북 압박을 상징하는 용어다.

이처럼, 문재인은 한·미·일 동맹 구도 하에서 제재 강화 등 미국의 대북정책 전반에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향후 남북대화에서도 여러 제약과 난관이 있을 것임이 예고되는 것이다.

“공정한 부담”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 양국은 전시작전통제권을 조속히 전환하기로 했다. 전작권 전환이야 당연한 결정이지만 이에 따른 대가가 참으로 비싸다. 한국은 앞으로 “상호 운용 가능”하고 “연합 방위를 주도”할 만한 MD(미사일방어체계) 전력과 핵심 군사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만큼 군비를 급격히 늘려야 하고, 그 과정에서 수입할 무기 대부분은 “상호 운용 가능”한, 즉 미국의 무기일 것이다.

전작권 조기 전환조차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동맹국의 ‘책임 분담’ 기조 하에서 추진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것을 “자주국방” 따위로 포장한다. 여기에 트럼프가 직접 언급한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공정한 부담”이 더해질 테다.

사드 배치 기정사실화, 대북제재 강화, MD를 기본으로 한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비용 분담 등 정상회담 공동성명만 꼼꼼히 뜯어봐도, 향후 한반도와 그 주변 정세의 긴장을 증폭시키고 위험을 키울 요인들이 가득하다.

한·미 정상회담 후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이 직접 나서 사드 배치 결정을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그만큼 중국도 미국과 한국의 행보를 보고 크게 반발하고 있다. 최근 인권, 남중국해, 대만 문제, 통상 등으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다시 높아지는 시점에 문재인은 친미 외교로 미국 편을 든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친미적 자주”가 결국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지원하고, 대중국 포위용 성격을 내포한 한미FTA 협상으로 귀결된 것을 재현하는 모양새다.

따라서 이런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진보 일각에서 문재인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로 약속을 받아 내는 등 “절반의 성공”(정의당 대변인 논평)을 거뒀다고 평가한 것은 아첨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외교·국방 정책에서 이미 배신하고 있음을 가리는 잘못이다.

한편 이번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한·미 간 통상 문제를 본격 제기했다. 자동차·철강 등 구체적 분야를 언급하며,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미 철강·가전 등 한국의 주력 분야가 미국의 수입 규제 타깃이 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한미FTA 개정 등 미국의 통상 압력이 더욱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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