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한 노동자의 최후진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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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산하 기아차지부 집행부가 일방적으로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려는 시도에 맞서 2015년 5월 28일부터 6월 3일까지 교섭장을 점거하고 투쟁한 활동가들에게 사측이 보복성 징계와 고소고발을 했다. 징계에 관해서는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노동자들의 무효소송이 승소했고, 현재 법정 공방중이다. 검찰은 총 9명의 활동가들에게 총 3천9백만 원의 벌금형을 구형했다. 이에 9명의 활동가들이 법정 투쟁을 하고 있다. 아래는 7월 3일 1심 결심공판에서 김우용이 한 최후진술문이다.
대법원 앞 상징석에는 “자유, 평등, 정의”라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개념은 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이 보편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통치 이념이기도 합니다.
검찰은 저를 포함해 제 동료 조합원 9명에게 총 3천9백만 원의 벌금형을 구형했고 지금 본 법정에서 자유, 평등, 정의라는 이름으로 심판하려 합니다. 하지만 자유, 평등, 정의라는 세계 자본주의 지배계급의 통치 이념에 비추어 저희를 기소한 것이 얼마나 부당한 행위인지 말할까 합니다.
이는 곧 한국 자본주의 국가의 통치 이념에 대한 정당성 문제이기도 합니다.
첫째 : ‘자유’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노동조합 활동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 권리입니다.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국가, 예를 들어 OECD 회원국이라면 아주 초보적인 권리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이런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국가 권력에 맞서 피 흘리며 싸워야 했고 지금도 이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본 법정에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주 최근의 사례로는 유성기업과 갑을오토텍에서 그저 노조를 지키겠다고 싸우다 심한 박해 때문에 2명의 조합원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끔찍한 일이 있었습니다.
전교조 권리 자체가 박탈당하는 탄압에 직면해 있고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고 수백 명의 조합원들을 징계하려는 것이 현실입니다.
본 사건 역시 노조 활동을 박해하려는 일환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근무조건을 개악하려는 집행부에 맞서 교섭장 농성을 시작한 것이지 사측을 상대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노동조합 내부의 민주주의 문제였습니다. 현장 조합원들의 노동조건을 일방적으로 개악하는 안을 대의원대회도 거치지 않고 밀어붙이려는 집행부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규약에 따라 대의원대회 소집 서명을 받았고 이를 이행하라고 농성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3천 명이 넘는 현장 조합원들이 서명을 통해 이를 지지했습니다.
이런 현장 조합원들의 열망을 관철하기 위해 사건 당일 교섭장에서 30여 명이 평화적으로 농성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측은 관리자 3백여 명을 동원해 농성 해산 작전을 펼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는 수의 동료들이 부상을 당해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는 사측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조합 활동의 ‘자유’를 부정한 심각한 헌법 위반 행위입니다. 또한 노동조합 활동을 지배 개입할 목적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합니다. 이런 점을 볼 때 본 법정에서 ‘집단폭행, 업무방해, 부당노동행위’로 심판받아야 할 자들은 관리자를 동원해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고 폭력 행사를 사주했을 것으로 보이는 정몽구 회장과 노무관리 책임자들입니다.
이것이 ‘자유’라는 통치 이념에 부합하는 일일 것입니다.
둘째 : ‘평등’의 관점에서 바라보겠습니다.
7월 1일 대법원은 버스 요금 수납금 2천4백 원을 실수로 누락한 노동자에 대한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바라본 평범한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결입니다. 이런 일들은 지난 시절 수도 없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검사 시절 배고픔에 시달리던 생계형 절도범을 구속기소한 것으로 유명한 우병우는 박근혜 게이트의 핵심인데도 아직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정몽구 회장은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며 불법파견 노동을 지속하고 있고 통상임금 역시 지불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수천억의 부당 이득을 보고 있는 현행범이지만 검찰은 기소조차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재용을 제외한 재벌 회장들 역시 수백억을 상납하며 박근혜 표 ‘노동개혁’을 청탁했지만 이재용을 제외하고 단 한 명도 기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2015년 11월 박근혜에 맞서 민중총궐기를 주도한 한상균 위원장은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이것이 이 나라의 진정한 ‘평등’의 진실입니다.
이런 ‘평등’한 법 집행을 하는 박근혜 정부를 보며 기아차 사측은 자신들이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 반성과 사과는 하지 않고 오히려 저희를 고소한 것입니다.
고소돼 지금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경찰, 검찰, 본 법정을 오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저희들은 임금 손실과 함께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 작업장 컨베이어에 매달려 일하는 노동자에게 이런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법률에 대한 전문적 지식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측은 엘리트 노무사와 변호사를 동원해 법률팀을 구성하고 치밀하게 대응합니다. 과연 이게 ‘평등’한 게임이 되겠습니까?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지 않다는 증거는 수도 없이 차고 넘칩니다. 위에서 든 사례는 수만 가지 사례 중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셋째 : ‘정의’의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자유와 평등이 없는데 어찌 정의를 거론할 수 있겠습니까?
특히 ‘이명박근혜’ 정부 집권기 동안 형식적인 자유와 평등도 지켜지지 않고 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돼 왔습니다. 또한 정치사상의 자유 역시 국가보안법이란 이름으로 탄압받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삶은 점차 팍팍해져 갔습니다. 반면 재벌들은 정부와 결탁해 수백 조의 수익을 내며 점점 더 거대해져 갔습니다. 빈부격차는 세계 1위도 멀지 않아 보입니다.
그 와중에 더럽고 추잡한 박근혜 게이트가 터진 것입니다.
이런 부정과 부패에 맞서 1천7백만 명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서 진정한 ‘정의’를 외치며 싸운 것입니다.
1천7백만 명이 거리에서 ‘정의’를 외치자 국회에서 박근혜를 탄핵했고 헌법재판소가 파면 결정했습니다. 이렇듯 진정한 ‘정의’ 실현은 사법부 특히 ‘타락’한 검찰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박근혜와 그 일당을 파면 구속시킨 노동자들과 천대 받는 민중이 보여준 것입니다.
이렇듯 본 법정에서 지금 저희들에게 업무방해죄와 폭력 등의 협의로 처벌하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기본 통치 이념조차 부정하는 것이고, 사법부 스스로 “자유, 평등, 정의”가 얼마나 희화화돼 있는지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본주의 국가가 “자유, 평등, 정의”와 얼마나 거리가 먼 “자본가들의 독재적 통치”를 위한 기구인지 증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 법정에서 저희들에 대한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그나마 자유민주주의 기본 이념에 충실한 판결이 될 것입니다,
만약 검사의 기소 의견처럼 유죄를 선고한다면 대한민국이 자본가들의 독재 국가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입증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2017년 7월 3일